[민윤기] 과일 시리즈 ; 복숭아
W. 어반
내가 맨 처음 윤기를 만난 게 언제더라…. 아마 고등학교 1학년 초여름 계절이었던 것 같은데.
"야 거기! 공 좀 던져줘!"
초록 풀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의 땀 냄새가 풍기는 그런 평범한 오후였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너도나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는 건지 매점에는 아이들이 붐비고 있었다. 나 역시 시원한 음료수가 마시고 싶었지만 굳이 저 아이들 틈에 들어가 사 먹을 만큼 마시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벤치에 앉아 읽던 책을 마저 읽어나갔다. 그때였다. 내 발밑으로 축구공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흙과 책 뿐이던 내 시야에 낯선 축구공 하나가 들어온 탓에 고개를 들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운동장 한 가운데서 공 좀 던져주라며 소리를 지르는 김태형이 있었다.
"……"
"야! 김탄소! 공 좀 던져 달라고!"
"……"
"야 민윤기 네가 대신 다녀와라."
"…내가 왜."
"네가 공이랑 가깝잖아 새끼야."
"…짜증 나."
당황한 나머지 그저 공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제법 답답했던 모양인지 내 근처에 있는 친구에게 대신 공을 가져오라고 시키는 김태형이었다. '짜증 나' 조용히 욕을 내뱉으며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아이는 남자 치고 유난히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내게 가까워지고 내가 공을 주워 그 아이에게 공을 쭉 내밀었을 때, 그때 잠시 시원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순간 어딘가에서 달짝지근한 복숭아 향이 확 - 하고 풍겨왔다.
"……."
"……."
공을 주고 받으며 소년의 손과 잠시 스친 내 손에 당장이라도 복숭아 향이 녹아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책을 읽기란 무리일 것 같아 책을 옆구리에 끼고 조심스럽게 벤치에서 일어난 나는 뒤를 돌아 학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학교에 들어서기 전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칼을 마구 헝클이면 나는 잠시 뒤를 돌아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 아이와 스쳤던 손을 코에 묻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정말 복숭아네."
그게 나와 하얀 소년, 아니 민윤기와의 첫 만남이었다.
***
윤기는 유난히 말이 없는 대신 행동으로 실천하는 타입이었다. 내가 윤기가 정말 행동 파라는 걸 깨달은 날이 있는데 그때는 바로 추운 겨울날이었다.
"윤기야."
"……"
"민윤기."
"…왜."
"나 초코 우유 먹고 싶은데 같이 매점 가주면 안돼?"
"……."
"싫어?"
"……."
윤기는 한참을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저 자리에 앉아 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온 건지 살짝 들뜬 숨을 뱉으며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정말 뛰어오기라도 한 듯 윤기의 머리는 어딘가 모르게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어디 다녀왔어?"
"이거."
내 앞에 초코 우유를 내밀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윤기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여전히 가파른 숨을 쉬고 있었다.
윤기야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초코 우유지. 그니까 초코 우유인 건 맞는데 어디서 났어? 매점 다녀왔어? …….
윤기는 담담한 표정으로 우유 갑의 입구를 뜯고 빨대를 꽂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윤기가 건네 준 초코 우유를 손에 쥐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 윤기는 그저 '먹어.' 라는 말과 함께 손등에 턱을 괴었다. 그리고 우유를 반 즈음 먹어갔을 때 나는 윤기에게 물었다.
"윤기야, 나 초코 우유 사주려고 매점 다녀온 거야? 응?"
"……."
"대답 해줘. 윤기야."
"……."
"응? 윤기ㅇ…"
"밖에 춥잖아."
밖에 추우니까. 괜히 나갔다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윤기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 엎드려 고개를 묻었다. 그런 윤기가 귀여워 푸흣 - 하고 가볍게 웃어 보이면 팔 사이로 보이는 윤기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윤기야."
"……."
"고마워."
"……."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
우유를 먹다 말고 책상 위에 올려둔 나는 그런 윤기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내 말에 윤기는 고개를 들어 한참을 나를 바라보았고 초침이 정확히 9를 가리켰을 때 꾹 닫혀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윤기의 입이 열렸다.
"야."
"응?"
"…내가 더."
윤기의 얇은 핑크 빛 입술이 내 입술 위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순식간에 내 얼굴이 붉어지자 윤기는 그런 나를 보며 피식 - 하고 웃어 보이더니 이번엔 그가 내 귓가에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
라고.
언젠가, 누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너 민윤기랑 왜 사귀어? 걔 말 없고 무뚝뚝하다고 여자애들한테 소문났던데. 너한텐 안 그래? 응, 나한테도 그렇지. 근데 어떻게 사귀어?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 사귀겠다!
우리 윤기는 무뚝뚝한 게 아니야. ……. 수줍음이 많아서 말이 짧은 거지 무뚝뚝한 게 아냐. …….
"……복숭아 냄새 나…."
"…뭐?"
"윤기야 너 그거 알아?"
"……"
"너한테서 매일 매일,"
"……"
"복숭아 향기가 나."
윤기는 내 말이 이상한 듯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윤기를 향해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윤기는 나한테 복숭아야."
"……"
"세상에서 제일 예쁜 복숭아."
너와의 추억엔 언제나 복숭아 향만 날 것 같아. 그래서 우리 윤기는 내게 있어서 향긋한 복숭아 같아. 새초롬한 내 복숭아, 윤기. 앞으로도 함께 할 내 복숭아.
| 어반 |
안녕하세요 어반 입니다. 처음 올리는 글이라 조심스럽게 5p로 글 올리고 가요. 앞으로 예쁜 글로 종종 찾아뵙고 싶어요! 잘 부탁 드려요(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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