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바늘이 허옇게 질린 팔에 매정하게 꽂힌다. 바르르 떨리는 팔로 링거줄을 따라 노란 액체가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간다. 소년은 바짝 말라 갈라지다 못해 피딱지가 생긴 저의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위가 요상하게 일렁였다. 소년의 미간이 종잇장처럼 사정없이 구겨졌다.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다시 바로 했다. 그렇게 링거액이 다 떨어질 때까지 소년은 밭은 숨을 내쉬며 눈을 꼭 감고 참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걸어와 소년의 팔에 꽂혀있던 바늘을 빼곤 차트를 들어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천천히 눈을 떠 자신의 팔목을 확인했다. 주사 바늘들이 저의 팔을 뚫고 지나간 흔적이 선연했다. 볼 품 없는 팔. 소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우현 군."
소년이 눈을 떴다. 저의 옆엔 저의 어머니와 담당 주치의가 서있었다. 소년은 무기력하게 눈을 꿈뻑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어?
소년의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가 둥둥 떠다녔다. 소년의 어머니는 의사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의사는 소년의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병실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소년은 저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엄마, 라는 단어를 만들어보려 했으나. 잠긴 목에선 제대로 된 단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흩어졌다. 소년이 저의 입을 다시 다물자, 소년의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소년과 눈을 마주쳐왔다.
"우현아."
"……?"
"이제 우린 집으로 돌아갈 거야."
소년의 바짝 마른 입술이 벌어졌다. 서로 말라 붙어있어 열면 입술 겉이 뜯어질 것만 같았다. 여전히 잠긴 목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왜요, 어머니? 소년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제가 집으로 돌아가야 되죠? 소년은 어느새 까마득한 기억 속에 있던 저의 집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먼지가 묻은 기억 속의 집은 따뜻했다. 포근했고, 달큰한 냄새가 났다. 따뜻해도 춥고, 코를 쏘는 소독약 냄새뿐인 병원과 다른 곳이었다. 아아…. 소년의 목에서 작은 탄성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우현아, 우현아. 소년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저의 어머니의 어깨 위로 제 턱을 올려놓았다. 저의 작은 몸을 꽉 끌어안고 토닥이는 손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집 같았다.
"수고했다, 내 아들아."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소년의 눈이 작게 일렁였다.
오랜만에 도착한 집은 그때 그대로였다. 흰 벽이 노을빛에 붉게 일렁였다. 소년은 저의 어머니의 손을 잡은 손 말고 나머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마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여니 예전의 그 달큰한 향이 그대로 났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저의 집 안을 한 번 눈으로 훑었다. 아, 여기가 나의 집이구나. 거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벽걸이 티비도, 그 앞에 놓인 테이블 하나도,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은은한 자주 빛의 가죽 소파도. 그 근처를 차지하고 있는 러그도,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스탠드도 그대로였다. 소년이 저의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 소년에게로 무언가 파다다다 뛰어 달려들었다. 소년이 놀라 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고꾸라지려하자 그런 소년의 뒤를 소년의 어머니가 막았다. 소년이 눈을 크게 뜨고 제게로 달려든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왕!
강아지…? 소년은 커다란 갈색 귀에 흰색 몸통에 얼룩덜룩하게 검은색과 갈색으로 물든 비글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히 저가 살적에는 없었던 강아지인데, 언제부터 이 집의 식구가 되었는지. 소년이 눈을 깜빡이고 있자 그 강아지는 소년의 발치로 다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만 저의 볼을 부비며 왕! 왕! 하고 짖어댔다. 소년이 주춤거리자 소년의 어머니가 명령조로 말했다.
"마루."
왕! 왕!
"마루, 너 들어가 있어."
끄응.. 끙..
"빨리."
