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황자님이 왜 여기에 계시는지…"
상상만 해도 떨릴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 그녀의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분명 왕은 황자였다.
하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르륵 주저앉아 버렸다.
꿈이 아니었어. 그럼 지금 이 상황은…
하진은 하, 하며 한숨을 쉬며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왕은 황자일리 없어.
꿈 속에서만 존재하던 허상이었어.
있다 하더라도 조금 닮은 사람일 뿐일거야.
그렇게 마음을 바로잡은 하진은 한 쪽 눈을 슬며시 뜨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
"말도 안 돼"
그러나 다시 쳐다봐도 분명 왕은 황자였다.
그의 순수하면서도 맑은 눈동자는 변치않고 반짝이며
이 곳에 자신이 왔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내가 어떻게 그를 맞이해야하지?
반갑다며 그를 안아줘야할까. 아니면 생판 모르는 척 굴어야하나.
나와 함께 고려에서 타임워프한 게 아니라면,
환생…한 것일까?
갑작스레 앞에 나타난 왕은황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
하진은 그 짧은 시간에 바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그런 하진을 옆에서 지켜보던 점장은
그녀를 대신해서 하진을 주시하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손님, 하진이랑 아는 관계인가요?"
그러자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이름이, 하진인가요?"
그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하진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마치 조그만 그 입술에서 '해수'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해수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하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에 하진은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저에게 볼 일이 있으세요?"
이 남자는 분명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래, 어떤 이유로 나를 찾아왔는지 들어나보자.
하진은 차분히 제 마음을 그리 가라앉혔다.
"당신을 보러왔습니다, 하진씨"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은 다시 그녀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아무 이유도 대지 않고 무작정 자신을 찾는 저돌적인 모습,
자신을 향해 웃어보이는 저 환한 미소는 10황자와 너무 닮아있다.
하진의 목소리가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그러니깐 왜 저를 보러왔는지, 알려주세요."
그 말에 남자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보였다.
단문의 글이 쓰여진 종이였다.
그는 그 종이를 하진의 손에 쥐어주었다.
"누가 당신을 찾아가라 했어요, 이걸 주면서요."
"이건…"
남자가 하진에게 건넨 쪽지에는
그녀가 지금 일하고 있는 화장품 매장의 위치가 적혀있었다.
당혹스러웠다. 내게 이 쪽지를 보낸 사람은 대체…
누가 나를 알고 황자님을 이리로 보낸걸까.
아니, 정말 이 남자는 10황자가 맞긴 해?
잠시 고민한 하진은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로 결정했다.
마치 이 일은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 같았다.
그녀는 이 상황을 주시하며 벙져있는 점장에게,
"언니, 오늘은 일찍 퇴근할게. 미안해"
라고 빠르게 중얼거렸고 재빨리 자신의 옷과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첫 만남에 실례겠지만 좀 잡을게요.
제대로 저랑 얘기를 해야겠어요."
.
.
.
.
.
"자 여기서 아까 한 말, 다시 해봐요."
하진은 남자를 데리고 근처 카페를 찾았다.
그리고 빠르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켜 들고 왔다.
빨리 얘기를 나누고픈 하진과 달리 남자는 다른 데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는 하진의 손에 쥐어진 커피잔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앉아요, 여기"
"이게 제가 마실 차인가요?"
그는 신난 모습으로 하진의 손에서 커피잔을 뺏어 재빨리 한 모금을 후룩 마셨다.
그러나 그의 맘엔 들지 않았는지,
이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탁자에 잔을 탁 내려놓은 그였다.
"이런 걸 왜 마셔요?"
"아…그건 원래 쓰게 마시는…"
"네, 써요. 그러니 다시는 이 차를 제게 주지 마세요!"
약간의 투정을 부리는 그의 모습에서 왕은 황자의 모습이 또 겹쳐보였다.
어째, 갈수록 더욱 그 분과 판박인거지.
그녀는 더욱 궁금증이 가득해졌다.
"자, 이제 대답해주세요. 누가 당신을 제게 보냈다는 거예요?"
"어떤 사내가…""
"사내요? 그 사람과 아는 사이예요?"
