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는 브금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두 개 투척합니다;ㅅ;)
01
여름의 햇볕에게 자비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따가운 햇빛 때문에 내 몸은 5분밖에 걷지 않았음에도 땀으로 축축했다. 처음 편의점에 출근할 땐 나름 배려랍시고 없는 시간 쪼개가며 화장을 해왔었지만, 요즘은 민낯으로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진 않는다. 내 나이 22, 새내기 시절은 추억이 되어버린지 한참인 내게 고등학생은 교복 입은 병아리나 다름없다. 내가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이유가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나름 어엿한 성인이 미자를 좋아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예상외로 사람이 드물다. 근처에 큰 건물도 몇 개 있고 상점도 많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그것에 비해 손님은 적은 편이다. 뭐, 나야 좋지만. 나는 휘파람을 불며 오늘 저녁을 함께할 폐기를 찾았다. 소고기 고추장 삼각김밥, 도시락, 햄버거 등. 평소보다 많은 폐기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최저 시급도 못 받고 노동 헌납을 해야 하는 이곳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 때다. 제발 저것들이 6시까지 살아남아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후 5시 30분. 퇴근하려면 아직 2시간 넘게 남았다. 나는 지루함을 못 참고 카운터에 얼굴을 박았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곳에서 알바를 하며 느낀 점은 시간은 참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집에서는 하루가 훌쩍 잘만 지나가는데 이곳의 시간은 너무 느리게 흐른다. 누군가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곳 시계만 고장 냈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곳은 너무 지루하다. 나는 지루함을 못 견디고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불렀다. 마침 핸드폰에선 내 애창곡 1순위인 'Tears'가 나오는 중이었다. 좐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 뫄~ 흥에 겨워 춤까지 춰가며 완창을 해냈다. 뿌듯함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자제하며 경건한 자세로 핸드폰을 내려놓을 때
"잘 부르네요."
짝짝짝. 경쾌한 박수소리와 함께 앳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당함에 두 눈을 번쩍 뜨면 두 눈이 휠 정도로 환하게 웃는 남고딩 한 명이 내 앞에 서있었다.
내 생애 최악의 첫만남.
나와 전정국의 첫만남이었다.
02-06
"누나는 소찬휘를 좋아하는거예요, 노래를 좋아하는거예요?"
전정국이 인적 드문 편의점에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어대기 시작했을 때가 이때부터였다. 그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놀림거리를 소환하며 나를 가지고 놀았다.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 두 눈에 장난기를 가득 담은 채 나를 내려다보는 나쁜 놈. 나는 놈의 끈질긴 시선을 완벽히 무시했다. 무시하면 알아서 꺼지겠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다 부질없었다. 전정국은 내 예상보다 훨씬 끈질긴 놈이었다.
"손님, 계산 안 할 거면 나가주시죠."
무시하는 것도 지쳐 녀석에게 말을 걸면
"이제 나랑 얘기할 마음이 생겼어요?"
녀석은 카운터 위에 있는 츄파춥스 몇 개를 집어 들고 계산을 해달라 했다. 그리곤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예의 그 화사한 미소를 짓는 것이다. 후.. 부글부글 화는 끓어오르는데 전정국의 웃는 얼굴은 너무 예뻐서 더 화가 났다. 저 새끼, 잘생기지만 않았으면 저 새끼, 내 손으로 어떻게 확 해버리는 건데. 그렇게 화를 가라앉히고 있으면 전정국은 껍질 깐 사탕을 내 입안에 넣어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에요. 이것도 다 먹어요. 전정국은 계산한 츄파춥스들을 가리켰다. 입안에 레몬맛이 확 퍼졌다. 시고 달았다.
"더 있고 싶은데 더 있으면 누나 쓰러질 것 같아서."
덤덤하게 내뱉는 전정국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시무룩해 보였다.
그때였을까. 더 이상 전정국을 무시하지 않았을 때가.
07-13
전정국으로 인해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곳, 편의점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지만 더 이상 지루하지는 않다.
"알바 안 하는 날엔 뭐하고 지내요?"
"그냥 잠자고 핸드폰 하고 게임도 하고."
"게임? 무슨 게임?"
열심히 음료수를 마시던 전정국이 갑자기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딱히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게 사탕을 선물해줬던 그날 이후 나는 그와 점점 친해졌다. 4살 차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가끔씩은 내 정신 연령이 녀석과 비슷해서 이렇게 쉽게 친해진 걸까,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어쨌든 심심한 것보다는 나았다. 우리들의 대화 패턴은 매우 단순하다. 거의 전정국이 이끌어가다 싶이 하는 대화. 전정국의 장난 또는 일방적인 질문. 대답하거나 회피하는 나.
