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호야 - Good Kisser
Elysia Scandal.01
부제 : 구남친은 위험해
"엘리시아 호텔 매니저 성ㅇㅇ입니다, 말씀하세요."
"성 매니저, 지금 빨리 내 방으로 들어와요."
"네. 들어가겠습니다."
한숨을 쉬며 인이어를 뺐다. 뭐야, 뭔데. 하고 옆에서 물어오는 김태형의 입을 손으로 두어번 툭툭 때렸다. 닥쳐, 뭔가 예감이 안 좋아. 내 행동에 인상을 잔뜩 쓰던 김태형이 겨우 정리한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잔뜩 헝클였다.
"아! 뒤질래 진짜?!"
"흐흫, 어이구. 늦게 가면 김지배인님이 가만히 있을까?"
"...넌 갔다와서 봐. 뒤졌어."
김태형에게 위협적인 말을 내뱉고 손으로는 머리를 정리하며 계단을 뛰어올라가 지배인님 방문 앞에 섰다. 힐 신고 뛰는건 이제 일도 아니네. 누구 덕에. 김지배인님, 아니. 김석진 앞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말들을 괜히 몇번 중얼거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통화를 끝낸건지 내선전화를 내려놓는 지배...아니, 김석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책상 앞으로 가서 꾸벅 허리를 숙이니 나를 보고 고개를 한 번 까딱하더니 다시 시선을 떼 서류로 옮긴다.
제!발! 사람 세워놓고 일 할거면 좀 늦게 부르든가! 속으로만 열불을 내며 온갖 생난리를 치다가도 내 앞으로 종이 한 장을 내놓으며 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는 김석진에 영업용 미소를 지어보였다.
"30분 후에, 유럽에서 들어오는 VVIP 한 분 계셔. 지금 스위트룸 중에 빈 곳이 어디죠?"
"아, 지금... 4203호 한 방 비었습니다."
"어. 거기로 들어가실거니까, 컨시어지부터 EFL까지 다 성 매니저가 맡아서 준비 좀 해요."
*컨시어지 : 고객을 처음 만나 객실 안내와 여러 정보(맛집, 관광장소 등)를 제공하고 소개하는 사람
*EFL : 전문층에서 VIP 고객에게 1:1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
"네. 알겠습니다. 얼마나 투숙하시는겁니까? 6개월, 아니면 12..."
"하루."
"...네?"
김석진의 말에 놀라 뭐라 더 말하려던 입이 그대로 벌어진 채 멈추었다. 여섯 달도, 열두 달도 아니고 뭐? 하루? 아니, 세상에 누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하루를...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김석진을 바라보자 뭐 더 말할게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있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잖아. 호텔 특성상, 방 값이 비싸면 오래 머물수록 가격이 줄어드는게 당연한건데. 하루면 진짜 어마무시한 갑부인가. 아님 돈을 존나 말로만 듣던 만수르라도 되시는 건가... 당황스럽네.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김석진이 준 서류를 내려다보니 정말 1일이라고 적혀있다. 뭐냐, 이건. 고개를 갸웃하고있으니 김석진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 입을 연다.
"성 매니저 생각대로 갑부 맞으니까 입 좀 닫죠? 유럽 여기 저기 돌면서 사업하는 사람이라네요. 자세한건 나도 모르고."
"아..."
"성격 까칠하고 청결에 신경 많이 쓰신다니까 제대로 준비하고."
"...네, 알겠습니다."
"나가봐요."
김석진의 날카로운 말에 그제야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곧이어 나가보라는 말에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나오며 입모양으로만 신나게 앞담을 깠다. 이런 초초초 VVIP 고객 준비를 참 빨리도 시킨다. 그러면서 제대로 안하면 졸라 빡쳐할거면서.
문을 열고 나와 다시 아래층인 40층으로 내려왔다. 오늘은 좀 한가하나 했는데 바로 일이 생겨버린 덕에 걸음을 조금 빨리 해 VIP전용 데스크로 가니 김태형이 또 실실 웃으며 나를 보고있다.
또 뭐라 씨부리려고, 이 새끼가.
"우와아, 뭔데? 우리 성 매니저님 일생겼나보네? 좋겠다... 나는 뭐 김 지배인님이 안 부르시니ㄲ..."
"진짜 주둥이 다시는 못 열게 만들어줘?"
"...닥칠게."
내 싸늘한 반응에 그제야 무슨 배추도사같이 허허 웃으며 어색한 얼굴을 하던 김태형이 다시 내 옆으로 붙어와서는 내 앞에 놓여있던 서류를 훑어본다.
