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고등학생 사건의 가해자가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원인은 피해자의 저항으로 추정됩니다. 사건의 피해자는 아무런 상해 없이 생환되었으며, 이에 따라 검찰은 사건에 대한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입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백현은 한숨을 내쉬며 텔레비전을 툭 껐다. 어딜 가나 제 얘기밖에 하지 않는 뉴스들에 잔뜩 이골이 난 백현이 휑한 제 집 안을 둘러보았다. 가족들은 모두 나가 있었다. 집 밖에는 취재진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문을 쾅쾅 두드리다 못해 부술 듯이 하는 그들의 소리만 집 안에 울렸다. 백현은 귀를 막고 무릎을 끌어 모아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퉁퉁 부은 눈이 무색하게 또 눈물이 흘렀다. 날 좀 가만히 놔 둬…. * * * 상흔 w. Duet * * * 자살 기도? 찬열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제 앞의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어, 자살 기도 했다더라. 찬열이 왜요, 하고 되물었지만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낸들 아냐, 무심하게 말하며 다른 파티션으로 저만치 멀어지는 것이었다. 찬열은 손톱을 씹었다. 자살기도라니, 그렇다면 절대 안정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호출이 늦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수사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찬열이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괴고 노트북의 화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흰 화면에 둥둥 뜬 '사건 경위서' 만이 찬열의 눈을 아프게 뚫고 들어왔다. 어쩌면 좋지. 찬열의 상념 가득한 얼굴 위로 잔뜩 그늘이 졌다.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대체 아이가 무슨 죄라고, 생각하며 입술을 지근지근 씹던 찬열은 두 팔 사이로 고개를 숙여 깊숙히 묻고는 가만히 엎드렸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박찬열 어디 있냐?" "예?" "박찬열 어디 있냐고." "예에, 여기." 저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더니 느적느적 손을 드는 찬열의 머리 위로 큰 봉투가 내리꽂혔다. 찬열이 머리를 감싸쥐며 아, 하고 과도하게 아픈 척을 했다. 그런 찬열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인 남자가 봉투를 손가락으로 찝으며 말했다. 부검결과야. 찬열은 휙 몸을 일으키며 제 머리 위에 얹혀진 봉투를 낚아 챘다. 꽁꽁 봉해져 있는 봉투의 입을 잘라낸 후 안에 든 종이를 꺼내어 책상 위에 펼쳤다. 그리고 자세한 부검 결과서를 집어 들고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눈을 찌푸렸다. 잔뜩 깨알같은 글자가 박힌 흰 종이를 정신없이 훑던 찬열의 눈이 일순간 멈추었다. * * * 역한 병원 냄새가 코 위를 맴돌았다. 백현은 눈을 살짝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 형이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날은 밤 시간이었는지 어두컴컴했다. 가습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 고요한 병실 안으로 울리고 있었다. 백현은 곯아떨어진 제 형의 머리통을 가만히 보다가 병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이 작게 나 있었는데, 그 창문마저 막혀 있었다. 아마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탓일 거다. 백현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피가 잔뜩 밴 붕대로 둘둘 감겨 있는 손목보다 조금 더 위에 주싯바늘이 꽂혀 수액이 흘러들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 올려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보던 백현이 캄캄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숨이 밀려들었다. 백현은 여과없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슬쩍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제 형은 단단히 곯아 떨어진 듯 일어나지 않았다. 암실같이 어두운 병실 안으로 가습기에서 내뿜어지는 증기만이 가득했다. 백현은 제 침대 난간에 걸린 표지를 만지작거렸다. '절대안정'. 백현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시 푸스스 기대었던 몸을 내려 누웠다. 피곤하다. 음습한 공기가 백현의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텔레비전은 일부러 켜 두지 않은 듯 했다. 