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04
아침부터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일들은 일찍이 나를 진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고, 나는 오늘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몇 십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면 바로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자야지. 난 좀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거 같아. 긴 방학 끝에 들으려는 수업은 적응이 안돼서 그런지 몸이 배배 꼬이고 정말 죽을 맛이었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강의실을 여러 군데 옮겨 다니며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을 때였다.
[5시에 모두 전공 강의실로 모여주세요! 전원 필참입니다!]
…아놔. 이게 뭐람. 무심코 확인한 핸드폰에는 권순영이 보낸 카톡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단톡에는 다들 '네-.' 하며 대답하고 있었지만, 나는 차마 들어가서 읽지도 못하고 그저 울리는 카톡들을 보며 고민에 빠져야 했다. 왜 또 모이라는 거야,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냥 단톡에서 얘기하면 안 되나? 아, 오늘은 진짜 집에 일찍 가고 싶은데…. 어떤 변명거리를 말해야 수긍이 갈까 곰곰이 생각하다 그냥 권순영한테 개인 톡으로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몸이 정말 안 좋았든, 다른 이유가 있었든 난 여주 믿어.'
아침에 권순영이 했던 말이 떠올라 나는 이내 접어야 했다. 그래, 내가 염치도 없이 무슨 거짓말을 또 해. 아침에 나를 그렇게 믿어주고, 내 편을 들어줬던 사람인데. 그냥 앉아서 얘기만 듣다가 얼른 나와야겠다…. 에휴. 벌써부터 밀려오는 피곤함에 몸도 축 처지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전공 강의실로 가니 동기 애들은 언제 왔는지 다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되게 일찍 왔네…. 아직 다섯 시도 안 됐는데. 다들 수업이 일찍 끝났던 건가? 뭐 친구가 있어야 알든가 말든가 하지. 오늘도 어김없이 최대한 뒷자리에 앉은 나는 할 게 없어 핸드폰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곧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권순영이 들어왔다.
"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왔네! 좋아, 좋아."
권순영은 교탁 앞에 서서 강의실을 한 번 쭉 둘러보더니, 아주 흡족스럽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우리 오늘 왜 모인 거야?"
"아-. 말해줄 게 있어서."
"뭔데?"
"일단! 이번 주 목요일에 1,2학년 대면식이 있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오늘처럼 전원 참석인 거, 알지? 권순영의 말에 아이들은 좋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1,2 대면식에 안 가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 아니겠냐고 말하면서. 이번 16학번 애들이 꽤 물이 좋다는 소문은 누누이 들어왔던 터라 아이들은 빨리 목요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자기들끼리 신나있었다. 아… 나는 가기 싫은데. 투명인간 취급 당하거나,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벌써부터 느껴져오는 압박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개강을 했잖아. 새 학기가 시작된 만큼 과대, 부과대를 새로 뽑아야 돼."
"과대 네가 그대로 하는 거 아니었어?"
"음… 나는 이제 못해."
"왜?"
"사실…."
내가 이번에 부학회장 선거에 나가게 됐거든. 그 말에 애들은 다들 '에에?!' 하며 놀라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와…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권순영은 진짜 대단한 아이인 것 같다. 나와는 정반대로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씩씩한 성격을 가진 권순영은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과대 일도 되게 잘했고, 또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잘 대하곤 했었다. 나한테서 볼 수 없는 그런 모습들이었기에 그런 걸 볼 때마다 그가 부럽기도 하고, 또 멋져 보이기도 했었지.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권순영은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이 아이는 이제 과대도 모자라 부학회장 선거까지 나간단다. 나로서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과대를 할 수가 없어…."
크으…. 자신의 콧대를 잡으며 아쉽다는 듯이 코를 훌쩍이는 권순영에 동기들은 아쉽긴 개뿔, 이제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거냐며 낄낄 웃었다.
"학회장, 부학회장 선거는 같은 날에 있으니까 그것도 알아두고! 선거 다 하고 나서 1,2학년 애들은 남아서 대면식 하러 가면 돼."
