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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고 작은 돌맹이 하나,

언젠가 네 머리 위로 살며시 날려보낸 납작한 내 마음이었다.

 

 

-

 

 

 

 

 같은 교실이었지만 나와 전정국은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쉬는시간이면 사람들이 몰려 그를 둘러쌓았고, 난 굳이 그를 찾아가 이것저것 호기심을 내보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함께 밥을 먹겠다며 그를 끌고 간 애들이 한바탕 교실을 뒤집고 사라지면 난 평소처럼 습기로 축축해진 크림빵을 씹으며 창 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 변함이 없던 우리는, 미국에 계시다는 전정국의 아버지가 보내신 작은 택배상자로 인연이 시작되었다.

 

- 야, 물 건너 온 물건이라 그런지 때깔부터 다르다.

 

 전정국은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셨다는 소문을 아비 없는 자식이라면 욕하던 남학생들은 소문이 사실이 되자 순식간에 기가 죽어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었다. 반면 의도치않게 잘생긴 전학생에서 잘생기고 돈도 많은 전학생으로 이미지가 바뀐 전정국은 원하지 않던 집중적인 관심에 항상 입꼬리가 어색할만큼 힘이 들어갔고, 아쉽게도 그 사실을 다른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상자에는 꽤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 당시에는 꽤나 고급진 물건이었던 샤프, 볼펜, 좋은 질의 공책, 그리고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초콜릿이나 껌 등,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는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간식들을 보며 굶주린 짐승처럼 몰려든 애들 덕분에 전정국은 아마 곤란한 표정을 했을 것이다. 교실 한 구석에서 시끄럽게 웅성이는 녀석들을 보며 난 혀를 찼다. 대체 그 과자 한 봉지가 얼마나 특별하다고 저렇게 몰려드나. 그저 한심하게만 쳐다보던 난 고개를 돌려 씹던 빵을 마저 삼켰고, 미지근한 우유로 목을 축일 때 갑작스럽게 전정국이 찾아왔다.

 

- 저기.

- ㅋ, 컥,

- 괜찮아?

 

 턱으로 흘러내리는 흰 우유를 닦을 휴지가 없자 전정국은 직접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연한 분홍색의 벚꽃이 자수된 손수건이었다. 그놈의 벚꽃, 하루살이로 피웠다 금방 져버리는 그 꽃잎이 어디가 그리 예쁘길래. 그런데 전정국은 좀 달랐다. 벚꽃과 잘 어울렸다고 해야하나, 봄과 어울리는 남자?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까. 항상 좋은 냄새가 나고, 눈도 동그랗게 큰 것이 살짝 복숭아를 닮은 것도 같고. 어쨌든 다른 남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미소년의 이미지가 강했다.

 

- 어, 어. 괜찮아.

- 이걸로 닦아.

 

 저 벚꽃이 자수된 손수건을 정말 받아야할까. 순식간에 집중된 주위 시선 때문에 받기도 안 받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전정국이 전학을 오면서부터 자꾸 누굴 챙겨주게 된다. 여러모로 그닥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한 손으로 손수건을 받아 턱에 흐르는 우유를 닦자, 그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손수건으로 옮겨졌다. 조금만 맡아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냄새에 이걸 지금 줘야하나, 싶어 결국 돌려주지 못했다.

 

- 저기, 미안한데. 이거는 내가 빨아서...

- 응, 천천히 줘. 그리고 이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잘라먹은 전정국은 다른 손에 들려있던 물건을 쑥 내밀었다. 미국에서 건너왔다는 초콜릿이었다. 대체 이걸 왜 나한테? 차마 말로 직접 물어볼 수가 없어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니 입꼬리를 올리며 내 손에 쥐어준다. 다른 애들이 다 가져가고 하나 남았어. 그러고선 또 환하게 웃는.

 전날 내 머리에 쌓인 벚꽃잎을 털어주던 것이 생각나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얘가 왜 유독 나한테만 친절할까, 혹은 내 기분탓일까. 그렇게 손에 초콜릿을 쥐어준 전정국은 자리로 돌아가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내 손에 들린 초콜릿을 원하던 사람이 꽤 많았는지, 정국이 자리로 돌아간 이후에도 내 주위를 맴도는 애들이 몇 명 있었으나 곧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에 다들 자리로 돌아갔다. 결국 그 초콜릿은 먹지 않았던 것 같다. 가방 어딘가에 깊이 넣어두고는, 지나간 시간 속의 작은 기억으로 남아 잊혀지듯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학교를 내려오면서 불었던 바람에 의해 가방 위로 붙어버린 벚꽃잎을 쓰레기통에 털고 있었다. 가방에 들어있던 중요한 물건들-그래봤자 필통을 제외하고는 지갑이나 낙서노트가 전부였다-을 책상에 빼놓은 뒤 속의 먼지까지 털겠다는 생각으로 탈탈 흔들자, 진득하게 녹아 붙어버린 초콜릿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이게 어디서 생긴 거더라, 미간을 구기며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정국이 준 초콜릿임을 알았다. 비싼 미국 초콜릿이라며 선물해준 건데 맛은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녹아버렸다. 진득하게 녹은 초콜릿은 가방은 물론 내 손과 옷까지 묻어 흔적을 남겼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에 버린 초콜릿이 아까워 손가락에 묻은 흔적을 쪽 빨았다. 그때 그 맛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굉장히 달콤한 맛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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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46.100
헐 글 분위기가 진짜 봄을닮은거같아요 봄의 따뜻함과 설레임? -백발백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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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글이 달달하네요 작가님 ㅋㅋㅋㅋ 날더운데 더위조심하세요 으 너무더워오 ㅋㅋㅋㅋㅋ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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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초콜릿 아까운 것 ㅎ,,, 먹보는 이런 생각밖에 ㅠㅠ
오늘도 역시 달달 글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 같아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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