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외출을 한사이 화장대 서랍에서 꺼낸 빨간립스틱을 몰래 바르고서 슬쩍 훔쳐본 거울속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런 내모습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엉엉울며 립스틱을 지우는 내 자신도 여자가 되고싶은 내 자신도 그리고 그 애를 좋아하는 내자신도.
모든게 남자라는 사실때문에 안되는것이 너무나 싫었다.
대체 나는 왜 남자로 태어났을까. 나를 남자로 태어나게한 세상을 없애버리고싶다.
소년기
“ 야, 게이왔다. 게이. ”
아이들은 나를 ‘ 게이 ’ 라고 부른다. 도대체 누가 이따위 말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꼭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라는 법이있나. 한명한명에게 따져가며 묻고싶었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할것이다. ‘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니가 이상한거야! 이 게이새끼야! ’ 무슨짓을하든 내가 더 상처받을걸 알고있기 때문에 이날도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고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아무것도 안틀어져있는 상태였지만 이거라도 꼽고있으면 아무리 멍청한새끼들이라도 건들지않는걸 알고있기때문이다. 책상에 엎드려 손을 만지작 거렸다. 언제쯤 지겨운 이 생활이 끝날려나. 시덥잖은 생각을하며 시간을 보내고있자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교탁을 치며 일어나라는 말로 나를 깨웠다. 나는 마치 선생님의 말에 지금 일어났다는듯이 연기하며 수구렸던 몸을 펴냈다. 그리곤 깜빡깜빡 정신을 차렸다는듯이 눈을 깜빡이다 선생님 옆에 슨 건장한 남학생에 여전히 눈만을 깜빡이고 있었다. 길게뻗은 몸을 스캔하든 위아래로 훑다 눈이 마주쳐 나도 모르게 뻣뻣하게 굳은체로 고개를 숙였다. 쿵쾅쿵쾅, 눈 한번 마주쳤을뿐인데 심장이 요동치고있었다. 이게 찬열이와 나의 첫만남이었다.
“ 전학온 박찬열이야. 친하게지내자. ”
씨익- 멋드러지게 웃는 찬열이를 보며 여자아이들은 이미 뿅간듯 황홀한표정으로 바라보고있었다. 물론 나또한 그렇게 보고있었다. 선생님은 찬열이를 내 옆자리로 배정했다.
다들 나와 앉기를 꺼려해서 자연스레 생긴 빈자리였다. 걷는것도 멋있어서 한참을 보고있었다. 조심스레 의자를 끌어 자리에앉는 찬열이 주위로 애들이 모였다. 나또한 아닌척해도 몰래몰래 곁눈질을 하며 잘생긴 얼굴을 훔쳐보고있었다. 그러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 니 옆자리 앉은애 게이야. ”
쿵. 몸속안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하필이면 왜 지금 그걸 말하는지.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호의를 갖고있는 상대에게 들키면 나에게 매정하게 굴지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괜히 입술만 잘근잘근 씹다가 내가 자리를 비켜주는게 나을것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찬열이는 별거아닌듯 말했다.
“ 그게 뭐? 게이면 어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수도 있는거지. ”
모두들 놀란눈으로 아무렇지않게 폭탄발언을 한 찬열의 입을 쳐다봤다. 나도 놀라서 찬열이를 바라보자 그저 웃으며 다른 화제로 넘겨버렸다. 내가 말했을땐 더러운새끼라며 욕하던 아이들은 어느샌가 하하호호 웃으며 찬열이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일이라 어찌할지몰라 일어서있던 나는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가까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찬열이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존재하는것 같았다.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도 찬열이도 모두 다른세계의 사람같았다.
-
전학와서 책이없는 찬열이와 교과서를 같이보자 아이들은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찬열이를 쳐다봤다. 기분이 퍽 나빠져서 인상을 쓰며 글자만을 노려보고있자 찬열이가 볼펜으로 공백에 뭔가를 끄적였다.
