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게슴츠레한 눈을 떴다. 얼마나 잠을 잔거지?
그의 흐릿한 시야에는 아주 옅은 불빛이 천장에서 비쳐지고 있었다. 남자는 상체를 일으키며 근육통에 인상을 찡그리다 낯선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아스팔트로 만들어진걸로 보이는 긴 다리였다. 그 폭은 성인 두명이 누울 넓이 였고 다리의 양쪽끝은 안개로 덮혔는 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조금 전까지 회사에서 근무한 자신이 왜 이런 곳에 누워 있게 된건지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그에게는 정장입은 몸뚱아리와 다음달까지만 버티려고 신은 낡고 검은 구두 한켤레가 전부였다.
휴대폰도, 노트북도 그에게 없었다. 심지어 거래처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수첩과 아껴먹으려 두었던 초콜렛도 상의주머니에 없었다!
남자는 이 기막힌 상황에 헛웃음을 치며 꿈이라 믿었다.
그는 거칠한 다리 위를 손으로 집고 몸을 일으키며 허상이라 여기는 주위를 더 둘러보기로 하였다.
천장이자 하늘로 보이는 머리 위에는 침대 맡에 둘법한, 피부만 살짝 구별할 정도로 은은한 백색빛이 햇빛처럼 내리 쬐고 있었다.
그리고 그아래에는 남자가 서있는 길고 긴 쇳덩이 같은 다리가 끝을 알수없을 정도로 놓여있었다.
남자는 꽤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다리 끝에 보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땅과 이어진 곳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다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그저 걸어갈 수록 보이는 건 짙은 회색에서 검게 변하는 알수없는 시선 끝이었다.
남자는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 순간 남자가 서 있던 곳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자는 곧바로 반대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하자 다리의 균형이 맞는지 길은 수평을 유지하게 되었다.
남자는 긴장감에 가쁘게 숨을 몰아쉬다 오싹한 느낌에 다리 밑을 보기로 하였다.
'설마... 설마 아닐꺼야...'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리위에 엎드리려 몸을 낮추고는 끝을 알수없는 다리 밑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할말을 잃었다.
그는 바닥을 알수없는 검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기둥을 보았다.
여긴 다리가 아니라 시소였던 것이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얼른 그 기둥이 위치한 중심점으로 몸을 기어서 움직였다.
다리... 아니 시소의 한가운데에 앉게 된 남자는 어찌할지몰라 그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조금전 걸어갔던 방향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끝이 땅과 이어져 있을까?'
아까 전과 달리 푸른빛이 살짝 감도는 느낌의 안개였지만 역시나 까맣게 끝이 안보이는건 여전했다.
남자는 아까처럼 시소가 흔들리는 일이 생길까봐 길 위에서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그는 최대한 몸을 움츠리며 몸의 움직임을 줄였다. 이젠 조금 이라도 흔들릴까봐 노심초사로 바닥을 짚으며 수평을 유지하였다.
'콰득'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남자는 급히 하늘과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그러나 잔해가 부서지는 소리는 계속 되었고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닥에 귀를 대자 조금 전 이상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했다.
"안돼!!"
길 한가운데에 솟아난 거대한 기둥은 쇳빛 파편을 남자에게 흩뿌렸고 곧이어 알이 깨지듯 아스팔트 길은 금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갈라졌다.
남자는 끔찍한 상황에 비명을 지르며 애써 푸른빛이 도는 길의 끝으로 달려갔지만 그가 발딛던 길은 부서져 내려가버렸다.
그는 끝도 알수없는 바닥으로 부서진 잔해들과 같이 떨어지고 말았다.
떠들썩한 치킨집 안. 정장을 입은 두명의 남자는 후라이드 한마리를 시켜놓고 빈 맥주병을 테이블 가쪽에 세워두고 있었다.
"그래서, 퇴사는 하기로 했냐?"
맥주한잔을 걸쳐 얼굴이 빨개진 친구가 남자의 맥주잔을 채우며 말하였다.
남자는 몽롱한 정신으로 시원한 맥주한잔을 원샷하였다.
"아니. 그냥 안할려고. 여기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서."
"그럼 그전에 말했던 유학은? 되게 가고 싶어했잖아?"
남자는 스스로 빈 잔을 채운 뒤 말했다.
"그것도 못 하겠더라. 괜히 헛된 꿈만 갖다가 직장 잃긴 싫더라고."
두사람은 뒷말없이 맥주잔을 쨍-하며 건배하였다.
그냥 이대로 수평을 유지하며 사는게 가장 안전하다는 걸 서로는 알고 있었다.
후회를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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