"너 꼭 뽑아야 되냐?"
"당연한 거 아니냐?"
어? 태도가 건방진데? 한 남자 동기의 말에 권순영은 '에이-. 그러지 말고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하며 아부를 떨 듯 굽신거렸다. 아, 권순영은 정말 여러모로 웃긴 아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작년에 부과대였던 민하는 지금 휴학을 했어. 그래서 오늘 과대, 부과대 다 정해야 되는데 먼저 과대하고 싶은 사람 있어?"
하고 싶은 사람 손! 제 손을 들어 보이며 묻는 권순영에,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낄낄대던 동기들은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마 다들 귀찮아서 그런 거겠지. 과대가 되면 할 일이 정말 많았으니까. 조교님 심부름도 해야 되지, 무슨 행사가 있으면 절대 빠지면 안 되지, 또 동기들을 매일 통솔하고 그러려면… 어우. 생각만 해도 벌써 귀찮다.
"뭐야, 아무도 없어?"
"……."
"이지훈, 너 할래?"
권순영의 말에 모든 이목이 이지훈에게로 집중됐다. 권순영의 질문에 대한 이지훈의 답은….
"시키면 죽는다."
…그럼 그렇지. 다른 동기들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뭐야! 진짜 하고 싶은 사람 없어? 과대하면 나름 좋은 점도 많아! 권순영은 과대를 하면 좋은 점에 대해서 열심히 휘황찬란하게 말을 하지만, 그건 포장해서 말하는 것임을 다들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저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앞에서 쩔쩔매는 권순영이 이제는 불쌍할 지경이었다.
"얘들아, 우리 오늘 이거 정하고 가야 돼. 안 그러면 너네 오늘 집에 못 가!"
"아,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그러니까 빨리 정하자는 거야!"
"원우야- 네가 과대하면 안 돼?"
"……나?"
어떤 여자 동기의 말에 이번에는 모든 시선이 전원우에게로 쏠렸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지목 당한 전원우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운 건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이지훈과 권순영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었지만 이지훈은 전원우를 가볍게 무시할 뿐이었고, 그런 전원우를 바라보던 권순영은….
"그래! 네가 하면 되겠네!"
"뭐?"
"과대 좀 해주라, 원우야. 부탁한다."
매몰차게도 그 눈빛을 거절하고는 아예 전원우한테 과대 자리를 넘기고 있었다. 그것을 발단으로 동기들은 전원우의 이름을 외치며 과대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기 시작했고, 난감한 듯 제 머리를 긁적이던 전원우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내일부터 우리 과 과대는 전원우-!!!!"
"와아아아!!!!"
전원우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웃음만을 보이고 있었다. 으… 저게 뭐야. 완전 물타기잖아. 진짜 싫겠다. 원치도 않게 큰일을 떠맡아버린 전원우에 대한 동정심이 조금씩 생겨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부과대는 누가 할래?"
"나!"
"어? 진짜?"
"아니. 추천."
"누구?"
"김여주."
……? 뜬금없이 들려오는 내 이름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며 비열하게 웃고 있는 김승민, 그리고 자기들끼리 큭큭 웃어대고 있는 그의 친구들. 갑자기 호명된 내 이름에 즐겁던 분위기는 다시 찬물을 끼얹은 듯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저는- 김여주를 추천합니다!"
"……."
"부과대하면서 몸도 움직이고, 살도 좀 빼라고 이 돼지야."
김승민의 말을 끝으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 정확히 말하자면 비웃음이 맞을 거 같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당하는 조롱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수치심, 그리고 모욕감. 그것들은 정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싶다.' 라는 마음이 마구 샘솟을 정도로 쪽팔리고, 또 민망한 일이었다. 나는 화끈거려오는 얼굴에 입술만 꼬옥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김승민, 하지 마."
"왜? 나는 내 맘대로 추천도 못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여주야."
"씨발, 야."
쾅-! 소리와 함께 의자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서는 놀란 듯한 동기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나도 그 소리에 놀라 몸을 흠칫 떨었지만 겁이 많은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 했다.
