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03
"안녕, 후배님? 나 기억하지?"
…네, 그럼요. 기억하고말고요. 기억을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승철 선배에 나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선배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내가 어제 한 짓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러는 걸까? 근데 그건 고의가 아니었고, 또 사과까지 했는데…! 물론 도망치듯이 한 게 문제였지만. 초조함에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런 내 손을 바라보는 승철 선배의 시선이 느껴져 그것도 이내 그만두어야 했다.
"후배님. 어제 뒤풀이는 왜 안 왔어?"
…아. 뒤풀이. 내가 거기 가봤자 뭐 합니까, 특히 당신도 있는데.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거기를 갈 순 없잖아? 상식적으로…. 하지만 바보 같은 난 또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왠진 몰라도 이 사람 앞에서는 더욱더 위축되는 것 같다.
"응? 왜 안 왔어?"
"…그게."
아, 뭐라고 해. 원래도 가기 싫었지만 당신이 있어서 더더욱 가기 싫었어요! 라고 내가 어떻게 말해!!!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몰라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던 그때,
"어제 속이 안 좋아서 저한테 빠진다고 했었어요."
"…아, 그래?"
"네. 그러고 보니 안부 물어본다는 게 늦었네. 이제 괜찮아?"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정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권순영이 갑자기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 어…. 내가 대충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하자, 권순영은 씨익 웃으며 '다행이다….' 하고선 다시 에구구, 소리를 내며 책상에 털썩 엎드렸다. …지금 네가 내 걱정을 해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그나저나 타이밍 진짜 좋다. 우리 대화 내용을 듣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이렇게 권순영이 고마웠을 때가 없었던 것 같다.
"흠… 그건 그렇고. 후배님, 나 좀 봐봐."
"……."
"얼른."
왜 계속 보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보냐고…! 내가 우물쭈물거리며 눈치만 보고 있으니, 승철 선배는 '이거 봐.' 하고선 갑자기 제 팔 소매를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뭔진 몰라도 이 상황이 얼른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들고 선배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쳐다보았다. 열심히 소매를 걷어 올리던 선배는 그것을 다 올리고 나서야 내게 팔을 내밀었는데, 대체 이건 왜….
"……! 헐!!!"
"아프겠지?"
"이, 이거 저 때문에 그런 거예요?"
팔 소매를 걷어올리자 선명히도 보이는 푸른색 멍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는 나 때문에 그러냐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바보처럼 말을 더듬으며 묻자, 애석하게도 승철 선배는 나 때문에 그런 게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긴, 나 같은 거구한테 부딪혔으니 그럴 만도 하지. 어쩌면 이 정도로 그친 게 다행일 수도 있어. 뼈까지 부러졌으면… 으으, 상상하기도 싫다.
"아, 이거 어떡하지…. 많이 아프죠? 아, 정말 죄송해요. 제가 잘 보고 다녔어야 되는 건데…."
"……."
"제가 어떻게 할까요? 병원비라도 드릴까요? 아니면… 뭘 해드려야 되지…."
"……."
"진짜 죄송해요. 이거 어떡해…."
아, 진짜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의 나를 무지 때리고 싶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뛰어가다가 이런 일을 만들고 난리냐고…! 내가 쩔쩔매면서 어찌할 줄 몰라 하자 그런 나를 보던 승철 선배는 갑자기 피식 웃었다. 뭐, 뭐야. 무섭게 왜 웃고 그래….
"됐고, 후배님 이름이 뭐야?"
"ㄴ, 네?"
"이름 알려주면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고."
아니, 이름은 왜…. 갑자기 이 상황에서 내 이름을 물어오는 선배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다니까. 나는 그 말에 얼른 대답을 했다.
"김여주요. 김여주."
"김여주…. 15학번인가?"
"…네."
"15학번이라…."
"애기네."
……? 지금 뭐라는 거야. 선배랑 저랑 2살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만…? 그리고 이렇게 큰 애기 본 적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승철 선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뭐라고 되받아쳐야 될지도 몰라 가만히 있는데, 그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군 거림들.
"야. 내가 지금 잘못 들었냐? 김여주보고 애기래, 애기."
