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예쁘니까.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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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누나, 맞죠?!"
헐, 대박. 누나 이 학교 다녔어요?!!! 민규는 반갑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디카프리오가 우리 과인 것도 지금 엄청나게 충격적인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세상이 아무리 좁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좁을 수도 있는 건가?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기는 해? 혼란스럽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정말 편의점에서 보던 김민규인가 싶어 나는 바보처럼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와…. 나 지금 엄청 신기한 거 알아요? 아니, 아까 2학년 부과대 소개하는데 뭔가 누나 같은 거예요! 이름도 똑같고, 정말 누난가 싶었는데 얼굴을 잘 못 봐서 긴가민가하고 있었거든요."
"……."
"근데 진짜 누나 맞았구나!!!"
아싸! 들어오자마자 아는 사람 생겼다! 무서운 선배가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다는 민규는 다행이라며 좋아했다.
"누나 학교에서 부과대도 하고… 멋있는 사람이었네!"
"……."
"누나,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나 반갑지도 않아요?"
왜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내가 지금 딱 그런 경우였다. 민규는 내게 말 좀 해보라며 재촉하고 있었지만,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혼자 네가 왜 여기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게 우선일까 하는 잡다한 생각들만 하고 있었다.
"…둘이 아는 사이야?"
그때, 내 뒤를 이어 들어오던 권순영이 물었다. 누나, 누나 하며 나를 부르는 민규를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16학번 김민규라고 합니다!"
"너 김여주 알아?"
"여주 누나 알바하는 곳에서 몇 번 만났었어요!"
"네가 여주를 어디서 만났든 간에 여기는 학교야. 선배들도 다 있는 자리에서 누나 소리 하는 거 안 좋아 보인다. 선배라고 불러."
"아…."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그 말을 하면서 민규는 머쓱하다는 듯이 웃었다. …근데 원래 권순영이 저런 애였나? 여태까지 내가 알던 권순영의 모습과는 달라 나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다. 군기 같은 거 전혀 안 잡을 스타일로 보였는데. 똥군기를 잡는다면 김승민 같은 애가 잡았겠지. 민규는 내가 반가워서 그랬을 텐데 뭣도 모르고 처음부터 권순영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괜히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뭐야? 김여주 쟤랑 아는 사이야?"
"미친, 지금 김민규가 하는 말 들었냐? 누나?"
나는 잊고 있었다. 권순영 말처럼 여기는 학교고, 이곳에서 나의 위치는 하층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인 최하층이라는 사실을. 아까는 민규를 만났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몰랐었는데 나는 어느새 모든 이들의 집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의문, 혹은 아니꼬움. 현실을 직시하게 되자 나는 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고 얼른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선배님, 저랑 같이 술 마셔요!"
"…….""
"민규야- 우리랑 같이 마시자!"
아무것도 모르고 내 팔을 이끌며 같이 술을 마시자던 민규에게 여자 동기 두 명이 다가왔다. 당황한 민규가 네? 하고 묻자 그 여자 동기 둘은 다른 선배들도 소개해주겠다면서 민규에게 팔짱을 끼며 그를 데려갔다. 그들과 가면서 민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못 본 척 무시했다. 그냥 가, 민규야. 그게 너한테도, 나한테도 모두 좋은 일일 거야.
"…저, 여주야?"
"…응?"
"우리는 저쪽 테이블로 가야 돼."
이것밖에 안되는 내 자신이 한심해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데, 언제 온 건지 내 어깨를 톡, 톡 치던 전원우는 한 테이블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조교쌤과 권순영, 그리고 누군지 모를 1학년 남자애 한 명과 여자애 한 명이 앉아있었다. 그들을 보자니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저긴 임원들의 자리구나. 저 1학년 애들이 내가 간다고 싫어하는 건 아닐까…? 내가 망설이는 걸 알아챈 건지 전원우는,
"가자."
하고 웃어주었다.
…물론 그 웃음에는 어색함이 많이 묻어있었지만.
*
후우… 나 지금 떨고 있니? 나는 지금 대학 들어와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짠- 하고 술잔이 부딪히면,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소주를 마시는데 처음 먹어보는 소주는 진짜 상상 이상으로, 최악이었다. 이런 걸 대체 왜 마시는 거야? 입에 들어가자마자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혀끝을 맴도는 쓴맛. 알코올을 목구멍에 들이부으면 이런 느낌일까. 한 잔을 마시고 난 후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맛없어.
