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기자 석진X무명 아이돌 너탄 01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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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대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귓속을 가득 메우며 심장을 거세게 때렸다. 긴장하여 손에 땀이 나는 탓에 손이 미끄러워 애써 힘을 주어 마이크를 더 세게 그러쥐었다.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불안한 마음에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았다. 초조한 마음에 침을 꿀꺽 삼키며 두 눈을 꼭 감았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일순간에 시끄럽게 귀를 울렸던 음악소리가 꺼지고 등을 살짝 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깊게 한숨을 내쉰 후 감은 눈을 떴다. 시선을 고정하지 못 한 채로 앞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마지막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니 뜨거운 조명이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등 뒤로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한 번 침을 꿀꺽 삼키곤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후들거리는 얇은 두 다리로 몇 개 되지 않는 계단을 내려와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얼굴을 희고 부드러운 두 손에 묻었다. 가득 차오르는 가쁜 숨에 얼굴이 붉어졌다.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치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건네오는 손길에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 인사를 전한 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뚜껑을 땄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고 입가를 쓱 닦았다. 더운 열기로 가득했던 무대를 뒤로하고 대기실 문을 벌컥 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한순간에 땀이 식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자에 늘어지게 기대어 앉아 휴대폰을 켰다.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이어폰을 집어 들어 휴대폰에 꽂았다. 매일같이 듣던 재생목록의 곡을 재생시킨 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누군가 어깨를 작게 흔들어 깨웠다.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자 피식 웃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놀랐구나? 조금 있으면 올라가야 해."
"아, 감사합니다."
오늘 내 옷을 맡아준 코디 언니가 얼른 올라가야 한다며 대기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감사하다며 짧은 목례를 드린 후, 긴 복도를 지나 다시 뜨거운 조명 아래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지나가 제일 뒷줄에 섰다. 몇 분이 지났을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가루들이 휘날렸고 눈물을 흘리며 수상소감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게 박수를 치다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깨가 더 무거워진 듯 마음이 불편했다.
복도를 지나가며 여러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오늘 나에게 향했던 반응과도 같은 바람이 곧 비가 올 듯 눅눅했다. 그새 갈아입은 트레닝복이 나를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애써 옮기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벤을 보며 벙 쪄있다가 매니저 오빠의 잔소리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무대가 이랬고 저랬고 이게 아쉬웠고... 점점 머릿속이 하얘졌다.
"듣고는 있니?"
"네, 그럼요. 내일은 더 열심히 할게요."
대충 흘려듣다 적절한 대답을 생각해냈다. 고민 끝에 내일은 더 열심히 하겠다고 둘러댄 후 차에 올라탔다. 푹신한 의자의 감촉이 썩 나쁘지 않았다. 몸을 모두 의자에 기대어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차의 시동이 걸리고 방송국 앞길을 빠져나가자 음악을 들으며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다 왔다는 말에 졸린 눈을 슬며시 떴다. 어느새 도착해 있는 작은 숙소 앞에 차가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자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얼굴을 찡그리며 매니저 오빠에게 인사를 남긴 뒤 숙소 안으로 발을 옮겼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낡은 문을 열었다. 좁고 지저분한 거실이 나를 반겼다. 텔레비전이나 소파하나 없는 허전한 거실에 홀로 앉아있는 내가 오늘따라 더 외롭게 느껴졌다.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대앉아 고개를 들었다. 곧 형광등이 꺼질 듯 위태롭게 반짝였다. 나도 곧 형광등처럼 꺼져버리겠지. 아, 난 아직 빛나지도 못했구나. 괜히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화장실 안으로 쪼르르 달려가 냅다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온통 근심 가득한 얼굴로 거울을 보는 내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샤워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에 모두 흘려보냈다. 한껏 개운해진 몸으로 화장실에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었다. 좁은 방 안에서 푹신하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 거실 바닥에 깔았다. 선풍기 한 대 뿐인 갑갑한 숙소 안에서 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의 느낌대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거리에 마음까지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 이대로 쭉 잠들어 버렸으면.
갑갑한 마음에 대충 세수를 하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모자나 마스크도 하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빗방울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우산을 펴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무리 고민해도 딱히 갈 곳이 없어 1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샐러드 한 통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았다. 평소에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왠지 오늘은 더더욱 먹기 싫은 마음이 컸다. 편의점 안을 돌아다니다 집어 든 건 고작 커피 한 캔이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비싼 커피들을 보며 푹 한숨을 쉬었다. 내 주제에 저런 비싼 커피는 사치야. 가장 싼 캔커피를 계산하고 편의점 바로 옆에 있는 야외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를 맞지 않도록 처마 밑의 벤치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싸구려 캔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꽤나 처량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그 누구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고, 눈길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안 그래도 답답했던 마음이 더 답답해지는 듯했다. 커피를 다 마셔갈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픔에 무언갈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편의점 문을 열려고 한 순간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 검고 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목에 무언가를 걸고선 그 큰 카메라로 나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누구세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묻자 그저 묵묵히 내 사진을 찍어대는 남자였다. 내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자, 남자가 카메라를 내려 나에게로 다가왔다. 크고 동그란 눈이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김탄소 씨."
"네? 저를 어떻게 아시고..."
"이렇게 모자도 안 쓰고 막 나와도 되는 거에요?"
"아, 그게 아니고..."
"세상에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 이 사람이 기자인가 보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 헛웃음이 났다. 자신을 연예기자라고 소개한 그가 아까 전 내가 앉아있었던 벤치로 이끌었다. 이것저것 물어오는 그에 적잖이 당황하여 어버버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평소 사람들과 말을 잘 섞지 않는 성격 탓에 그 자리가 너무나도 어색하고 또 불편했다. 그의 질문에 대충 둘러대고 이제 그만 가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흰 손이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다음에 또 봐요."
"네?"
"매니저 분께 연락 넣을게요. 김탄소 씨 인터뷰하고 싶다고."
"..."
"가보겠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그의 동그란 뒤통수를 쳐다보다 고개를 숙여 받은 명함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연예 기자 김석진. 흰 명함에 정갈하게 쓰인 이름 석자가 눈에 들어왔다. 김석진. 이름을 중얼거리며 바지 주머니에 명함을 쑤셔 넣었다. 남은 캔커피를 탈탈 털어 마신 후 캔을 있는 힘껏 구겼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캔을 버린 후 밖으로 나와 접어두었던 우산을 펴고 숙소로 돌아갔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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