"미친-. 선배 어제 술 너무 많이 드신 거 아니야? 아직 술 덜 깨셨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아이라 누군가가 내 얘기를 한다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혼자서 상처받기 마련이었다. 분명 작은 소리였지만 내 귀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수군거림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있는데, 빌어먹게도 승철 선배 귀에는 들리지 않는 건지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욕을 먹고 있는지를. 그래, 이 선배도 똑같아. 지금 나를 놀리려고 이러는 거야. 서럽고도 불쾌한 기분에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안녕하세요-."
"그래. 다들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왜 이렇게 빈자리가 많아?"
갑자기 강의실에 들어오는 교수님에 나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입술만 꾸욱 깨물었다. 옆에서는 승철 선배가 '뭐 해? 자리에 안 앉고?' 하면서 내 팔을 잡았다. 팔에 맞닿은 선배의 손에 화들짝 놀라 거의 발작을 일으키다시피 그의 손을 뿌리치자, 선배는 '아….' 하더니 이내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아… 좀 심했나. 아니지, 내가 뭐가 심해?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말을 듣고 있는데, 순간 문득 드는 생각.
그런데 선배는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거야?
"저… 선배?"
"응?"
"왜 이 수업 듣고 계세요…?"
이 수업은 2학년 전필인데 학년으로 따지면 4학년인 선배가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거냐고요…! 나갈 타이밍을 못 찾아서 강제로 청강하게 된 건가? 그러면 그냥 수업 잘못 들어왔다고 하고 나가면 될 텐데…? 의문으로 가득 찬 내 물음에 선배는 곧 대답했다.
"나 이 수업 듣는데?"
"…에?"
"나 1학년 2학기 끝나고 바로 군대 간 거라 이거 들어야 돼."
얘도 마찬가지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정한 선배를 친절히 가리켜주며 승철 선배는 말했다. '왜.' 자신을 가리키는 승철 선배를 뭐냐는 듯이 쳐다보던 정한 선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게 입모양으로 '안녕-.' 하고 씨익 웃어주었다. 갑작스러운 선배의 인사에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긴 했지만,
…오 마이 갓. 그럼 전필 시간마다 만나는 거잖아…? 표정 관리가 잘 안 돼 아, 그러시구나… 하고 영혼 없는 웃음만 하하 내뱉고 있는데,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온 선배가 내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앞으로 자주 보겠다. 그치?"
피식 웃던 선배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려 교수님의 말씀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나는 정말 당신이랑 엮일 생각이 없습니다만…? 이런 내 속마음도 모르는지 혼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듣고 있는 선배가 괜히 야속해 나는 그냥 책상에 쿵 엎드렸다.
뭔가 굉장히 피곤한 학교생활이 될 것 같다.
"……."
*
"야, 돼지!!! 안 일어나?"
아오, 시끄러워…. 쟤는 왜 아침부터 난리야.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동생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잠을 자려 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베개를 홱 뺏어버린 그 놈은,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알바 안 가냐고!!! 늦었어!!!"
……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 동생 놈 머리에 꿀밤이라도 하나 놔줘야 되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바를 늦었다는 말에 잠이 번쩍 깬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거기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 12시 50분까진데… 지금 시간이 12시 30분이네…? 아, 미친. 지금 당장 뛰어가도 늦을까 말까 한 이 시점에서 나는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얼른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뭐야, 니 누나 아직도 안 일어난 거였어?"
"저 돼지가 그렇지, 뭐."
"씁.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우리 돼지가 날 반 만이라도 닮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저게 진짜 죽고 싶나…! 밖에서 들려오는 동생 놈의 목소리에 나는 이를 빠득 갈았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내 동생은 짜증 나게도 키는 180cm에 적당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인정하긴 싫지만 꽤나 훈훈하게 생긴 편이라 인기가 많은 놈이었다. 내가 시간만 많았더라면 진짜 저놈 한 대 때리겠는데, 알다시피 나는 지금 매우 촉박한 상황이라 나는 허겁지겁 씻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는 감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아 대충 앞머리만 감고는, 수건으로 탈탈 털면서 재빠르게 화장실에서 나와 스킨로션만 찍어 바르고선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돼지야, 잠깐!!!!"
아오, 저게 진짜 말끝마다 돼지, 돼지…!
"아, 왜!!!!"
