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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이어서 그런지 학교 규모는 꽤 거대했다.
히로토, 큰 비상이라는 뜻의 본관과 인연을 맺다라는 뜻의 유이토 별관.
본관 앞에는 큰 정원이 꾸려져 있고 별관 뒤에는 1동 기숙사와 2동 기숙사가 마련되어 있다.
본관에는 급식실과 여러개의 반들이, 별관에는 수업 외의 다른 것들을 할 수 있는 별실들이 있었다.
처음 학교에 발을 들인 나로서는 복잡한 곳이었다. 내 앞에 앞장 서 가는 남준과 태형은 이 학교가 꽤나 익숙해보였다.
기숙사를 나와 본관 입구쪽으로 걸어가려던 찰나, 아이들의 수근거림과 함께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은 내 머리 위. 머리 위에서 하얀색 액체가 쏟아져 흘러내렸다.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큰 소란이 일렀고, 앞서 걷고 있던 남준과 태형이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일본인들은 특히 이지매가 심하다 들었는데 사실이었다.
"신고식치고는 빈약하네."
남준이 말했다. 남준의 말에 옆에 있던 태형이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부끄러웠다.
이곳 모든 아이들이 나를 보며 웃는 것 같은 기분에 주먹이 말려들어갔다.
나는 모든 아이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다.
신고식치고는 빈약하다는 남준의 말을 해석해보면, 앞으로 더한 괴롭힘이 마련되어 있을 터였다.
코가 시큰거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액체를 닦아냈다.
"가자."
내 말에 남준이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어."
남준이 다시 앞을 보고 걸음을 땠다. 나는 남준을 따라 걸었다.
내가 걷자 묘한 표정으로 태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내 옆에 붙어 걸으며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이지메 당한 적 있어?"
"아니."
"근데 어쩜 그리 태연해?"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버텨야 복수할 수 있으니까. 나는 뒷 말을 아끼기로 했다.
***
"끝까지 버티는구나."
피투성이가 된 마사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사토는 묵묵히 저 앞을 지키고 있는 코타로우를 보며 입에 고여있던 침을 뱉어냈다.
"벌써 열두 번째이지. 열두 번째 너를 보아 기쁘네."
"이런 이유로 만나는 건 반갑지 않아."
"그렇지. 너는 코묘 남학교에 제일 가는 호랑이니까."
호랑이, 코타로우는 그 말에 비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코타로우 뒤에 서있던 다른 선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선도들은 서로서로 귓속말을 하며 코타로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곧 돌아가봐야 하지 않을까."
"이정도 손 봤으면 됐잖아."
코타로우는 저의 눈치를 살피는 선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돌아가. 여긴 내가 해결하지."
코타로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도들은 부리나케 선도실을 빠져나왔다.
곧 마지막 학우까지 나가고 문이 닫히자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마사토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사토의 웃음에 코타로우의 미간이 보기좋게 찌푸려졌다.
"왜 웃는거지."
"그냥, 많이 달라져보이는 네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서."
"좋은 말할 때 말해. 오늘 이정도로 끝내지 않아."
"코타로우."
"……."
"윤기야."
코타로우가, 아니 윤기가 이를 물었다.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니."
마사토의 말에 윤기가 쥐고 있던 각목을 바닥에 내던졌다.
큰 괴음과 함께 윤기가 빠르게 마사토의 멱살을 잡아 끌어 올렸다.
이리저리 묻어난 상처와 피 때문에 마사토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사토의 강렬한 눈빛이 윤기의 심장을 들끓게 하기는 충분했다.
"지금 네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 줄은 알기나 해?"
"알지."
"근데 왜 죽으려고 발악을 해. 왜 제대로 살지를 않아!"
마사토는 자신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는 윤기를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마사토는 윤기의 손을 쉽게 내칠 수가 없었다. 그건 윤기 또한 마찬가지리라.
"그게 내가 해야할 일이다."
마사토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윤기의 손을 감싸쥐었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인데도, 윤기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