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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법칙 전체글ll조회 491

보석은 원석을 수천번은 깎아내어 만들어진다.
대개의 모든 고객들은 대형 홀에 내보여도 손색이 없을 완벽한 상품화를 원한다. 돌덩이가 붙은 원석의 찬란한 빛 따위에는 일체 관심이 없어하는 그들을 만족시키려면 몇 번이고 피와 살인 돌덩이를 깎아야 한다. 돌덩이를 깎아내면 그 다음은 레이저로 된 혹독한 작업이 원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바닥은 그것과 같다. 여태껏 입고 있던 진부한 껍질을 스스로 깨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낙오되는 세상이다. 마른 몸을 선호하는 직업의 특성상 정장 모델은 젓가락만큼 말라야 한다. 불필요한 살덩이는 곧 모델에게 죄악이요, 수많은 파티에 참여하여 웃고 떠들면서도 먹은 것들을 전부 화장실에서 뱉어내지 않는다면 화보를 찍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바닥은, 그런 세상이다.
피해를 입건 말건, 당신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 조금만, 조금만 더 옆으로 가 봐요. "


찬열은 주기적으로 셔터를 눌러대며 렌즈 너머로 포즈를 취하는 모델을 본다. 지극히 정석적이고도 다듬어진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를 향해 취하는 포즈는 지극히도 정석적이다. 정석적이라는 말은 곧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확실히, 결코 그녀가 최악의 상대는 아니었다.


" 다른 포즈는 불가능한가요? "
- 글쎄요.. 저게 가장 하이패션으로서는 특성화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진부하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케이트 모스와 트위기가 주도한 마른 모델 열풍은 반 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그 명맥이 시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업계의 모델들은 점점 진부해지고 있다. 마른 모델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찬열은 무조건적인 마른 몸매보다는 몸의 곡선이나 다양한 포즈가 자아내는 느낌을 더 우선시하는 편이었지만, 트렌드가 그랬던 만큼 카메라에 담기는 모델들은 마른 게 필수조건적이었다. 그러나, 마른 모델들은 매력이 없다. 마른 만큼 새로운 포즈를 개발하기보다는 그저 과거의 트위기 그대로의 오마주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잦다. 그랬기에 진부하고 평이한 화보만이 나오는 것이다. 다양한 포즈는 이미 자아도취에 취해 완벽히 정체되어 버렸다. 마른 몸매가 이득이 되기는 한다. 사진이 더 잘 나오니까. 하지만 매력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퇴색과 정체에 묻혀버린 지 오래다. 빳빳하게 굳은 어색한 초짜 모델보다 더욱 죄악인 것은 진부한 발전 없는 모델이다. 그게 반복된다면, 과정은 오르가슴이 없는 식어버린 섹스와 같아져 버리는 것이다.


" 수고하셨습니다. "


마지막 셔터가 터지고, 촬영이 끝난다. 찬열은 의문한다.
이게 하이패션일까?
라스트 컷을 마무리한 찬열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한동안 정체감을 느껴야 했다. 밑질 게 없는 촬영이었다. 그러나 얻은 것도 없다. 언젠가부터, 모델을 뮤즈라 느껴본 적이 까마득했다. 아니, 있기나 했을까? 무료한 감정에셔터를 누르는 손은 점점 더 괴로워져만 갔다.메이크업을 벗겨내는 모델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그러나, 찬열의 표정은 밝지도 어둡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푸른 느낌을 내지 못했다.











종인x찬열
zero-sum 00

zero-sum : 게임·관계 등이 쌍방 득실(得失)의 차가 무(無)인









찬열은 종종 무료함을 느끼곤 하는 젊고 유망한 사진작가였다. 스물여섯, 젊다면 젊은 나이였다. 한창 나이에 무료함을 느끼게 된 계기는 잘 모른다. 분명 매사 성격이 유쾌한 편이었는데도 그는 때때로 인생이 짙은 먹구름과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시기는 한정적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가끔 우울해지곤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가슴 속이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버렸다. 푸른 느낌을 동경하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내보인 적은 기억 속에 단 한번도 없다. 흐리멍텅한 찬열의 시선이 비가 오는 회색빛 하늘을 향하다 멈췄다.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였다. 결국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한다. 이런 저런 촬영 과정을 타자로 묘사하던 찬열을 발견한 존재는 백현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애매한 찬열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캐치한 백현이 걱정스럽게 찬열에게 물어왔다. 괜찮아?


