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 of Love
늦 여름이였을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3명의,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춤을 추는 사람들이였고, 그 중 자신의 말로는 치명적인 섹시함을 담당하고 있다는 김태형이 자신의 친구라며 데려온, 현대무용 전공이라는 박지민과 그의 귀여운 동생이라며 같이 데려온 전정국을 만난 것은.
첫인상은 뭐, '이런 애기 같은게 다 있나?' 였다. 나름 세명중에서 막내였던 저가 보기에는 동생이 생긴 줄 알았으니까.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묻고 나서야 동갑인 줄 알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좋았던 피지컬은 춤을 추면서 확연히 드러났고, 그 실력은 점차 드러나 몇번의 공연 후에는 우리중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들 수준까지 보였다.
하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전정국의 성격 탓에 일찍 친해지긴 글렀고, 같이 춤을 춘지 석달 정도 지나서야 겨우 말을 트는 사이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안녕하세요, 밥은 먹었어요? 같은 존댓말들만 썼다는거다.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너무나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춤이였다.
"...그거 보아 춤 아니에요?"
"어....어, 집에 간 거 아니였어요?"
"아니, 뭐, 놔두고 간 게 있어서요. 그거 보아 Only One 춤 아니에요?"
"맞아요,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노래 틀어놓지도 않았는데."
"...보아 좋아하거든요..."
"정말요? 진짜? 우와, 나도 좋아해요!"
"...혹시, 그거 그, 같이 추는 부분. 남자 등장하는 부분이요. 같이 출 생각은 없어요?"
아마 그때가, 만난 이래로 가장 많은 말을 한 시간들이였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말에 신나서 춤을 췄었다. 합은 생각보다 더 잘 맞았고, 몸으로 부대끼다 보니 서먹서먹하던 전보다 훨씬 친해지게 되었다. 그때 말도 놓고, 크지 않은 스마트폰 화면에 꼭 붙어 보아나 그에 관련된 춤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친해지다가 관계가 묘해진건, 얼마 지나지 않은 가을의 초입이었다.
-
"야, 전정국!"
"왜 이렇게 빨리왔어, 아직 더운데."
"별로 안더운데, 이제 가을인걸?"
"그래도. 옷은 왜 그렇게 짧은거 입었냐, 밤에 춥다."
"...아니, 뭐. 방금 덥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얼른 가자, 나 이 공연 진짜 보고 싶었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쪽에서는 꽤나 유명한 팀의 공연이 있는 날이였다. 호석이 오빠, 김태형, 박지민과도 같이 오고 싶었지만 무슨 일인지 다 못간다고 해서 단 둘이 온 날. 서먹한 사이도 아니고 절친한 사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친해? 라고 물으면 응, 이라고 답할 수 있는 사이 정도는 되겠다 싶어 단 둘이 오게 되어버렸다.
원래 몸이 좋은 탓인지 연습실에서 보는 무지티와 팀버랜드가 아닌 흰 색의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새로운 느낌이였다. 저가 입은 검은색 민소매 블라우스에 청 반바지와 부끄럽지만 커플룩 같아 보여 기분이 이상해졌다. 향수도 뿌렸나, 평소의 섬유유연제 향과 섞인, 다른 향이 났다. 아이 같지만 또 어른 같은, 전정국과 잘 어울리는 향.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탓에 공연장에 들어가자마자 뭇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전정국의 존재가 묘하게 느껴져 일부러 조금 떨어져서 걸었는데, 그것을 알아챈것인지 제 손을 잡아 끄는 정국이었다.
손잡는거... 싫은데. 이상한데.
"손 놔주면 안돼?"
"안돼, 사람 많아서. 싫어?"
"아니... 아니..."
