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칠, 내게 그지같은 숫자.
01.
"민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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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할 말 있는데 오늘 집 같이 가자!"
"어, 그래. 그럼 내가 끝나고 여주 너네 반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야! 우리 쌤 종례 늦어. 집 먼저 가고 있어! 내가 뛰어 갈게!"
"어떻게 그러냐, 기다리고 있을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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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민규는 최고로 다정해. 민규 쵝오.
뒤에서 나와 민규의 대화를 몰래 듣고 있던 이석민을 향해 고개를 돌려 엄지를 척! 세우며 씨익 웃었다. 이석민도 내 엄지척을 보더니 웃음을 지어주었다. 민규 얼굴을 바라보니 민규가 왜-? 라고 작게 입모양을 하며 내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금세 얼굴이 새빨개져버린 듯 했다. 민규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뭔가 쑥스러워서 나 먼저 가볼게- 라고 외치고 이석민에게로 뛰어갔다.
"흐아! 이석민! 나 너무 설레서 죽을 뻔했어! 민규가 집에 같이 가는거 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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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너 김민규한테 치대는 것도 몇 번째냐. 김민규가 그렇게 좋냐?"
"응. 완전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아."
"으휴, 미련한 놈."
사실인 걸 어떡해, 민규가 좋아 죽을 것 같은데. 민규의 수락에 기분이 좋아서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이석민은 모르겠지만 민규에게 하는 고백은 정확히, 이게 17번째이다. 민규와 이석민과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이다. 무슨 계기인지는 지금은 기억도 안나지만 어쩌다 셋이 엄청 친해지게 되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셋이서 다녔던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며 좀 소홀해진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때 함께 다니며 민규의 다정함에 푹 빠져버려서 나는 지금까지 민규를 좋아하게 되었다. 8살 때 부터, 지금 17살 때 까지. 쭈욱-.
사실 민규는 아담하고 귀여운 여자 후배부터 쭉쭉빵빵한 선배들, 예쁘장하기로 소문난 동갑 여자애들까지 주위에 널려있는 마성의 남자였기 때문에 난 항상 고백을 해도 차여왔다. 하지만! 지금은 창창한 열 일곱살의 봄이란 것이지. 열 일곱살 17번째 고백인 만큼 이번엔 기필코 성공하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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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대차게 다짐을 했건만..
내게 돌아온 답은 너무나도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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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미안해. 나 너를 여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같아. 그리고 항상 애매하게 거절한 것 같아서 너한테 더 미안하다. 나 정말로 너랑 사귈 생각 없거든. 이제 고백 같은 거 그만 해줬으면 좋겠어. 우리 그냥 계속 친구로 지내면 안 될까?"
..이런 쉬..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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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헝헝헝..ㅠㅜㅠㅠㅜ퓨ㅠㅍㅜㅠ 김민규 이 나쁜 새끼!! ㅜㅠㅜㅠㅠㅜㅜㅠㅜ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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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주! 그만 울어."
결국 난 이석민과 단 둘이 놀이터에 앉아 펑펑 울고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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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ㅜㅠㅜㅠㅜㅠㅜㅠㅠㅠㅠㅠㅠㅠ흐어어어아어ㅓㅓㅇ러ㅠㅠㅠㅠㅠㅠㅠㅠ민규야 ㅠㅠㅍ ㅜㅠㅜㅜㅜㅜㅜㅜㅠ퓨ㅠㅠㅠㅠㅠㅜㅠ 김민규 개새끼ㅠㅠㅠㅠㅠㅠㅠㅠㅜ 보고싶어ㅠㅜㅜㅜㅜㅜ 김민규 너무 단호해ㅜㅠㅜㅠ 어떻게 그래ㅜㅠㅜㅜㅠㅜㅠㅜㅜㅜㅜㅜㅜ 어떻게 그 섹시한 입술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ㅠㅠㅠ진짜ㅠㅠㅠㅜㅜ 으어허헣렁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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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김민규 그 새끼가 나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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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이석민! 너 어떻게 우리 민규를 그렇게 매도할 수있어ㅠㅠㅠㅠㅠㅠㅜㅠ 민규가 왜 나뻐!!! 민규 얼마나 스윗한데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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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민규가 나빴던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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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날 찼는데 왜 안나빠!!! 니가 그러고도 내 친구냐!! 이석민 개새끼야ㅠㅠㅜ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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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전여주 존나 짜증나... "
"흡.. 알았어.. 그만 울게... 으헝...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민규는 잘못 없어ㅠㅜㅠㅜ 내가 못나게 태어난 탓이야ㅠㅠㅠ"
(후에 물어보니 이때 이석민은 날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인정한다.) 그때 나는 제정신이 없는 거의 유체이탈과 비슷한 상태였다. 민규가 너무 다정해서 그런지, 나에게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한 적은 거의 없어서 이런 차임을 처음 당해 보아서 충격이 더 큰 듯 했다. 민규야,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니..!!
