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났다. '별 거 아닌 거 같아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코웃음을 쳤다. 백현과 그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로 둘의 사이는 더 소원해졌다. 그 사이에 낀 찬열은 무슨 생각인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경수는 아무래도 백현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던 참이었다. 친구라고 했지만 진정한 친구니 뭐니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마음에 드는 거였다. 그래서 같이 다녔고. 그런데 요 며칠 새 백현은 진땀을 흘리며 경수를 피해다니더니 자신을 불러 내어 놓고 나오지 않은 그 날 이후로 아예 종인네 패거리랑 놀기 시작했다.대놓고.
그게 신경에 거슬렸다. 분명히 변백현은 자신의 패거리중 한 명이었고, 사과해야 하는것이 마땅함인데도 불구하고 백현은 자신을 피해다니기에 바빴다. 왜? 경수는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수업시간이었다. 피비린내가 입 안쪽으로 확 퍼진게 요 며칠 잠을 설치다 보니 입술이 금방금방 터지곤 했다. 제대로 자지 못하는 이유는 종대네 패거리와 새벽같이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변백현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종인. 둘의 상관관계를 찾으려 부던히도 애썼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둘의 합의점은 아마도 '도경수 죽이기.'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경수는, 찬열에게 매달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 뿐이었으니까. 찬열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면 아마 자신이 괴롭혔던 아이들이 뒤에서 수근댈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아는 선배들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대놓고 찍찍거리진 못해도 뒤에서 수근거리는게 싫었다.
경수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닦아냈다. 피가 흥건했다. 요새들어 입술이 반복해서 찢어지다보니 아무는 것도 상당히 느렸다. 입술이 따끔따끔 따가웠다. 이제 이 느낌도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아픈 것은 죽어도 참지 못하는 도경수가. 앞 자리에 앉은 김종인의 뒷통수를 죽어라 노려보던 경수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에 칠갑된 피를 빨았다. 옆에 앉은 백현이 걱정스러운듯 몸을 움찔거리는 느낌에 경수가 턱을 굈다. 알 게 뭐야.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내 세상이다. 학교는 전적으로 내거여야했다.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딱히 어느 한 군데가 모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전부,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원망스러웠다.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잘못해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되지 않았다는건 아니었다. 분명히 경수 자신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남 탓이 더 크다는 소리였다.
쉬는시간 종이 치고,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상황이 불편했는지 백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경수야. 경수가 자리에서 멈칫했다. 사과하려면 받아줄 마음이 아직은 있었다. 멀어지기 전 까지, 뭐라고 말 좀 해. 경수의 바램과 달리 앞에서 백현을 부르는 종인의 목소리에 백현은 경수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보다 입술을 꾹 깨물고 종인에게 달려갔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탱하고 있던 세계 하나가 무너진 기분이었다. 자신이 지탱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몇 개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무너졌다.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밀려들었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야, 도경수랑 변백현 싸웠어? 도경수가 변백현 똘마니처럼 끌고 다니더니. "
" 솔직히 도경수도 아는 선배 있어서 그렇지 별 거 아니잖아. "
" 알짜는 박찬열이지. 덩치도 작은게 기만세서. "
경수가 자리에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하얘졌다.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왜 변백현 같은 새끼를, 김종인 같은 새끼를 만나서 이렇게 당하고 살아야돼? 그 분노는 이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남에게 이렇게 당하고 살 만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기합리화였다. 그 생각까지 하자 더 분통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앞 자리에서 백현과 웃고 떠들던 종인이 경수를 쳐다봤다.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경수가 백현쪽을 쳐다보다 종인과 눈을 마주쳤다. 눈빛이 싸하게 가라앉아있는 경수의 눈빛을 본 체 만 체 종인이 고개를 돌렸다. 웃겨서 죽을 것 같았다.도경수의 눈빛이.
덩치도 키도 작은 주제에 눈빛하나는 사람을 씹어먹을듯한 얼굴이었다. 작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경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웃음을 터트리는 종인을 쳐다보며 백현이 긴장되는 얼굴로 침을 삼켰다. 과연, 김종인은 도경수를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경수가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은데도 아무 말도 할 수 었는 이유는, 경수보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생각 하는 자체도 미안했지만. 백현은 경수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도 가는 시선을 막기 힘들다고 경수를 힐끔 쳐다보는데 자리에 서 있던 경수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백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 없이 반을 나서는 경수를 확인했는지 옆 반에서 욕을 고래고래 질러대며 놀던 찬열이 경수에게 다가섰다. 자신의 옆에 서는 찬열을 쳐다본 경수가 말 없이 찬열을 지나쳐 정문으로 향했다. 경수의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찬열이 경수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경수가 진저리치며 찬열의 손을 처냈다. 명백하게, 더러운 것이 닿았다는 몸짓이었다. 제법 날카로운 경수의 눈매에 찬열이 침을 삼켰다.