"이거 가지고 가!!!"
동생 놈이 내게 던진 것은 제가 아끼던 초코에몽이었다. 뜬금없이 이건 왜….
"밥도 못 먹었잖아. 그거라도 마셔!"
"…야, 니가 웬일이냐?"
"대신 두 개 사와라."
그 말을 끝으로 깔깔거리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내 동생.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니가 웬일로 호의를 베푸는가 했다…. 에라이. 나는 그 자리에서 초코에몽을 원샷하고는, 몇 신가 싶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가 앞으로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보고선 미친 듯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 왜 이렇게 늦었어요?"
몸이 무거우면 빨리 움직이기라도 해야지…. 구시렁거리며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여자 알바생을 보며 나는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부터는 진짜 일찍 일어나야지. 무조건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핸드폰으로 괜히 알람만 맞추고 있는데,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알바생이 가방을 메고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
인사를 하는 도중에도 내 말은 무시하고는 휙 나가버리는 알바생. 하…. 진짜 서럽다, 서러워. 알바생이 나가고 나서 유니폼을 입는데 나에게는 너무 작기만 한 유니폼은 차마 내 몸뚱아리를 감싸주지 못했기 때문에, 지퍼를 올려 입는 다른 알바생들과는 달리 나는 그저 걸치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점장님이 편의를 봐주셔서 정말 다행이지….
나는 주말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겨울 방학 때 집에서 빈둥대지만 말고 알바 좀 하라고 닦달을 하던 엄마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긴 했지만, 면접을 보러 가면 모두 내 생김새를 보고 떨어트리곤 했었다. 어차피 떨어트릴 거, 왜 나중에 연락을 준다고 하냔 말이야. 그냥 빨리 말해주면 다른 알바를 찾아보기라도 하지…. 그렇게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여기 점장님께서는 일을 잘하게 생겼다며 아르바이트를 해도 좋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집에서 그리 먼 것도 아니고, 내 입장에서는 아주 감사한 일이었지.
원래 교대를 할 때면 다음 사람을 위해 음료수나 과자, 라면 같은 거는 다 채워주고 가기 마련인데 아까 그 알바생은 정리도 하나도 안 하고 그냥 가버렸다. 에휴…. 이거 또 정리하려면 시간 많이 잡아먹겠네. 일단 과자부터 차곡차곡 채우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어서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웬 남자 한 명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같이 인사를 해주었다. …? 뭐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 물론 내가 한 것도 형식적인 인사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인사를 하면 다들 무시하기 마련이었기에 지금 이런 반응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키는 멀대같이 큰데 꽤나 앳돼 보이는 얼굴에 내 동생과 나이가 비슷하겠구나- 하고 대충 짐작하고 있을 때, 그 남자애가 콧노래를 부르며 집어온 것은.
"……?"
"계산해주세요!"
소주 3병에 맥주 피처 하나였다. 뭐지? 얘 고딩인 줄 알았는데 고딩이 아닌 건가? 혼란스러움에 그 남자애의 얼굴을 쳐다보니 남자애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서 있었다. 뭔가 당당한 구석이 있는 걸 보니 미자는 아닌 거 같은데…. 아, 올해 갓 스무 살이 된 아이인 건가?
"죄송한데 혹시 신분증 있으세요…?"
"네!"
역시나. 그 남자애는 자기 지갑에서 자신있게 민증을 꺼내더니 내 앞으로 턱 내밀었다. 970406… 맞구만. 올해 미자 탈출한 스무 살. 나도 작년에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분명 합법적으로 성인인 게 맞았지만, 어색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죄를 짓는 기분이라 쩔쩔맸었지. 결국 그 맥주는 엄마가 마셨지만. 얘는 나와 정반대구나…. 확인됐다고 말하고 계산을 해준 뒤 봉지에 담아서 주자,
"감사합니다!!!"
아주 해맑게도 웃으면서 나가는 그 아이. …참 인사성 밝네. 아까 민증 봤을 때 이름이 뭐였더라 김…민규였나? 그 아이도 형식적인 인사였겠지만, 그래도 내게 웃으면서 인사를 해준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
"야. 그거 알아? 이번 16애들 대박인 거?"
"어. 나도 봤어. 이번에 진짜 장난 아니더라…."
