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동딸이었다. 부자가 아니었지만 풍족했고, 집이 크지 않았지만 따뜻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풍족하고 가장 따뜻했던 부모님은 한없이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17살이 되던 해, 지옥이 시작되었다. 나의 삶은 사라졌다. 나의 인생은 무너졌다.
경찰은 사고라고 했다.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결론지었다. 아빠가 술을 드시고 운전을 하셨단다. 옆에 엄마를 태우고. 선천적으로 간이 안좋으셨기에 생전 술은 입에도 안대던 분이셨다.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검 결과 혈중 알콜 농도가 면허 취소 급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렸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나에게 부모님의 죽음은 그저 세상에서 가장 암담한 꿈같은 이야기였다. 몇 달째 넋이 나가 사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를 대신해, 김태형은 부모님의 장례부터 앞으로 내가 살아나갈 현실적 방도까지 생각해냈다. 나와 동갑이었지만, 그저 나의 소꿉친구였지만,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던 그는 나의 두번째 가족이 되어주었다.
"김탄소. 인사해. 우리랑 동갑."
"안녕, 난 김제은이라고 해. 잘 부탁해. 얘기 많이 들었어. 친하게 지내고 싶어."
처음 본 제은이는 참 예뻤다. 해사하게 웃는 모습은 자꾸 예전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많이 변했다는 것. 김태형은 매일밤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었다. 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그냥 세상이 조금 변했다고. 김태형은 내가 잠들 때 까지 그 말을 끝없이 반복했다. 마치,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그 스스로가 믿고 싶어하는 것 처럼 말이다.
"응 반가워."
나는 제은이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그 손을 맞잡았다. 김태형이 정말 고생하는구나.
언젠가 김태형에게 말했었다. 학교를 안가니 친구가 너 밖에 없어서 외롭고 심심하다고. 김태형은 약간 입을 삐죽거리며 나로는 부족하냐- 며 툴툴댔더랬다. 사실 그 자리에서 그렇다고 말하기 미안해 그저 여자 사람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며 웃고 말았지만 솔직히 그랬다. 원체 사람에 둘러싸여 있는 게 익숙했던 나라, 김태형과 둘이 다니고 둘이 노는게 여간 낯선게 아니었다. 물론 이전에도 단짝처럼 붙어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도 있고 김태형도 있는거랑, 아무도 없이 오로지 내 옆에 김태형만 있는 건 전혀 느낌이 달랐다. 요즘 들어 유난히 내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걸 눈치 챈건지 김태형이 결국은 나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모양이었다. 어디 놀러를 가자고 아침부터 유난을 떨더니, 엄청 근사한 펜션에 데리고 와 여자애를 소개해주고 말이다. 그런 김태형의 행동이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름대로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태형아. 오랜만에 친구 생기니 좋다. 난 제은이와 몇 마디 나누다 이내 김태형의 뒤로 살짝 가서 귓속말을 했다.김태형은 기분 좋게 웃으며 내 앞머리를 흩뜨렸다. 니가 좋으니까 나도 좋네. 그래도 니 단짝은 나다. 또 짐짓 정색하는 척을 하는 김태형을 보니 웃겨서 그의 등을 치며 양껏 웃어댔다.
"그러고 보니 정국이 올 때가 됐는데."
"아, 그러게. 아마 거의 다 왔을걸? 오늘 늦게 마쳤나."
정국이? 처음 듣는 이름에 의문을 담은 눈으로 제은이와 태형이를 번갈아보니, 제은이가 분주히 과일을 자르던 손을 멈추고 내 옆에 앉았다.
"너랑 태형이처럼 나도 소꿉친구 같은 애 하나 있거든. 전정국이라고. 음, 태형이는 정국이보다 나랑 더 친하긴 한데, 그래도 셋이 자주 놀았어서 잘 알긴 알아. 걔도 성격 좋고 착하니까 재밌게 지낼 수 있을거야."
아 그래? 김태형 덕에 학교도 안 다니는데 친구 둘이나 생기네. 그나저나 너도 학교 안 다니면서 친구는 어떻게 이렇게 사귀고 다녔냐? 내 물음에 김태형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원래 부모님들때메 알던 애들이야. 라고 가볍게 받아쳤다. 그때 벨이 요란히 울리고 제은이가 왔나보다. 하며 뛰어 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서 조금 웃었다.
"정국아. 인사해. 탄소."
펜션이 엄청 넓어서 거실에서 현관까지 꽤나 걸림에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불쑥 멀끔한 남자애가 제은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쟤구나, 새친구. 나는 생각보다 좀 커다란 남자애의 등장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 얘기 많이 들었어. 전정국이야."
김태형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너한텐 다 너같은 애들 밖에 없구나. 그 누구보다 예쁘게 웃어주는 전정국에 나는 왜인지 모르게 조금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차가 좀 밀리더라. 그래서 늦었어. 미안해. 어색하게 웃는 나에게 더욱 환한 웃음으로 보답한 전정국은 서있는 나를 지나쳐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과일을 집어 먹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와 김태형 진짜 맨날 찔끔찔끔 얘기만 하더니 드디어 소개해주네 니 친구.
"내가 싸고 도는 앤데, 쉽게 소개해줄 것 같았냐?"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다른 쪽 어깨에는 턱을 올린 김태형이 웃으며 나를 앉혔다. 뭘 멍하니 섰어.