"너 아까부터 느낀 건데, 왜 그렇게 김여주 싸고도는 건데? 니가 쟤 보호자라도 돼?"
"……,"
"그리고 니들도 생각해봐. 솔직히 쟤가 과 생활 제대로 하는 거 본 사람 있어? 툭하면 빠지고, 맨날 뻐기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직책이라도 줘야 뭐라도 하지 않겠냐?"
김승민의 말에 동기들은 이내 수긍하기 시작했다. '하긴… 쟤가 과 생활을 좀 안 하긴 했지?' 하면서. 점점 그를 동조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려 죽을 거 같았다.
"자, 그럼 부과대는 김여주! 박수!"
"김승민, 그만하라고!"
"야. 너나 그만해. 아까 물타기로 전원우 과대 시켜놓고 쟤는 왜 안된다고 하는 건데?"
"……."
"사람이 그렇게 앞뒤가 다르면 쓰나."
다들 박수! 김승민이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박수는 원래 축하할 때 쳐주는 거 아니었나. 박수 소리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끔찍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 깨달았다. 그들은 이제 과대, 부과대를 다 정했으니 가도 되는 거냐며 가방을 메고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고,
"야. 김여주! 내 덕분이니까 나중에 한 턱 쏴라?"
김승민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대며 강의실을 나섰다.
"아, 그래도 원우가 과대라서 부과대 하고 싶었는데. 쟤가 뭐 열심히나 하겠어?"
"근데 뭐… 김승민 말대로 쟤 참석 너무 안 하기는 했어. 누군 좋아서 매일 간 줄 알아?"
"하긴… 그리고 김승민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게- 그렇게 움직여서라도 살 좀 빼야지."
김승민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 깔깔대며 말하는 동기들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얼른 가방을 집어 들고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과 부딪히든가, 말든가. 나는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내가 가도 껴주지 않았던 게 너희고, 또 내가 가면 뒷담만 늘어놓던 게 너희였다. 나도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같이 즐기고,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너희랑 친해져보겠다고, 같이 잘 지내보자고 노력을 해봐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내가 그런 마음을 품을 수도 없을 만큼 너희가 나를 몰아냈잖아. 그래서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살겠다는데 이제는 왜… 나를 못 건드려서 안달이야. 나는 왜… 남들에게 좋은 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살아야 되는 건데. 서러움과 억울함이 복잡하게 섞여 결국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주야!!!"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권순영의 목소리에 나는 얼른 소매로 눈물을 스윽 닦았다. 큼큼! 운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괜히 목소리도 한번 가다듬고. 천천히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자, 나를 따라 달려왔던 건지 벅찬 숨을 고르던 권순영은 크게 한번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너 왜 이렇게 빨라. 숨 넘어가는 줄 알았네…."
"……."
"아까… 부과대 있잖아. 하기 싫으면 억지로 안 해도 돼. 내가 조교쌤한테 잘 말해볼게. 애들한테도 말해보고…."
"…괜찮아."
"어?"
"괜찮다고."
"…정말?"
"응."
…진짜 괜찮아? 권순영은 못 믿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부과대를 다시 뽑는다고 하면 애들은 너한테 화를 낼 거야. 또 나를 감싸준다고."
"그런 건 상관없어…!"
"아니. 내가 있어."
"……."
"괜히 나랑 엮여서 요즘에 애들이랑 자주 부딪히잖아. 나 너한테 피해 입히기 싫어. 지금까지… 나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여주야."
"그리고 내가 안 하게 되면 애들은 전보다 나를 더 심하게 욕하겠지. 그런 걸 보고 있자니 차라리 내가 1년 희생하는 게 나아."
"……."
"그래도… 끝까지 내 생각 해줘서 고마워."
나 가볼게. 권순영은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애써 그를 모른 척하고 학교를 나섰다. 권순영 앞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학교를 나서자마자 다시 흘러내렸다. 아… 진짜 이게 뭐야, 칠칠맞게. 여기서는 누가 볼까 봐 제대로 울진 못하겠고 손으로 대충 눈물을 훔치며 얼른 집에 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리는 게 느껴져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점장님' 이 세 글자가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시지…. 권순영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전화를 받았다.