"너 대면식 갈 거지?"
"당연한 거 아님? 무조건 가야지."
일주일에 이틀뿐인 주말은 쏜살같이 내게서 사라져버렸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는 이번 16애들이 대박이라며 난리가 나 있었다. 아마 개강 총회 뒤풀이 이후에는 다들 필름이 끊겼다거나, 숙취 때문에 잘 기억하지 못 했던 건지 16학번 애들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지만, 주말이 지난 지금 돌아온 학교에서는 16학번 애들의 이야기로 아주 후끈했다. 16에 누가 멋있고, 누가 귀엽고, 누가 이쁘고…. 곧 있을 대면식에 가네 마네 하며 신난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그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내가 이래서 3월이 싫다. 뭔 놈의 행사가 그리 많은 건지.
"야, 돼지! 너 그때 왜 안 왔냐?"
"…어?"
아, 저놈은 왜 월요일 아침부터 시비야. 김승민(나를 괴롭히던 동기 남자애)은 내 의자를 발로 퍽, 퍽 쳐대며 왜 안 왔냐고 묻는데,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해 죽겠다. 뒤풀이 한 번 안 간 게 뭘 그리 잘못한 거라고 다들 왜 안 왔냐고 난리야? 나는 애써 그놈을 무시하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는 모르는 척을 했다.
"야, 내 말 안 들려?"
대충 하고 그만 좀 멈춰줬으면 좋으련만, 그 애는 내 의자를 더욱 세게 발로 쳐왔다. 옆에서는 '이야- 센데?' 하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웃고 있을 뿐이었고. …이게 그렇게 웃긴 일인가? 아침부터 서러움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입술만 꽈악 깨물고 있는데,
"그만해."
"너 뭐냐?"
"아침부터 소란 피우지 말자, 우리."
"야. 권순영. 너도 그때 봤잖아, 내가 최승철 그 새끼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뭐? 최승철? 예상치도 못한 이름에 내가 그들을 쳐다보니, 김승민은 화가 난 듯 권순영에게 막 퍼붓기 시작했다.
"씨발, 솔직히 그때 나만 떠들었어? 얘도 같이 떠들었잖아!"
"그때 선배가 그 이유로 그랬던 건 아닌 거 같은데."
"뭔 소리야, 그거 밖에 없잖아! 그럼 대체 뭔데? 아주 작정하고 내 앞에 앉아서 나 죽이더만!"
야, 좋았겠다? 내가 니 덕분에 네 술까지 다 처마셨거든? 그래서 내가 다음날 학교도 못 나온 거 아니야!!! 내 책상을 발로 퍽 걷어차대며 말하는 김승민에 놀라 몸을 움찔하니,
"그만하라고 했지."
옆에 서 있던 권순영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너 지금 저 돼지 편드냐? 어?"
"여주는 그때 속이 안 좋다고 해서 빠진 거였어. 일부러 안 온 게 아니란 말이야."
"넌 그 말을 믿어? 저 돼지 말을?"
"어. 믿어."
"하, 이 새끼 봐라?"
"몸이 정말 안 좋았든, 다른 이유가 있었든 난 여주 믿어."
그리고 이제 좀 있으면 교수님 오시니까 우리 그만하자. 권순영의 말에 옆에 있던 동기들도 '그래, 그만해!' 하고 부추기니 김승민은 작게 욕을 읊조리고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권순영도 이내 자리로 돌아갔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갑자기 내 편을 들어주던 권순영. 권순영이야 뭐, 원래 동기를 잘 챙기는 애니까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 걸리는 건….
'몸이 정말 안 좋았든, 다른 이유가 있었든 난 여주 믿어.'
…역시 알고 있었구나. 어렴풋이 권순영이 알지 않을까 생각은 하면서도 정말 걱정해주고, 어디 가서도 나는 아파서 빠졌다고 말을 해주는 권순영을 보면서 '아, 쟤는 모르는 게 맞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있었던 거였어. 괜히 들켜버린 거짓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권순영이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해서.