"...와, 뭐냐 이 사람. 내가 지금 보는게 1일 맞냐, 1일? 대박이네. 뭐 갑부라도 되나봐."
"어. 진짜 갑부래. 그러니까 뻘소리 하지 말고 일이나 해."
정말 갑부라며 김 지배인님께 받은 그 사람의 자료를 슬쩍 보여주자 입을 떡 벌린 채 굳어있는 김태형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데스크 밖으로 나와 42층으로 향했다. 룸메이드와 함께 4203호를 한번 더 둘러보며 체크하고 여러 서비스들을 점검하고나니 벌써 시간이 5분밖에 남지않아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보며 머리와 복장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호텔 정문 앞에 섰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한데, 고객은 같은 고객이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멀리서 들어오는 고급 외제차를 보고는 자세를 바르게 잡은 채 내 뒤에 줄지어 선 사원들을 한 번 살폈다. 똑바로 서. 들어오신다.내 말에 네. 하며 짧게 대답한 사원들은 차가 멈춰서고 내리는 고객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나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호텔 엘리시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내 말에도 대답없는 남자에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입을 닫아버렸다.
...민윤기였다.
그 초초초 VIP에, 유럽 갑부님이. 이 무슨 운명의 (날 죽이려는)장난이란말인가. 미쳤다, 미쳤어.
환영한다는 말 바로 다음, 내가 뭐라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민윤기는 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바로 정문 안으로 들어갔고, 곧 뒤쪽에서 들려오는 불어에 시선을 돌려 프랑스 남자에게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 자연스레 인사를 건넸다.
"Bonjour, Bienvenue a I'Hotel Elysia."
(안녕하십니까, 호텔 엘리시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Ravi de vous rencontrer."
(반가워요.)
신사답게 내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프랑스인과 악수하고 몇 마디 더 불어로 대화를 나누고, 뒤로 시선을 두어 사원들에게 프랑스인들을 따르게 하고는 나는 다시 민윤기의 뒤로 가서 섰다. 아마 프랑스인들이 다른 층인걸 보니 민윤기와 아예 따로 서비스받는 것 같았다. 사업 파트너같은건가. 규모 한번 어마무시하네.
...근데 민윤기는 대체 왜 여기있을까. 내가 여기 있는건 알고 온걸까. 아님 그냥 우연?
혼자 어지러워지는 머릿속을 억지로 정리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래도 난 민윤기란 놈이 없는 동안 계속 이 짓을 하며 살았는데, 서비스 업종 종사자로서 민윤기 앞에서 연기정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보다 여전히 앞서 걸어가는 민윤기를 힐을 신은 것도 잊은 채 발걸음을 빨리 해 뒤를 쫓아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준 뒤 다시 뒤 쪽으로 와서 섰다.
먼저 뭐라 말을 하기에도 이상한 분위기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나서야 42층을 누르고 주머니에 있던 키를 꺼내들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민윤기는 그냥 고객이야.
작게 심호흡을 하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고객님, 캐리어는 40층 VIP전용 데스크에 따로 받아두었습니다."
"......"
"조금 이따, 런치 마치시고 나면 바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혹시 호텔 레스토랑 이용을 원하시면,"
"불어 많이 늘었더라, 성ㅇㅇ."
"......"
여전히 다정한 말투에 말문이 턱 막혔다.
줄곧 정면에만 시선을 고정하던 민윤기가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서있는 나를 내려다봤고, 내 대답이 이어지지 않는 걸 보며 피식 웃는다. 뭐라 대답해야하나. 한 3초는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 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42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고, 대답하지 못한 내가 웃긴건지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내리는 민윤기에 내 표정은 더욱 굳어져버렸다.
들고있던 키를 빼 말없이 문을 열고 민윤기가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린 다음, 방 안까지 들어가 키를 탁자 위에 놓고 나서야 조금 정리된 정신에 민윤기가 듣지 못할 정도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한대로, 하던대로 하면 돼. 정신 차리자. 또 민윤기한테 지면, 넌 진짜 등신이야.
"...고객님 몇 가지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저는 호텔 엘리시아의 매니저, 성ㅇㅇ입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엘리시아에 머무르시는 동안 제가 고객님의 EFL로서, 일정을 전담하게 될 예정입니다. 또한, 고객님의 방은 4203호입니다. 호텔 엘리시아의 VVIP 전용 스위트룸이며 키는 여기에 두시기만 하면,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불어는 늘었는데, 연기는 하나도 안 늘었네요. 서비스는 뭐...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고."