"네- 점장님."
-어, 여주야. 오늘 학교 몇 시에 끝나?
"저 지금 끝났어요!"
-아 그래? 오는데 얼마나 걸려?
"한… 한 시간 정도 걸려요."
-음… 지금이 다섯시 반이니까 도착하면 여섯시 반 정도 되겠네. 혹시 그때부터 11시까지 대타 뛰어줄 수 있니?
"오늘요?"
-응. 내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가봐야 되거든…. 부탁 좀 해도 될까?
아… 오늘은 집에 일찍 못 갈 운명인가 보다….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나에게 정말 고마운 분이셨기에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오늘 알바하는 날도 아닌데….
"아니에요. 최대한 빨리 가보도록 할게요."
-그래. 고마워!
하… 진짜. 오늘 더 이상 뭘 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집에 가서 엉엉 울고 있느니 차라리 몇 시간이라도 조금 더 일을 해서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그럼! 점장님은 지금 나한테 돈 벌 기회를 더 주시는 거야. 이건 감사한 일이라고. 양손 주먹을 쥐어 보이며 나를 다독여보지만, 착잡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저 왔어요-. 내가 들어온 것을 보자마자 점장님은 정말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지 빠르게 가방을 챙기며, 내게 진짜 미안하다면서 휙 나가버리셨다. 손님이 오지 않아 텅 빈 편의점 안에서 혼자 있다보니 다시금 느껴져오는 공허함에 눈물이 또 찔끔 흘러나와 나는 휴지로 눈물을 꾹꾹 닦아냈다. 이제는 진정이 좀 될 법도 한데…. 서러움은 아직 내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나 보다. 에휴…. 우울 터져 죽을 것만 같아 괜히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고 있던 그때,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편의점에 들어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
"어?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 아, 누군가 했네. 그때 걔구나. 미자 탈출 한 애. 이름이… 뭐였더라? 민규였나?
"오늘도 일하시는 날이에요?"
"…아니요, 오늘은 대타 뛰러 온 거예요."
"아- 그렇구나."
몇 시까지 해요? 그 물음에 나는 11시까지 일을 한다고 답하니, '헐. 너무 늦게까지 하는 거 아니에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여기는 원래 일 그렇게 늦게 끝내줘요?' 하며 자기가 발끈하고 있었다. …얘는 알바 한 번도 안 해봤나. 요즘 여자들도 알바 11시까지는 다 기본으로 하는데. 그리고 나는 위협당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괜찮다. 생김새로만 보자면 내가 누군가를 위협하면 위협했지, 위협당할 상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주말에만 하시는 거죠?"
아, 뭘 그렇게 많이 물어봐….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하고 심란해 죽겠구만. 대답하기도 귀찮아 그냥 고개를 끄덕이니 민규는 알겠어요! 하고 편의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오늘도 술 사러 왔나. 저번에 술 사간 거 보니까 술 좀 마시는 거 같던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물건을 둘러보던 민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 오늘은 술 사러 온 거 아니에요!"
"아… 네."
누가 뭐랬나….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고는 핸드폰을 집어 인터넷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읏차-!"
그때 민규가 초코에몽을 무더기로 집어 와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헐, 뭐 이렇게 많이 사…? 초코에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집에 있는 동생 놈이 생각났다. 맨날 초코에몽을 입에 달고 사는 그놈.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이게 핫한가?
"이거 먹어봤어요?"
"네?"
"이거 동생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길래 생각나서 사러 온 건데."
아… 되게 자상한 형? 오빠? 인가 보다. 동생이 생각난다고 이렇게 먹을 걸 사다 주다니. 가끔 인터넷에서 올라오는 형제/자매 썰을 보면 이런 경우가 있긴 했는데, 나는 그저 자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는 절대 일어 날 수 없는 일이었거든. 나 같은 생각을 가진 리플들도 많았고. 그런데 이런 경우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할 줄이야…! 내가 만약 얘처럼 집에 있는 동생이 생각나 초코에몽을 무더기로 사다 주는 그런 행동을 한다면…? 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네? 먹어봤어요?"