[ 이름이 변백현이야? 이쁘다 ]
정갈한 글씨체에 한번 놀라고, 타인에게 한번도 들어본적없던 이쁘다 라는 말에 또 놀라고. 뭔가 답을 해줘야할거같아 볼펜을 들었다가 나랑 가까이 지내면 내가 받는 눈초리를 같이 받을것같아서 관두자 찬열이는 다른 공백에 물음표 몇개를 채워보여줬다. 아- 하는 변명하려는 소리를 내려다 또 말자 찬열이는 뭔가 골똘히 생각해보이는가 싶더니 울상인 얼굴로 짧은글을 써내려갔다.
[ 내가 책에 낙서해서 화난거야? 미안해.. ]
글을 보자마자 아니라고 손을 내젓자 금세 환해져서 웃어버리는 찬열이의 얼굴에 나는 불타는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후우- 후우- 진정하자며 심호흡을하고서 볼펜을 쥐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괜찮아, 그리고... 여기까지 쓰고서 망설이자 찬열이는 뒷말이 궁금한듯 빼곰히 고개를 들이밀어 보려들었다. 나한테 말걸면 너까지 게이라는 소리들어. 라는 말을 쓸려다 망설인건 이걸쓰면 진짜로 말을 걸지않을것 같아서다. 망설이다 결국엔 니 이름도 멋져. 하는 심플한 문장을 써보이자 찬열이는 고마워- 하고 작은목소리로 속삭여줬다. 두근두근, 귓가에 울렸던 낮은 목소리에 심장이 타버릴것같이 아팠다. 이렇게 좋아해도 내가 아니라 다른 ‘ 여자 ’ 를 좋아해버릴걸 알고있어서일까 이건 좋아서 쿵쾅거리는게 아니라 나중에 겪을 아픔이 벌써부터 아려오는거라고 생각했다.
종례시간이 끝나고 어느새 친해진듯 아이들과 모여 집을 가는 찬열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시야를 돌려 가방을 챙기다 아! 하는 찬열이의 목소리에 슬쩍 고개들어 바라보자 여전히 바보같은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말한다.
“ 잘가, 백현아. ”
짧은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죽을것같았다. 오르지 못할 나무에 밧줄을 내려주는 찬열이에 나는 갈팡질팡 하고있었다. 잡을까, 말까. 잡지말아야 할게 분명한대도 오를수있을것같은 기대감에 한번 밧줄을 끌어당겨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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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길에 화장품가게에 들렀다. 요리조리 살펴보다 이쁜 살구색 매니큐어를 집어들어 계산대에 올리자 점원은 나를 보며 방긋이 웃었다. 여자친구한테 선물하실건가 봐요? 점원의 말에 나는 그저 웃으며 계산을 마쳤다. 지레짐작하고 포장까지 해준 여자에 짜증이나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포장지를 벗겨 길가에 내버렸다. 화장품은 꼭 여자만 쓰는건가? 왜 내가 쓸꺼라는 생각은 안하는거지? 예상치못하게 마음에 화살을 맞은 나는 매니큐어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버스안에서 자리에 앉은 여자들을 살펴봤다. 찰랑거리는 생머리, 약해보이는 몸체. 간드러지는 웃음소리. 절대 내가 가질수없는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앞에앉은 여자처럼 다리도 모아보고 없는머리를 쓸어도보고. 그러다 내릴때가 되면 이로써 ‘ 여자놀이 ’ 가 끝나는것이다. 괜히 자괴감이 들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빨리해 내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때처럼 오자마자 문을 잠구고 새로사온 매니큐어를 꺼내들었다. 새끼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이쁘게칠한 매니큐어임에도 불구하고 투박한 손가락을 보자 얼른 손을 숨기고싶었다. 구석에 숨겨논 박스에서 아세톤을 꺼내어 손가락에 들이붓고는 박박 문질렀다.
아까까지는 존재했던 단단한 밧줄이 한순간에 뚝 끊긴 느낌이었다.
