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무상인 날만 50p ㅡ
"백현아. 나 결혼해 ."
오늘로
우리의 시간은
멈췄다.
"왜? 니가 사랑한 사람은 나 아니였어?"
내가 널 바라보는 마음이 , 너와 다른 시점이였을까.
아니. 사실은 다 알고있다. 그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귀한 꽃 처럼 자란 도경수는 나와는 다르다.
홀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나따위가 , 남자인 내가 절대로. 절대로 너와 영원할 수 없단것도 알았다.
다만 , 이렇게 빨리 찾아온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참을새도 없이 눈물이 떨어져 나왔다. 아마 그가 날 부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울고있었단 것도 모를뻔했다.
"백현아.."
도경수. 나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담담해?
보통 연인의 이별에도 , " 나 결혼해 " 라는 말이 따라서나?.. 나는 그저 핑글핑글 거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그에게서 등 돌려 걸을 뿐이였다.
도경수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그게 나를 위한건지 저를 위한건지는,..아니 더 알고싶지도 , 생각하기도 싫다.
작은 방 바닥에 누웠다. 자야겠다.
꿈에도 나오진 않을테니까, 난 원래 꿈을 거의 안꾸는 사람이니까. 자면 모든걸 잊을 수 있으니까.
눈을 감으면 , 익숙한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안녕?"
사립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 집안의 아들.
"백현아 - "
커다란 눈에 가득한 검은 눈동자와 귀가 녹아버릴 듯 매력적인 목소리.
"사랑해."
부드러운 입술, 누구보다 따뜻했던 품.
잊혀지질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말지 그랬어. 집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하얀 봉투가 손끝에 희미하게 걸려있다.
너의 부모님이 보낸거겠지.
우리가 그런 사이인줄 모르시니까. 널 후원해준 집의 아들이 장가를 간다. 신부는 또 어느집 예쁜 아가씨라더라.
그런마음이겠지.
봉투마저 , 고급스럽게 생겼다. 더럽게도 비싼 청첩장이네.
한 사람의 인생을 다 망쳐놓을 만큼 . 비싸네.
ㅡ
시간은 흘렀다. 결혼식 마지막 날에도 , 경수의 손은 휴대폰을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식장은 분주했다.
결국 경수는 그 말을 꺼낸 이후마다 밤에 잠을 못들어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그에 가족들은 결혼이 그렇게 떨리냐 물었다.
가만히 대기실에 앉아있었지만, 그 커다란 눈은 자꾸만 눈알을 굴렸다.
사실은 ,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그런 모습을 백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저만큼 아플 그를 알기에. 행복한 척 하고 싶었다. 나라도 행복할테니 니가 이제 날 좀 놔달라고.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굴어야, 서로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저가 싫다고 안할 수 있는 결혼이 아니였으니까.
자꾸, 니가 울던게 아른거려 변백현.
너는 .. 와줄까?
결혼식장은 컸다. 몇 명의 사람인지도 모를 인파들이 북적거렸다. 온통 이름만 대도 알만한 집의 자제들이였다.
화려한 잔들이 울렁이고 , 테이블 위에는 색색의 꽃들이 있었다.
그 곳에, 변백현은 없었다.
ㅡ
길고 긴 주례가 끝났다. 나는 정말 이 옆의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우스웠다, 차라리 가난했더라면. 그래서 그냥 변백현의 옆 집에 사는 또래아이였더라면.
당장이라도 헛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온통 , 화려한 차림의 울렁임이 일었다.
그 모든게 순식간에 흑백이 되었다.
그리고 익숙한 차림의 누군가, 그 혼자 색을 내고있다.
언제적 유행이 지난 옷인지, 디자인이 아주 예전의 것이였다.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그를 한 번씩 흘기고 지나쳤다.
아주 예전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 옷을 입은 것 처럼 단정했다.
단 한 번, 입지 않았던 옷 처럼.
그 위에 하얀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을만큼 , 고개를 떨군 누군가. 그 누군가가. 식장문 뒤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홀로 서있었다.
"백현아, 나 사랑해?"
"어.."
"그럼 우리 나중에 결혼하자!"
"결혼은 남자 여자가 하는거잖아."
"왜? 나랑 하면 되지."
"안돼. 너네 부모님이 아시면 혼날거야"
"괜찮아! 난 외동이니까 우리 부모님은 내 말 들어주실거야! 그러니까 우리 둘이 결혼해서 같이 살자."
"뭐래 진짜 자꾸.."
작게 줄어든 목소리에 붉어진 그 얼굴.
그 날은 아주 어렸던 경수가, 어른사이즈의 수트를 건네던 백현의 생일이였다.
"이거입고, 약속?"
작은 손가락들이 얽혔다. 절대 풀어지지 않을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