" 오늘도 기분 안 좋은거야? "


아득하기만 하던 촬영이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찬열은 유리 테이블에 놓여진 에스프레소를 입에도 대지 않은 채 노트북을 두드렸다. 공허감에 텅 비어있는 머릿속을 일깨우려 애쓰던 도중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역시, 백현이었다.  찬열이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냥 촬영이 잘 안돼서. 백현이 찬열의 옆자리에 앉아 라떼 한 잔을 주문한 뒤 별 생각 없이 각설탕을 쌓고 있는 찬열을 가만히 보다 이름을 불렀다.


" 뭐해? "
" 으,응? "
" 정신이 빠져 있잖아. "
" 나 진짜 아무 것도 아냐. "


그냥 조금 무료해져서 그래. 진짜 나 괜찮아. 층층이 쌓은 각설탕을 하나 하나 에스프레소에 떨어트리던 찬열이 고개를 저었다. 넌 어디 갔다오는 길이야? 어딘가 멍한 찬열의 표정을 보고 잠시간 뜸을 들이던 백현이 이내 대답해 온다. 동창회. 정말? 나도 데려가지. 아니, 너 바쁘잖아. 나도 간만에 시간이 비어서 갔다 온 거야. 대강 말을 얼버무린 백현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 실린 엘르지를 펼치며 물었다. 이번엔 무슨 문제가 있는 건데? 그는 찬열의 좋은 상담자였다.


" 이번 촬영도 나쁘지 않았어. 다만.. "
" 다만? "
" 느낌이 없어. "


모델도 흠 잡을 곳 없고, 촬영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는데..
내가 이상한가봐. 찬열이 백현을 향해 쓰게 웃으며 스푼으로 에스프레소에 녹은 수많은 각설탕을 젓는다. 에스프레소는 더 이상 에스프레소가 아니다. 각설탕이 들어간 일반 커피와도 같아져 버렸다. 찬열은 단내가 풍기는 제 찻잔 안 커피가 아까의 그녀 같다고 상상한다.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은. 만족스런 촬영이 과연 언제였는지나 까마득하다. 푸른 느낌을 좇을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 정말, 사람에겐 없는 걸까? "
" 네가 찾는 그 느낌이? "
" 응. "


하늘을 보면 있었는데.
찬열은 눈을 뜨면 항상 푸른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했다. 이른 아침의 푸른 창공은 그 어떤 세공된 보석보다 아름답다. 화려한 샤파이어보다 아름다운 하늘은, 어쩌면 투명한 느낌이 났다. 숨쉴 수 있는 하늘, 그리고 수맥이 잠긴 고요한 바다. 투명한 하늘과는 달리 바다에서는 잠겨가는 특유의 생경한 느낌이 자각된다. 고요함 속에 살아있는 푸른 느낌, 특유의 소금기 서린 짠내와 기약없이 추락해 내려가는 깊은 심연, 그리고….


- 꽃 배달 왔습니다.


