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우리의 밤
17
정국이는 다행히도 제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했다. 덕분에 출판사와의 작업도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출판까지 별 다른 문제없이, 잘 흘러 가고 있었는데 -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출판사 측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꼭 공개를 해야 하나요?"
"저... 그게 저희 측에서도 최대한 거절하고 있는데, 이미 인쇄업체에서 그렇게 찍어낸 모양이에요."
지금껏 얼굴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온 나에게, 이제는 얼굴을 비롯한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어이 없게도 출판사와 인쇄업체 측의 실수였다. 출판사는 이번 인쇄를 넘기면서, 내가 초창기에 그들에게만 전해준 나의 프로필 사진과 약력이 인쇄 된 종이를 같이 넘겨버렸고, 인쇄가 다 진행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확인해 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신입 사원은 이미 '신상 최초 공개' 마케팅 타이틀이 딸린 기사까지 발 빠르게, 기자들에게 건넸다고.
뭐 -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일처리에 미숙했던 그들에게 화가 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공개 할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의 이야기를 숨어서 하는 것에 있어서, 마음이 쓰이는 부분도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대충 알았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꽤나 복잡한 삶이 시작 될 것 같았다.
*
작품 발매 하루 전이었다. 정국이는 군대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꽤나 유명한 기획사의 안무 프로듀서로 계약을 끝냈다. 정국이가 춤 추는 걸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춤에는 별 다른 지식이 없는 나라, 그가 잘 춘다. 이 정도까지만 생각했는데 - 아이는 생각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것 같았다. 새삼 '내 남자가 이 정도다.'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 그의 회사 앞으로 퇴근을 마중 가는 길에도, 자꾸만 마음이 붕붕 - 떠올랐다.
정국이는 피곤한 지, 연신 고개를 크게 돌리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나는 괜히 정국이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그의 뒤로 몰래 다가가 허리에 두 손을 감쌌다. 놀랐겠지?
"짠!"
"누나네 -"
"뭐야. 왜 안 놀라!"
내 바람과 다르게 태연하게 계속 제 목을 주무르며, 누나네 - 하고 건조하게 말을 뱉는 그였다. 순간 김이 확 빠져버린 나는 정국이에게 왜 안 놀라냐며, 그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떼고는 그의 앞에 섰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에 제 두 손을 올리고는 '향기부터가 누난데, 모를 재간이 있나.' 하며 내 손을 마주 잡아 온다. 향기?
"무슨 향기?"
"있어. 누나 향기."
"뭐야 - 뭔데에!"
"누나 샴푸향."
길을 걸으며 무슨 향기냐고 묻는 내게, 태연하게 샴푸향이라고 대답하는 정국이였다. 나는 전혀 부끄러울 게 없는 상황이었는데, 뭔가 그가 나의 향을 맡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내 샴푸 향이 뭐지...?
"내 샴푸 향이 뭐야?"
"뭐야 - 자기가 쓰면서도 몰라?"
"...나야 맨날 쓰니깐! 잘 못 느끼지!"
"그런가 -"
"그럼! 전정국 너가 이상한 거야!"
"뭐가 이상해 또."
"...변태도 아니고, 왜 향으로 막, 어? 사람을 그래?"
전혀 그에게 따질 일도 아니였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괜히 큰 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그러자 정국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리며 뭐가 이상하냐고 물어온다. 나는 차마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는 이 마음을 정리도 하지 못 한 채, 그에게 내뱉었다. 왜 향으로... 막. 그. 어? 사람을 그래? 하며. 내가 그였어도 웃길 모양새였다. 정국이는 버벅거리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가까이 제 입을 가져대고는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로, 말을 툭 - 건넨다.
"나 변태 맞는데."
"..."
"아직도 몰랐네. 이 누나가."
"..."
그는 제 말을 끝으로 내 귓볼을 약하게 앙 - 하고, 순식간에 물었다가 멀어졌다. 아니... 자기가 강아지도 아니고, 왜 귀를 물고 그런데...!
참나 -
왜 이렇게 덥지?