까만 화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백현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끙차, 굳은 몸이 덜 풀려 욱신거렸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발을 디딘 백현이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슬쩍 걷으며 내다 본 창 밖으로 병원의 앞 문 전경이 보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몰려 있었다. 백현은 미간을 사정없이 좁혔다. * * * "아니, 일 처리를 이렇게 하시면…!" 잔뜩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는 찬열을 저지해 자리에 앉힌 그의 상관이 잔뜩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물론, 피해자 신변 보호도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일단은 우리한텐 사건이 우선이잖아. 안 그래, 박 형사? 그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그의 상관에 찬열은 씩씩거리면서도 얌전하게 앉아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도 아이는 보호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답답한 듯 앞머리를 쓸어 넘기자 그의 훤한 이마가 드러났다가 다시 머리카락에 덮혔다. 그의 앞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당연히 그러라고도 하셨지. 그런데 지금 상부에서 난리라고.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찬열이 기가 찬 듯 고개를 숙였다. 우리 나라는 이래서…. 말을 속으로 되씹던 찬열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해자 면담 좀 하러 다녀오겠습니다." 귀찮다는 듯 손을 슥 들어보이는 제 상관을 힐끗 본 찬열이 팽 콧방귀를 작게 뀌며 방을 나섰다. 쾅 닫히는 문 너머로 잔뜩 기가 찬 웃음을 짓던 찬열이 복도에 침을 아무렇게나 탁 뱉었다. 제기랄, 그의 잇새애서 기어이 욕이 짓씹혔다. 툭툭 갈색 로퍼의 끝을 땅에 박으며 걷던 그가 파티션의 제 자리에서 차 키를 집어 주머니에 넣으며 옆 자리의 사람에게 수사 다녀오겠습니다, 작게 말하고는 빠르게 파티션을 빠져 나왔다. 아직 벌건 대낮인데도 공기가 꽤나 찼다. 찬열은 입은 겉옷의 지퍼를 올리며 서의 계단을 밟아 내렸다. 아직 취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몇 기자들이 서 너머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찬열은 그들을 힐끔 바라보고는 제 차에 올라 타 시동을 걸었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린 차의 핸들에 팔을 올려 두고 한참을 무언갈 생각하던 찬열이 차를 몰아 서를 나섰다. * * * "사람들 진짜 더럽게도 많네." 차에서 내려 문을 닫은 찬열이 차 키에 달린 리모콘의 버튼을 꾹 눌렀다. 삐빅,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차의 문이 잠겼다. 주차장에서 걸어 나오며 문 앞에 잔뜩 포진되어 있는 사람들을 눈으로 훑던 찬열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잔뜩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그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비켜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꽉 껴 버린 찬열이 덩치 큰 몸뚱이를 흔들어 빠져 나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찬열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여 사람 좀 들어가입시다! 기자들의 시선이 단박에 잔뜩 오만상을 한 찬열에게 쏠렸다. 찬열이 한숨을 푹 쉬며 잔뜩 굳은 기자들은 손으로 밀어 내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병원 특유의 분위기와 그 약 냄새가 훅 풍겨와 찬열이 또 잔뜩 인상을 썼다. 오게 될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병원의 어딘가 묘하게 음울하게 내려앉은 분위기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찬열은 안내데스크로 성큼성큼 걸어 가 앞에 버티고 서서 말했다. 변백현 환자 어디 있습니까. 간호사는 찬열의 말에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더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변백현 환자분은 지금 면회 금지신데…. 말끝을 흐리는 간호사의 말에 찬열은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꺼내어 내밀었다. 경찰입니다. 이 사건 담당이고요. 하며 머리를 슬쩍 긁자 그제야 아, 하고는 말한다. 6층, 612호실 입니다. 찬열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간호사가 절대 안정이니까, 너무 자극하시면 안 된다며 덧붙였지만 찬열은 그저 귀찮다는 듯 고개를 까닥여 보이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610, 611…. 찾았다." 문 위로 작게 난 창이 막혀 있고, 그 밑에는 종이에 인쇄 된 네 글자가 붙여져 있었다. '면회 금지'. 찬열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은 병실 문을 의아하게 훑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깍, 하고 문이 열리며 병실 내부가 드러났다. 커튼을 쳐 놓아 낮인데도 어두침침한 병실 안에 들어 간 찬열은 제일 먼저 침대 위를 살피고는 깜짝 놀랐다. 침대가 비어 있었다. 