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기치 못한 상황은 필연일까, 우연일까. 혹은 운명일까.
"자, 모두 조용. 새로운 친구가 오늘부터 우리반에서 함께 하게 될거야.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음 2학기 내내 같이 지내게 될거니 모두 잘 지내 보도록 해. 정국아, 인사하렴."
"반갑습니다. 전정국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정한 선생님의 목소리 뒤에 이어진 낮은, 아직도 익숙한 그 목소리에 나는 넋이 나간 채 그를 바라봤다.
다시 만나면 절대 멍청하게 보고만 있지 않아야지, 따질 거 똑똑히 다 따지고 예전 일 청산해야지.
깨끗하게 끝내고 멋지게 뒤돌아서야지. 그리고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 다 알아내 내 손으로 복수해야지.
이런 다짐들을 지난 시간동안 수천번 수만번 해왔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봐버리니 실패, 대 실패다.
칼을 갈아온 나의 지난날이 무색하게 고작 드는 생각이라곤, 참 여전하다. 다행이게도 넌 여전하다 전정국.
여전히 커다란 눈과 여전히 말끔한 피부. 그렇지만 확실히 2년전보다 불쑥 자란 키.
스무살의 전정국은 또 다시 그렇게 서서 멀쩡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마치 그 옛날 내가 너에게서 도망쳤던 것인마냥 꽤나 한을 담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전정국..."
너 또 왜 내 앞에 나타났어.
예기치 못한 운명에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야 전학생 진짜 대박이지 않냐? 완전 와따야. 진짜 비쥬얼 압살 진짜."
옆에서 전정국의 얼굴을 예찬하며 끝없이 조잘대는 지민이의 입을 조용히 막아버리고 싶었다. 지민아 조용히 좀 해봐.
"김태형의 그 굳건했던 자리가 완전 흔들리고도 남겠는데 이건 완전."
"박지민이 또 사람 얼굴보고 환장하고 있지."
털썩 옆자리에 주저 앉은 김태형은 박지민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야 태형아 봤냐? 진짜 너 이제 긴장 좀 해야겠드라.
"봤지 그럼."
잘생겼더라. 그러면서 김태형은 여전히 웃는 상을 하고서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의미심장한 눈빛은 이미 충분히 예전 기억들에 뒤섞인 나의 머리속을 더 복잡하게 헤집었다.
"제은이는 괜찮냐?"
저 새끼 또 일부러 묻는다. 김태형의 한마디에 나는 도끼눈을 하고 김태형을 쳐다봤다.
"차도가 있겠냐? 아직 감감 무소식이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생각들에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김태형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의자를 드륵 끌며 몸을 일으켰다. 김태형의 저런 눈빛을 받아내는게 유난히 힘들었다.
당연하겠지. 저 눈빛을 받아왔던 이유가 오늘 우리 앞에 나타났는데.
"잠깐 나갔다 올게."
"그냥 여기 있지."
"너 때문에 짜증나서 나갈거야."
"나 때문 아니잖아."
"너 때문 맞아."
"곧 수업 시작하는데."
싸늘해진 분위기에 박지민이 우리를 번갈아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얘들 또 왜이래...
김태형은 박지민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내리며 나를 잡는다.
"좀 놔 봐."
정말 짜증이 나서 김태형의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 김태형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포기한 듯 또 가라앉은 눈을 하고서 나를 쳐다본다.
김태형은 항상 제은이의 상태를 물을 때 저런 표정을 한다. 그리고 또 내가 가끔씩 그 예전과 관련된 악몽을 꿀 때마다, 그 예전의 후유증으로 아파할 때 마다,
엄마 아빠의 기일이 찾아와 그곳에 갈 때마다 저런 표정이다.
그리고 나는 참 저 표정에 넌더리가 난다. 저 표정이 의미하는 걸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안 좋아해. 안 흔들려. 안 기억해."
"...."
"억울하고, 슬프고, 괴로운 것만 똑똑히 기억해."
"...."
"그니까 나 좀 그냥 둬 봐."
도대체 전정국이 여기에 왜 있는지, 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고 혼란스러우니까 좀 둬보라고.
"안 좋아해야지. 안 흔들려야지. 근데 기억은 해야지."
"..."