*
정국이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로 향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내가 귀찮을 법도 한데, 매번 군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정국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제 학교를 보고는, 왜 이렇게 작아졌지? 하고는 꽤 오랫동안 운동장을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에게 '난 그 생각을 너보다 4년은 먼저 했다 -'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는 '나이 얘기는 맨날 먼저 꺼내면서, 놀리면 삐지고. 하여튼 이상해 -' 하며, 내 옆으로 와 내 손을 잡는다. 전에는 이런 말하면 아니다. 괜찮다 - 그랬으면서, 이제는...! 막 한 마디도 안 지고 받아치고. 커진 덩치 만큼이나 여러 가지로 많이 성장한 정국이었다. 나는 정국이와 마주 잡은 손에 내 나름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놀리 듯, '하나도 안 아프거든요 -' 하며 웃는다. 매번 보는 웃는 얼굴인데, 나는 어떻게. 매번 설레니.
정국이와 운동장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그에게 궁금한 점이 생겨났다. 사실, 문득은 아니고 - 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언제 말을 꺼내야,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걸으면서도 어둠을 방패 삼아, 힐끔힐끔 그를 올려다 봤다. 정국이는 오랜만에 온 제 학교의 감상에 젖어, 내가 저를 쳐다보는지도 몰랐다. 그래...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보자. 그리고, 뭐 - 뭐라고 하면! 그냥 학교 얘기 하면 되지!
"...정국아."
"응."
"그..."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일까."
"내가 말 다 하기 전에 절대! 나 쳐다보면 안 돼!"
"쳐다보면?"
지금 내 속도 모르면서 장난스럽게 내게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며, 쳐다보면? 하고 묻는 그다. 나는 아프지 않게 그의 팔뚝을 살짝 때리며, 말했다. 아! 진짜아! 그러자 정국이는 웃으면서, '알았어. 봐달라고 해도 안 봐 줄 거야.' 하고 대답한다.
"그... 있잖아."
"응."
"...왜 남자들은 그..."
"뭐어."
"그...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더 막... 사랑해주고 싶지 않ㅇ, 않아?"
"...그래서 사랑해주잖아. 내가 너를."
"아니... 좀... 막, 어, 어른처럼?"
그는 내 말을 이해를 못 한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못 한 건지. 내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와 내 걸음이 느려졌다. 나는 정국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싶어, 고민하다가 기껏 생각해낸 단어가 - '어른답게' 였다. ...나 글 왜 쓰니? 그러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내게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고개 돌리면 안 돼!' 하고, 그를 강하게 말렸고 - 그는 내 말에 나를 향하던 고개를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하고 다정하게 물어온다. 아. 진짜 -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 진짜! 짜증나."
"뭐가 짜증나."
"너!"
"왜."
"...넌 왜 나랑 안 자?"
"야."
"아니. 둘 다 성인이고! 어? 우리 4년이나 만났고! 어? 막! 그럴 수 있잖아!"
"뭘 막 그래. 이 여자가 누가 누구보고 변태래."
"이씨. 야! 너는 너 변태라며!"
"응."
"근데 왜... 가만히 있냐고!"
"가만 안있으면?"
그는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내 말을 무시한 채로, 내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물었다. 가만 안있으면? 하고. 나는 자꾸만 모른 척 하는 그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숙이고는 '아니야 - 됐어.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하고, 먼저 걸음을 뗐다. 이게 뭐야... 얻은 것도 없이, 창피하기만 하고!
몇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운동장 바닥으로 정국이의 그림자가 내게로 향하는 게 보였다. 아. 창피해! 나는 그의 그림자를 보고 나도 모르게, 빨리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덩달아 그의 그림자도 빨라진다. 그는 내가 뛴 보람도 없게, 너무나도 쉽게 내 팔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채 숨도 고르지 않은 채로, 내게 입을 맞춰왔다.
평소와는 다른 입맞춤이었다. 그는 내 허리를 잡아 당겨, 자신과 더욱 밀착시켰다. 마치 조금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나는 길어지는 입맞춤에 숨이 가빠졌다. 그는 그런 나를 눈치챘는 지, 잠시 나에게서 멀어졌다. 사실, 멀어졌다고 하기에도 좀 그런 게... 그의 콧잔등과 내 콧잔등이 맞닿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내 눈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는 다시금 내게 입을 맞추려는 듯, 고개를 숙이다가. 문득 멈춰섰다. 그러더니 내 귀에 아까처럼 귓속말을 속삭인다.
"학교에서"
"..."
"이러면 안되는데."
"..."
"근데."
"..."
"너도"
" ..."
"나도"
"..."
"학생 아니니까."
"...야아."
"...그래도 걸리면 책임은."
"..."
"누나가 지는 걸로."
