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은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셨다. 벌써 세 잔이나 따라 마시고도 모자라 이젠 생수병을 채로 입에 물었다.
자꾸, 입술이 바짝 바짝 말랐다.
"도경수"
"어"
무미건조한 경수의 눈동자는, 여전히 제 휴대폰 안의 게임을 향해있었다.
백현은 어느 순간부터 생기있고 맑던 그 검은 눈동자가 변해, 이제는 흐릿한 저 회색의 눈동자가 질린다고 생각했다.
"대체 뭐가 문젠데?"
"뭐가"
"야."
백현이 그 휴대폰 액정을 가리고 나서야, 무표정인 경수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왜 이러냐고"
"뭘"
"너 요즘… "
백현은 마른세수를 했다.
ㅡ
백현은 마른세수를 했다.
"할 말이 뭔데 이래?"
"나랑… 그게.. 어.. 나랑... 나랑 같이 살래?!"
쿵.
백현은 몇 달을 속으로 준비했던 여러가지 말들은 어디로 흘려보냈는지, 마음이 아무리 급하다지만 이따위 말이나 뱉은 제가 한심해 죽고싶었다.
정말로, 멋없는. 그의 말이 고백일줄은 경수는 꿈에도 몰랐었다.
"같이?"
귓가가 빨개진 백현을 보며 경수가 웃었다.
"그러던지. 어차피 자취하면 돈도 많이들고 … 난 요리를 좀 하니까 넌 청소…"
백현의 동그랗게 뜨인 눈이, 곧 반으로 접혀 싱긋 웃는바람에, 경수는 남은 말을 삼켜야만 했다.
봄바람이 부는 듯 착각을 일으킨 가을로부터 그렇게 3년,
지금까지 3년을 그들은 함께살았다.
백현은 제 마음이 온전히 경수에게 기울었고, 제 아래에 경수를 놓아 울리며 몸을 섞기도 했다.
ㅡ
"됐다. 그만하자."
백현의 말에 경수는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쇼파에 누웠다. 백현을 올려다 보는 눈빛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백현아. 우린 좋은 친구야."
"뭐?"
친구, 라는 단어에 백현은 제 귀를 의심했다. 우리가.
너와 내가? 도경수와 변백현이. 우리가 좋은 친구라고?
"하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지."
"도경수."
"좋은게 좋은거라잖아?"
"너 지금 뭐하자는…"
"남자끼리 이러는거, 지겹잖아 솔직히. 이게 정상이야?"
"그래서 나랑 사귀는거. 이제 싫다고?"
"어."
"그래서, 친구하자고?"
"어."
백현은 온전히 기울던 제 마음이, 실은 단단히 쌓아져 있던 것을 아슬하게 흔들리는 사탑으로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백현이 경수의 눈을 마주했을 때, 경수는 알았다.
백현의 마음이 완전하게. 무너졌음을.
백현은 그대로 집을 나갔다. 그 뿐이였다.
그렇게도 쉽게, 백현의 사랑은 경수를 놓았다. 3년의 시간의 헤어짐이 참, 짧았다.
ㅡ
그 이후로도 아침마다 경수는 여전히, 팬을 잡았다.
늘 그래왔듯 백현이 좋아하는 음식을 접시에 담았다.
두개의 접시, 두개의 밥 그릇. 두개의 수저. 두개의 의자.
그리고 도경수.
경수는 . 공허하다고 느꼈다. 백현이 보고싶었다.
그가 좋아하던 계란말이를 입술에 가져가 한입 베어 물었더니 눈 앞에 백현이 나타나 생글생글 웃었다.
"오늘도 계란말이 있네~?"
"니가 좋아하니까…"
"내가 왜 계란말이를 제일 좋아하는줄 알아?"
"왜 좋은데?"
"니 입술같잖아. 도톰하고 , 부드럽고 ."
헉, 하고 경수의 얼굴이 복숭아처럼 붉어지면 또 백현은 눈꼬리가 휘어져라 웃음지었다.
"물론 니 입술이 훨씬 맛있지만"
결국 경수는, 식탁에 엎드려 울 수 밖에 없었다.
게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피하자고 밖에서도 백현을 무심코 지나치던 것이. 집에서도 이어졌다.
그냥 그 모든게 싫었다. 경수는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저만 그럴까. 백현도 그렇지 않을까?
백현은 여전히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왔지만, 실은 저와 같을거라고 생각했다.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좋은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이가 될 수 있을거라고, 꼭 자기가 3년전 백현과 함께 살자고 마음먹었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쏟아져 흘러넘친 감정을, 주워 담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허나 백현이 떠나고서야 알았다. 절대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누가 뭐라해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천개의 단어보다 너의 말 한마디가 훨씬 더 내게 컷다는걸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사실 제가 다 잘못했다. 용서를 빌어야했다.
ㅡ
간신히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는, 그러니까. 연락도 닿지않던 백현이 다시 집에 들어왔던 그 순간에
경수의 심장은 . 터질 것 같았다.
백현의 심장은 . 이미 썩어버렸다.
"너한테 익숙해진 내가 싫다. 도경수."
"백현아…"
울먹거리는 경수를, 평소라면 다정하게 안고 다독였을 백현이,
꼭 몇 달전 저를 보던 경수의 눈처럼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만 보다 입을 열었다.
"울 것 같은 얼굴하지마. 친구잖아 우리."
쾅. 하고 경수는 급하게 뛰던 제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였다.
그게 아니라, 내가 다 잘못했다고. 꼭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그 생기넘치는 눈동자가 흐릿해 지기까지, 얼마나 백현이 노력했을지. 제 마음을 얼마만큼 잘라내었는지.
제가 백현을 피하던 때에 얼마나 힘이들었는지 경수는 안다. 그 마음을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내 멍청함 때문에, 그 마음을 다 버리고 친구가 되겠다고 정리하고 다시금 찾아온 백현을.
이제와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를 잡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두 사람의 속 마음은 엉키고, 또 엉켜서.
매우.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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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게으를 권.倦 게으를 태.怠 가 합쳐 倦怠, 권태. [명사]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라는 단어입니다.
왜 이런. 어쩌다 이런 분위기의 . 망글이 나왔는지는. 새벽에게 물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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