"아까 다들 봐서 알겠지만, 서로 잘 지내고. 임원들끼리 자주 봐야 될 테니까."
"네-!"
조교쌤의 말씀에 다들 우렁차게 대답은 했다만… 미안한데, 나 너희 이름 몰라…. 아까 앞에 나가서 소개할 때 땅만 쳐다보고 가슴만 졸이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이름을 듣지도, 얼굴을 보지도 못 했다.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는 권순영, 전원우가 끝이지…. 1학년 과대라는 남자애는 대학 들어온 게 아직도 꿈같다며 좋아하고 있었고, 부과대인 여자애도 그냥 간간이 웃으며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여자애 진짜 이쁘다…. 피부는 하얗고 긴 생머리에 청순하게 생겨서 인기가 엄청 많게 생긴 얼굴이었다.
"자- 여러분들! 이제 신입생 소개 한 번 들어봐야겠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될 때쯤, 자리에서 일어난 권순영이 소리쳤다. 그 말에 동기들은 환호를 하고 있었고, 1학년 애들은 떨려서 어떡하냐며 자기들끼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도 작년에 저럴 때가 있었지…. 뭐, 내가 소개했을 때는 다들 무난하게 박수만 쳐주고 끝이 났었지만, 사람 느낌이란 게 있지 않나. 그냥 무관심과도 가까운 형식적인 인사치레. 그리고 나의 직감대로 나는 그다음부터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아싸가 되어버렸고.
"그럼 과대부터 시작할까?"
권순영의 말에 내 앞에 앉아 있던 남자애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아이가 일어서자 터져나오는 함성소리. 그때 나는 딱, 느꼈지.
아, 얘가 이번 16학번 스타구나.
"안녕하세요~ 이번 16학번 과대를 맡은 부! 승! 관! 이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선배님들을 위해 제가 노래 한 곡 뽑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시작하는 승관이. 와… 쟤 저런 애였어? 현란하게 발을 움직이면서 장기자랑을 하고 있는 승관이를 보며 사람들은 깔깔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웃기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떨지도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이상한 행사톤으로 말하더니 승관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로 돌아오자 조교쌤이랑 권순영, 전원우는 너 이런 애였냐고 웃으면서 승관이의 등을 한 번씩 때리고 있었다. 승관이는 막상 하고 나니 부끄러운 건지 손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하며 제 얼굴을 식히고 있었고. 부과대인 여자애는 네가 앞에서 그렇게 하고 오면 나는 어떡하냐며 울상을 지었지만, 그걸 본 순영이는 괜찮다며 그 여자아이를 다독여주었다.
"다음은, 부과대!!!!"
여자아이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그 여자아이가 센터에 서자 확연하게 들려오는 남자 동기들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이번 16학번 부과대를 맡은 이혜지입니다!"
흡사 군대에 걸그룹이 위문공연을 왔다면 이런 느낌일까. 정말 식당이 떠내려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 동기들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승민은 손까지 흔들어대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남자 동기들이 왜 이러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왜냐하면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 아이는 엄청 예뻤거든. 얼굴로만 따지자면 16학번 여자 원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저…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도 한 곡 뽑아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혜지는 낭만고양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많이 떨리는지 목소리가 간간이 떨려오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동기들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번 16학번 애들은 다들 대단하네…. 자신감에 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현실. 하아… 왜 이렇게 씁쓸한 건지 모르겠다.
권순영은 과대, 부과대 소개를 끝으로 이제 이름순으로 신입생 소개를 시작해보겠다며 차례대로 나오라고 말했다. ㄱ 성을 가진 아이들부터 앞에서 벌벌 떨며 소개를 시작하는데,
"안녕하세요! 16학번 김민규입니다!"
그때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니 민규가 생글생글 웃으며 서 있었다.
"키가 굉장히 커 보이는데, 몇 cm입니까?!"
"186cm입니다!!!"
여자 동기들은 멋있다며 소리를 질렀고, 남자 동기들은 재수 없으니 꺼지라며 야유를 보냈다. 물론 다 장난이었겠지만. 민규가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꾸벅 하자 그 누구 때보다도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역시… 쟤도 이번 16학번 스타구나. 솔직히 얼굴 잘생겼지, 키도 크지. 딱 봐도 인기가 많게 생겼다는 걸 나는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는 민규. 나도 동기들을 따라 같이 박수를 치다가…
"……!"
