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경술국치로 인한 조선멸망 그 후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조선 혹은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자리매김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은 죽임을 당하고, 제 나라를 찾겠다며 발버둥치는 자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으며,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자결을 하는 사람들마저 속출하였다. 수많은 농촌의 농민들은 땅과 수확물들을 약탈당하고, 평민들은 턱없이 비싼 관세에 재산과 곡식을 강탈당했다. 일제의 순사들은 항상 칼이나 총으로 조선인을 무력으로 압박했고, 젊거나 어린 여성들은 일본군들의 성노예로 강제적으로 끌려가 인권을 유린당했다.
수백 개의 사립학교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조선이 세운 은행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기 십상이었다. 학교는 2년 전부터 시행된 3차 교육령으로 인해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며 조선어를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명백히 조선인인 우리 학생에게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조상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뜨면 재생버튼!)
4월의 눈 박찬열X오세훈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들어갈 때 조심히 들어가게.”
“아닙니다, 더 많이 못 드려서 제가 죄송하죠. 앞으로도 독립을 위해 힘써주세요.”
“이번에도 이름은..”
“아뇨, 익명으로요. 아시잖아요.”
세훈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비밀스런 건물 속에서 나왔다. 어두운 하늘이 현재의 상황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호화스런 제 집 앞에 우두커니 선 세훈이 한참을 망설이다 제 집으로 들어갔다. 세훈의 집은 꽤나 단란했다. 높은 관직에 앉아 굉장한 연봉을 받는 듬직한 아버지와 자상하고 고상하며 아름다운 외모의 어머니, 그리고 흔치않은 말 잘 듣는 서양의 대형견 나츠(なつ, 여름을 뜻함) 그렇게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의 외동아들 오세훈.
세훈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츠가 꼬리를 흔들며 세훈에게 다가가 커다란 덩치로 갖은 애교를 피웠고, 사과를 깎고 있던 어머니가 세훈에게 시선을 옮겨 춥지 않냐 묻자, 세훈을 보지도 않고 신문을 읽던 아버지가 날카롭게 물었다.
“この時間にどこ行って来る道なの? (이 시간에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산책하고 왔어요.”
“お前私が..! (너 내가..!)”
“올라갈게요.”
나츠의 머리를 쓰다듬고 2층으로 올라가는 세훈과 세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아버지가 보고 있던 신문을 말아 쥐며 집어던졌고, 조용한 거실 속에는 어머니의 깊은 한숨이 가득 서렸다.
세훈의 집안은 명백한 친일파였다. 세훈의 친가와 외가 두 쪽 다 친일파였고, 거기에서 할아버지들끼리 서로 자리를 주선해 세훈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서 일제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여 일본인들과 어울렸으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고는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자란 과정처럼 세훈 또한 그들처럼 자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세훈은 어렸을 때부터 히라가나를 외우기 전에 한글을 마스터했고, 한글을 마스터한 후에는 ABCD를 외우기 시작했다.
세훈은 정말 영특했지만, 두 부모님이 원하는 상은 전혀 되지 못했다. 우역곡절 끝에 겨우 일본어를 마스터한 세훈은 막상 일본어를 잘 하지 않았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세훈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일본어를 그렇게 많이 사용한 편도 아니었고, 단어들만 일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세훈이 초등학교를 막 다니기 시작할 무렵, 집 안에 빨간 동그라미가 보이면 기어코 파란 사인펜으로 태극무늬를 만들려했다. 처음에는 주의를 줬지만 멈추질 않았고 조금 뒤에는 정확하게 4괘를 그렸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 분이 놀러왔을 때, 세훈의 행동을 보며 헛기침을 하던 아버지의 친구가 집에서 나가자마자 세훈은 호되게 혼이 났다.
세훈은 굉장한 골칫덩어리였다. 세훈의 친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일본이름으로 세훈을 칭하면 절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츠까지 세훈은 여름아 라고 불렀고, 간단한 단어조차 절대 일본어를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중학교 2학년쯤엔 눈치가 생겼는지 다른 친일파의 어른이나 유명 인사들이 찾아오거나 찾아갈 때면 제 아버지를 위해 조금씩 일어를 하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시행된 정책 덕에 조선어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일부 친일파들이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조선어를 사용했지만, 세훈의 집은 예외였다. 물론 지독한 친일이라서 가 아닌 세훈 때문에 예외였다.
ㅡ
“私たちまた同じクラスなの?”
(우리 또 같은 반이야?)