소년기
공책에 얼마나 끄적였나 모른다. 박찬열. 박찬열. 박찬열...가끔은 입으로도 소리내어 읽어보기도했다. 박찬열....조심히 불러보고서는 얼굴을 공책에다가 파묻었다. 변백현 병신..안되는거 뻔히알잖아. 속으로 수천번은 외친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찬열이는 누구에게나 자상했다. 그래서 나한테도 잘해주는게 분명한데 나는 아직까지도 끊어진 밧줄사이로 얇은 실하나가 걸쳐져있다고 믿고있다. 백현아. 따스히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 기대하는걸까, 아니면 나를 다정한눈으로 바라봐주는것에 기대하는걸까. 망할. 처음부터 기대를 하면 안되는거였는데...자꾸 다른의미로 부여되는 찬열이의 행동에 머릿속도 마음도 모두다 어지러웠다. 간질거리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는데도 스멀스멀 삐져나와 어느새 넘쳐있었다. 그러나 이런 내마음에 뚜껑을 닫은 찬열이의 말은 가혹하기 짝이없었다.
“ 백현아, 너는 여자소개 안받아? ”
“ ....... ”
“ 민석이가 나 여자소개해준대서...너도 관심있으면.. ”
“ 미안. 나 그런거에는..관심, 없어서. ”
꼴사납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찬열이는 아쉽다는듯이 입맛을 다시고는 아이들 무리로 들어갔다. 찬열이는 처음부터 내가 ‘ 게이 ’ 라는 사실을 믿지않았다는걸 알게되자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의 뜬소문인줄알고 잘해준건가? 만약 진짜 게이라하면 이제부터 찬열이의 태도는 달라질까? 여러가지 생각에 찬열이 쪽을 바라보자 나와 눈이마주친 다른 남자아이는 질겁하며 아이들과 소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무리에 있던 찬열이도 아이들의 말을 듣더니 내쪽을 힐끔 바라본다.
아, 끝났다.
한순간에 끝나버린것같았다. 아까의 남자아이와 같은 표정을 한체로 내쪽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찬열이의 모습에 나는 화가나서 자리를 박차고 반을 나갔다. 나는 뭐에 화났는지도 모르고 차오르는 설움을 못이겨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 나의 마음이 짓밟힌거에 대해서 화났는지 다른아이와 다를것없는 찬열이에게 화났는지. 잘 모르겠다. 어린아이처럼 대성통곡하며 울어대다 쉬는시간 종이 끝나서 슬쩍 나와 거울을 바라보자 퉁퉁부은 눈이 날 마주하고있었다.
“ 병신...변백현 병신아..... ”
차올랐다. 뭔가가 계속, 차올라서는 펑 터져버린것 같았다.
-
반에 돌아가자 이미 수업은 시작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께 인사를하고 자리에앉자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답답해서 결국엔 내가먼저 찬열이를 향해 시선을 던지자 놀라서는 어디다 시선을 둬야할지 몰라했다. 결국 너도, 똑같구나. 한숨을 내쉬며 칠판을 바라보고있는 나에게 찬열이는 작은 쪽지를 건넸다. 많이 고민한듯 보이는 문장이었다.
[ 진짜..게이야? ]
무슨대답을 해줘야할지 몰랐다. 아직까지 찬열이에 대한 마음이 접혀지지 않아서일까. 찬열이한테만은 천대받기싫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휘갈겨써내렸다. 아니, 게이 아니야. 답장을 써서 찬열이에게 건네고 책상에 엎드려있자 위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스윽- 다른 쪽지를 건네보이는게 보였지만 나는 자는척 눈을 감았다. 꼴에 자존심이 존재해서 나중에 보겠다는거였다.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부시럭거리며 일어나는 찬열이에 나도 그제서야 일어나 쪽지를 살폈다.
[ 다행이다. 난 안믿고있었는데 아까 애들이 니가 진짜 게이라고 그래서 오해했어....근데..니가 아니라니까.. ]
몇번 지워진 흔적위에 진하게 자리잡은 글씨가 보였다.