"아… 그냥 엄청 달더라고요."
"맞아요. 이게 그렇게 달대요. 초코우유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흠…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민규가 이제는 좀 나가줬으면 해서 나는 얼른 그것들을 찍고는 말했다.
"9600원입니다."
"여기ㅇ…."
"……."
"……?"
"…울었어요?"
에…? 만 원을 받고 거스름돈을 주던 나는 갑자기 얘가 뭔 소리를 하는가 싶어 멍하니 있다가, 아까 휴지로 눈물을 꾹꾹 닦던 몇 분 전의 내가 생각나 아차 싶었다. 아, 눈 충혈됐겠구나. 가뜩이나 울면 바로 눈 빨개지는데. 바보같이 그걸 까먹고 멀쩡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니…! 울었다는 걸 들키자 너무 민망한 마음에 나는 얼른 봉지에 초코에몽을 담을 뿐이었다.
"이거요."
"…네?"
초코에몽을 열심히 담고 있는데, 그런 내 앞으로 우유 하나를 스윽 건네는 민규. …? 이게 뭐냐는 듯이 쳐다보자 민규는 말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왜 기분 우울할 땐 단 게 최고라고 하잖아요. 이게 초코우유 중에서도 제일 단 거랬으니까 이거 먹고 힘내요."
"아, 뭘 이런 걸… 괜찮으니까 가져가세요."
"그냥 주면 좀 받아요."
안 받으면 나 안 가. 단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민규에 이걸 진짜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머뭇거리며 갈등하고 있는데,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안 받으면 진짜 안 나갈 것처럼 생겨서 나는 감사하다며 그것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민규는 그제야 활짝 웃으면서 봉지를 제 손목에 끼우고는 힘내요! 파이팅!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아, 맞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몇 살이에요?"
"…저 21살이요."
"네?!!!"
…뭐야, 저 반응은. 내 나이를 듣고 화들짝 놀라는 민규를 보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기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걸 알고선 지금 저러는 거겠지? 얼마나 더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을까. 스물 중반… 후반 정도로 생각한 건가? 나는 솔직히 제 나이로 보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민규는,
"…뭐야. 못해도 나랑 동갑인 줄 알고 말 놓으려고 물어본 건데."
"…네?"
"아니-. 그… 저보다 누나일 줄은 몰랐다고요…. 당연히 나보다 어린 줄 알았어요. 그래서 미성년자가 알바해도 되나… 이 생각하고 있었지…."
……? 미성년자? 내가? 와. 이건 진짜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내가 미자인 줄 알았대! 늙게 본 게 아니라 어리게 본 거였어!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이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그럼 저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네? 아… 뭐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럼 이제 누나라고 부를게요. 제 이름은 민규에요! 김민규. 누나도 말 편하게 놓으세요."
응. 저번에 네 민증 봐서 네 이름은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 같아서 괜히 처음 들어본 척 그의 이름을 곱씹어 보자, 민규는 헤헤 웃으면서 물었다.
"누나 이름은 뭐예요?"
"나? 나는… 김여주."
"김여주…. 그렇구나. 여주 누나!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알바 열심히 해요! 그 말을 끝으로 민규는 생글 생글 웃으면서 편의점을 나섰다.
"안녕-!"
내게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뭐야."
퉁명스러운 말과는 다르게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생뚱맞아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또 나를 귀찮게 만들기도 하는 아이였지만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오늘 대타 뛰길 잘했네…."
서러웠던 하루도 민규를 만남으로써 다 눈 녹듯 깨끗이 씻겨 내리는 기분이었다.
*
"순영아, 너 부학회장 나간 댔지?"
"네."
"여기 승철이가 학회장 나가기로 했어."