"야, 오늘은 그만하고, 이제 집에 가. 벌써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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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훌쩍.."
"아 더러워 콧물!! 야 빨리 집가서 씻고 울어! 너 얼굴 못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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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킁.. 후울쩍.."
.
.
.
집에 오니 현타 쩐다. 흑, 전에 갔던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콘서트 갔다 왔을 때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열애설이 떴을 때 보다 현타 오진다. 민규는 왜 날 찼을까- 라는 답이 뻔히 보이는 의문점을 가지고 침대 구석에 박혀 고민을 해보았다. 몇 분째 사각지대에 얼굴을 쳐박고 있다보니 이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 역시 기분 안 좋을때는 단걸 먹고! 차가운 걸로 탱탱 부운 눈을 식혀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집 앞 슈퍼로 향해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우리 집, 아파트 옆에 있는 작은 놀이터를 보니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으헝헝헝.....크흥....민규야.."
쉬팔.. 내가 먹을걸 먹으면서 울다니. 전여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릴 적 처음으로 고백한 장소였다. 이젠 내가 앉으면 부러질 것 같은 그네에 살짝 걸터 앉아 훌쩍거렸다. 그때, 계속 울어서 막혀버린 내 코를 뚫고 퀘퀘한 담배냄새가 들어왔다.
"이런... 어떤 개념없는 새끼가 놀이터에서 담배를 펴!!!"
난 민규에게 차여 정신을 놓은 듯 한 상태였고 중2병이 다시 돋아나 센척하며 담배냄새의 근원이 되는 곳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나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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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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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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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죄죄죄송합니다.. 계신 줄 몰랐어요.."
"아뇨, 옆에 사람있는데 담배 핀 제 잘못이죠. 뭐."
남자는 핀지 얼마 안된 듯한 기다란 담배 한 개비를 살짝 구겨 바닥에 떨궈 제 신발로 지졌다. 지금 워낙 깜깜하고 후드 뒤집어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꽤 잘생겼다. 계속 울다가 먹고 또 울어서 눈이 팅팅부어 평소보다 못생긴 상태의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인 듯한 비주얼이었다. 캄캄해져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놀이터 옆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고 그 남자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 남자는 민낯인 듯 했는데 너무 잘생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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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쉬팔.. 나 못생겨서 비웃은건가.
"아까부터 우는 소리 들렸는데 눈 빨개졌네요."
"아. 네.."
"차였어요?"
"네. 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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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차였어요. 3일 사귀었는데."
위로로 한 말 같았지만 위로같지 않았다. 쉬팔 왜냐면 난 존나 못생겼고 저 남자는 징하게 잘생겼으니까. 그런데도 그 남자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주저리 주저리 지 얘기를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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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얼굴 보니 어린 학생인 것 같은데 대학가면 나같은 잘생긴 오빠들 많거든요. 그 때는 그놈보다 잘난 놈이 학생한테 들이댈거에요."
"허,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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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빈말인 거 알았네. 솔직히 대학가도 나같이 잘생긴 오빠 찾기 힘들어요."
진짜 잘생겼는데 재수없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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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우울해 하지 마요. 학생. 세상의 반은 남자니깐!"
"참으로 감사합니다."
"뭘요. 고마우면 아이스크림 사던지."
"아 아니에요. 저 그만 집가야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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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럼 다음에 봐요. 안녕!"
아 네, 라고 짧게 대꾸하고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아주 신박하게 미친놈이다. 잘생겼는데 자기 잘생긴거 아는 개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나따위가 민규한테 계속 들이댄 죄인가.. 잘모르겠지만 더는 마주치지 말아야할 것이란 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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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용.. 잘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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