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친구 전원우. 上
W. 처으메야
-집에 친구들 와 있어. 오늘 어차피 자고들 가니까 걍 빨리 들어와. 늦다.
문자를 보고는 숨을 한 번 내쉰 너가 걸음을 빨리했다. 그래봤자 남들이 보기엔 다소 느린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원래 아무도 없어야 하는 골목길에는 웬 남자가 가로등 밑에 서있어 조금 무서워졌다. 꼭 오늘 같은 날에 누가 있더라.. 그냥 못본 척 하고 지나치면 되겠지. OO아. 가로등을 몇 발자국을 지나지도 않았을 때 불리는 너의 이름에 멈칫했다. 문득 드는 공포감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을 때는 오빠 친구, 그러니까 전원우가 멋쩍은 웃음을 지은 채로 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으응, 그..친구들끼리 가위바위보 했다가,"
"....."
"..이겨서, 데리러 왔는데."
제 눈을 피하는 원우를 보며 여전히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제 오빠가 귀찮음과 집을 제공해줬단 핑계로 가위바위보를 시켰을 게 훤했다. 몇 번을 말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걔는. 그러다가 져서 원치도 않는 걸음을 했을텐데 너의 기분을 일부러 신경쓰는것인지 이겼다고 말하고 있다. ..가방 들어줄까. 너가 고개를 살풋 내저었다. 그 때 이후로는 아무래도 의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되니까.
"아니에요, 어..선배."
"갑자기, 왜 선배라 해."
"어..이제 같은 성인이고 같은 대학교 들어갈텐데.."
"..그래도 오빠라고 불러줘서 좋았는데."
귀가 달아오르는 느낌에 원우를 쳐다보자 너를 보며 웃고 있다. 급히 시선을 내리박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원우가 제가 입고있던 가디건을 꼼지락 벗어내서는 둘러줬다. 괜찮은데..원우가 안돼, 했다. 여전히 느릿느릿한 말투. 너 감기 쉽게 든다며. 그 말에 너는 그저 웃어보였다. 어차피 다왔는데, 뭘. 저런 배려심들이 예전부터 사람을 참 헷갈리게 했다.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 시간까지 놀면,"
"....."
"그 여자친구 분이 싫어하지 않아요?"
정적을 깬 너의 말에 원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헤어졌어. 왜요? 그냥, 여자 사귀는 데에 재주가 없나봐. 잘 해주지를 못하니까 서로 답답해서. 어느새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현관문 도어락을 풀며 너가 대꾸했다. 그대로 얘기한 건 아니죠. 더 상처받을 거 같은데. 원우는 답이 없었다. 왔어?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묻는 너의 오빠에 응,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아닌 척 가방으로 얼굴을 한 대 쳤다. 왜 때려! 내가?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가. 갸웃하는 너를 본 오빠의 친구들이 와하하 웃어댔다. 그리고, 애꿏은 친구들은 왜 시켜, 좀 데리러 나오지. 너의 타박같지 않은 타박에 오빠가 느릿느릿 들어오는 원우를 쳐다봤다. 원우가 눈을 크게 떴다가 너의 어깨를 감싸왔다. 애꿏은 오빠 친구인 건 좀 슬픈데. 눈은 웃고있으면서 그리 말한 원우가 널 방 앞으로 데리고 갔다.
"쟤네 오늘 술 마신데."
"....."
"그러니까 방에 있고, 나는 안 마시니까 무슨 일 있으면 나오지 말고 불러."
"....."
"위험하잖아, 그래도 남자애들인데."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다정한 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면서도 슬프게 한다. 누구에게나 그러듯 너한테도 그러는 것이 선을 긋는 것 같아서. 그 때 고백했을 때는 이것보다는 키가 작았던 거 같은데. 대답을 기다리는 원우에게 네, 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아, 피해다녀도 좋아하는 마음은 피해지지가 않았나. 거울로 제 얼굴이 발갛게 익은 걸 본 너가 절망했다.
*
원우와 만난 건 너의 오빠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고등학교에 가서 사귄 친구인지 자주 붙어다녔었다. 항상 틱틱대고 시끄러운 오빠만 봐왔던 너는 또래의 남자애들 답지않게 조용하고 느릿느릿한 원우가 신기했다. 그리고 곧 좋아졌다. 사람이 천성이 착해서 배려심이 철철 넘쳤었다. 오빠가 귀에 면역력이 생길 지경으로 전원우는 애가 원래 배려심이 모든 곳에 박혀있는 애야. 특별해서 그러는 거 아니다. 라고 말해왔다. 그런 것 쯤은 아무리 남자친구를 사겨본 적이 없다고 해도 알 수 있었다. 근데 어쩌라는거야, 그냥 좋아지는데. 이제 와 생각하는 거지만 아마 원우는 그 때부터 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거다. 모른 척 해줬겠지, 그 배려심 때문에. 고백은 한 3년 전에 한 것 같다. 그리 좋은 고백은 아니었다. 너를 몇 주 전부터 따라다니던 남자애가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일이 많지 않을거라는 걸 알지만 아닌 건 아닌거였다. 몇 번은 좋게 좋게 받아줄 마음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막무가내로 쫓아오는 걸 보며 그 후로는 말을 곱게 하지는 않았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제 집에 가는 길을 따라오길래 뒤돌아 말을 걸었다. 사실은 그 날 시험을 망쳐서 화풀이가 섞여 있었을거다. 그에 욱한건지 골목길로 자신을 데리고 갔었다. 겁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애인데 못된 짓을 하면 어쩌지. 지금 와서 그런 일을 겪는다면 허세에 물들었다며 코웃음이라도 쳐줬을테지만 중학생 때의 너는 그러지 못했다. 다리는 진작에 떨려 후들거렸다. 버럭버럭 소리를 치는 남자애를 가만 바라보다가 손을 올리길래 눈을 꾹 감았다. 동시에 밀쳐지는 느낌이 나서 살며시 눈을 떴을 때는 원우가 너의 앞에 서있었다. 어떻게 온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뒤로 감추고는 남자애한테 말을 거는 원우의 목소리는 꽤나 숨이 차보였다.
