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는 현관문을 잠갔는지 재차 확인한 후 몸을 돌렸다. 집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탄소는 그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구겨 신었던 신발을 바로 신고 약속 장소를 향해 바삐 걸었다. 거래자와 약속한대로 그곳에는 검은 외제차 한 대가 서 있었고, 탄소는 번호판을 확인하고 낯선 차에 몸을 실었다. 학교 사람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볼까봐 겁이 나서였을까, 그 움직임은 어딘가 다급해 보였다.
자신이 이 차에 탄 몇 번째 여자일까,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두리번거림으로 탄소는 차 안을 대강 훑었다. 조수석 밑에는 주인 모를 하이힐 한 켤레가 박혀 있었다. 차에서 관계를 치루다가 쫓겨난건가. 기사는 그런 탄소에게 눈길 한번도 주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쟤도 얼마 못 가겠지, 근데 이번 년은 좀 어리네? 아직 애 같은데.' 따위의 생각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는 어느새 청담동의 고급 빌라 가에 들어섰다. 이쪽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탄소에게는 이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탄소는 동그란 모양의 키로 문을 연 기사의 뒤를 따라 블럭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집에 몸을 들였다. 기사는 현관문까지만 탄소를 바래다주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계시나요...?"
탄소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한 걸음씩 내딛었다. 아무도 자신의 질문에 답해주지 않아서 탄소는 그저 한 방씩 차례대로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집의 구조는 특이하게도 거실 중앙에 나사형의 계단이 있었는데, 맨 윗층의 계단 난간에는 이 모든 것을 흥미롭다는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뒷통수가 있었다. 거래자를 찾기 위해 2층으로 걸음을 옮기는 탄소 때문에 이내 모습을 감췄지만 말이다.
거래자는 3층의 서재에 있었다. 탄소가 문을 두드리기도전에 문은 열렸고, 약지에 금반지가 끼워진 두꺼비같은 손이 탄소를 끌어 당겼다. 탄소는 놀라서 입을 열 겨를도 없이 옷이 벗겨졌고 그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는다는듯이 담배냄새가 짙게 베인 입술이 탄소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엄마. 엄마. 엄마...
탄소는 거래가 마칠 때까지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찾았다. 아버지뻘의 남성은 탄소에게 소리를 내라며 엉덩이를 세게 내리쳤고 그에 탄소는 비명을 질렀다.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 눈 앞에 어둠이 내렸다.
"...만족스럽네. 일단 한 달동안은 이 아이를 써도 되겠어."
눈을 뜨자 보이는건 방 안에 옅게 끼인 안개와 코를 강하게 찌르는 낯선 냄새였다. 거래자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탄소는 통화 내용이 자신에 관한 것임을 눈치챘다. 아마도 상대는 주인님이겠지. 자신을 이 업계로 들여준 주인님. 지금은 안 계신 어머니를 사랑했던 주인님. 나에게서 어머니를 찾는 주인님.
거래자는 우리나라의 3대기업에 드는 Y사의 이사라고 했다. 미숙한 자신을 왜 이렇게 중요한 거래자에게 넘긴건지 탄소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탄소는 한 탕 뛰면 열 탕 뛴 것보다도 더한 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말에 자원했을 뿐이다.
"일어났니?"
이불 끝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탄소를 이사가 불렀다. 탄소는 화들짝 놀라며 그의 부름에 답했다.
"다음 번엔 교복 입고 와주겠니? 학생다움이 있어야 보기 좋단다."
취향이 그런 쪽인가. 탄소는 이사의 역겨운 부탁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사는 반쯤 풀린 눈으로 탄소의 나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더니 머금고 있던 연기를 웃으며 길게 뿜어냈다.
"그럼 이만 가보는게 어떻겠나, 기사가 기다리고 있단다."
이사의 말에 허겁지겁 옷가지들을 걸쳐 입은 탄소는 서재의 문을 조심히 닫고 나왔다. 이사의 젖은듯한 시선이 아직도 제게 붙어 있는 것 같아 탄소는 몸을 부르르 털며 서둘러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탄소를 태운 외제차가 블럭을 떠나자 저택 4층의 구석 방 커튼이 그제야 닫혔다.
/
"선생님, 저 보건실 좀."
분필과 칠판의 마찰음밖엔 들리지 않던 고요한 수업 시간에 탄소는 손을 번쩍 들고 배를 부여잡았다. 그녀의 몸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선생님은 그런 탄소에게 그저 고개를 몇 번 끄덕여줬다. 탄소가 어색하게 배를 감싸쥔 것부터 뒷문을 통해 나가기까지 그 일련의 행위를 창가 자리에 앉은 아이가 유심히 지켜보았다.