민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보같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왜 쳐다보고 그래, 사람 놀라게….
그 뒤로 신입생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간간이 소개를 하다가 아까 승관이나 혜지, 민규처럼 거하게 박수를 받았던 애가 있었는데,
"안녕하세요-!! 16학번 이석민입니다!!! 선배님들께 인! 사! 드립니다!!!!"
식당이 떠내려갈 듯이 인사를 쩌렁쩌렁하게 하던 석민이라는 아이. 웃는 것도 제법 호탕해 보이고, 키도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게 그도 인기가 많을 타입이었다. 취미가 노래라던 그 아이는 아까 승관이처럼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고, 15 애들은 그걸 보면서 쟤 재밌는 거 같다며 좋아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부승관과 이석민은 깝치긴 되게 잘 깝치지만 사람이 짜증 나지 않게 깝친다며 선배들 사이에서 꽤나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16학번.
"안녕하세요. 16학번 최한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디카프리오의 등장에 사람들은 잘생겼다며 다들 소리를 질렀다. 와… 진짜 연예인을 코앞에서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내가 살면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정말 처음 보는 것 같다. 한솔이… 이름도 예쁘네. 한참 그의 얼굴만 멍 때리고 쳐다보고 있는데, 그에게 쏟아지는 수십 가지의 질문들.
"혼혈입니까?"
"네. 아버지는 한국분이시고, 어머니는 미국분이십니다."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그런 질문이 부끄러운 건지 살포시 웃으며 말하는 한솔이. 그에 여자 동기들을 벌써부터 쟤 내가 찜했네 마네 하며 서로 싸우고 있었다. 물론 나도 여자친구가 없다는 말에 잠시 환호를 하다가도, 나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다시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충 보니까 머지않아 여자친구 생길 거 같은데… 나 같은 건 꿈도 못 꾸지. 괜히 울적한 마음에 손은 저절로 소주잔을 집었고, 곧 그걸 입에 털어 넣었다. 웩.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맛이다.
신입생 소개도 다 끝나고, 나는 여전히 불편한 이 자리에서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씩 권순영은 나를 보며 어지러우면 술 그만 마셔도 된다고, 무리해서 마시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챙겨주었지만 나는 여태까지 소주 두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걸…? 벌써 세 병째 술을 까고 있는 권순영이 나를 걱정해줄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생각해주는 건 얘 밖에 없는 거 같다, 고맙게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지만, 온 신경은 한솔이가 있는 테이블로 쏠려 있었다. 여자 동기들 사이에 둘러싸여 술을 마시고 있는 한솔이. 나도 저기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쉬운 대로 무슨 말이나 하는지 들어나 봐야지. 귀를 쫑긋 세우고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사실 처음에 봤을 때는 한국말 못할 줄 알았어."
"저 한국 온 지 이제 10년 정도 돼서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편해요."
"그런데 국문과에는 왜 온 거야?"
"제가 생긴 건 영어 좋아하게 생겨도, 문학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별명도 문학 왕자였어요. 맨날 시랑 소설책 같은 것만 읽고 다녀서. 그 말에 여자 동기들은 의외라며 신기해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오… 문학을 되게 좋아했구나.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이 학교 국문과에 온 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순영아, 잠깐만."
술을 마시다가 울리는 핸드폰에 그것을 확인하던 조교쌤은, 권순영에게 잠깐 나가자며 손짓했다. 권순영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교쌤을 따라 일어섰고,
"원우야. 네가 애들 좀 통솔하고 있어줘."
이 말을 하고선 식당을 나갔다. 잠깐… 조교쌤과 권순영이 없다는 건 전원우랑 내가 애들을 다 맡아야 된다는 얘긴데…?! 아, 난 진짜 아닌 거 같아. 나는 이런 걸 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나는 그저 아무런 문제없이 다들 순탄하게, 대면식을 즐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도 내 간절한 염원 덕분인지 조교쌤과 권순영이 나가서도 아이들은 잘 놀고 있었고, 그렇게 분위기는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서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는걸,
그 중요한 걸 나는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야, 부과대!!!!!!!"
떠들썩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우렁차게 솟구치는 김승민의 목소리. '부과대.' 이 말에 나의 어깨는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혜지는 술을 마시다가 네!!! 하면서 일어났고, 그런 혜지를 보던 김승민은 너 부른 거 아니라며,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다시 말했다.