그리고 방금 승철 선배 이야기는 뭐였을까? 선배는 왜 저 동기 놈을 그렇게 죽여놨던 걸까. 쟤가 선배한테 걸릴 일이라고는 그때 시끄럽다고 지적받은 일 밖에 없었는데, 그때 선배한테 강하게 찍혀버렸던 걸까? 그럼 나도 뒤풀이 갔으면 죽을 뻔했던 거 아니야…!
……잠깐.
'그때 선배가 그 이유로 그랬던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대체 뭐 때문에 그랬던 거지…? 아, 몰라. 모르겠어, 그냥 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뭐가 꼬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작년에는 이런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 연도에는 마라도 낀 건지, 왜 이렇게 학교 다니는 게 힘든 걸까.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와도 엮이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서 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만이 온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후배님, 안녕?"
승철이 제 자신의 앞에 앉자 승민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저 새끼는 나한테 무슨 지랄을 하려고 찾아온 걸까? 승철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학번으로 따지면 자기한테는 두 학번이나 높은 선배였기에 승민은 애써 제 표정을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 승철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제 이름은 김…."
"네 이름은 알 필요 없고."
"네?"
"후배님 술 좀 마시나?"
씨발, 이것 봐라? 처음부터 저를 무시하는 승철에 승민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술 좀 마시냐는 승철의 말에 승민은 조금 한다며 대답했다. 오, 그래? 잘 됐네. 승철은 씨익 웃으면서 새로운 소주를 까고는, 승민의 잔에다가 소주를 가득 채워주었다. 승민도 감사하다며 승철의 잔에다가 소주를 가득 채울 뿐이었고. 네가 지금 막 복학해서 뭘 모르나 본데, 내가 15애들 중에서는 거의 주량 탑이거든? 감히 겁도 없이 덤벼?
"짠, 할까?"
넌 나한테 뒤졌다.
"우으…."
여태까지 싱글벙글 웃으며 술을 마시던 승철은 제 앞의 승민이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을 확인한 뒤, 표정을 싹 바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야, 얘 좀 데리고 가라.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후배 아무한테나 말을 하자,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승민을 보고선 그 후배는 '헐, 야!!!' 하며 뛰어왔다. 미쳤나 봐, 뭔 술을 이렇게나 많이 마셨대? 제정신이 아닌 승민을 부축하고 낑낑대며 술집을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승민이 정신도 못 차리고 헤롱거리면서 질질 끌려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여간 웃긴 게 아니다. 순영과 술을 마고 있던 정한은 그런 승철을 보더니 깔깔 웃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이야- 최승철! 복학하자마자 한 명 죽이나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개뿔. 쟤 이미 정신 나갔더만."
"……."
"근데 왜 그렇게 먹인 거야?"
"…그냥."
"…좀 걸려서."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읽어주세요ㅠㅠ |
안녕하세요 차차차입니다! 제가 너무 늦게 돌아왔죠....? 8ㅅ8... 분명 시험 끝나고 돌아오겠다고 말을 해놓고선 두 달이 흐르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뵙네요... 죄송합니다. 그동안 학교에 일이 좀 많았더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도 많았고ㅠㅠ 변명이라는 거 다 알아요 그냥 죄송하다는 말뿐입니다... 저를 다들 잊으셨겠죠...? 그래도 할 말이 없네요ㅠㅠㅠㅠ 그런데 진짜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들... 너무 글은 쓰고 싶었는데 시간은 없었고... 지금은 그나마 한가해져서 이렇게 빠르게 글을 써서 올려봅니다. 연중할까도 고민 많이 해봤지만 그러기엔 제가 이걸 포기 못하겠더라구요....ㅠㅠ 정말 솔직하게 빠른 연재라고는 확답해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써보려고 해요! 기다려주신 분들 모두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ㅠㅠ... |
암호닉 독자님들♡ |
착한공님 아링님 숭늉님 얌얌님 쿱님 찬아찬거먹지마님 팝콘님 분수님 붐바스틱님 반장님 성수네 꽃밭님 감자오빠님 레인보우샤벳님 전주댁님 설레임님 호에님 세봉둥이님 눈누난나님 순영파워님 꽃내음님 17학번님 유흥님 내셉틴님 제이에스디님 세봉이님 현지짱짱님 호로록님 심장셉틴대란님
분명 암호닉 신청하시고 잊으신 분들 있을 거예요...ㅋㅋㅋㅋㅋ...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