"...저기. 고객님,"
"아직 네 고객님 말 안 끝났어요."
"......"
"더 예뻐졌네요. 유니폼도 생각 한 것 보다 훨씬 잘 어울려, 성ㅇㅇ."
민윤기의 말에 대답을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죽어라고 흔들어놓는건 여전하네.
애써 웃어보이고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 뒤에야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분과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고객님, 제가 다른 고객님의 호출이 있어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거나, 호텔 이용과 관련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탁자 위에 배치 된 내선 전화로 데스크에 문의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내 말에 피식 웃은 민윤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제 선글라스를 벗어 탁상위로 올려둔다. 정말 눈을 정통으로 마주치면 무슨 말을 더 하게될지 몰라 그대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멍해진 머리를 애써 다잡으며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김태형이 데스크에 서있다가 내 옆으로 쫄래쫄래 다가와 걷는다.
이제 겨우 한 탕 뛰었는데 왜 평소보다 삼백배는 힘든 것 같냐. 죽겠네.
한숨을 쉬며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는데, 그런 나를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결국 고개를 돌렸다. 이건 뭐 강아지 시키도 아니고...
뭐, 왜. 라는 눈빛으로 김태형을 쳐다보자 뭔가 음흉한 눈빛으로 웃으며 옆에서 내 팔을 쿡쿡 찔러오는걸 애써 무시하며 자연스럽게 휴게실로 들어왔다.
"야야, 아는 사람이지? 아까 그 유럽 갑부."
"뭔 개소리야, 아니거든."
"거짓말 한다, 살짝 봤더니 눈빛부터가 당황한게 딱 보이더만."
"...나 연기 못했어?"
"응. 드럽게 못했어."
"씨이..."
망했네. 하하하하. 실성한 듯 웃다가도 금방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걸어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그런 나를 보며 혀를 차던 김태형은 침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렇게 별로였나. 나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혼자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올라오는 민윤기를 향한 빡침에 옆에 있던 베게를 손으로 퍽퍽 때렸다.
왜, 하필, 지금, 나타나서, 썅!
격하게 민윤기를 때리는 심정으로 베개를 치는 나를 김태형은 무섭다는 듯 조금 뒤로 물러나 앉아 쳐다봤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관심없다는 듯, 예의상 물어본다는 말투로 입을 연다. 그래도 존나 궁금해 하는거 다 보이거든 멍충아.
"뭔 사인데 그래? 아주 표정이 가관이더만."
"...구남친. 그것도 겁나 안 좋게 헤어진."
"아, 구남친... 뭐? 구남친? 그러니까, 전... 전남친?!"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미친놈이."
구남친이라는 말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던 김태형이 깜짝 놀란 얼굴로 허리를 펴 똑바로 앉으며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저러고있으니까 좀 도비같이 생겼다.ㅎ. 속으로 김태형을 열심히 비웃으며 나도 핸드폰을 켜 괜히 볼 거 없는 SNS를 뒤적거리고있으니 김태형이 갑자기 세상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내 엎에 앉아 팔을 잡아당긴다. 그에 왜, 하며 귀찮은 목소리를 내니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ㅇㅇ 공주님. 저... 만약 구남친 고객님과 다시한번 잘 된다면... 음..."
"...뭐 인마?"
"제가 이 한몸 바쳐 ㅇㅇ 공주님! 한 번 보필해보겠습니다. 하하!"
"지랄이 풍년이다... 누구는 지금 완전 멘붕이구만. 좋아 죽을라그러네."
내 옆에서 아부하듯 날 끌어안는 김태형의 복부를 팔꿈치로 퍽 때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쳐맞으려고 이게. 매를 벌어요 진짜... 김태형을 아래위로 훑으며 휴게실을 나가려 잠깐 벗어놨던 힐을 신고 나서 문을 여니 입술을 대빨 내밀고 서운한 척을 하며 나를 따라 나온다.
하루만 버텨야지, 제발 아무 일 없어라 제발. 민윤기가 오늘 하루 콜을 최대한 안 쓰기를 바라며, 한숨을 쉬고 다시 VIP 데스크로 향해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는 몰랐다.
별거 아닐 것 같았던 유럽 갑부(를 가장한 구남친)의 등장이, 내 호텔리어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줄은.
***
고심하고 고심하던 새작을 던집니다.ㅎ
사내로맨스도 곧 가지고 올거니까 돌은 맞지 않겠지? (퍽)
창피하니까 재빨리 튈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