"우리 부과대님!!!!!"
"……."
"가만히 앉아서 뭐 하십니까. 애들 술 좀 날라주고, 음식도 좀 날라주고 해야지!"
뭐야, 저 새끼 취했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가지고 눈은 풀려서 내게 말을 하고 있는 김승민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술도 먹었겠다, 오늘이라면 충분히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 몸도 덜덜 떨려왔다.
"야, 내 말 안 들리냐?!!!"
"승민아, 취했다."
……? 한껏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내 옆에 앉아있던 전원우가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의외의 인물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는데, 김승민은 그런 전원우가 아니꼬운 건지 전원우를 노려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 약간 미친 것도 같아서 김승민이 너무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다.
"아… 진짜. 권순영에 이어서 이제 너냐…?"
"……."
"씨발. 평소엔 말 한 번 안 해 본 주제에 이제 서로 임원 됐다고 챙겨주냐? 어?!"
"그만해."
"뭘 그만해, 씨발. 내가 뭘 했다고 맨날 그만하래!!!!"
테이블을 발로 퍽 걷어차면서 씩씩대는 김승민을 보고 있자니 진짜 뭔 일이라도 치를 거 같아 나는 전원우에게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터질 것만 같은 심장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김승민은 손뼉을 치며 깔깔 웃어댔다.
"이제 일어나십니까, 부과대님?!"
"……."
"여기 술 두 병만 좀 가져와봐…. 술이 없어."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지만,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냉장고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를 지켜보던 종업원은 안절부절못하며 자기가 가져다주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처음처럼 두 병을 들고 그의 테이블 위에다가 턱, 올려놓고는 다시 자리에 가서 앉는데,
"……씨발, 누가 처음처럼 가져오래. 참이슬을 가져와야지!!!!"
미친놈이 저러면서 술병 하나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챙그랑- 소리와 함께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여자 동기들 사이에선 비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보다 못한 전원우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김승민의 친구들도 그런 그의 행동에 당황을 한 건지 하지 말라며 옆에서 말리긴 했지만,
"돼지 같은 년이. 눈에도 살쪘냐? 여기 지금 참이슬밖에 없는 거 안 보여?!!!"
"아,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존나 취했어, 그만해!!!!"
"이거 놓으라고!!!!"
김승민은 더욱 폭주할 뿐이었다. 상황이 꽤나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서 그의 친구들은 그를 억지로 끌고 나갔고, 김승민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아…. 지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깨진 술병이라도 치워야겠다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 조각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사실 이거라도 해야 내가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 다쳐. 내가 치울게."
……. 눈물을 꾸욱 참고 휴지로 유리조각을 줍는 전원우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
"……."
"……."
하필이면.
하필이면 나를 쳐다보고 있는 민규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나를 향하고 있는 수 십 개의 눈동자들. 그중에서는 한솔이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놀란 표정으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나는 도망치듯이 식당을 뛰쳐나왔다. 어디로 가야 되지? 어디로 가야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내 눈에 들어온 옆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계단에 앉아 여태껏 쌓아왔던 서러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으, 흐윽! 흐으으윽…!"
벅차오르는 감정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온갖 참았던 감정들이 폭발하듯 나는 그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민규가 나를 어떻게 봤을까. 정말 하찮게 봤겠지? 아, 저 사람은 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이제 나를 모른 척하겠지, 분명 피할 거야. 나에게 보여줬던 그 친절한 미소들도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 한솔이도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똑같이 생각하겠지?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깨닫는 건 정말 뼈저리도록 아픈 일이다. 가슴이 꽉 막힌 기분에 나는 가슴팍만 내리치며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 내가 못생기고, 뚱뚱한 게 그렇게 죄인 걸까? 단지 겉모습이 그럴 뿐이지,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나에 대해 정확히 보지도 않고 왜 다들 겉모습만 보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거기서 그치는 걸까….
*
"누나…!"
자신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 황급히 나가는 여주를 보며 민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지를 한 움큼 집어 들고 그를 따라나서려던 민규는,
"…지훈아, 이것 좀 치우고 있어줘."
"어… 그래."
왜인지는 몰라도 식당을 나서는 원우를 보며 차마 움직이지 못 했다.
*
……성형하고 예뻐지면 다 끝나려나? 살이야 몇 년 동안 열심히 찐 거 한 번에는 안 빠질 거고… 살을 빼도 문제는 얼굴인데. 성형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려나…? 우리 집 형편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부모님이 시켜줄 거 같지도 않고. 하….