언젠가 부터 그랬다. 깍지 껴서 잡듯이 손바닥이 누군가의 손과 닿으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피부가 예민해진 탓인가 보다 하고 누군가와 손을 잘 잡지 않는게 일상이 되었다. 손을 잡을 일도 많이 없었고. 가끔 호석오빠나 김태형, 박지민과 동작 중 하나로 손바닥을 스치거나 손을 잡아도 별 기분이 안들어 이제 안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전정국은 달랐다. 키만큼 큰 크기에 길쭉한 손가락을 가진 손이 제 손을 잡을 때면 기분이 한 없이 이상해지곤 했다. 중요한건 그게 불쾌하다거나, 그런게 아니라는 것이지.
오히려 기분이 좋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묘하게 좋아진다는게 아주 큰 문제다.
공연이 시작 되었고, 너무나 기대하고 보고싶었던 공연 인 만큼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두시간 정도 되는 공연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공연의 막바지에는 공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잔뜩 흥이 올라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자신의 춤을 보여주고, 같이 무대를 하기도 하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도 무대에 여러번 서 봤지만, 무대 밑에서 무대를 하는 사람을 볼때면 괜시리 선망이랄까,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춤을 추는 사람이라 느낄 수 있는, 그 사람만의 포스를 볼때는 황홀하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올 사람, 이라는 말에 전정국이 나를 본다.
"...왜, 정국아?"
"저거 멋있어?"
"엄청! 아까 봤어? 검은 셔츠 입은 사람? 와, 장난 아니던데. 그 포스가, "
"나 간다."
방금 본 남자의 공연이 너무 좋아 들떠 이야기 하니 듣다가 제 손을 놓고 무대 쪽으로 다가가는 정국이다. 같이 공연을 하다보면 가끔 개인이 춤을 춰주는, 뭐 그런 시간이 생길때마다 빼던 애가.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니 더 빛나는 얼굴과, 춤으로 다져진 몸에 공연장에 있던 모든 사람, 그 중에도 여자들이 무대위를 바라본다. 다시금 묘해지는 기분에 왜 이러지, 생각에 잠기려다가 이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그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평소에 추던 춤과는 다른, 그 만의 분위기를 확연히 드러내는 춤. 빠르고 힘이 넘쳤다가도, 연하고 느릿하게 바뀌는 템포. 그만의 세상에서, 그만의 분위기에 취해 한 동작 한 동작에 숨을 죽이고 쳐다보게 되는, 완벽한 그만의 분위기. 그만의 템포. 그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크기의 황홀이 저를 덮쳐왔다. 아름답고 완벽한 그의 분위기에 완전이 잠식된 채로 무대 위의 그를 바라봤다. 마치, 한마리의 나비 같았다. 빛나는 흰색의, 나비.
"....아."
어느새 무대가 끝이 났나보다. 내려오는 정국이 눈에 보였고, 어느 예쁜 여자가 그의 주변을 맴돌다 번호를 물어보려는 것인지, 휴대폰을 내미는 것도 보았다. 안돼, 싫어. 동시에 드는 불안함. 무의식적으로 든 생각과 저를 뒤덮은 불안감에 되려 내가 놀라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왜 이러는거지?
고정된 시선 끝의 전정국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툴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빨리, 저에게 왔으면 좋겠다.
아, 좋아하는구나.
노출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음에도 이렇게 입고 온 것, 그와 닮은 복장에 기분이 좋아지던 것. 다른 사람과 닿을땐 아무렇지 않던 것이 전정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아지고, 묘해지던 깍지낀 손. 다른 여자를 볼 때 불안하고, 나에게 빨리 왔으면 좋겠던 것.
무의식에서, 의식적으로. 이 순간을 흔히들 깨닫는다고 한다. 좋아하는구나. 나는 널, 좋아하는 구나.
"...왜 그래, 왜. 내가 너무 멋있었어?"
"....응, 아니, 아니야."
너 너무 멋있어. 정말 멋있어. 좋아하는 것 같아, 반한 것 같아.