"뭐야, 너."
"..뭐야, 시발.."
"여자애를 왜 밤 중에 따라다녀."
"......"
"그리고 뭐 잘했다고 애를 골목길로 끌고와."
"......"
"지금 그냥 가면 나도 넘어갈게."
"....씨이,"
"여자애들 그렇게 건들고 다니지마."
자신보다 키가 크고 원래 찢어진 눈매 탓인지 남자애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다. 뒤를 본 전원우는 이미 주룩주룩 눈물을 쏟고 있는 너를 보고 꽤나 당황했었다. 곧 작게 웃음을 터트린 원우가 너의 얼굴을 붙잡고 눈물을 닦아준 후 등을 토닥였다. 울지마, 잘했어.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되는거야. 너가 잘못한 거 없어. 이런 것들. 그날 엉엉 울며 말했었다. 좋아한다고, 전원우를 좋아한다고. 난감한 기색이었다. 하긴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좋다고 엉엉 울고 있으니. 너한테 중학생이 그런 고백을 했으면 너라도 거절헀을거라고 지금도 가끔 생각하긴 한다. 거절도 전원우답게 배려심으로 똘똘 뭉친 멘트로 한터라 그렇게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오빠는 너와 원우 사이의 일을 알았는지 누굴 집에 데려와도 원우와 함께 오는 일이 적어졌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땐 좀 짜증이 남과 동시에 우울했던 거 같기도 하고. 최근에서야 예전 사이처럼 다시 말을 나누게 됐는데 전원우는 하나도 변한 게 없어서 그 때 사실은 내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걸까..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회상을 마친 너가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꺼내들었다. 한참을 읽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빼꼼 문을 여니 원우가 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주 안 끼는 안경도 끼고. 왜요? 너의 물음에 원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애들이 다 취해서, 혹시 컵 어디있는지 알아?"
"아..부엌에 있는데,"
그렇게 말한 너는 아무래도 원우는 그런 걸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는 방을 나왔다. 너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원우가 웃기기도 했지만 둘만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있다는 게 신경쓰여서 곧바로 앞을 쳐다봤다. 찻장에서 어렵지 않게 컵을 꺼내들은 너가 원우에게 주기 위해 뒤를 돌다가 잠시 비틀댔다. 너보다 몇 배는 놀라보이는 원우가 급히 다가왔다. 아파? 원우의 물음에 너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래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원래 이래요. 여기, 컵. 그제서야 원우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너는 숨을 들이켰다. 풀린 눈이 너를 빤히 바라보고있었다. 자긴 안마신다더니. 중얼거린 너가 자리를 피하기 위해 걸음을 뗐다. 그와 동시에 널 붙잡은 원우가 바닥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지금은 너무 늦었지,"
"네?"
"그 때, 그냥 피하지 말 걸 그랬어."
"....."
"동생 친구라는 괜한 정의감에 사로잡히지 말 걸 그랬나봐."
"....."
"진짜 이기적이다, 나."
그렇지? 하고 웃어보이던 원우는 이내 너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오빠가, 내가 지금 좀 취해서 그래. 미안해, 그냥 흘려들어. 들어가서 자, 잘자고, 좋은 꿈 꾸고. 할말 만을 내뱉은 원우는 약간은 비틀대는 걸음으로 친구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온 너가 괜히 고이는 눈물을 훔쳐냈다. 방금 너가 들은 말이 진짜인지 구분이 안가서 볼을 꼬집어도 봤다. 전원우가 말했다. 너가 국어를 허투로 배운 게 아니라면 분명 너를 좋아한다고 돌려 말한 거 같기도 한데. 진짜 이기적인 거 맞다, 진짜..소리내어 말을 뱉은 너가 침대에 올라갔다. 이제와서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원우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거에 따라 휘둘리는 너도 별로다, 알고는 있어? 너 자신에게 물어본 너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러고나니 너의 얼굴이 빨개졌다는 게 더 실감이 나기도 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왜 이제와서 말해주는건데? 머리를 몇 번 쥐어뜯은 너가 이내 잠에 들었다.
*
전원우가 오빠 친구였으면 싶어서 쓰는 글. 이제 와서 제 마음을 알려준 원우와 어떻게 될 것인지..(두근)
댓글 남겨주면 고마울 거 같기도 하고..우선 읽어준 게 더 고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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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