물 냄새.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찬열이 급작스레 배달부에 의해 내밀어진 꽃다발을 멍한 눈으로 받아들었다. 또 왔네. 한참의 텀을 두고 읊조리는 목소리가 아직까지 수맥에 잠겨져 있다. 백현의 눈길도 찬열과 같이 물망초 꽃다발을 향한다. 싱그러운 물망초는 연보랏빛과 푸른색을 동시에 띄고 있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자수정처럼 반짝이며 빛을 냈다. 찬열은 말없이 물망초 향을 맡았다. 순한 내음이 났다. 깎아진 보석보다 이런 사소한 부류를 사랑하는 스스로가 어쩌면 웃겼지만 그만큼 찬열이 아름다운 존재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었다. 값어치가 아닌 매료와 미학을 중요시하는 내면은 어찌보면 좀 멍청해 보이기도 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써져 있는 꽃말이 찬열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뼈마디가 드러나는 손목 위 손가락이 꽃다발을 꼭 붙잡고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변하지 않는 카드 안의 여섯 자, 매달마다 발신자 없이 배달되는 물망초에 비뚜름히 쓰여 있는 글씨가 찬열을 파란시킨다.
푸른 꽃의 색, 푸른 꽃의 향기, 이름 모를 발신자의 글씨.
물망초 꽃다발의 상대는 어쩌면 찬열을 광적으로 스토킹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찬열은 이 모든 부분에 대해 말이 없었다. 백현은 찬열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이따금 신고를 하지 않겠냐며 물어왔지만 묵묵부답인 찬열의 답변에 그대로 따라 주었다. 오늘도 찬열은 말이 없었다. 그저 팔에 안은 꽃다발을 놓지 않고 있었다. 곧고 길게 뻗은 길고 투박한 손가락이 피어 있는 물망초 꽃잎을 매만진다. 흐리멍텅한 두 시야를 보면서 백현은, 어쩌면 찬열이 찾는 푸른 느낌이 물망초일 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찬열은 가끔 가다 허공을 유영하는 것 같았다. 창공을 가르고, 천천히 잠수하는 허공의 바다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서, 가끔 백현은 불안해진다.

" 백현아. "

푸른 느낌이 나.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는 백현의 시선이 미묘해진다.









백현은 물망초가 온 직후부터 정처없이 일렁이는 찬열의 두 시선을 일깨우려 찻잔으로 테이블 위 유리를 툭 두드렸다. 찬열이 고개를 들자, 백현의 못마땅한 두 눈이 제 동공 안에 자리잡았다. 찬열이 정신을 차린 것을 목격한 백현의 얼굴에서 금새 못마땅한 기운이 가셨다. 찬열이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백현은 말을 잇는다. 넌 간간히 이렇게 정신을 놓더라. 서두를 꺼내는 기색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점에서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 계속 이러는 거 보면 수상해. "
" 응? 아냐, 나 원래도 가끔 이러잖아. "
" 정말 없어? "
" … 하나 있긴 해. "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의 백현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인 찬열이 정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대답을 꺼내었다. 크리스가, 잘 연락이 안돼. 백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크리스는 백현이 소개해준 찬열의 애인이었다. 크리스 우, 중국의 유망한 사진 작가. 백현과 작업하게 되어 친해진 그는 찬열이 찍은 사진을 보고 관심을 표했다. 그렇게 백현의 주선으로 만난 두 사람은 머지 않아 크리스의 고백으로 사귀게 되었다. 평소 잘 웃는 찬열은 크리스의 옆에서 누구보다 밝게 웃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일년이 조금 넘어갔다. 조용히 옆에서 두 사람의 애정을 응원했던 백현은 믿지 못할 한 마디에 적잖이 당황해야 했다. 크리스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나도 알아. 그런데 왜.

" 요새 바쁘다고 연락이 안 되니까, 조금 걱정도 되고. "
" 지금 중국에서 바쁘다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야 하지 않아? "
" 응, 그건 그렇네. "
" 기다려 봐. 연락이 오겠지. "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찬열을 본 백현이 잠시간 주저하다 찬열을 다시 불렀다. 찬열아, 응. 온화하게 웃는 친구의 얼굴이 백현의 시선에 잡힌다. 자그마치 15년을 함께한 찬열은 그때나 지금이나 바보같이 착했다. 백현은 그랬다. 누구보다 친절하고 다정한 자신의 친구를 상처입히는 사람이.