-
첫인상은 예쁘다, 였다. 너무나 예쁜 요정. 혹은 여신? 이런 생각이 든 저가 바보 같긴 했지만, 정말 진심이였다. 너무 예쁜 사람. 긴 생머리, 잡티 하나 없는 피부, 까만, 쌍꺼풀 없는 눈. 춤을 오래 춘 것인지 탄탄한 몸매. 춤을 출 때 흔들리는 생머리가, 몸에서 피어나는 하나하나의 동작이, 가끔 춤출때 짓는 웃음에 눈을 뗄 수 없는, 사로 잡아 놓는 사람. 너의 첫 인상은, 그랬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어쩌지 못하고 네 옆만 빙빙 돌 때였다. 너는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뒤에서 열심히 너와 친해지려고 저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던 때. 춤을 추고 나면 항상 네 자리에 시원한 물을 가져다 놓았고, 힘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도 많은 힘이 드는 동작들을 하다 보면 금세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너에 일부러 형들에게 쉬자고 하는 등. 너는 알아채지 못할, 저 나름대로의 배려를 할 때였다. 절실하게 저 김태형의 친화력을 뺏어오고 싶을 정도로 너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말을 건네지도 못하겠었다. 그냥 너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내게.
우연한 기회로 너와 말을 텄을때, 내면에서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지경이였다. 평소 여성 아티스트이지만 그녀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춤을 네가 추던 모습은, 너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또, 예뻤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말을 건넸고, 대화가 이어졌다. 너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순간, 행복했다.
공연을 하는 날이였다. 홍일점인 너는 일부 극성인 사람들이 하는 욕들을 들을때가 종종 있었고, 그 날도 그랬다. 심하다, 싶은 말을 너에게 쏟아내는 여자에 너의 표정은 극도로 안좋아졌고 무대를 내려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말에 안되겠다, 싶어서 호석이 형에게 부탁했다. 너의 뒤에 가서 잘게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고 귀를 막곤 빠른 걸음으로 공연장 밖을 나갔다. 괜찮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너가 걱정이 되었다. 나를 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여린 몸에 가만히 어깨를 토닥였다. 아마 너는 그 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면 네 어깨를 감싼 사람이, 널 토닥인 사람이 나인지 몰랐던 것 일 수도. 그 밤이 지난 후, 나는 잘 하지도 않던 SNS를 시작했고 첫번째 트윗은 너를 욕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였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지역 내에서는 꽤나 인기가 있던 우리였기에 그 트윗은 많이 리트윗이 되었고, 그 뒤로 많이 줄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네 기분 하나하나가, 상태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을까 싶어 스스로 제지 해야할 만큼 신경이 쓰였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의 공연을 보러가자고 한 날, 무지티 밖에 없어 일부러 엄마에게 부리지 않던 애교까지 부려가며 옷을 샀다. 신경 안 쓴듯 꾸미고 나간 곳에는 짧다, 싶은 옷을 입은 네가 있었다. 평소에 노출을 즐기지 않으면서, 그게 뭐야. 너무 예쁜 모습에 나만 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니 뭇 남자들이 너를 힐끔 힐끔 보는게 느껴졌다. 자꾸만 신경쓰이는 네 모습에 네 손을 잡았다. 움찔거리는 너. 이내 손 풀어주면 안돼냐는 네 말에 싫다고 했다. 제 손 안에서 꼬물대는 네 손이 귀여웠고, 한층 가까워진 거리가 좋아서.
또, 또다. 열심히 무대 위의 남자를 보는게 난 왜 이렇게 싫은지. 마지막으로 할 사람을 묻는데 너에게 물었다. 잔뜩 흥이 올라 무대를 바라보는 너에, 내 질문에 잔뜩 들떠 말하는 모습에 생각할 것 없이 무대로 향했다. 즉석에서 하는걸 어려워하는 나지만, 네가 그렇게 내 모습을 보아줬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나 답지 않은 짓을 했다.
춤을 추면서 느꼈다. 아, 나는 저 아이를 좋아하는구나. 무대 밑에서 자신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저 눈망울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제 손 안에서 꼬물대는 네 손이 귀엽다고 생각하고, 기분 하나하나가, 상태 하나하나가 걱정되는. 그리고 늘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은 사람.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의식적으로. 이 순간을 흔히들 깨닫는다고 한다. 좋아하는구나. 나는 널,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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