학회실 쇼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던 정한이 말했다. 그 말에 저번에 배운 수업을 복습할 겸 다시 책을 훑어보고 있던 순영은 고개를 들었고, 제 건너편에 앉은 승철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말했다.
"아, 귀찮다니까? 그냥 네가 해!"
"뭔 소리야. 학회장은 네가 딱이야. 나는 리더십이 없어서 그런 거 못해."
진짜 싫다니까? 승철이 뭐라고 한 마디를 더 하려던 순간,
"야, 잠깐. 나 전화 왔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던 정한은 전화 받고 오겠다면서 휙 나가버렸다. 아오, 저걸 확 그냥…!
학회장을 새로 뽑아야 되는 이 시점에서, 고학번이 했으면 좋겠다는 조교쌤의 말을 들은 정한은 무턱대고 승철을 추천했었다. 승철이 그걸 보고 너 미쳤냐고 묻지만, 그저 헤헤 웃던 정한은 '조교쌤, 쌤도 승철이가 좋죠?' 하며 천진난만하게 물었고, 조교쌤도 괜찮다며 일단 승철이가 나가는 걸로 알겠다고 말하고선 자리를 떴었다. 아, 뭔 복학하자마자 임원이야. 그것도 학회장이라니… 아, 귀찮아.
"…선배."
"응?"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벌써부터 귀찮은 마음에 머리만 벅벅 긁고 있는데, 갑자기 순영이 제게 말을 걸어왔다. 승철은 정한이 매일 '순영이 너무 귀여워-.' 하고 찬양을 해대서 그의 이름과 얼굴은 알았지만 딱히 자신과는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뜬금없이 제게 물어볼 게 있단다. 뭐? 승철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순영이 말했다.
"…그때 뭐가 걸린다고 하신 거예요?"
응? 뭘 말하는 거야? 승철은 모르겠다는 식으로 묻자 순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강 총회 때요. 선배가 정한 선배랑 하는 얘기 들었었어요."
순영은 그때를 떠올렸다. 정한과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그날을. 정말 술을 사정없이 말아먹는 정한과 대작하느라 한껏 주량을 넘겨버린 순영은 여기서 필름이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정신을 단단히 잡고 있었는데,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던가.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정신을 놓을락 말락 하며 휘청이던 순간,
"이야- 최승철! 복학하자마자 한 명 죽이나요?"
뭔지는 몰라도 깔깔 웃으며 승철에게 가는 정한을 본 후 순영은 결국 테이블에 털썩-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으으… 뭐지. 누굴 죽였다는 거지. 눈만 찡그리며 문 쪽을 바라보는데 김승민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술집을 나가고 있었다. 죽였다는 사람이 쟨가…. 하. 세상이 빙글 빙글 돈다, 돌아. 옆 테이블을 바라보니 반 죽어 있는 전원우와 이미 뻗어버린 이지훈을 보면서 나라도 정신 차려서 쟤들 챙겨야지… 하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는데,
"근데 왜 그렇게 먹인 거야?"
"그냥… 좀 걸려서."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을 듣자마자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순영 또한 승철이 승민을 보내버린 이유가 단지 거슬려서라고 생각했었다. 개강 총회 때 눈치 없이 시끄럽게 굴긴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냥… 좀 걸려서.'
대체 뭐가 걸린다는 건데? 김승민이? 아니면… 김여주가? 승철의 대답을 기다리던 순영은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순영의 말을 들은 승철은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지만, 곧 입을 열었다.
멍든 제 팔을 쓰다듬으며.
"그게 왜 궁금한데?"
"네?"
"어떤 대답이 듣고 싶은 거야?"
"아니, 저는…."
"네가 물어보는 거 보니까 대충 알고 물어보는 거 같은데."
…역시 그런 거였나.
"나도 뭐 하나 물어보자."
"……?"
"넌 걔를 왜 그렇게 챙기는 거야?"
"……."
"내가 봤을 땐 단순히 동기를 챙기는 것처럼은 안 보이거든."
뭔가 다 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물어오는 승철. 그런 승철에 순영도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승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저도 좀 걸려서요."