"친구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나도 얘네가 다야. 그리고 난 솔직히 니가 얘네랑도 별로 안 친했으면 좋겠어."
"와 김태형 집착봐라. 탄소 너 도망갈 수 있을 때 빨리 도망가 진짜. 저런 애들 제일 무섭다니까."
호들갑을 떨며 말하는 제은이에게 눈을 지그시 감고 능청스러운 표정을 한 채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붙이는 김태형은 참 얄밉기 그지 없었다. 으이구 이 화상. 어깨에 걸쳐진 김태형의 팔을 내리며 잘 깎여져 있는 사과 접시로 손을 뻗었다.
"어,"
"아."
동시에 같은 것에 손을 내밀다 부딪힌 전정국과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었다. 너 먹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짓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전정국은 소파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곤 그 사과를 집어 똑 하고 갈라낸다.
"솔직히 이게 제일 맛있어 보이더라. 야 김제은, 형평성 있게 안자를래?"
"뭐래 병신. 다 똑같구만."
반으로 가른 사과를 내 손에 쥐어준 전정국은 나머지를 자신의 입에 집어넣고 제은이와 투닥거린다. 김태형은 그걸 보고 어쩔 수 없는 바보들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최고 바보는 아마 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진짜 세상 최고 등신같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 엄마 딸 완전 찌질이 다 됐어. 오랜만에 느껴보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참 적응이 안되면서도 행복했다. 너희들을 만나게 되서 정말 기쁘다. 이게 웬 뜬금없는 청춘물이냐구. 내 인생에 다신 안 올것 같았던 봄이 온 것 같잖아.
"야 뭐야 아 탄소 왜 울어 하, 야!! 전정국 니가 탄소 사과 훔쳐가서 애 울잖아 아~ 돌겠네 진짜 얘 사과 귀신인데 니가 반으로 가르고 그러면 어쩌냐 진짜 아"
갑자기 울어재끼는 나를 보며 김태형은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해대며 전정국을 까기 바빴고 전정국은 그런 나를 보며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설마 진짜냐며 갑자기 자기도 울고 싶다고 우는 흉내를 냈다. 제은이는 이런 쑈가 없다며 티슈를 가져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눈은 울고 입은 웃으며 이 돈 주고도 못보는 상황을 열심히 구경했다. 태형아, 나 엄마 아빠 없이도 예전의 나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언제나 악몽을 꾸다 깨는 밤에는 김태형의 손을 붙들고 보채듯 물었던 말이었다. 김태형은 이런 나 때문에 새벽에 몇번이고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순간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나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응. 넌 할 수 있어. 넌 여전히 너야.
태형아. 나 이제부터 행복해지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고, 그때부터는 쭉 행복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너희들이랑 함께하면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 차라리 너희를 평생 만나지 않았더라면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나와."
교무실로 가라. 최대한 빨리. 보건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전정국이 들어왔다. 함께 앉아있는 나와 김태형을 보던 눈이 조금 찡그려졌다. 나는 끝없이 느껴지는 묘한 기분에 가만히 전정국을 바라봤다.
"탄소 넌 나랑 얘기 좀 해."
"얘기 하지마."
반에 가. 아니, 그냥 집에 가있어. 조퇴해.
내 손을 잡으려는 전정국의 팔을 잡은 김태형이 전정국을 째려보다 이내 나를 본다. 그 눈빛은 누가봐도 애타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김태형이 도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해서, 내가 전정국과 말하는 한순간 한순간을 싫다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김태형의 주먹질로 막혀버린 전정국의 뒷말도 궁금했다. 아니, 애초부터 그가 말을 시작한 시발점이 궁금했다. 우리의 어떤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건지 알고 싶었다. 김태형이 전정국의 등장으로 한없이 불안해하는 것도, 전정국이 나의 예상과는 달리 꽤나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도, 분명 그들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들어야 했다.
"김태형. 빨리 교무실 가."
"김탄소"
"내가 알아서 해."
"..."
"어떤 말을 듣든 내가 판단해."
"아니 김탄소,"
"태형아."
내 단호한 말에 김태형은 이내 전정국을 잡았던 손을 천천히 떨궜다. 김태형의 눈은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억울하다. 니들은 내 눈만 봐도 내 감정을, 심지어 생각까지 읽어내면서 난 왜 니들을 뚫어져라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는지. 하지만 김태형을 보고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건, 그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거였다. 그래도 나는 들어야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가자."
전정국과 함께 나가는 뒤에, 김태형을 돌아봤다. 여전히 그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넌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해 태형아. 왜 니들은 다 나한테 뭔가 억울한건데. 더 이상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리고 나에게 걸음을 맞추는 전정국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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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네요.. 어려워요.. 사랑도 어렵고 글도 어렵고.. 그래도 재밌게 봐주세요 오늘 과거가 조금 나왔죠! 그들의 첫만남. 아주 행복했답니다 아주 즐거웠꼬... 그리구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태형이 정국이 제은이 전부 부잣집 아들딸들이랍니다. 사실 뭐 부잣집이라는게 어느정도 부잣집인지는 또 이야기로 말씀드릴예정이구요ㅎㅎㅎ 우리 탄소는 그냥 이제 어머니 아버지가 작게작게 투자하시면서 어느정도 사시는 소기업 대표님들 딸! 정도입니다. 이야기가 빨리빨리 진행을 하고싶은데 또 생각만큼 되지가 않네요... 지루하시지않게 빨리 가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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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