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일 순간의 떨림과 함께 내 사람의 곁을 스쳐 지나는 나의 목소리.
흑백 영화처럼 느낌을 돋우는 꿈이었다. 눈이 뜨였을 때, 세상은 검게 칠해진 듯이 흑탄빛이었고 오직 너만이.
우두커니 앉은 너의 뒷 모습만이 내 두 눈에 아득했다. 불완전한 결여감. 무엇인가 일어날 조짐임이 틀림없다.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작업실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생각 했었다. 이 곳에 사람이 살긴 했었는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길래 이리도 온기가 없는 것인지를.
누군가의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공기마저 얼음덩이처럼 단단히 굳어진 느낌이었다.
모든게 그대로였다. 그 날 아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았던 주전자도, 널어 놓았던 빨래들도, 바싹 말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슬하게 바닥 위로 흩뿌려진 도자조각들을 따라 빛이 새나오는 방문 앞으로 걸었다. 코를 후벼오는 흙냄새. 멈춰진 물레 밑으로 눕혀진 몸.
부슬부슬한 머리칼을 넘기다가 다시 방을 나섰다. 냉장고를 열고 뒤적이다, 눈 끝이 따가워지는 느낌에 설움이 치밀었다.
이거 다 먹기 전에 헤어지면 어떡하지. 찬찬히 반찬 통을 훑으며 이름을 기억하려 애쓴다.
꼭 기억해두었다가, 빈 바닥을 보기 전에 헤어진다면 그 반찬은 평생이 가도록 다신 먹지 않을 셈이었다.
마음이 더 깊어질 수록 나는 떠날 채비를 하고, 뒤돌아보지도 더이상 다가서지도 않고 그냥 그저 이 자리에 서서 너를 본다.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차갑다.
외롭다.
ㅡ언제 왔어?ㅡ
응. 방금. 앞 머리를 쓸어넘기며 문지방을 밟는 모습이 여느 때와 달랐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에게 쏘아붙이며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지독한 불안감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문.
어?
냉장고 문.
아, 미안. 탁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냉장고 문과 함께 내 생각의 문도 닫아버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답을 내리지 못할 거라면 처음부터 생각하는 짓을 그만둬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씽크대 앞에 서서 손을 올렸다. 그러면 나는 또 한달음에 달려가 손목을 잡는다.
따뜻한 물 나오려면 좀 있어야 돼. 그의 두 손을 감싼 내 손 위로 날카로운 물의 감촉이 닿는다.
그의 옆에 서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 내 귓 속을 파고드는 그의 숨소리. 따뜻하다.
눈이 마주치고, 거칠게 갈라진 그의 입술에 나의 입술이 닿는다.
그 순간 내 머릿 속을 더럽혔던 흙먼지들이 바람에 쓸려 실종되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붉은 꽃잎의 향연.
울고 싶었다. 내 머릿 속으로, 내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 그의 마음을. 나는 어디로 가져가야 할 지 몰라서 무서웠다.
너의 감정, 너의 하루, 너의 감촉. 사랑해. 사랑해. 너의 모든 것을.
나는 네가 따스하고 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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