저의 어머니의 말에 살랑살랑 흔들던 꼬리를 착 내리고 끙끙거리는 것이 안쓰러워 소년은 저의 무릎을 굽혀 앉아 조심스럽게 저의 마른 손을 강아지 머리에 얹었다.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하고 거친 것 같은 감촉의 털이 그대로 느껴지자 순간 겁을 먹었지만, 저의 손길에 머리를 치켜 올리며 왕! 왕! 하고 짖어대는 모습이 귀여워 소년은 용기를 내어 강아지의 머리를 몇 차례 쓸어내렸다. 강아지가 저의 손에 머리를 마주 부벼댔다. 소년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그때.
"마루, 너! …아, 어머니 오셨어요?"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 소년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그러자 강아지가 바로 저의 손을 벗어나 소리의 근원지로 뛰어나갔다. 갈 곳을 잃은 손을 다시 저의 몸에 가져다대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세우곤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마주쳤다.
"그래, 나무야. 방에 들어가 있거라. 이따 저녁 먹을 때 쯤 나오고."
"네, 어머니. 마루야, 가자."
저와 똑같이 생긴 얼굴. 병실에서 편의상 바리깡으로 가끔 다듬기만 했던 저의 더벅머리와는 다르게 단정한 머리. 힘없는 저의 목소리와 다른 맑은 목소리. 그리고 후드 안에 있을 건강한 몸. 주사바늘 자국이 가득한 저와 다를. 동태눈처럼 탁한 저의 눈과 다르게 생기가 가득한 두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다른 소년의 뒷모습만을 보던 소년의 어깨를 소년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소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소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저가 본 것이 과연 사실일까. 강아지부터 잘못된 것은 아닐까. 허나 그런 소년의 생각을 배신이라도 하듯 왕! 왕! 하는 소리가 다른 소년이 들어간 방에서 환청처럼 들려왔다. 덜덜 떨려오는 소년의 어깨를 다시금 소년의 어머니가 꽉 다잡았다. 소년의 떨림이 멈췄다.
"일단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부터 먹자."
소년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의 어깨를 토닥이곤 소년에게 한 방을 가리켰다. 기억나지, 우현아? 네 방말이야. 아직 그대로니까 거기 들어가 있으렴. 저녁 시간이 되면 널 부를 테니. 소년이 작게 네, 하고 대답했다. 소년의 기억으론 소년의 방은 다른 소년이 들어간 방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소년은 발을 질질 끌며 걸어 저의 방문을 열다 뒤를 힐끔 쳐다봤다. 닫힌 방 문 틈으로 개 짓는 소리와 소년의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소년은 다시 고개를 돌리곤 오랫동안 주인이 부재중이었던 방문을 열었다. 소년은 방 안의 풍경을 보다 어린 시절 자신이 가지고 놀던 인형들로 가득한 침대 매트에 앉아 커다란 곰 인형 하나를 끌어안았다.
그대로, 모두 다 그대로.
하나, 아니 둘만 빼고.
소년은 곰 인형 뒤통수에 제 얼굴을 파묻다 숨이 차 고개를 떼어내곤 헉헉거렸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한 소년이 저의 엄마와 아빠의 양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그 옆엔 강아지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소년이 아니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식탁 위는 조용했다. 소년의 옆엔 소년의 어머니가 앉아있었고, 소년의 맞은편엔 다른 소년이 앉아있었다. 바닥엔 마루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게걸스럽게 개 사료를 흡입하고 있었다. 주변에 팅 팅 소리를 내며 사료 몇 알이 튀었다. 소년은 다시 제 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단과 다를 바 없었다. 고무를 씹는 기분. 소년은 의무적으로 제 입 안으로 음식을 채워 넣다 제 앞에 앉아있는 소년도 저와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수저질을 멈췄다. 힘겹게 음식물들을 처리하고 있는 저와 다르게 모든 반찬들을 하나씩 집어 꼭꼭 씹는 모습에 소년은 한참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소년을 쳐다보고 있던 소년은 소년이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서둘러 자기 밥그릇으로 고개를 내렸다.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다. 언제 다 먹지, 하는 생각에 소년이 젓가락으로 밥알을 뒤적이고 있을 때 제 앞에 앉아있던 소년이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러더니 의자를 소리 없이 빼고는 개수대에 자신의 그릇을 놓고 밥그릇에 코를 박고 남은 사료도 없는데 혀를 길게 빼 그릇 안을 할짝이고 있던 마루를 들곤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마루를 들기까지는 했는데, 방으로 들어가기 전 소년의 행동은 소년의 어머니의 말로 인해 저지되었다.