그냥 죽을까….
"……여주야."
엉엉 소리 내어 울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전원우의 목소리에 놀라 숨을 흡 들이켰다. 뭐야, 여긴 왜 온 거야…. 가뜩이나 초라하고 궁상맞은 내 모습에 얼른 손으로 눈물을 훔쳐보지만, 코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날 뿐이었다. 그런 나를 아무런 말도 없이 쳐다보던 전원우는…,
"……미안해."
내 옆에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놓아주고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 휴지를 보고 있자니 괜히 또 울컥해 나는 다시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우리 과에서 권순영 다음으로 내 편을 들어준 건 네가 처음인데. 말도 오늘 처음 텄지만, 아무리 어색한 우리였지만 그래도 아까 그곳에서 김승민을 막아준 건 너밖에 없었던 말이야….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네가 왜 미안해….
나는 그 휴지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고마움에, 또 서러움에.
*
오늘은 진지하게 자체휴강을 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제 눈이 팅팅 부어 집에 들어온 나를 보고 놀라던 엄마 때문에 나는 힘겨운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했다. 오늘 학교에 안 간다면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엄마가 분명 알아차릴 테니까. 그래서 아침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집에서 나오긴 했지만… 아, 진짜 죽을 거 같다. 학교 못 가겠어.
매주 금요일 2교시에는 교양 수업이 있었다. 그래서 동기들을 아침부터 안 봐도 됐었는데,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웃겼다. 어제의 일이 내게 너무 충격이었던 건지 속도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파지길래 나는 그냥 책상에 엎드렸다. 이대로 자고 싶은데 그러면 교수님한테 찍히겠지….
"여주 씨!"
……? 뭐야.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갑자기 들리는 내 이름에 놀라 벌떡 일어나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아, 맞아. 이 사람이 있었지. 이름이 뭐랬더라. 홍지수였나? 일주일 만에 만나는 거여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맞겠지, 뭐. 나는 그냥 떨떠름하게 네… 하고 대답을 한 뒤 시선을 피했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는 이 남자. 아, 그냥 다른 데 가서 앉지. 불편한데.
"여주 씨네 과는 대면식 했어요? 우리는 오늘인데."
'대면식.' 그 단어에 어제 있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잊으려고, 신경 좀 안 써보려고 애써 꾹꾹 참아내고 있는데 당신이 왜 그때 일을 다시 끄집어내게 만드는 거야. 내가 대답이 없자 홍지수는, '여주 씨? 내 말 들었어요?' 하고 되물어왔다.
"오늘 신입생들 처음 만나는 건데 내가 괜히 다 떨리네요. 선배가 돼가지고."
"……."
"어색할 거 같기도 하고…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
"여주 씨는 대면식 언제 해요?"
그놈의 대면식, 대면식!!!! 나는 그놈의 대면식이 아주 최악이었단 말이야!!! 선배가 돼가지고 후배들한테 쪽팔림이나 당하고, 재미 하나도 없었다고!!!
"…저기요."
"네."
"죄송한데 그만 좀 물어보시면 안 돼요?"
"……네?"
"저는 대답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그만 좀 물어보시라고요."
"……."
"그리고 또 죄송한 말이지만, 다른 데 앉으시면 안 돼요? 그쪽이랑 같이 앉는 거 좀 불편해서요."
아…. 내 말에 홍지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요. 불편해할 줄은 몰랐어요."
"……."
"정말 미안해요."
그 말을 끝으로 가방을 챙겨 한 칸 앞으로 자리를 옮기는 홍지수. 말을 다 내뱉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누구한테 화풀이를 한 거야…. 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순수하게 물어본 걸 텐데. 그리고 김여주. 너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니…? 아까는 욱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온 말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왜 이렇게 저 사람한테 미안한 건지 모르겠다.
됐어. 어차피 이번 학기만 지나면 저 사람 앞으로는 안 만날 텐데, 뭐. 과도 다르니까 그냥 이렇게 모른 척하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그리고 애초에 내가 저 사람하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 그래, 괜찮아. 정말 괜찮아.
"…저기요."
