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떴을 때는 우현의 잔상이 회색빛으로 아른거릴 뿐이었다.
아까부터 방 안에 잔뜩 흩날리던 탁한 진홍빛 가루가 공기에 짓눌려 떨어졌다. "우현아?" 그러나 정적.
마약에 시들어버린 내 목소리는 나 자신도 익숙지 않았지만 "남우현." 되뇌인 너의 이름은 참 예뻤다.
오늘은 2월 8일. 차가운 눈이 내리는 겨울, 너의 생일, 그리고 너의 기일이다.
왠지 모를 갑갑함에 무작정 옥상으로 향했다.
공기오염이 그렇게도 심하다는 서울이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남우현의 생일에는 하늘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몸에 가뿐하게 닿아오는 바람이 상쾌했다.
"우현아." 생일 축하해. 전날밤 미리 옥상에 놔두었던, 그가 좋아했던 치즈 케이크를 작은 벤치 위에 올린다.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케이크를 바라본 순간, '김성규. 추운데 목도리 좀 하고 나오지.' 말도 안돼게 너무도 똑같은 남우현이 있었다.
이런 꿈은 정말 싫은데. 니가 죽은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산산히 깨어질 행복이라면 아예 없는 게 나은데. 눈 앞의 남우현이 거짓이라는 너무도 선명한 진실이 아프다.
'울지마.'
그런데 내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손길은, '김성규 울 때 못생겼다니까.' 아직도 익숙한 따뜻함인데.
치즈케이크가 갑자기 몰아친 강풍에 벤치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남우현은 없었다.
"우현이.. 보고 싶다.."
보고 싶어서 죽겠다, 너가 정말 필요해, 온갖 그리움을 표현하는 말들이 절실했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내 말을 들어주어야 할 너는 없으니까.
감히 사랑한다고 마음 속으로 되뇌이지만, 너는 들을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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