"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 "

친구잖아, 응?
아무도 없었으면 하고 바랬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미미하게 웃는 찬열의 얼굴이 맑았다. 백현은 찬열을 조금은 동정했다. 계절의 하반기가 될 때마다 자신의 가엾은 친구는 영문 모를 이유로 자주 앓곤 했다. 조만간 크리스는 찬열과의 합동 촬영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그가 귀국하면 그 길로 찬열과 만나게 해야겠다. 다짐한 백현이 다시 찬열을 보았다. 아까의 그 물망초 다발을 다시 꼭 안고 있다.

이상하게, 저 물망초가 기분이 나쁘다.
백현은 생각한다. 찬열이 함구하라 말했던 물망초에 대한 일화도 크리스에게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좋겠다고.









세기의 모델 김종인이 귀국한다.
동양 모델의 역사를 새로 쓰던 도중 베르사체 쇼를 마지막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전미를 울린 지가 반년, 기적이 일어났다. 무려 국내에서의 활동 재개를 선언하며 영구 귀국, 지금 한국은 난리가 났다. 김종인의 귀국으로 국내 패션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가 결코 한국 활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돈을 건 모든 사람들이 울상을 짓기 일쑤, 아직 공식 석상에 나타난 적은 없지만 곧 이루어질 국내 최대의 작업인 크리스 우와 박찬열이 주도하는 화보 촬영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벌써부터 그의 몸값을 매기는 데에 정신이 팔린 몇 꾼들은…

정신없이 터지는 플래시를 무심히 지나치던 종인이 아무렇지 않게 신문을 펼치면서 손을 흔드는 루한을 별 생각없이 바라보았다. 이런 적은 여러 번이다. 은퇴하겠다는 통보에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내렸던 자신의 소속사 사장 루한은 적잖이 별난 인간이었다. 열여덟의 종인은 날것 그대로 루한의 손에 D&G 쇼의 메인으로 데뷔했다. 아무 경력 없는 동양인이 데뷔로 돌체 앤 가바나의 메인을 장식한다는 사실은 거의 미친짓에 가까웠고 쇼가 시작되기 전까지 종인은 거의 안티 히어로 수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쇼가 발표되자 여론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어떻게 저런 물건을 건지셨어요? 쏟아지는 인터뷰에 루한은 시가를 문 그대로 던진 단 한 마디에 모든 기자들을 일축시켰다.

- 될 놈은 되니까 시킨 거지.

" 이거 봐, 너 스포츠 신문 일면에 실렸어. 대단한데? "
" 여기까지 따라온 저의는 뭔데. "
" 글쎄. "

미국보다 낫네, 공기도 좋고.
서른여덟 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신연령도 육체연령도 사기에 가까운 루한은 이내 종인과 함께 리무진에 올라탔다. 다리를 앞좌석에 올려놓은 채 또렷한 한국어로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루한을 가만히 내버려둔 채 욕지기를 내뱉으며 리무진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급격히 급정거하며 찢어지는 소리를 울려대는 리무진에도 그대로 문을 열어 몸을 날리는데, 그 몸짓이 몹시 날래 루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새에 종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루한은 그제서야 헛웃음을 흘리며 신문을 덮고 종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꺼져.
" 넌 미국에서도 들개였지, 한국에서는 더 미쳐 날뛰는구나? "
- 별로.
" 광견 같거든, 그래서 널 따라온 거야. "

너 길들인 파랑새 얼굴이나 좀 보고 싶어서.
종인은 말이 없다. 낄낄대며 웃음을 터트린 루한이 한가롭게 리무진 앞좌석에 두 다리를 걸치고 창문을 향해 시가 연기를 내뱉는다. 그 모습이 몹시도 인위적이라 길가를 지나가던 여럿 여학생이 루한을 무슨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하며 바라보았지만 루한은 그에 화답하기 위해 주저없이 팔을 들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그래서, 파랑새는? "
- 알바 없잖아.
" 있지. 나도 못 길들인 너를 길들였다는데. "