"나무야, 이리 와서 앉아보렴. 아직 너희 둘끼리 인사도 안 해봤잖니."
소년의 눈이 소년에게로 향했다. 다른 소년의 눈 역시 소년에게로 향했다. 마주한 시선이 어색해 한 소년이 고개를 돌렸지만, 한 쪽 뺨이 따끔거렸다. 집요했다.
"안녕."
그때 귀에 박힌 목소리는 청량했다. 맑았고. 소년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안녕.
"안…, 녕."
소년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헥헥 거리는 마루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소년은 소년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다 다시 고개를 내렸다. 아직 남아있었다.
"엄마, 나 이제 학교 다닐 수 있는 거예요?"
뚝.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소년은 저의 밥그릇을 닦다 멈춰선 손을 보고 생각했다.
"나 친구들도 만나고, 같이 놀고, 친한 친구 집에서도 자고 올 수도 있는 거예요?"
소년이 병실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때 항상 생각해 왔던 그 생활. 가끔 검사를 받으러 이동을 하고 있을 때 소변검사를 위해 종이컵을 들고 소란스럽게 떠들던 제 또래 애들을 보며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곳에서 곧 시선을 거둬야만 했다. 어린 소년에게는 소변검사 말고 다른 검사가 남아있었으니.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소년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그 빛은.
"아니."
순식간에 거둬졌다. 소년은 저가 들은 소리를 의심했다. 아니? 무슨 뜻이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더라.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소년의 어머니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니고."
곧 그렇게 될 거야, 우현아.
소년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저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소년의 몸이 기대감으로 부르르 떨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봐오던 하얀 천장이 아니라 남색 바탕에 흰 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천장이었다. 소년이 눈을 슥슥 비비곤 뒤척였다. 지금이 몇 시지. 팔을 짚어 상체를 세우곤 소년은 다시 눈을 비볐다.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소년은 이불을 대충 밀어내고 침대 밑에 놓인 슬리퍼를 직직 끌며 저의 방문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그래, 조심히 가고."
뚝.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이번엔 저의 몸에서. 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려왔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다시 똑같은 모습이 재생되었다. 한 소년이 저의 엄마와 아빠의 양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그 옆엔 강아지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소년이 아니었다.
제가 도플갱어를 참 좋아하는데요. 주저했던 이유는 우현이는 명수나 호원이와는 다르게 다른 이름이 없어서 입니다. 예명도 없고.
그러다 독방에서 본 우현우현썰을 보고 용기를 내서! 그냥 우현이랑 나무로 하자! 해서 쓰게 된 글이 이 글이고 수능 끝나고 처음 올리는 글이 이 글이네요.
아 말투 이렇게 하니까 어색햌ㅋㅋㅋ 그냥 하께여 나무어빠 차근차근 쓰고있고 차근차근 쓰고 있는 것만 5개 됩니다; 머릿 속에선 10개 넘고;
친구랑 릴레이도 쓸거고; 성우에 사이드 엘원; 김성규 사장님과 바리스타(실은 아직 확정안됨 ㅎㅎ헿) 우횬 컵케이크 만드는 호원이랑 대학생 명수를 볼 수 있을겁니다 예
독방에서 썰로 풀었던 것들도 글로 옮길게요; 몇개는 같이 달렸을지도, 보셨을지도 모르겠네여! 핳핳
저 실은 여기만 안왔지 독방에서 살았었습니다 예; 죄송해여ㅠㅠㅠㅠㅠㅠ 으으ㅠㅠㅠㅠㅠㅠ
이번 주말에 더 올려야지~.~ 감사합니다 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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