우리의 관계는 딱 이 정도였다. 그 이상은 없었다. 이야기가 점점 깊어진다 싶으면 빠르게 발을 뺐다. 때문에 전정국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물건 받으세요!"
마침 타이밍 좋게 물건이 들어왔다. 나는 반가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살폈다. 목록을 꼼꼼히 살피며 물건이 맞게 들어왔나 확인하고 진열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이런 일은 빨리 끝내버려야지. 의욕에 휩싸여 물건을 잔뜩 품 안에 넣었다. 물건이 떨어질까 봐 좀 겁이 났지만 이 정도는 할만했다. 나는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옆으로 돌렸다.
갑자기 생긴 그림자 때문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언제 온 건지 내 앞에 선 전정국이 내 손에 들린 물건을 하나하나 가져갔다. 이건 또 무슨 신종 장난이지? 고개를 갸웃하며 녀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녀석은 장난기가 싹 가신 얼굴로 묵묵히 물건을 가져가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시선이 마주쳤다. 정국이는 할 말이 있는지 몇 번이나 입을 달싹였다.
"나는 누나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누나는 아닌가 봐."
어느새 내 품 안에 있던 물건을 모두 가져간 정국이가 몸을 휙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휑해진 품을 끌어안고 그 애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 애의 어깨가 넓어 보였다.
16-
그 날 이후 전정국은 한동안 편의점을 찾아오지 않았다. 친해진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 애의 부재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번호라도 있으면 톡이라도 한 번 보내봤겠으나 슬프게도 번호가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교복 위에 정갈히 새겨져 있던 이름 석 자였다. 며칠간 죽어라 선을 그어댄 결과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번호라도 물어볼걸. 걔한테 질문이라도 몇 번 던져볼걸. 걔라면 내가 하는 질문에 신나서 다 알려줬을 텐데.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전부. 후회는 후회를 낳았다.
이유 모를 감정의 찌꺼끼가 온통 내 몸에 붙은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 에어컨은 시원하게 나오는데 온몸이 사막에 있는 것처럼 찝찝하다.
딸랑
손님이 오면 울리는 종소리를 듣자마자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전정국에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들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손님 앞에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종을 사왔다. 그것도 사비로. 그리고 그 종은 제법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어서 오세요."
허리를 꼿꼿이 피고 최대한 밝게 외쳤다. 처음 이곳에서 교육을 받을 때 사장님이 가장 강조하던 인사였다. 손님은 우렁찬 내 인사에 당황했는지 문 앞을 잠시 서성이다 카운터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손님이 오길 기다렸다. 담배 사러 온 건가. 물건은 보지도 않고 오네. 속으로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가오는 손님의 얼굴이 이상하게 낯익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렌즈도 안 껴서. 최대한 손님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안녕."
태연하게 손을 들며 내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전정국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정국은 내 격한 반응이 웃긴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날 바라봤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누나? 내뱉어진 그 애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그 목소리에 난 더욱더 놀라 그를 바라봤다. 정국이는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급하게 마스크를 쓰는 것이다.
"감기 걸렸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안 오려고 했는데, 내가 좀 이기적이라서. 도저히 못 참겠더라."
그 애의 얼굴에 걸쳐진 하얀 마스크가 이렇게 답답하게 느껴질 줄, 과거의 난 예상이나 했을까.
"그래서 왔어, 누나 보러."
그리고 그 애의 휘어진 눈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줄은.
장난걸었을 때 누나가 발끈 하는 모습 보고 좋아하는 정국이(18 . 밀당따윈 없는 연하남)
안녕하세요. 되게 오랜만이에요ㅠㅠㅠㅠ
시험 끝나면 오겠다고 했는데 벌써 여름 방학이 시작돼버렸네요.
늦어서 미안해요;ㅅ;
변명을 좀 해보자면 시험이 끝난 후로 계속 글을 쓰려고 했는데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글이 안써졌어요.
슬럼프인건가ㅠㅠㅠ 슬럼프 올 실력도 안되는데ㅠㅠㅠㅠ
어쨌든 그래서 이렇게 짧은 글이라도 들고 왔어요.
미숙함과 연하의 패기가 합쳐진 정국이입니다.
네, 자기만족이죠!
| 암호닉♥ |
요랑이 모란 주인 뷔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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