아놔…. 결국에는 신경이 쓰여 수업을 하나도 듣지 못 했다. 정말 이기적이게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수천 번 생각해봐도 어쨌든 이건 내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 이대로 넘어가면 교양 수업을 들으러 올 때마다 저 사람이 신경 쓰여 아무 것도 못할 거 같았다. 그래, 사과하자. 그다음부터 만나든, 안 만나든 일단 사과는 하자. 그래서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문을 나서려는 그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나를 보고 놀란 건지 홍지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사실 제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상태였거든요."
"……."
"무례하게 굴었던 점, 사과드리고 싶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으… 진짜 김여주. 잘 하는 짓이다. 그 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음… 여주 씨. 다음 수업 언제 있어요?"
"…네?"
"바로 수업 없으면 잠깐 시간 좀 내줄래요?"
ㅇ, 왜…? 때리는 건 아니겠지. 대체 시간을 왜 내달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환히 웃으며 말하는 홍지수를 보면서 나는 정말 때리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
"여주 씨, 뭐 마실래요?"
"네? 아… 저는…."
홍지수가 나를 데려온 곳은 학교 안에 있는 카페였다. 나 카페에 남자랑 오는 거 처음인데…!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닐까, 혹은 누군가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싶어 몸만 움츠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행히도 우리한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홍지수는 내게 뭐를 마실 거냐고 물어봤는데, 여기서 내가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먹는다고 하면 돼지 같은 게 뭘 그런 걸 먹냐고 생각할까 봐 나는 그냥 아메리카노를 먹는다고 말했다.
"제가 주문할게요. 앉아있으세요."
"네? 저 돈은 내야죠."
"아니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왜요?"
"그냥 사드리고 싶어서."
에이… 그게 무슨 민폐예요! 나는 됐다는 식으로 지갑을 여는데,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제 대면식 회비로 쓴 현금이 내 지갑 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돈이었다는 사실을. 헐, 미친. 안돼. 카드, 카드를 어디다 뒀더라? 아침에 버스 타고 어디다 뒀지? 급한 마음에 지갑을 이리저리 뒤져보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던 홍지수는,
"다음에 사주세요, 다음에. 오늘은 내가 사고."
라며 자신이 계산하기 시작했다. 카드… 찾으면 있을 거 같은데…. 내가 하는 짓이 그렇지, 뭐. 나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니 홍지수는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주문을 끝낸 건지 진동벨을 들고 오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 카페까지 와서 이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해야 되는 거지…? 솔직히 아는 거라고는 이름하고 학과 밖에 없잖아?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얘기를 하자고 한 걸까?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이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그와 둘이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어색해 몇 분 후 우렁차게 울리는 진동벨을 들고서 나는,
"제가 가지고 올게요!!!!"
하고 바로 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 어떡해. 미쳤어. 그냥 사과하지 말걸 그랬나? 아니지. 사과는 해야 되는 거였고… 아, 그냥 수업 있다고 할걸!!! 커피를 들고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나 천근만근 무거운 줄은 몰랐다. 되도록이면 천천히 가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빨리 도착한 테이블에 그에게 커피 하나를 건네니, 여전히 'Thank you.' 하며 웃어주는 이 남자. 이 남자는 나한테 왜 이렇게 친절한 걸까…?
"제가 왜 여주 씨한테 시간 내달라고 했는지, 궁금하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홍지수가 내게 물었다. 네, 궁금해 아주 미치겠어요. 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홍지수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여주 씨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내가 아는 사람이랑 되게 닮았거든요."
"……?"
"외국에 있던, 내가 가장 친했던 친구랑."
…? 누군진 몰라도 나를 닮은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커피를 홀짝 마셨다. 우웩. 맞다, 이거 아메리카노였지. 젠장. 씁쓸한 맛에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나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홍지수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외국으로 발령 받으면서 저는 이른 나이에 외국으로 떠나야만 했어요. 말은 통하지 않고, 우리나라 문화와는 전혀 다른 그곳에서 저는 작아질 뿐이었죠."
"……."
"갓 입학한 학교에서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저를 비하하고, 또 따돌림도 시켰어요. 심할 때는 얼굴에 침까지 뱉었고요."
아니, 뭐 그런…! 괜히 내가 화가 나 발끈하자 홍지수는 그저 웃었다. 그리고 다시 회상을 하듯, 말을 담담하게 이어갔고.
"하루는 울면서 돌아가고 싶다고 부모님한테 떼를 썼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포기해야만 했죠. 내가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 그때 도와준 친구가 있었어요."
"……."
"Alyssa, 앨리사라는 친구였죠."
"……."
