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신나는 여름방학이다."
"아...."
선생님의 반어법에, 반 아이들의 야유소리가 들려온다.
여름방학이 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들 보충수업을 들으러 나와야하기 때문이다.
나도 애들과 같이 보충수업에 대해 아주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반나절 이상은 자유의 몸일 수가 있을 것 같아서 그저 다행스럽긴 하다.
"여름방학이라고 팽팽 놀지 말고 2학년때부터 착실히 공부 좀 해놔라."
"네~"
"반장."
"..차렷."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렷.' 이라고 하며
반 아이들의 동태를 살핀다.
의자에 엉덩이가 반도 걸쳐지지 않은 애들.
하지만 녀석은 그런 아이들이 아닌, 녀석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물론 나 또한 엉덩이가 반쯤 걸쳐져 있지만.
"...경례."
"안녕히 계세요!!"
남자애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반을 울리자마자,
여기저기서 의자가 끌리는 잡음이 들려온다.
나 또한 광복을 맞은 것처럼 의자를 훅 밀며 엉덩이를 뗀다.
모두의 요란함 속에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야! 너 어디 갈 거야?"
"어.. 나?"
난 한 번 쯤 녀석과 눈을 마주하고 친구를 돌아본다.
"어디든 가야지."
그렇게 친구와 학교를 나서자마자,
그 길로 영화를 봤다.
영화 내용이 무슨 내용이건 나에겐 마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친구가 조금 실망스럽다는 반응에도 난 별 다섯개짜리 영화를 본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도 노래방, 아이쇼핑 등
그동안 못다푼 한을 마음껏 풀어제꼈다.
가끔씩 울리지도 않은 휴대폰을 슬쩍거리며,
녀석에게 연락이 왔나 살펴봤지만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
난 애써 무시했지만,
한 켠으로는 불안했다.
그렇게 자유로운 하루를 만끽하고,
보충수업 첫 날.
어김없이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일어나 겨우 지각을 면했다.
보충수업 교실을 찾아서 문을 벌컥 열고 빈 자리에 털썩, 엉덩이를 주저 앉힌다.
한 여름 무더위 뜀박질에, 땀이 쏟아진다.
'으' 하는 질색과 함께 손등으로 얼굴 옆 땀을 닦는데, 누군가 옆자리에 앉는다.
"...!"
"...잘 놀았어?"
녀석이다.
나는 괜히 주위를 살피며,
아직 자리가 많이 남아있는 보충수업 반을 한 번 둘러본다.
시선이 다시 녀석에게 위치하며 위 아래를 훑은 뒤, 입을 연다.
"너 왜 여깄어?!"
"같은 수업 들으니까."
아뿔싸.
어제 신나게 노느라 녀석이 무슨 수업을 듣는지는 생각도 못했다.
옆에서 턱을 괴고 나를 느끼하게 보고 있는 녀석 때문에,
난 억지로라도 창가를 보며 시선을 외면한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 종이 울리자
녀석의 느끼한 눈길도 떨어져 나간다.
난 이제야 조금 편하게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 편하게 자세를 취하며
턱을 정면으로 괸다.
수업이 진행된 중반 쯤,
녀석은 이제 나를 완전히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를 괴롭히던 짖궂은 얼굴은 온데간데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까지 별 의식을 하지 않는다.
"......"
이렇게 보니 또 새삼스레 느껴진다.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한 교실 안을 질투하듯,
쏟아지는 햇볕이 녀석을 반짝이게 보여준다.
햇볕 아래로 보이는 작은 먼지들도 녀석의 오라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거기."
"......"
교실에 몇 없는 애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그제서야 난 괴던 턱을 풀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잘생긴 애 그만 쳐다보고 수업에 집중해."
"...풉."
애들이 키득거린다.
난 얼굴을 씰룩거리며 양손으로 턱을 괸다.
제대로 수업을 안 듣겠다는 일종의 반항이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옆 얼굴을 반짝거리며 뺨의 한쪽 보조개를 살짝 보여준다.
"...아, 그런데 걔가 사과머리를 하고 나온거야."
"헐, 대박...!"
여자애들이 복도를 지나치며 깔깔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공기와는 대조적인 것이 선도부실 안을 감싸고 있다.
복도의 벽이, 공기마저 다르게 만들고 있나보다.
여름 방학의 선도부실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아무도 발길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깐 왜 그렇게 봤어..?"
"...보, 보긴 뭘 봐."
"......"
내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놓아주지 않으며,
나를 정면으로 바라봐온다.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나는 괜히 애먼 벽을 바라보며 내 속을 진정시킨다.
"...방학식 때는
하루만 놀게 해주려고 놔준건데..."
"......"
"내가 너무 외롭게 했나보네."
"무슨...!... 아...!"
녀석의 말을 부정하며 몸을 떼는 나를
단단한 팔로 더 세게 끌어안아온다.
그리고는 내 몸을 돌려세워, 공기만큼이나 뜨거운 손을 내 교복 안으로 집어넣는다.
"만져주니까 자꾸 커지는 것 같아.."
"입... 닫어...너...."
"......"
만져지는 느낌에 인상을 쓰면서도 녀석에게 반항해본다.
그런 내게 고갤 기울여 비스듬히 바라보면서도
가슴만은 계속 주무르고 있다.
"너야말로."
그러고는 또 뜨거운 숨을 내게 불어넣는다.
입 안이 끈적임에 따라, 내 몸도 더 끈적거려진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맺히는 날씨임에도, 녀석은 꾸준히 날 더 끈적거리게 만들어온다.
"방학이라고 풀어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