김여주가.
*
시간은 이럴 때만 쓸데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나는 뭘 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오늘이 벌써 목요일이라는 것은, 일주일의 반이 후딱 지나갔다는 것과… 그리고 대망의 1,2 대면식이 디데이를 맞이한 날이라는 거지. 1학년 애들을 만난다고 동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차려입고 왔다. 여자 동기들은 원래도 예뻤지만 오늘은 더 예쁘게, 남자 동기들도 평소보다 더 멋있게. 김승민도 1학년 여자애들을 만난다고 머리에 왁스 칠을 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오늘도 여전히 맨투맨 티 하나에 청바지가 끝이다. 화장이라고 해봐야 똑같이 선크림에 립밤. 끝. 후…. 정말 가기 싫지만, 권순영한테 더 이상 피해를 주기가 싫어서 나는 가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부과대가 되고 난 후에 맞는 첫 행사이기도 했고. 어차피 다들 술 좀 들어가면 제정신이 아닐 테니까 1차 때 잘 버티다가 2차 때 슬쩍 빠져야지! 그래, 그러면 될 거 같다.
그전에 우리 학과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학회장, 부학회장 선거를 했었다. 권순영이 부학회장 선거에 나간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학회장 후보로 승철 선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입을 쩌억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저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었어. 학회장까지 할 정도면 우리 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고, 또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데…! 이제 진짜 엮이면 안 되겠다.
결과는 뻔했다. 학회장은 승철 선배가 되고, 부학회장은 권순영이 되었지. 다들 감사하다며, 앞으로 잘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 둘은 인사를 꾸벅 했다. 승철 선배의 얼굴에는 뭔가 귀찮음으로 가득 찬 거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뭐. 나는 이제 그대로 끝날 줄 알았더니 1,2,3,4학년 과대, 부과대들도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하란다.
"……에?!"
미친. 말도 안 돼. 내가 저기 앞에 나가서 어떻게 인사를 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가만히 앉아있는데, 전원우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뒤이어 각 학년의 과대, 부과대들이 모두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 어떡해. 진짜 어떡해야 되냐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다리만 덜덜 떨고 있던 그때,
'괜찮아.'
앞에 서 내게 입모양으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권순영을 보자 갑자기 불안함이 잦아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인사만 빨리 하고 내려오자. 고개를 푹 숙이고 앞으로 달려나가 나는 전원우 옆에 섰다. 1학년 과대부터 소개를 하는데 나는 긴장이 돼서 누가 누군지 잘 듣지도 못 했다. 단지 내 차례만이 오기만을 미친 듯이 기다리다 옆에서 전원우가 자기소개를 하는 걸 듣고, 겨우 입만 열었을 뿐.
"안녕… 하세요. 이번에 2학년 부과대를 맡은 김여주… 라고 합니다."
교수님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온갖 조롱이 나올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무난하게 박수 소리를 끝으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살짝 들어보는데, 끝에 서 있는 권순영은 내게 엄지를 척 치켜들어주었다.
'잘했어.'
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무사히 넘겼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나를 보고 있는 권순영을 향해 나도 살짝 웃었다.
"……."
1, 2 대면식은 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하기로 했다. 먼저 출발한 1학년들이 앉아서 기다린다는 소리에 동기들은 신이 난 건지 걸어가는 발걸음이 아주 가벼워 보였다.
"저기…."
동기들과 한 30m 정도 간격을 유지하면서 걷고 있었을까. 바닥만 보면서 천천히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중저음 목소리는….
"……?!!!!"
"…안녕? 인사가 좀 늦었지?"