"그 친구는 저를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 때는 그러지 말라며 대신 나서주기도 하고, 또 힘내라며 언제나 나를 응원해줬고요."
"……."
"앨리사가 없었다면 저는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에게 그 친구는 아주 소중한 친구죠. 아버지가 다시 한국으로 발령 받으면서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됐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연락은 잘 하고 있으니까, 그걸로 위안 삼고 있어요."
"아…."
"그렇게 대학에 왔는데, 앨리사랑 정말 닮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게 여주 씨였어요."
전혀 아닌 거 같은데… 그 사람과 내가 생긴 게 닮았다 하더라도, 앨리사라는 사람과 나는 마인드 자체가 아예 다른 걸…? 항상 나 자신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하고, 숨기 바빴던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은 힘든 당신을 도와주고… 또 용감하게 나서주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여주 씨랑 친해지고 싶어서 말 걸고 그랬던 거예요."
"아… 네."
"근데 그게 기분이 나쁘실 줄은 몰랐지만요."
……죄송합니다. 내가 다시 사죄를 하듯 고개를 푹 숙이자 홍지수는 장난이라며,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웃었다. 이제 홍지수가 왜 내게 그렇게 말을 걸었는지는 잘 알겠다. 이해도 되고. 하지만 나는 정말 그 사람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괜히 더 실망하지 않을까. 타지에서 그렇게 친했던 사람과 닮은 사람을 만났는데 막상 알고 보니 정말 별로라고….
"…여주 씨."
"네…?"
"여주 씨를 보면 제가 외국 생활을 했었을 때가 떠올라요."
항상 웅크리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 피해 다녔던 그때가요.
"……!"
" 괜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요?"
내가 감히 이 사람에게 '나' 에 대해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만난 지 두 번 밖에 안된 사람한테 나에 대해 모든 걸 털어놓아도 되는 걸까? 타과 사람이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말을 하고 다녀서 나중에 이 이야기가 다 퍼져 우리 과 사람들이 나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지…? 나는 과도한 피해 망상을 하며 혼란 속에 빠졌지만…,
머릿속으로는 아무리 피해 망상을 하고 있어도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가끔 느껴져 오는 촉에 결과를 의존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지금 그 촉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걸 말해도 괜찮을 거 같다고….
"…그게, 사실은…!"
…그때부터 나는 울면서 말을 하느라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대충 기억이 남는 거라고는 동기들의 심한 따돌림, 괴롭힘, 그리고 어제 대면식 때 있었던 일 이 정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엉엉 우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었다. 그런 내가 부끄러웠을 법도 한데 홍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시선을 맞추며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가끔 울지 말라고 휴지를 건네주면서.
"이제 진정 좀 됐어요?"
"…네. 제가 너무 울었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래도 한번 훌훌 털어놓으니까 속 시원하지 않아요?"
…네, 조금. 홍지수 말처럼 속이 시원하기는 했다. 누구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사람들이 외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긴 하죠. 사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여기, 마음인데 말이에요."
"……."
"모든 사람이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거 알아요. 세상이 꼭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요."
"……."
"But, Forget about what everyone else thinks and says."
(하지만, 남들이 뭐라 말하고 생각하든 그냥 잊어버려요.)
"GO FOR IT."
(멈추지 말고 계속 앞으로 가요.)
"…아."
"그리고 여주 씨, 주변을 한 번 둘러봐요."
"……."
"여주 씨를 진심으로 봐주는, 그런 사람이 꼭 있을 테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떨리는 내 목소리에 홍지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한테는 앨리사가 있었던 것처럼, 여주 씨도 분명 있을 거예요."
"……."
"내 말 한 번 믿어봐요."
'일단 내가 있잖아요?' …라고. 그 말을 끝으로 그 어떤 때보다도 환하게 웃어주는 홍지수. 그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위로를 받는 기분에 나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지만, 어느새 입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내게 그런 말을 해줘서 정말, 정말로 고맙다고.
*
살면서 이렇게 위로를 받아본 건 얼마 만이었을까. 이제는 홍지수에 대해 마음을 완전히 열어버린 나는 그가 전혀 부담되지도, 또 불편하지도 않았다. 다음 전필 수업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내가 먼저 일어나야 했지만, 홍지수는 헤어지기 전에 내 핸드폰에 제 번호를 찍어주고는 힘든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연락하라고 말을 하고선 내게 인사했다. 핸드폰에는 그저 그의 번호가 있을 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든든하고, 또 행복한 건지. 얼른 다음 주가 되어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전공 강의실 앞에서 나는 손잡이를 잡고 잠시 망설였다. 하필 오늘 들은 게 전필이라 어제 만났던 동기들은 이 문 너머로 모두,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후우… 그래, 괜찮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아.