“今後ともどうぞよろしく”
(앞으로도 잘 부탁해)
3월, 진부한 인사가 오가는 새 학기 첫 날이었다. 남자들만 가득한 좁은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사이에서 한 남자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라도 있는 듯 그 주위에는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아니면 이미 다 서로 알고 있고 친하게 지내는 거라던가. 아무튼 간에 그 중심에는 박찬열이 있었다. 아니, 박찬열 그 자체가 중심이었다.
그렇게 찬열의 반은 당연하다는 듯이 찬열의 위주로 돌아갔다. 찬열의 반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문제임에도 찬열에게 묻는 것이 많았고, 괜히 찬열에게 이것저것 사주고, 계집처럼 괜히 말을 붙이는 일이 많았다. 물론 찬열의 외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찬열은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똑똑하고 붙임성도 있어 선생님에게까지 예쁨 받는 학생이었다. 아는 문제를 한 번 더 알려주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고, 무언가를 사주면 다음에 사줬던 것의 몇 배는 되는 것을 가지고 와 지난번에 사준 거 맛있더라. 이거 한 번 먹어볼래? 하고는 했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크게 웃어주고 제법 이야기를 잇는 법을 알아 같이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었다.
새 학기 시작 3일, 찬열은 자신의 반을 장악했다. 물론 좋은 의미의 장악.
평소와 같이 많은 친구들을 주변에 두고 한창 이야기를 하던 찬열이 교실을 둘러보다 문득 맨 뒷자리 혼자 엎드려 잠을 청하는 남자의 등을 보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그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찬열이 주변에 있던 친구에게 남자의 자리를 가리키며 묻자 하나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모르겠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그 때 문득 찬열의 앞에 앉은 장난기 많은 히로가 엄지를 세훈 쪽으로 향하게 하며 말했다.
“あ,あの子この前に声を掛けたが,返事をしなかったよ”
(아, 쟤 지난번에 말을 걸었는데, 대답을 안 하더라.)
“ああ..”
(아아..)
“気持ち悪い子なの”
(기분 나쁜 애야.)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히로와는 달리 찬열은 외려 엎드려 있는 남자에게 괜히 더 시선이 쏠렸다. 새 학기가 시작한지 (찬열의 기준으로)벌써 3일이 됐는데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은, 아니 이야기조차 하지 않은 불쌍한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다. 3일 동안 자신이 찾지 못한 반 아이에 대해 찬열은 엄청난 호기심에 빠졌다. 어떻게 생겼을까? 자신처럼 쌍꺼풀이 있는 눈일까? 목소리는 어떨까? 코는 높을까? 상당히 마른 것 같은데 볼이 패인 얼굴은 아닐까? 세훈을 향한 수많은 질문들이 찬열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리고 책상에 걸터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세훈의 자리까지 걸어갔다. 세훈의 앞자리에 있는 의자를 빼서 거꾸로 앉아 세훈의 꾹 감긴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코는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피부는 눈처럼 하얗다. 속눈썹이 길다. 희미한 쌍커풀이 보이는데 아마 눈을 뜨면 저처럼 선명하진 않아도 쌍커풀이 연하게 있기는 있다. 입술은 작았다. 눈을 뜨면 어떨까? 목소리도 듣고 싶다.
찬열은 세훈의 어깨를 찔렀다. 깊은 잠에 빠진 듯이 미동조차하질 않자, 조심스럽게 세훈의 어깨를 흔들었다. 세훈의 눈썹이 미약하게 움직이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살짝 떴다. 엎드렸던 몸을 느리게 일으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찬열을 보았다.
“뭐야..”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하는 세훈을 보는 세훈은 상당히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세훈은 굉장히 예뻤다. 일어나니 피부도 훨씬 더 하얀 편이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에는 왠지 모를 색기까지 풍기는 것 같았으며, 하얀 피부에 연한 분홍색인 입술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왜 그렇게 엎드려서 자신을 꽁꽁 숨기는 지 새삼 알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쯤, 정확하게 2년 전부터 금지된 조선의 언어를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하는 세훈의 태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찌푸린 인상을 풀지도 않고 제 앞에 찬열과 마주하던 세훈이 다 뜨지도 못한 눈을 끔뻑였다. 찬열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다시 엎드려 제 모습을 숨기려는 행동에 찬열이 세훈의 어깨를 잡았다.
“ちょっとちょっと,名前が何なの?”
(잠깐잠깐. 이름이 뭐야?)
“...”
“名前が何なの?”
(이름이 뭐야?)
“...”
“うん?”
(응?)