[ 계속 친구로 지낼수있겠다. ]
차마 다 읽을수 없을것같은 글이였지만 몇번이나 정독했다. 잘못본 글씨라고, 그렇게 믿고싶었다. 쪽지를 다시 접어 교복 주머니에 넣어놓고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별거아닌 종이쪼가리도 소중했다. 찬열이가 준것이기에..주머니속 종이를 손으로 매만져보다 울컥해서 비죽비죽 눈물이 새어나왔다. 모든걸 잊고싶었다. 처음으로 되돌릴수있다면, 좋겠다.
찬열이와 전화번호를 교환한지 며칠째 찬열이는 거의 보고식으로 문자를 보냈다. 오늘 뭐뭐 했어. 너는 뭐했어? 다정한 문자에 설레여서 바보같이 또 좋아했다. 속으로는 병신병신. 거리면서도 겉으로 감출수없을만큼 웃음이 튀어나와있었다. 그리고 찬열이가 여자친구가 생긴날. 그날또한 보고형식으로 나 여친생겼어. 하는 찬열이의 짧은 문자에 나는 바보같이 축하한다는 말을 쓸수밖에 없었다.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어떤 표정으로 문자를 보냈는지 찬열이는 모를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
졸업식은 눈깜빡할사이에 다가왔다. ‘ 친구 ’ 라는 무리속에 들어가 이성애자인척 한것도 오늘로써 끝맺음을 할수있는 날이었다. 막상 커밍아웃을 할려니 여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복부를 얻어맞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옆자리에 앉은 찬열이를 계속 훔쳐봤다. 이날이 아니면 못만날거니까 조금이라도 더 볼려는 심산이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조금은 느끼해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오빠 오늘 멋있냐? 하는 바보같은 질문을 하는 찬열이에 나는 웃어보이며 아프지않게 어깨를 때렸다. 이런것까지 잘생겨보이다는 중증이었다. 이래가지고 찬열이랑 친구사이가 깨져 볼수없게되면 잘 살수있을련지 걱정이됐다.
식이 끝나고 찬열이에게 줄 작은 꽃다발을 살까 하다가 뒷줄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찬열이의 여자친구를 보고 장미꽃 한송이를 사왔다. 이미 간건 아닐까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다행히 친구들과 모여서 얘기중인 찬열이를 발견할수 있었다. 진정하며 다가가서 꽃을 건네자 처음봤을때 그때의 미소를 보여주며 고맙다하는 찬열이에 나도 슬며시 웃었다. 아이들은 그런 나의 모습에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 이제 헤어질사이니까 솔직히 말해봐, 변백현 너 게이맞지? ”
“ 어, 게이 맞아. ”
끝이다, 이걸로. 이런 대답은 예상못했는지 아이들은 당황한 눈치로 나와 찬열이를 살폈다. 찬열이는 표정변화없이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반응이 이상한 찬열이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며 자리를 떴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나를 잡아끈건 다름아닌 찬열이었다.
“ 나, 사실 알고있었어. ”
“ ...뭘, 알고있었는데? ”
“ 니가..게이라는거...나한테 게이아니라고 속였던거... ”
“ ....... ”
“ 왜 이제야 말한거야? 이제 정말 나 안볼생각으로 말한거야? 나는 니가 게이라도, 친구사이는 변함없어. ”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해도 똑같을수있을까? 하고 물어보려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찬열이는 ‘ 친구 ’ 라는걸 확실히 나에게 박아뒀으니 말이다. 그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 그에 환하게 웃으며 나중에보자, 연락할게! 하고 기다리는 여자친구 곁으로 가버린 찬열이의 모습을 끝으로 나는 찬열이를 보지않았다.
이렇게 나의 소년기는 끝났다.
똥글망ㄱ글.이게무야 폭풍급전개 퐉ㅍ괖ㄱㅍ퐝
성인기는 나올지 안나올지 모름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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