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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원/신원] MOON 

 

이제야 고백하는 거지만 너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내가 있던 어두운 방은 니가 온 순간부텨 어떤 무언가로 반짝거렸다. 

 

우리는 혈액형도, 성장속도도 같았다. 그냥 얼굴 몇 부분을 빼면 모든 게 똑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엄청난 우연이라며 기뻐했지만 아마도 똑똑했던 너는 알았을 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이따금씩 내 앞에서 멍한 표정을 보였을지도. 

 

"자주 못와서 미안해." 

 

당연스럽게도 너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게 뜸하게 찾아왔다. 나는 미안해하는 너에게 괜찮다고 말할 뿐이었다. 나에게 밖은 고작 몇 가지의 이야기 뿐이었지만 밖에선 나이를 먹는다는 게 짊어지는 무게가 늘어나는 것임은 나도 모르지 않았다. 너도 남들처럼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니겠지.  

 

나는 잘 상상이 가지않는 그 모습을 떠올리려 애쓰며 압을 삐죽 내밀고 싶은 마음을 감추었다. 너는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너에게 쭈뼛대며 다가가 니 등을 토닥였다. 혹시라도 아플까봐 살살 너의 등을 토닥이는 나를 보며 너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무슨 간지럼이라도 피우냐면서 아까의 한숨쉰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깔깔 웃는 것이었다. 

 

니가 내게 온 그 날처럼 나 역시도 네게 기쁨을 줄 서 있어 기뻤다. 구석을 전전하는 삶이여도 좋으니 그냥 이런 삶이면 나는 다 좋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리만큼 오랫동안 웃던 너는 웃음을 그치고는 말했다.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잠시 시간을 확인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올게."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던 문이 빈틈없이 닫혔다. 

 

 

 

 

 

 

 

 

 

 

그 이후로 나는 너를 볼 수 없었다. 낮도, 밤도 모르니 얼마동안인지는 헤아릴 수가 없었지만 엄청 오랫동안 너는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 너를 본 날, 너는 하얀 가운을 입은 채였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기대 숨죽여 울었다. 너의 울음소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니가 언젠가 알려줬던 방법대로 너를 토닥였다.  

 

한번도 내 앞에서 울지 않던 니가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어야만 했는지 그 때의 나는 궁금했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봐서도 안된다는 걸. 살짝 열어진 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가느다란 빛이 조금씩 어둠에 잠식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모든 게 까맣에 지워진 눈 앞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끝까지 너의 꽉 눌려버린 울음소리는 나를 괴롭혔다. 

 

잠에 취한다는 게 이런걸까. 정신이 몽롱했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나지가 않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너의 목소리가 문득 들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린 건 그 때문이었다.  

 

너는 하얀 가운을 입은 누군가와 함께, 그리고 너 역시도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큰 키로 보나 얼굴 크기로 보나 나이차가 많이 나보이는 그와 너는 부자지간임이 분명했다. 너는 그의 앞에서도 울었다.  

 

울지 말라고, 울지 말아달라고 달래주고 싶었건만 할 수 있는 건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몇 번 휘젓는 일 뿐이었다. 손 끝으로 투명한 벽이 닿아왔다.  

 

니가 나를 봤다. 그도 나를 봤다. 나는 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영문모를 액체 때문에 날 쳐다보는 네게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몸을 옥죄는 원통형의 공간 안에서 나는 나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가 나가고 너는 머리를 잔뜩 헤집으며 나를 봤다. 나는 잠 때문에 무거운 눈꺼풀을 제대로 들어올렸다. 그러나 너도 이내 이 곳에서 나가고 있었다. 나는 니가 나가는 길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너는, 여전히 울었다. 

 

 

 

 

 

 

 

 

 

너는 이제 매일 내게 찾아왔다. 그리고 늘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또 한동안 오지 않았다. 너만 내게 왔을 뿐이다. 나는 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잠이 올때면 너를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너를 생각하면 심장이 탕탕 울려서 잠에서 깰 수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염없는 졸음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었지만. 

 

아주 가끔, 너는 소리내어 울었다. 그럼 나는 입술을 앙 다물고 나 역시도 어느 순간부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찾았다. 너는 내가 이렇게 모든 걸 듣고 있다는 걸 알까. 

 

그 날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가 나타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너는 그 앞에서 고갤 숙이고 있었다. 니가 잘못한 게 아닌데 너는 왜.. 그는 드디어 오늘이라며 오늘을 특히 힘주어 말했다. 너는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봤다. 그가 아니라 날.  

 

너를 만나기 전부터 늘 세뇌처럼 되뇌어오던 말이 있다. 괜찮다고, 나는 괜찮다고. 전해졌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너에게 그렇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난 괜찮아.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졌다. 

 

 

 

 

 

 

 

 

그렇게나 잠에 안들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잠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물도 아닌 기분 나쁜 액체 속도 아니었고 잠에 취한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멀쩡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안겨 있었다. 참 기분좋은 꿈이다. 니가 내게 웃었다. 너는 물기가 뚝뚝 흐르는 옷 위로 두툼한 잠바를 입혀 주었다. 밖이 점차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꿈에서 깰 시간인가. 너는 내게 서류봉투를 꼭 쥐어주었다. 나는 조심히 이걸 품에 안았다. 이것마저도 너의 것이니까. 