"김탄소. 너 똑똑히 다 기억해라.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라고."
"...."
"니 인생 다 망친 새낀데 기억해야지."
김태형의 마지막 말은 듣지 않고 뛰쳐나왔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일로 다툴 땐 언제나 마지막은 그 말이었으니까.
그 길로 곧장 학교 뒷쪽으로 달려가 금방이라도 허물어 질 것 같은 벽을 붙잡고 모든것을 토해내 듯 구역질했다.
제발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면 하는건 기억들과 상황들인데, 나오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전정국이 그랬어. 전정국이 했던거야. 전정국이 모든걸 다 망쳤어. 그런데도 이 미친년은 전정국을 아직 좋아해.'
제은이는 그렇게 말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악을 써댔다.
"하..."
더이상 나오지도 않는 구역질에 그저 눈물만 끊임없이 흘리면서 벽에 기대 앉았다.
더럽게도 끈질긴 인연이었다. 전정국이 다시 우리를 찾아온건지, 아니면 정말 기막힌 우연인건지.
뭐가 됐든 다시 나는 그것을 지독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됐다.
다시 깨어날 기약조차 없는 제은이를 보면서도, 매일같이 맹세하듯 다짐했던 복수의 마음들도, 그것들이 전부 무색하게
어쩌면 그 기억들이 내 에서 최악의 순간정도로 막연히 지나가길 바랐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그저 이렇게 무뎌갔으면, 너무 괴로운 기억들을 다시는 꺼낼 일이 없었으면, 그가 너무도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으면.
그렇게 괴상하고 이중적인 마음들로 가득차 있었던 것 같다.
그것에 대해 나는 벌을 받는 것 같았다. 안이하게 생각하고, 괴로운 척 하면서 사실은 잊고 혼자 행복하고 싶었던 못된 마음에 대해.
마음인지, 심장인지, 그 언저리가 너무 아파왔다. 옷자락을 꽉 쥐고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또 이렇게 곧장 생각난다. 전정국.
"아프지 말랬잖아."
"...."
"나 떠났으면 적어도 아프진 말았어야지."
"..."
"이런 말 해줄 사람도 없을 텐데."
기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목소리에 벌떡 고개를 들었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전정국이 있었다.
아까와 같은 다소 원망을 담은 눈빛은 여전했다.
나는 그런 전정국을 보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제일 바보같다. 누가봐도 눈 앞의 너로 인해 감정상태가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티내고 있다.
그런 전정국은 나를 끝없이 눈에 담는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눈빛과는 다른 행동에 절로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행동하지마. 그렇게 보지도 마. 마음을 드러내지마.
전정국은 그렇게 한참을 우는 나를 보다 곧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
"더럽게 보고싶더라."
"...."
"온몸이 아프도록 보고싶었다고."
"...."
"널 사랑하는 만큼 보고싶었다고."
나는 전정국의 마지막 말에 망설임 없이 나를 안은 그를 안았다.
그래, 안다. 니가 참 여전한 것 처럼 나도 참 여전하다.
제은아. 이 미친년은 아직도 전정국 좋아해. 안면몰수한 짐승만도 못한 년은 아직도 전정국을 좋아해.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만 생각하면 머리가 찢어질 듯 아픈데도 지금은 행복해.
한참을 전정국의 품에 안겨 울었을까,
겨우 진정된 마음을 추스리고 고개를 들자 눈 앞에는 기막히게 담담한 표정의 김태형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선 채 우리를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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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반갑습니다 안녕핫ㄱ세요~~~ 우선 읽어주셔서 감사합네댯ㅁ~~~ 후 근데 이걸 계속 써나가도 될까여..? 반응을 보여주십쑈!! 단편아닌데 망글똥글 되면 조용히 삭튀하고 본의아닌 단편행이겟쪄 사진 고르는게 몹시 힘두네여 후 그래도 쿠키와 태태는 몹시 존잘임다 재밋게 봐주세영 총총 담에 또 보게 된다면 많은ㅇ 얘기 적고시파여 ㅠㅠㅎㅎㅎㅎ 댓글달아주시구 포인트 도로 가져가셔욜 ~~~ 후 ㄴ마지막으로 제 글에 남주가 되주신 최고 존엄 두 존잘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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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앞머리 + 똥머리 처음봐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