제 귓속말을 끝으로 내게 아이처럼 웃어보이는 그였다. 내게 책임을 넘기는 그에게 나는 더 따질 것도 없이.
그에게 먼저 입을 맞췄다.
꽤 길고 깊은 입맞춤을 맞추고 나니, 밀려오는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그는 내 뒷 머리칼을 쓸어 내리며 말한다.
"나머지는 집 가서."
"...집?"
"나"
"..."
"오늘 결계 없애도 돼?"
*
정국이와 함께 맞는 아침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부산이 있었지만, 그 때랑 지금은 다른 의미의 아침이니깐.
내 옆에 있는 그가 마냥 신기했다. 나는 그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 쳤다. 자는 건 완전 애기네. 정국이. 그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계속해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스스로 생각을 해봐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아봤지만. 흐흐. 귀여워! 그는 그런 내 웃음에 잠에서 깼는지, 제 콧잔등에 올라가 있는 내 손을 단숨에 제 손으로 잡아챈다.
"...왜 자는데 만져."
"이게 무슨 만진거야! 건드린거지!"
"만진 거보다 야한게, 건드리는 거야."
"...너 더 자."
"잠이 올 리가."
왜 자신을 만지냐며 묻는 정국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만진거야! 나는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건드린거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는, 제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는 답한다. 만진 거보다 야한게, 건드리는 거야. 하며. 나는 그를 다시 재워야겠다 싶어, 그의 등을 토닥여줬다. 사실, 내 손바닥에 느껴지는 그의 맨 등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그랬으면 더욱 놀려올 그였기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 더 자 - 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어색하게 제 등을 토닥이는 내 손길이 웃긴지, 해사하게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내 목덜미에 제 입술을 지분댄다. 정국이가 입혀준 그의 티셔츠가 한 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목덜미에 닿아오는 간지러운 느낌에 살풋 웃음이 터졌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단단한 그의 가슴팍이 또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거기서 웃지 말지."
"너가 웃기잖아!"
"간지러워."
"나도 간지러워."
"그럼 쌤쌤이지! 뭐 -"
"...아닐 텐데."
"왜?"
"누나는 간지러우면 웃잖아."
"...야. 너 말하지마."
"난 웃는 거에서 안 끝나는데."
*
얼굴과 신상이 공개 되며, 잡힌 인터뷰 스케쥴이었다. 사실 출판사 측에서 제안해 온 건, 기자회견이었지만. 작가가 책 낸 게 뭐 대수라고, 기자회견까지. 간단하게 몇몇 문학 기자분들과 함께 작은 카페에서 진행되는 형식의 인터뷰였다. 원래 출판사 측에서 픽스해 준 의상은 오프숄더였지만, 녀석이 새벽 사이에 잔뜩 괴롭힌 덕분에. 약간은 어두운 색의 블라우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협찬 의상을 못 입게 된 탓에 다음에는 꼭 입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협찬 측에서도 내 말을 수긍했고, 대신 다음에 더욱 대중적인 자리에서 입어주셔야 한다며 사람 좋게 웃어 주었다.
새로 바뀐 의상으로 갈아입고, 평소보다 높은 구두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금방 다시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허리 아파.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사실 이번 회차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소중한 아이를 가볍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는, 이 둘에게 '잠자리'가 단순히 외적인 의미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자 주인공과의 첫 대면에서의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그녀를 아껴주던 정국이가 먼저 용기를 내 준, 여자 주인공에게 이제 저도 용기를 낸 거죠. 오래 된 연인의 충분히 예쁘고 소중한 장면이라는 생각에서,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가지고 썼어요...ㅎ
둘 사이의 밤은 아마 텍파로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으아ㅏ... 저는 몰라요ㅜㅅㅜ
암호닉은 글 올리고 댓글 천천히 읽으면서, 수정 하겠습니다 :)
+ 저 오타 짱 많던데... 아무도 말 안해주셨어요...ㅜ.ㅜ 텍파에서 고칠게요! 작품 읽으시는 데 몰입이 깨지셨을 것 같아, 걱정됩니다!
암호닉은 글 올리고 댓글 천천히 읽으면서, 수정 하겠습니다 :)
그리고 저 암호닉 계속 받으니까, 막 죄송해 하시면서 물어보시지 않으셔도 돼요! 혹시라도 말씀 해주셨는데, 제가 까먹었다면 -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ㅜ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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