 

너는 내게 뒷문을 열어주었다. 앞쪽에선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뛰는거야, 너는 나만큼 잘뛸 수 있으니까." 

 

나는 너의 말을 듣고는 세차게 달음박질쳤다. 계단을 내려가고 또 멀리, 더 멀리 달렸다. 바깥에서는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 맞아보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로, 뺨으로 닿아왔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을 땐 우리가 있던 그 곳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물 속도 아닌데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허탈함에 주저앉으려던 찰나 누군가 나를 일으키고 내 팔을 잡아 끌었다. 

 

"형원이는 살아 있을거야. 가자." 

 

그는 나를 차에 태우고는 빠르게 그 근방을 벗어났다. 한번도 보지 못한 거리들과 사람들이 나오고서야 너는 차를 세웠다. 어떻게 된건지 모를 일에 머리가 아팠다. 그는 나를 제 집으로 데려갔다. 혹시 나에게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몸을 흠칫 떨었더니 그가 내 어깨를 쓸어주며 말했다. 

 

"형원이 친구에요." 

"......" 

"아무 짓도 안할테니까 안심해요. 이민혁이라고 해요." 

"...아..." 

 

그의 입에서 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니 이름을 한번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리고 동시에 느꼈다. 그 이름이 너의 이름일 거라는 걸. 그, 그러니까 민혁은 머릴 긁으며 말했다. 

 

"..잘모르는구나.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민혁이 나를 제 집 안에 들여놓고는 문을 닫았다. 나는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아 어태껏 품에 꼭 안고있던 서류봉투를 꺼내들었다. 

 

"현관에 앉으면 안되죠." 

 

민혁이 내 신발을 벗기고는 카펫을 가리켰다. "저기에 앉아있어요." 나는 거기서 니가 준 봉투를 쏟아서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몇 개의 서류들과 편지 정도였다. 나는 편지를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거기엔 니가 여태 가르쳐주지 않았던 니 이름과 너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나는 입을 꽉 틀어막았다. 호흡이 급하게 나빠졌다. 민혁이 다가와 내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형원이는 분명 돌아올거라고.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어지러웠다. 

 

 

 

 

 

 

 

 

 

민혁은 거짓말에 능했다. 처음 한 이틀동안은 아닐 걸 알면서도 민혁의 말을 믿었을 정도였으니까. 그 거짓말이 들통난 건 다름 아닌 밤에 불쑥 나타난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민혁과 나, 둘이 사는 집이었다.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당연히 민혁일 터였다. 민혁은 문을 꼭 닫은 채 흐끅거리고 있었다. 나는 민혁을 슬쩍 엿볼 작정으로 문을 열었다. 문이 제멋대로 소리를 냈다. 민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이젠 문을 활짝 열고서는 민혁을 안아주었다. 

 

"내가, 내가 형원을 뺏어가서 미안해." 

 

"죽게 만들어서 미안해." 나는 민혁을 토닥이고 있지않은 쪽 손으로 울컥 열이 치미는 뒷목을 감쌌다.  

살아남아서 기뻤다. 그렇지만 니가 미웠고 너를 생각하면 슬펐다. 

 

너를 이만큼이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니가 살아야 맞는 거잖아.  

 

이제는 전할 수도 없는 원망이 머릴 어지럽혔다. 민혁은 잠시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웅얼거렸다. 그리고 민혁은 금세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웃었다. 

 

"괜찮, 하으.. 괜찮아요. 자다깼어요?" 

 

민혁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떨렸다. 다시 자라며 등을 쓸어주는 민혁의 덤덤한 모습 뒤로 아직 멎지 못한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속이 쓰렸다. 

 

 

 

 

 

 

 

 

 

그 뒤로 나는 민혁이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민혁은 늘 웃었고 나도 웃었다. 우리에겐 너의 얘기를 꺼내선 안된다는 무언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었다.  

 

민혁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쳤다.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이라던지 아니면 글을 쓰는 법, 어눌한 말투를 고치는 법까지도. 아마도 내가 너에게 줬던 애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민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 날도 있었다.  

 

내가 사람들을 잘대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나는 카페 일을 시작했다. 물론 민혁도 함께였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카페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잠들고, 우리는 그런 바쁜 생활들로 너를 묻어갔다. 

 

그 날도 별로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언제나와 같이 주문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네, 무엇을 드릴까요?" 

"카라멜 마끼아또에 시럽 가득이요." 

 

마스크가 절반 쯤 가려버린 얼굴, 그렇지만 싱긋 웃을 때 접히는 눈가의 모양새가 누가봐도 너였다. 아니겠지. 나는 머리가 하얘져서 민혁을 불렀다. 민혁은 또 계산하는 법을 까먹었냐며 핀잔을 주며 투덜투덜 대다 문득 숨을 흡 하고 멈췄다. 아마 민혁의 눈을 네게 멈춰있었던 것만 같다. 

 

"형원아." 

 

나는 참지 못하고 니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너는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원은 니 이름이잖아." 

 

니가 생글 웃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곤 진동벨과 영수증을 네게 건냈다. 눈물이 그대로 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아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딜달한 카라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너는 여전히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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