“..세훈”
끈질기게 물어오는 찬열에 세훈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하고 바로 다시 팔로 감싸 제 모습을 숨기는 세훈의 행동에 찬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훈의 뒤통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찬열과 세훈의 말을 들은 미츠루가 조선어를 사용한 세훈을 보고 경직되어 가만히 쳐다보다 복도를 지나는 선생님 쪽으로 뛰어가려는 행동에 찬열이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미츠루의 팔목을 잡고는 검지를 제 코 위에 올려놓았다. 미츠루의 손목을 놓은 찬열이 세훈의 뒤통수를 제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나는 찬열이야, 박찬열. 친하게 지내자.”
“かつ..!”
(카츠..!)
“スィッ”
(쉿.)
미츠루의 말에 찬열이 다시 검지를 제 코 위에 올리고 미츠루의 뒤에 서 양 어깨를 잡아 자신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던 무리에게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엎드려있던 세훈은 찬열의 일본이름을 듣고 우리 집 개랑 이름이 비슷하네.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그 이후 찬열은 조선어로 세훈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찬열의 반 학생들은 하나같이 찬열을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정작 저에게 피해가는 것도 없고 한없이 좋은 친구인 찬열이 변하는 것도 없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했다. 선생님에게 말하는 일도 없었다. 반면 자신에게 굳이 한국말까지 써가며 말을 거는 찬열의 행동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세훈은 모든 질문들을 무시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하교한 찬열이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조선어로 다녀왔습니다. 하며 뚜벅뚜벅 거실로 들어갔다. 찬열의 가족은 집에서 조선어를 사용했다. 밖에서나 손님이 오시면 알아서 바꾸면 되는 일이라 2년 전 까지만 해도 편하게 사용했던 언어였기에 편의상 조선어를 사용하고는 했는데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은 아버지와 손님의 모습에 찬열이 당황한 듯 경직된 채로 입을 살짝 벌렸다. 찬열의 반응에 찬열의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걱정할 필요 없다. 이 분은 괜찮아.”
“하하, 아드님이세요? 아주 훤칠하네.”
“네, 이 녀석 하납니다.”
“저도 아들 녀석이 하나 있는데 딸아이였으면 딱 소개시켜주고 싶었을 텐데 말이죠.”
“어이고, 사모님이 미인이시던데, 아쉽네요.”
껄껄껄 웃으며 태연하게 조선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찬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제 실수로 아버지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한 숨 돌린 격이 된 것이다. 뒤늦게 손님에게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한 찬열이 뻘쭘하게 서있다 제 방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다.
“제 아들이랑 같은 학교를 다니네요.”
“정말입니까? 자제분 나이가 어떻게..”
“이제 열여덟 되었습니다.”
“어이고? 우리 찬열이도 열여덟 됐습니다. 찬열아?”
“네?”
“이 녀석이 또 친구가 많은 녀석이거든요.”
“어휴, 부럽습니다. 저희 아들놈은 친구 사귀는 꼴을 못 봤는데.. 혹시 후유키라고 아는가? 이 녀석이 일본이름은 잘 안 쓰고 세훈이라고 조선이름을 주로 쓰기는 하다만.”
손님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이름에 찬열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곧 표정을 되찾고 같은 반이에요. 하고 대답한 뒤 세훈의 학교생활을 묻기에 조용한 친구라 대답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은 찬열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첫 번째는 세훈의 일본이름이 후유키(冬樹)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겨울나무, 눈에 덮여 새하얀 나무가 연상되는, 세훈과 퍽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또 조선어를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지 항상 궁금했는데 제 아버지가 친일파일 줄이야. 아이러니하지만 여튼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제 아버지와 저렇게 서로 편한 모습을 보니 꽤 높은 직위에 오른 사람임이 분명했다. 2년 전 정책이 막 시작됐을 때, 모르고 조선어를 사용해서 잡혀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오셔서 일본 순사에게 몰래 돈을 쥐어주고 날 데리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분명 오세훈도 그랬을 것이다. 한두 번 아닌 수없이 많이.
이유 없는 떳떳함은 없었다.
눈이 가득 덮인 차가운 겨울나무의 눈을 다 털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찬열은 왠지 신이 났다.
어떤 홈에서 어떤 분의 소재로 적게된 글이에요, 너무 좋은 소재였는데 아무도 안 물어가셔서 저 혼자 며칠 끙끙 앓다가
데리고 왔는데 참 소재주신 분께 죄송한 마음이ㅠㅠ.. 엉엉.
아, 제가 역사 배운 지 너무 오래되서 정확하지 않은 게 많을 수도 있구 일어는 제가 안 배워서 네이버 검색하면서 쓴 거에요ㅠ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물론 지적 달게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제이니만큼 확실하게! 다른 나라의 언어이니만큼 확실하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포토] 에스파 윈터 '열심히 가린 타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