아예 병실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찬열이 망연한 눈으로 병실을 다시금 훑어 내며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 하였다. 그 때, 찬열의 옆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찬열은 고개를 홱 돌려 그 쪽을 바라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현이 젖은 얼굴로 화장실 안에서 걸어 나왔다. 찬열이 어후,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자 그제야 백현이 찬열을 보고는 꾸벅 인사를 한다. 형사님 오셨어요. 찬열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엄청 놀랐잖아. 백현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인다. 죄송해요, 오실 줄 알았으면 기다렸을 탠데…. 하고 작게 되뇌는 백현의 손목 위로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찬열은 손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또 뭐고." "…아, 아." 아니예요. 입술을 꾹 짓씹으며 붕대가 감긴 손을 뒤로 치우는 백현에 찬열이 아차 하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자극하면 안 된댔는데. 찬열이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백현에게 작게 말했다. 미안타. 너무 놀라서…. 말끝을 흐리는 찬열을 물끄러미 보는 백현이 괜찮아요, 하고 나직하게 답하더니 침대 쪽으로 비척비척 걸었다. 침대 위로 털썩 몸을 누이며 앓는 소리를 내는 백현이 눈 위로 제 팔을 얹어 눈을 가렸다. 찬열은 가만히 그런 백현을 주시하다 침대 옆에 놓인 작은 스툴에 걸터앉았다. 부모님은 나가셨나. 찬열이 묻자 백현이 네, 하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며 몸을 돌아 눕혔다. 찬열이 잔뜩 동정심이 묻은 눈으로 백현의 앙상한 등을 바라보았다. 백현이 그런 찬열의 시선을 느꼈는지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저 동정하지 마요." "……." "그런 눈길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죽어버리고 싶으니까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찬열이 뜨끔해서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떨구었다. 어렴풋이 비치는 햇볕이 백현의 위를 죽 긋고 지나갔다. 백현은 계속해서 등을 돌린채로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랑 저한테 따라다닐 것들이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 하겠어요. 그냥 죽으면 끝날까 해서 손목도 잘라 봤는데 그건 일을 끝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키우는 거였어요. 하고는 흐느끼는 것이었다. 백현의 등이 잘게 떨렸다. 찬열은 침대 위에 저만치 밀려난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며 백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들지," 힘들 거야. 내가 잘 알아. 찬열이 나직하게 말하자 백현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분노로 달아오르며 격앙되었다. 형사님이 뭘 알아요? 하며 자리에서 홱 박차고 일어난 백현이 물기 어린 눈에 잔뜩 살의를 띄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 형사님이 직접 이 일을 당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을 안다고 하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백현이 쥐고 있던 시트를 더욱 세게 그러쥐며 찬열을 노려보았다. 찬열은 입술을 꾹 짓씹었다. 내가 미안하다, 다 미안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백현에게 고개를 숙인 찬열은 안타까움에 자꾸만 입술을 짓씹었다. * * * "그래,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찬열이 수첩을 꺼내들며 말했다. 네가 그 사람에게 해를 가했을 때의 자세한 상황이 필요해서 그래. 얘기 해 줄 수 있겠니. 나직한 찬열의 목소리에 백현이 눈물을 닦고는 다시 고쳐 앉았다. 화 낸 건 미안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백현의 뻗친 머리를 손을 뻗어 정리해 준 찬열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백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최대한 자세하게 얘기해드리면 되는 거죠, 하고 물었다. 찬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이 입술 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고는 많이 길어버린 손톱을 꾹꾹 눌러 씹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 듀엣임다. 경수 등장이 언제냐고요...? 아마 곧...? 아마도... 기약을 못 하겠네요(...) 저를 때리셔도... 예. 그래도 이 글은 오백글이 맞습니다. 맞아요...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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