예뻐?
물으며 낄낄대는 루한에게 종인이 욕으로 대답했다. 종인은 변한 게 거의 없다. 아니, 있다. 사실 지금보다 열일곱의 종인은 양반이라고 할 정도로 온순할 정도였다. 그게 파랑새의 보살핌, 그리고 파랑새의 그늘이 없어진 게 지금. 미국에서도 미친 광견으로 소문이 날 대로 날 정도였던 종인을 제대로 길들인 파랑새는 루한에게도 제법 궁금한 존재였다. 다시 물었다. 예쁘냐고, 나도 말 좀 듣자. 종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루한은 계속 종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 끊는다.
" 야, 야! 이틀 뒤에 기자회견 있는 거 알지? "
- .....

그대로 전화가 끊기는가 싶었다. 성격 좋은 루한의 입에서도 욕이 샜다. 에라이, 시발놈. 예의도 모르냐, 좀 말해달라니까?
그때였다.
종인의 목소리가 들렸던 건.

- 네가 입에 담을 가치도 없을 만큼.
" 어? "
- 그만큼 아름다워.

그러니까 당장 꺼져.
전화가 끊어졌다. 루한은 종인에게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라면서도 배를 잡고 굴러야만 했다.








종인은 말보로 한 대를 그대로 입에 물었다. 그다지 독하지도 않았다. 미국에서의 방탕한 일화를 생각한다면 세발의 피였다. 애당초 귀국이 늦어졌던 것도 각성제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서였으니. 육체의 리듬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했다. 뉴욕에서의 망나니같은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지금, 몸은 가뿐했다.

치르치르는 파랑새를 찾았다. 종인은 그 반대였다. 파랑새는 종인을 떠났고 종인의 곁에서 멀리 사라졌다. 날려보내지도 못했다.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종인은 파랑새가 떠나자 절박해졌다. 입안이 바싹바싹 타서 담뱃잎을 씹었다. 입이 매웠다. 종인의 생활 패턴은 엉망으로 망가졌다. 종인은 다시 필터를 입에 물었다. 몸에 딱 맞는 검은 정장이 몸에 불편했다. 종인은 자유로운 제비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파랑새에게 속박당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파랑새는 종인을 속박해주지 않았다. 파랑새는 그대로 종인을 버렸다. 종인은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죽고 나서는 들개가 되었다. 목줄이 없었다. 파랑새가 채워주지 않았다.

종인은 무료한 얼굴로 창공을 바라보았다.
파랑새가 있는 것 같다. 종인의 마음 안에는 여전히 파랑새가 있었다. 아니, 파랑새는 있다.
파랑새는 죽었을까?
허공 위에 흩뿌려지는 담배 연기만이 종인을 반겼다.

비가 왔다.
종인은 미련하게 그것을 전부 다 맞았다. 이런 짓을 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미 권태와 낭떠러지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한 지는 오래 되었다. 각성제와 약물을 입에 대면 눈앞에 파랑새가 보였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사라졌다.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파랑새를 보고 싶어서였다. 파랑새가 종인을 반길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창공을 가르면 네가 보여.
종인은 다시 연기를 내뱉었다. 회색 연기를 마지막으로 돗대는 그 수명을 다했다.
비는 어느 새 멈춰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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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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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1호팬이에요! ...........보고 싶었어요..........가끔 블로그하고 홈도 들리는데 안보이셔서.............. 너무 기쁜마음에 선댓해요 읽고올께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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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종인아 미쳤어............... 달리는 차안에서 뛰어내리는 모습도 어쩜 그렇게 멋있니 찬열이 백현이 친구사이 백현이가 많이 애끼는거 같아 좋아요ㅠㅠㅠㅠ파랑새가 그분인가요,,,,,,? 다음편도 기다릴께요!!!!!!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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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악!!님아 대박이군요!!!이런 훌륭한 글 대박!! 담편도 기대할게염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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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쩌르다.....................하............아.............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카찬러는 웁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여기서쥬금ㅇ<-<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런 스토리 느므느므조아여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크리스 평생 연락하지망^^ㅎㅎㅎ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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