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오백] Chemical Scented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c/7/f/c7fadf73a061d07d2e19c8a3af3da602.png)
Chemical Scented
W. 보라도리
익숙한 향기가 났다,
늘 머리가 아파오는 짙은 향수냄새에 파묻혀 빛을 바라지 못한 향기가
실로 오랜만에 맡는 너의 향취였다
Chemical Scented #1; perfume
"선생님, 자리좀 바꿔주세요"
이번달만 벌써 몇번째였다. 여전히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칠판만을 응시하는 그를 그의 짝이 불만스럽다는듯 흘겨보았다
"머리아프단 말이에요,"
칠판에 필기를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던 선생님이 질린다는듯 내뱉었다
"도경수, 수업끝나고 교무실로 와"
자주 있는 일이었다. 늘 머리가 지끈거리다못해 어지러울정도로 진한 향수냄새를 덤덤하게 내뿜고있는 그의 짝이 불평하는것은.
"강박증. 뭐 그런거 아니야?"
"옆반 애 말로는 쟤 몸팔아서 돈번다던데? 그래서 냄새 지울려고 저러는거라더라"
"내가 듣기론 결벽증이라던데? 향수냄새가 아니라 바디워시 냄새라나,"
"아, 짜증나. 아무튼 향수좀 그만 뿌렸으면 좋겠어. 머리아파"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도경수. 그의 짝의 불평으로 교실 한구석에서 여자애들의 시덥잖은 뒷담화가 끝을 맺었다.
어디서 들어온건지 늘 근거없는 소문으로 시작해 불평으로 끝나는 지루한 말소리는 책상에 엎어져 양팔이 고개를 파묻고 있어도 끊이지를 않았다
"변백현, 일어나봐"
박찬열이다. 나보다 키가 큰 그가 날 내려다보며 일어나라고 흔들었다
"왜 엎어져있어,"
"그냥, 듣기 싫어서"
내 말에 어느새 또다른 아이의 머리가 어쩌니. 하며 뒷담화를 시작한 여자애들을 흘낏 쳐다보던 찬열이 말했다
"하루이틀인가 뭐, 질리지도 않나봐."
한심하다는듯 혀를 차던 찬열이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누구?"
"..도경수,"
내 대답에 도경수? 라고 되묻던 찬열이 다시한번 뒷쪽의 여자애들을 흘낏 쳐다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아, 쟤가 도경수 짝이였지
"그래서 뭐라고 하던?"
"몰라, 나도"
"그나저나 걔도 참 대단하다. 매번 걸리는데 매번 고치고 오지를 않으니.. 도경수 걔도 참 그렇게 안생겨서 독종이야."
"그러게,"
"그렇게 뿌리고 다니면 머리 안아픈가,"
나랑 관련있는 일은 아니니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만한 일이였다. 분명히.
나중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그런 아이였고, 기억이 난다해도 그저 향수냄새가 진하던 특이했던 애. 정도로 끝날 일이였다, 이건.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저 그런 일이였다.
Chemical Scented #2; shadowing
하늘은 짙었다. 나올때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사람들은 하나 둘 우산을 피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우산 안가져왔는데, 카페에서 시간을 떼울 생각으로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멈출줄을 몰랐다.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내렸지만 아까전보다는 훨씬 빗방울이 가벼워져 있었다.
밤새 비온다던데, 아까 들은 라디오를 떠올리며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것을 다시한번 후회했다.
"..지금 가는게 낫겠지."
한숨을 쉬며 혹시라도 젖을까 핸드폰을 가방 안에 잘 넣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뛰어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 가던 길로 가려다 이미 물이 떨어질만큼 젖은 교복을 보고 지름길로 가기로 결정해 편의점 앞에서 노선을 틀었다. 근처 상가들도 없고 사람도 잘 다니지 않아 어딘가 으슥한 분위기를 풍기는 길이였기에 평소에는 잘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별 다른 수가 있을까.
드문드문 위치한 꺼질듯 말듯한 가로등 불빛만에 의존해 발걸음을 재빨리 옮겨 집으로 가려고 했을 쯤이였다.
"꺄아아악!!"
비명소리?
조용한 밤하늘을 가르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온몸에 오한이 서렸다. 평소라면 그저 지나쳤겠지만 왜인지 내 발걸음은 비명소리가 난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익숙한 향수냄새가 났으니까,
"....!"
도경수다. 알아볼수 없을만큼 다리가 손상되어 피를 흘리고 주저앉은 여자를 내려다보고있던건. 분명 도경수였다. 푹 눌러쓴 모자때문에 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보기드문 갈색 머리카락 위로 그건 분명 그였다
인상이 찌푸려질정도로 진한 피냄새가 남들보다 유독 예민한 후각을 가진 내 코끝을 자극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빠른 손놀림으로 여자의 뒷목을 내려치자 여자의 동공이 흐릿해지면서 여자가 쓰러졌다.
"...어, 끝났어. 뒷처리 부탁해."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고 어깨에 핸드폰을 올리고 턱으로 지탱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장갑을 벗는 도경수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목격자?"
목격자라는 말에 일순간 시간이 정지되는것만 같았다. 혹시 봤을까, 이제 난 어떻게 되는거지?
"..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통화를 종료시키고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가방을 들쳐매고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거지?
무슨 생각이였는지 난 그 뒤를 따라나섰다. 그가 한참을 돌고 돌아 도착한건 오래되어 잘 쓰지 않는 공중화장실 앞.
꺼질듯 말듯 계속해서 깜빡거리는 조명 아래 위치한 세면대 앞에 서 모자를 벗고 거울앞에서 한숨을 내쉬던 그가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돌렸다.
오래된 화장실이라 그런지 물이 나오는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잠시 후 물이 나오자 그가 곧바로 옆의 비누를 잡아먹을듯 문지르기 시작했다.
또다른 의미로 공포감이 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손을 벅벅 씻어대는 그가 아까 전 그가 살인을 저질렀을때보다 더 낯설었다.
물기를 대충 닦아낸 그가 가방을 열어 거꾸로 뒤집자 바닥으로 아까 사용했던 칼이 먼저 떨어지더니 그 다음으로 장갑이나 밧줄같은것들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믿을수 없을만큼의 많은 향수가 떨어졌다. 일반 화장품가게에서 파는 향수부터 이름도 들어본적 없는 외국향수에 향이 짙은 남성용 스킨, 고체향수. 심지어는 헤어미스트까지 줄줄이 이어져 떨어져 내렸다.
정적이 멤돌았다. 향수 뿌리는 소리만이 그의 주위를 감쌀 뿐이였다. 꽤나 비싼 향수같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않고 계속해서 온몸에 향수를 뿌렸다.
거의 다쓴 향수를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내던지자 깨지는 소리같은게 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향수를 집어들어 또다시 뿌리기 시작했다.
두번째 병을 한참을 뿌리던 그가 고체향수를 집어들어 로션이라도 된다는듯 팔에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았다. 텅 빈 눈동자는 말없이 향수만을 향해있었다.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은 손짓으로 향수를 벅벅 문지르던 그의 손은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코끝을 자극하던 피비린내가 파묻힐정도로 향수냄새는 짙었다.
어느샌가 비는 멈춰있었다. 언제부터 비가 멈췄던건지 생각도 할 수 없을만큼 방금 전 내가 본 장면은 충격적이였다.
그가 사람을 죽였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할때까지.
도망치듯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뛰어왔다. 저거였다. 그가 향수를 지독하리만큼 뿌리던 이유는.
평소처럼 까만 밤하늘 아래 어두운 길거리를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달리던 그날 후,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내 생활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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