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잘라요? 너무 긴데. 상한 것만 다듬지 그래요. 아깝게." 돌아보자, 그 곳엔 당신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저런 사람들은 많이 봐 왔다. 유명성에 기반한 오지랖과 유들유들한 성격. 관심이 있어서가 아닌 단순한 습관일 것이다. "그냥 잘라주세요." 눈을 다시 거울로 돌렸다. 짧은 대답과 함께 가위날이 불쑥 들어왔다. "에헤이-. 자르면 안돼요. 후회해 진짜. 다듬고 에센스 해요. 그게 낫다니까." 아까부터 왜 자꾸 참견인지-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식도, 이 사람도, 모두 왜 이럴까?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막을수 없었다. 하지만 못난 얼굴로 포악한 말을 뱉는 것 말고도 방법은 많다. "왜 그렇게 신경쓰세요?" 은근히 내 반응을 기대하더니, 막상 이렇게 가식적으로 나오니 놀란 표정이다. "아니 딱 봐도 오래 기른거 같아서. 아깝지 않아요?" "네." 곧이어 잠시 고민하더니 해답을 얻은듯 얼굴이 밝아진다. "아! 남자친구랑 깨졌구나! 그쵸?" 정말 답이 없는 사람한테 걸렸구나. 맞긴 맞는데 왜 이렇게 분한건지.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또다시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네. 깨졌어요. 궁금한거 다 풀리셨죠? 언니. 잘라 주세요." "아 잠깐만. 왜 깨졌어요? 옷을 못 입어? 주사가 심한가? 아니면, 속궁합이 안 맞-" 조금 오지랖이 넓을 뿐이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팬은 아니었지만 나오는 프로그램을 자주 봤고 캐릭터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속궁합? 이건 그냥 예의가 없는거다. "다음에 저 분 없을때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도망가듯 일어나서 숨도 쉬지않고 말했다. 아무리 아이돌이나 배우같은 직업이 아니래도 어떻게 저럴수가 있어. "잠깐만요. 익인씨! 익인씨!" 빠른 걸음으로 가다가 멈췄다. 어떻게 내 이름을?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아요?" 그제서야 당황한듯한 표정이 보인다. 드디어 한 번 이겼나? 똑똑한 줄 알았는데 바보였네. "익..익인씨도 내 이름 알잖아요." 말까지 더듬어가면서 대는 하찮은 핑계에 코웃음이 나왔다. "그거랑 같아요? 연예인이잖아요." "나 아네요? 너무 까칠하길래 텔레비전 안 보고 사나 했어요." 어이 없는 소리하긴. 집업을 더 올렸다. "콧물 나왔다." 그건 우리 스킨쉽의 시작이었다. 다짜고짜 검지손가락으로 내 코를 문지르더니 웃던 당신. "뭐야. 왜 만져요 갑자기." "친해지려면 가벼운 스킨쉽이 좋다는데." 이 사람 정말 공인 맞아?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당황한건지 쑥스러웠던건지. 그대로 주머니속에 손을 넣고 지나쳐버렸다. "익인씨! 무슨 여자가 저렇게 보폭이 넓어. 익인씨!" 단순히 그 상황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태어나서 가장 빨리 걸었다. 하지만 간과했던게 있었다. "왔어? 빨리 왔네. 춥지? 들어갈까?" 이 미친 자식이. 네가 들어갈 곳은 아무데도 없어. 무시하고 엘레베이터로 가자 역시 따라온다. "얇게 입고 다니지마. 감기 걸려. 내가 들어가면 커피 끓일게." 해도해도 심한거 아니야? 무시할수록 심해진다. 정말 사이코같아. "볼 빨간 거 봐. 입술도 다 트고." 멍했던건지 무시하느라 바빴던건지 내 두 뺨을 감싸는 그 미친놈의 손을 피하지 못했다. "더러워."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아직도 감촉이 느껴졌다. 역겨웠다. 아무것도 먹지않은 배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왜 그래. 이러면 좋아했잖아. 내 얼굴 좀 봐. 응?" 곧이어 어깨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도망칠수가 없어. "익인씨! 지금 올라가나봐요?" 또 당신이었다. 아까의 미운 당신은 어디 가고 지금 내게 당신은 구세주였다. "어제 진짜 재밌었는데- 오늘도 거기 갈까요? 맛있었죠?"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도와주려고? "근데 옆에는 누구? 아. 친구에요?" 어깨에서 손이 강하게 내쳐지더니, 당신의 팔이 감싸안았다. "야. 너 능력좋다?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연예인 남자친구가 생겼네? 아니. 스폰서 되시나? 몸 굴려서 꼬셨냐? 그렇다면 실망하겠는데. 이미 나한테 너무 많이 벌려줘서 조이는 맛은 덜할걸-" 순식간에 들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당신이 내 귀를 감쌌다. "헤어진지 한 달도 넘은 새끼가 아직까지도 찌질대기는. 하긴 너같은 쪼다 새끼를 우리 익인씨말고 누가 받아주겠니. 질 떨어지는 소리 하지말고 꺼져. 다시 찾아오지마." 모두 들었다. 깨진지 한달 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내 이름도 안다. 다시 오지말라고 협박까지 했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아는거야? "뭐 이런 미친.." 이제 네얼굴이 더 빨갛네. 퉁퉁 부은 얼굴이 되가지고는. 정말 못났다. 당신은 내 어깨를 감싸안고 엘레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가운데손가락을 올렸다. 문이 닫혔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감사합니다? 왜이러세요? 입술만 물어뜯다가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감사.. 합.." "5층 살죠?" 이제 좀 무서워지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알아? "아니.. 네? 아.. 네." "오늘은 집 가지 마요. 그 새끼가 백퍼센트 문앞에서 추태부릴걸." 그사람 성격에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기댈 수는 없다. 스폰서 소리까지 들었으니 신세는 충분히 졌다. "신고하면 되죠. 신경쓰지 마세요." 이미 엘레베이터는 10층을 지나가고 있었고 당신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팔을 풀었다. "한밤중에 경찰차 오면 다 깨는거 몰라요? 사람들한테 욕먹지말고. 내 집가요. 안잡아먹습니다." 도대체 왜이렇게 신경쓰고, 왜이렇게 잘 아는걸까.. "마녀사냥 안봐요? 나 성욕 제로라니까. 사마천이에요 사마천." 사마천은 무슨-. 괜시리 마음이 놓이자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당신은 어정쩡한 자세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었잖아.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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