'대담하네.'
선생님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탄소는 보건실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몇 번 힐끔거리며 잰걸음으로 학교를 유유히 빠져 나갔다. 경비 아저씨가 붙잡자 탄소는 가디건 주머니에 접혀 있던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집에 계시는 치매 걸린 할머니를 확인하러 가고 싶을 때 가라고 담임이 한 웅큼 쥐어줬던 외출증은 제 용도를 잃어버렸다.
/
"다시 학교로 보내주면 되는 것이지?"
"네. 감사합니다."
탄소는 침대의 끝에 걸쳐 앉아 스타킹을 신으려다가 허벅지 안쪽 부분이 찢어진 것을 보고 관뒀다. 이상하게 스타킹에 자꾸 집착하는 이사였다. 어쩔 수 없이 맨다리에 교복치마를 입은 탄소는 교복에 진 미세한 구김을 손으로 억지로 펴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 맡에 놓인 술잔을 들어 홀짝이던 이사에게 꾸벅 인사를 드린 후 탄소는 방문을 열고 나오려 했는데 이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익숙한 교복인데."
"......"
"우리 아들 교복이랑 비슷해."
"......"
"이만 가보렴."
"네."
닫힌 서재의 문 손잡이를 한참이나 쥔 채로 고민하다가 탄소는 계단을 내려갔다. 아들? 아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을 뿐더러 생각조차 못해봤는데. 방문할 때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 없던 집이어서 탄소는 갸우뚱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이사의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일까봐 탄소는 걱정이었다. 그건 상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얘기니까 말이다.
찜찜해진 기분을 뒤로하고 승용차에 타자 기사는 오늘도 아무런 얘기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탄소는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청담동의 모습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애써 비워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학교는 이미 마쳤다고 들어서 바로 집에다 바래다 주겠습니다."
"네?"
기사의 말이 마침과 동시에 차는 탄소가 살고 있는 반지하의 앞에 세워졌다. 세상에 바래다주겠다고 말하고 곧바로 도착하는 사람이 어디있나. 애초부터 자신의 의견은 상관없었다는 것을 깨닳은 탄소는 자신에게 내리라고 눈짓하는 기사한테 인사를 드리고 몸을 빼냈다.
그런데 학교가 마쳤다는 건 누구한테 들은 거지?
집으로 돌아가자 집안은 엉망이었다.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이불, 바닥에 흩어진 화장품들, 그리고 탄소의 어머니가 쓰던 루즈를 서툴게 쥐고 벽에 낙서를 그리고 있는 할머니.
"환장하겠네."
"환장? 환장이 뭐야? 응? 탄소 언니 환장이 뭐야?"
"...아니야. 할머니 우리 밥 먹자."
탄소는 어지러진 물건들을 한켠에 밀어놓고 옷장 뒤에 있던 상을 꺼내와 폈다. 그러는동안 할머니는 탄소를 돕겠다며 낡은 냉장고에서 몇 안 되는 반찬을 꺼내왔다. 내가 언니 도와줬어! 반찬 가져 왔어! 그래, 착하다 우리 할머니.
/
"아버지. 저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래. 아들 얼굴 좀 보게 들어와 봐라."
지민은 서재의 문을 열고 이사가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익숙한 아버지의 약 냄새에 잠시 콧등을 찡그렸지만 이내 입으로 호선을 그리며 인상을 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색과 약에 빠진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지민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동공은 서늘했다. 이사의 앞으로 걸어간 지민은 입가에 침을 흘리며 극락의 세계로 가 있는 이사를 싸늘하게 내려다 봤다.
'아들 반 친구랑 섹스하면 좋아?'
"아들도 이것 좀 해볼래?"
'당신은 언제 뒤져?'
이사의 두꺼운 손가락 사이에 꽂힌 것에 지민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아직 공부해야 되잖아요. 이사는 지민의 말에 수긍했다. 더 대화할 거리가 마땅치 않음을 느껴 이사는 손을 휘휘 저었다. 방으로 돌아가라는 뜻을 알아들은 지민은 머리를 까딱하고 뒤돌아 걸었다. 툭. 발에 뭔가 걸렸다. 허리를 숙여 주운 작고 네모난 것은,
"김탄소. 역시."
탄소가 급하게 나가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떨어진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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