뭐야. 전원우가 왜 내 옆에 서 있는 건데?!!! 너무 놀란 나머지 내가 경기를 일으키듯 놀래자, 전원우도 머쓱한 건지 제 뒷머리만 매만질 뿐이었다. 전원우가 나한테 말을 건 건, 정말 입학하고 나서 처음이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지훈과 전원우는 자기 사람 아니고선 말을 원체 안 하던 애들이었기에 나는 그들과 당연히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서, 뜬금없이 전원우가 왜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냐고…?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 뒤를 홱 돌아보니 우리 뒤에는 권순영과 이지훈이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맨 마지막 아니었어…? 나는 멘붕에 빠져 있는데 실실 웃으며 계속 얘기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권순영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이제부터 과대, 부과대를 하게 됐으니 서로 친하게 지낼 겸 대화 좀 나누라고 전원우를 여기에 보낸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아… 내가 못 살아.
"……."
"……."
"……."
"……저."
긴 침묵 끝에 전원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으, 응? 그에 나도 어색하게 대답을 하니 전원우는 말했다.
"…미안한데, 이름이 뭐야?"
허허…. 이젠 뭐 이런 걸로 상처받지도 않는다.
"…김여주."
"…그렇구나."
그리고 나서 또다시 찾아온 침묵. 삼겹살집이 이렇게도 멀었던가. 진짜 어색하기 그지없는 이 공간에서 나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전원우… 속으로는 지금 이 상황을 엄청 욕하고 있겠지? 권순영이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왜 나 같은 돼지랑 단둘이 걸어가야 되냐면서 말이야. 아… 빨리 식당에 들어가서 얘네랑 떨어지고 싶다. 역시 난 혼자 있는 게 편한 거 같아. 불편해 죽겠어, 아주. 최대한 빠르게 걸으며 전원우랑 좀 떨어지려고 하는데, 그런 내 행동을 보며 전원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따라 빨리 걷기 시작헀다. 아, 왜 따라와. 너는 그냥 천천히 오라고!!!!
"하…."
벌써부터 힘들다, 힘들어….
전원우와 끔찍할 정도로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식당을 들어가는데 왜 이번 16애들이 물이 좋다고 하는지 딱 알 거 같았다. 과장을 좀 보태서 광채가 난다고 해야 되나…? 분명 나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왜 이렇게 다들 뽀송하고 아기 같은 지. 괜한 자격지심에 나는 또다시 쭈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 보자. 어디에 앉아야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까. 최대한 구석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하는데 내 앞자리에 있는 16학번 여자 후배의 얼굴이 썩어가는 걸 나는 보고야 말았다. 아… 여기 앉으면 안 되겠다. 애써 못 본 척하고 다른 자리를 찾으러 고개를 돌리는데,
"……!!!!!!!"
허, 헐. 디카프리오가 왜 여기에 있어? 쟤 영어과 아니었나? 아니지, 여기 있는 거 보면 우리 과라는 얘긴데… 미친. 디카프리오 내 후배였어…? 그 아이를 보자마자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미쳤다, 이건 미친 거야. 아니, 어떻게 디카프리오가 우리 과냐고…!!!!!
"……누나?"
"……?!!!!!"
뭐야. 너는 또 왜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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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차차차입니다.... 오늘 이야기 쓰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 중간에 끊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여기까지가 딱 끊기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 쓰고.. 또 쓰다 보니 이렇게 어마무시한 분량이 나오게 됐네요 후... 짤도 찾느라 너무 힘들었고... 여러모로 힘든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저를 잊지 않아주셨다는 것과ㅠㅠㅠㅠㅠ 또 암호닉을 신청해주시는 독자분들이 많이 많이 생겨서! 쓰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기면서 썼네요 ^ㅁ^ 히히 그리고 몇몇 분들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민규는 16학번 후배가 맞았습니다!!!! 원래 다들 이렇게 만나는 거죠 뭐...ㅋㅋㅋㅋㅋ답글을 다 달고 싶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본편 올려놓고 저는 이만 사라져야겠습니다 저번 편 답글 못 받으신 독자님들 죄송해요...ㅠㅠ... 항상 여러분들 댓글을 보면서 제가 힘을 내서 씁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번 전하고 싶구요, 그리고 옆에 추천 버튼도 한 번씩 꾸욱 누르고 가주세요....♡ (소곤) ㅋㅋㅋㅋㅋㅋ 그럼 다음 편에서 우리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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