문을 열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개의치 않으려고 했다.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아직 5분 정도가 남아 나는 노래나 들으면서 차라리 귀를 막아버리자고 생각하고선 이어폰을 찾아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을 때였다.
"……무슨 일 있어?"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 차차차입니다!!! 요즘 저를 되게 자주 보는 거 같죠....?ㅋㅋㅋㅋㅋㅋ 이거 너무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여... 하핳... 제가 이렇게 금방 금방 찾아오는 이유는 제가 공백기가 길었기도 하고ㅠㅠㅠㅠㅠ 기다려주셨던 독자님들에게 보답하고자! 지금 나름 한가할 때 부리나케 쓰고 있는 중입니다...ㅎㅎ... 저 잘했죠? ^ㅁ^ㅋㅋㅋㅋ 항상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ㅠㅠ 독자님들은 모르시겠지만 인티에 들어왔을 때 댓글 달려있으면 그 댓글을 몇 번씩이나 다시 읽어본다구요! (부끄) 그리고 제가 무려!!!! 추천 수 10을 찍었습니다!!!!!ㅠㅠㅠㅠㅠㅠ 이것도 다 독자님들 덕분이지요...♡ 히히 감사합니당
그리고 지수가 한 대사들은 제가 여러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었어요..ㅎㅎㅎ... 감히 제가 뭐라고 여러분들께 이런 말을 하나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댓글을 볼 때면 여주와 비슷한 상황에 울컥한다는 글을 많이 봤었거든요. 제가 확실하게 말해드릴게요.
독자님들은 모두 예쁘고!!!!! 훌륭한 사람이니까 항상 자존감을 높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자신감 만땅으로 살기에요, 우리!!!!!!♡
새로운 인물이 많이 나온 만큼 중간 점검 한번 할게요!
최승철, 윤정한 - 13학번 복학생입니다( ☞ ͡° ͜ʖ ͡°) ☞
권순영, 이지훈, 전원우 - 15학번 동기입니다! 이제는 부학회장이 된 수녕이와... 과대가 된 원우...
홍지수 - 착한 교양남입니다ㅎㅎㅎ 아 지수 너무 좋네요
부승관, 이석민, 김민규, 최한솔 - 이번 16학번 스타들입니다! 새내기로 이 네 명이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세븐틴 멤버는 아니지만!
김승민 - 원래 이름도 부여하지 않았던 놈입니다.... (원래 불리던 이름 : 동기 남자애ㅋ) 그런데 이름을 줘야겠더라고요 이놈이 자주 나올 거 같으니까....☆ 댓글들 보면 항상 승민이 ㅂㄷㅂㄷ 이런 글이 많던뎈ㅋㅋㅋㅋㅋ 저도 쓰면서도 참... 네... 그렇네요... 오늘 좀 더 심했죠...? 쓰면서 좀 고칠까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김승민이란 이런 놈이다, 라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 속 김승민이라는 인물은 단지 허구의 인물이라는 거 다들 아시죠?!!!!! 혹시 모를 전국에 계신 김승민 님께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ㅠㅠㅠㅠㅠㅠㅠ
이혜지 - 1학년 부과대입니다! 따지자면 위의 네 명과 같이 이번 16학번 스타죠 얼굴이 예쁘니까요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 우리 또 만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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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독자님들♡ |
착한공님 아링님 숭늉님 얌얌님 쿱님 찬아찬거먹지마님 팝콘님 분수님 붐바스틱님 반장님 성수네 꽃밭님 감자오빠님 레인보우샤벳님 전주댁님 설레임님 호에님 세봉둥이님 눈누난나님 순영파워님 꽃내음님 17학번님 유흥님 내셉틴님 제이에스디님 세봉이님 현지짱짱님 호로록님 심장셉틴대란님 잼재미님 신아님 인상님 빙구밍구님 토마스뿌뿌님 초록책상님 겸디님 기복님 부르르님 헨델님 토마토님 인공순영호흡님 세봉윰님 에스쿠우웁스님 스틴님 Mr. 아령님 17뿡뿡님 꼬야님 열일곱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