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남자
w. 각설탕
첫 독립. 고등학교 때 부터 길길이 날뛰며 바라던 바를 이제야 이룬 것과 다름 없었다. 좁디 좁다는 취업의 문을 겨우 통과하고는 말 그대로 내 '첫 직장' 근처에 작은 원룸 하나를 얻었다. 사회생활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감 때문인지, 집을 구하는 내내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퍽 나쁘기만 한 건 아니였다. 설렘이 더 큰 건 분명했으니 말이다.
"아, 이거 언제 다 치우냐"
기껏해봐야 좁은 거실도 다 채우지 못한 짐이었지만, 막상 혼자 치우려 하니 막막했다. 짐 얼마 없다고 손이사한게 경솔한 선택이었나. 조금 후회되는 것 싶기도 하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러다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 급히 테이핑 된 박스를 하나 하나 뜯기 시작했다. 부욱-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뜯기는 박스가 왜인지 모르게 기분 좋은 느낌을 마구 뱉어냈다. 좋은 징조인가. 이 집에선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데.
그리고, 내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A1. 그 남자는 까칠하다
요즘 세상에 누가 떡을 돌리냐며, 유난스럽다고 말렸음에도 엄마는 기어이 시루떡을 보내왔다. 짐 정리도 얼추 된 것 같으니 떡이나 돌려야지- 싶었다. 플라스틱 접시에 아직 채 식지 않은 시루떡을 두어개씩 올리고는 4층부터 차례로 떡을 돌리기 시작했다.
간간히 빈집도 있는데다가 몇 세대도 안되는데도 이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마지막 집만 남았다. 옆집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저기 … 옆집 인데요"
"옥장판 안사요"
똑똑- 문을 두드리자 누구세요? 하는 한껏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이라고 입을 떼자마자 옥장판 안사요- 하는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옥장판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에 문을 한 번 더 세게 두드릴까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이사 온 첫 날부터 분란을 일으킬 수 없어.
"아니, 저 옆집에 이사왔는데 시루떡 …"
"보험 관심 없어요"
어쭈, 이제 말도 끊어? 내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추호도 없는지 그저 제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이번에는 보험 관심없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괘씸한 마음에 시루떡이고 뭐고 주지 말까 싶었지만 그보다는 그 잘난 얼굴 상판떼기를 보고 싶은 욱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 얼굴이나 확인해보자. 처음 독립한 이웃이 저리 싸가지 없다니!
"이사 왔다니까요!"
결국 성질을 부리고 말았다. 철문을 발로 차고 싶은 걸 겨우 꾹- 참고서 주먹으로 쾅쾅 두어번 두드리며 소리치니, 그제야 현관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온다. 그리고서 내 앞을 굳건히 막고 있던,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철문이 끼이익- 하는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 곳엔, 흰 피부의 남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
그 날 이후로도 그 옆집 남자를 적지 않게 마주치곤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에나, 퇴근할 때 말이다. 신기했던 점은 그 남자는 절대 밝을 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다만, 그 남자는 꼭 해가 뉘엿뉘엿 제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모습을 비췄다.
아, 그래서 피부가 하얀걸까. 늘 흰피부에 목늘어난 흰 티셔츠 그리고 백금발. 멀리 사라져가는 노을 빛에 붉게 물드는 그 백금발이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렸다. 그래, 분명 저 남자는 백수일거다. 게다가 피부가 머리색과 똑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를 싫어하나. 하다가 혹시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러고 보니 나 되게 옆집 남자한테 관심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절대, 네버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 일말의 호기심이라면 호기심이겠지, 그저 독특한 캐릭터를 만났기에,그리고 그 남자가 내 옆집이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는 말이다.
A2. 그 남자는 싸가지 없다.
으악! 늦었다! 부리나케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머리 감기에는 한참 무리가 있는 듯 하니, 머리를 질끈 묶어버렸다. 버스 타기에는 이미 글러먹은 듯 싶고,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기위해 발빠르게 큰 길로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여기요!"
다행이다, 지금 이 택시 타면 지각은 면하겠네. 빈차- 라 써있는 택시가 세상 그 누구보다 반가워 길목에서 팔을 크게 휘적휘적 내저었다. 아저씨!여기요! 소리치는 것도 잊지않고. 택시가 내 앞에 황급히 멈춰섰고,이제 막 차 문을 열고 몸을 구겨넣으려던 참이었다.
"잠시, 실례"
희고 길다란 손가락이 내 쪽으로 뻗어오더니, 차 문 손잡이를 낚아챘다. 잠시, 실례. 하는 무덤덤한 말이 내 발치에 무심하게 떨어졌다. 그저 이게 뭔가 싶어 벙찐 표정으로 그 손만 좇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한 순간. 옆집남자였다.