" 왜 그래, 어디가. "
경수는 말 없이 학교 밖으로 나섰다. 찬열이 몸을 움칠 떨었다. 아직까지 경수의 제법 무서운 눈매가 기억났다. 언젠가 봤던 눈동자. 그래, 아마 그 눈동자는 경수를 처음 봤을때 봤던 눈과 똑같았다. 도경수를 처음 만났을 때, 경수는 지금과 달리 많이 밝았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고 활발하게 다니기도 하고. 그 옆엔, 변백현이 존재했다. 변백현은 지금과 똑같았다. 그저 경수에게 끌려다니는 존재. 경수는 여기저기 붙임성좋게 말을 잘 걸었다. 찬열에게 말을 걸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는지 찬열에게 다가 온 순간 찬열과 경수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찬열에게 말을 건네는 눈빛에서 그렇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친하게 지내자.' 손을 건네는 경수의 행동에 찬열은 어리버리하게 '어…그래.'하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못내 웃겼는지 경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찬열이 다시 한 번 눈을 깜박였다고 느낀 찰나, 경수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해있었다. 잘못봤나 싶을 정도로. 아직 팔에 돋은 소름이 멎지 않은게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경수가 무서워서 소름이 돋은게 아니었다. 단지, 사람이 눈동자가 그렇게 싸할수 있나 하는 의문이 돋았을 뿐이었다.
경수가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왔다 간 다음날 집에 돌아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싸한기분까지 들었다. 엄마가 왔다 간 흔적을 아예 지워버릴 생각인지 온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누군가가 과한 관심을 퍼 주거나 하는 것이 오히려 경수에게 맞지 않았다. 자신이 주는 적당량의 관심. 그것을 받는 사람. 그것이 딱 적당했다. 더 이상 다른 이가 자신에게 관심보이지 않길 바랬다. 모두들 자신을 떠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찬열에게 계속해서 오는 연락에 경수는 휴대폰을 무미건조하게 훑어봤다. 장난스러운 카톡부터 시작해서 괜찮아? 하는 걱정스러운 카톡까지. 자신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같은 존재인 변백현과 자신을 걱정해주고 말 걸어주는 박찬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경수는 머뭇거림 없이 백현을 선택할 게 뻔했다. 그것은 아마, 백현도 찬열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경수가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들었다. 할 일이 없을 때면 종대를 불러 놀곤 했다. 그리고 이따금, 민석과 루한도 종대와 함께 나오곤 했다. 그게 편했다. 밝은 빛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크게 될 위인도 아니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놀 수 있었다. 이미 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종대가 경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경수가 웃으며 종대에게 어깨동무했다. 오늘은 뭐 할 건데? 하고 묻는 종대에게 경수가 곰곰히 생각하나 싶더니 말갛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좆질이나 할까? 경수의 물음에 종대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요 며칠간 민석과 루한과 같이 다니나 싶더니 그대로 물들었다. 그 편이 편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 그게 어울리기 편한게 사실이었다.
" 요 며칠간 안 보이더니 좆질할 생각으로 불렀냐? "
" 일이 바빴어. "
" 고딩주제에 일은 무슨 일? "
" 그냥저냥. 형들은? "
" 아, 일 바쁘대. 그 형들 그거잖아. "
작게 궁시렁대는 종대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라는 말. 조폭이 분명했다. 경수의 끄덕거림에 종대가 몸을 말았다. 으으. 야 오늘은 그냥 피시방가서 밤 새자. 종대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것도 없었는데 잘 됐다. 어차피 학교에 갈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출석부에는 빨간줄이 잔뜩 그어져 있을 테니 여기서 더 그인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출석일수 맞춰서 졸업만 잘 하면 됐다. 그 이후에는 노가다를 하든 뭘 하든 잘 먹고 잘 살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종인이 싫었다. 자신과 다르게 자신이 할 것만 알아서 하는 재미없는 존재. 종인과 경수는 상극이었으니 더 그랬다. 경수가 발 치에 굴러다니는 돌을 한 번 찼다. 종대가 가만히 경수를 쳐다보더니 식 웃었다.
" 가자. "
| 펜네임입니다 |
분량이 너무 적어서 실망하셨죠 죄송합니다 ㅠ.ㅠ... 수요일이 시험인 바람에 후닥닥 쓰느라 흡.. 죄송합니다 EPP님이 쓴 다음 제 차례땐 분량 많이 늘려 가져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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