"아니, 저기요. 저 이거 타야 …"
"미안한데, 내가 좀 늦어서. 다음에 꼭 갚을게요"
이내 자신의 몸을 택시로 틀며 말한다. 뻔뻔스러운 그 태도에 무어라 대꾸할 말을 한참이나 찾지 못했다. 그렇게 멍 때리고 있는사이, 택시는 싸가지 없는 옆집 남자를 싫고 저 멀리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악! 여기 택시도 잘 않잡히는데! 나는 그제야 택시의 뒷꽁무니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망할새끼!
*
"조,좋은 아침 입니다"
헉헉, 거친 숨을 고르며 사무실에 도착했다. 택시도 잘 안잡히는 마당에 운이 좋다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곧이어 도착한 택시로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만원이라 8층까지 계단을 뛰다싶이 올라왔다. 자리에 털썩- 주저 앉자마자, 사람들이 일사분란 하게 움직인다.
"자, 기획1팀.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와, 조금만 더 늦었어도 진짜 망할뻔. 부장님의 등장에 나도 급히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진부한 인사를 건네보인 부장이,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며 팀원들을 주목시켰다. 그리고 부장옆에 서있는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에 나는 그저 입만 헉- 하고 벌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 사람.
"이번에 들어갈 광고음악 제작해주실 프로듀서 슈가. 기획1팀과 일하게 되었어요. 랩몬스터씨는 기획2팀과 함께하게 되었으니, 스케일도 큰만큼 대박한 번 터뜨려 봅시다."
그러니까 슈가, 내가 아는 슈가. 프로듀서 슈가. 얼굴없는 대세 프로듀서 슈가. 그리고, 싸가지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희멀건한 옆집남자.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접점이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슈가라는 거지. 슈가…슈가… 바보같이 그 이름을 머릿속으로 몇 번 되뇌었다.
팀원들도 놀란 모양인지, 한참 술렁였다. 부장이 다시 한 번더 제 앞에 있는 책상을 세지 않게 치고는 옆집남자, 그러니까 슈가에게 인사하라는 듯 목짓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함께 일하게된 민윤기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나 지금 되게 저 남자랑 엮여야 한다는 이야기지? 왜인지 평탄했던 내 인생을 가로막은 크고 무거운 바위하나가 끼어든 것만 같았다.
A3. 그 남자는 이상하다
대리님들과 팀장님, 옆집남자, 아니지 민윤기는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일개 신입사원이니 그저 궁금한 마음을 애써 뒤로하고는 그저 탕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마실 것을 대령하는 것도 내 몫이다. 아침에 당했던 일을 회상하며 민윤기의 커피에만 침을 확- 뱉어버릴까 하는 못된 생각도 잠시 내 머리속을 지배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긴 회사다. 이건 비스니스다 그리고, 나는 프로다. 결국 물을 조금 많이 부어 밍밍한 커피를 만드는 소심한 복수로 대신했다.
똑똑-
작게 두드리자, 네, 들어와요- 하는 팀장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문을 들고, 복사해온 자료와 쟁반을 양손에 가득 품고는 소회의실로 발을 옮겼다. 나에게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됬다. 물론, 민윤기의 시선도 포함. 내게 닿는 그 시선이 묘했다. 아침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혹은 나와 같은 민망함인지. 정말 오묘하게 나를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나도 질세라 쏘아보기위해 시선을 옮겼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빤히, 나를 쳐다보는 통에 나 또한 잠시 멈춰있었다. 순식간에 두 귀가 붉게 변한게 느껴질 정도로 후끈였다. 아니, 왜, 왜그러는데! 당장이라도 나 자신을 세게 치고 싶었다. 아니, 이미 무언가에 맞은 것 같은 기분. 한참을 꼼짝없이 서있다가, 팀장님의 탄소씨, 커피 여기에 놓고 가주면 되. 땡큐- 하는 목소리에 네,네 하고 다급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문틈사이로, 내 뒷모습을 좇다가 이내 다시 회의에 집중하는 민윤기를 보았을때,
그대로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
회사에선 줄곧 민윤기를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바보같게도 민윤기와 시선이라도 엉킨다면, 그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연애감정? 그런건 아닐거라 확신했다. 그런 걸 모를 정도로 나는 어리지 않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혹시 오금이 저려서 일까. 마치 사나운 맹수를 만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 아마 그런 걸꺼야. 천적이라고 민윤기는. 애써 실없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하며 기를 쓰고 민윤기를 피해다녔다.
그리고, 너는 그해여름, 나를 어리고 또 어린 열여덟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각설탕입니다! 글잡이 처음은 아니다만, 꼭 되게 처음같고 막 그러네요8ㅅ8
자급자족 글, 회사물, 옆집윤기, 회사원 윤기. 여러분도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앞으로 오래오래오래오래 자주자주자주 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사이가 되었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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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ㅅr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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