"(절레절레) 그렇지만, 당신을 만나면 다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무엇을 말이죠?"
하진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한 쪽 눈썹을 들썩였고,
이에 남자는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갖다댔다.
그의 반짝이는 눈에 하진은 기가 빨리는 듯 했다.
"나에 대한 진실을요."
그래,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난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
확실히 답해주세요, 라며 재촉하려는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번뜩 스쳤다.
…뭐야, 왜 최지몽이 떠오르지?
"설마, 그 사람이 또 여기에…"
아니야, 그럴 일 없어.
그 일은 다 꿈이었을 뿐인데…
하진은 또다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최지몽까지 이 곳에 왔다고 생각하며 너무 복잡하잖아.
그런 하진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그는 다시 뭔가 생각난 듯
큰 목소리로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
"아 맞다, 당신이 망설이면 이렇게 말하라고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당신이 예전에 받았던 보살핌을 생각하세요, 라고"
……!!!!!
최지몽!!!! 정말 최지몽이 확실하다!
하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를 이리로 보낸 사내가 최지몽임을 확신했다.
내가 예전에 받았던 보살핌이라면
고려에 처음 떨어져 뭐든 낯설어했을 시기에 내게 손을 뻗어준 8황자님의 보살핌을 말하는 건가?
최지몽은 내가 8황자의 집에 머문 사실을 알고 있잖아.
잠깐, 그를 이리로 보낸 사내가 최지몽이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정말 10황자, 왕은?
하진은 복잡해진 머리를 부여잡다 이내 제 앞의 왕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길에 왕은은 놀랜 듯 큰 눈을 뜨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저를 기억하시죠! 황자님! 저예요, 해수!"
"해…수? 아깐 하진이라고 하셨…"
"그건 여기 이름이구요. 저 기억 못하시겠어요?"
"………"
허나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나마 내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는 척하려고 최대한 머리를 굴리는 듯 해보였다.
저 잔머리 굴리는 모습마저 왕은 황자와 똑닮을 수가.
그래, 더이상 고려해볼 것도 없이.
저 분은 분명 10황자다.
"해수, 절…정말 모르시겠어요?"
"…죄송합니다. 저는 기억을 잃어서 아무 것도 기억을 못…"
갑자기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답답하겠지.
기억을 잃은 자신의 모습이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싸는 그의 모습은 꽤 안쓰러워 보였다.
그는 모기같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이 곳이 많이 낯설어요."
"………'
"당신을 찾으면 다 괜찮아진다고 해서, 그래서 찾아온건데…"
남자는 금세라도 눈물을 흘릴 듯 가엾게 웃음지었다.
그 때 하진은 예전, 고려에 처음 떨어진 자신의 모습을 떠올랐다.
낯선 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처음 손을 내밀어준, 왕욱 황자의 따뜻한 말 한 마디도 함께.
"수야, 겁내지마라"
그는 낯선 이 곳을 무서워하며 경계하는 나를
따뜻한 미소로 위로해주었다.
혼란스러워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맨 자신에게 직접 손을 뻗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래, 예전의 나와 같이 이 곳은 황자님에겐 너무 낯선 곳이지.
기억까지 잃어버린 왕은 황자님은 얼마나 더 두려우실까.
그러니 내가 도와야겠어.
욱 황자님께서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하진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해하는 왕은에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의 행동에 그는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동공으로 하진을 쳐다보았다.
하진은 계속 부드런 미소를 유지하며 운을 떼었다.
"황자님, 기억을 잃었다하여 겁내지 마세요"
"………'
"저에게 이리 찾아왔으니, 제가 끝까지 도울겁니다. 그러니"
'………'
"절 믿고 따라와주시겠어요?"
그녀의 미소는 8황자 왕욱의 미소와 많이 닮아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원래 제가 연재가 늦는 편이긴 한데,
생각보다 너무 늦어서 정말 죄송할 따름...
현대판으로 하겠다고 판은 벌려놨는데
어떤 방향으로 글을 써야할지 막막했어요.
이제 좀 잡힌 듯하니 그 다음회는 빨리 올릴게요.
기다려주신 뾰들, 감사합니다!
혹여나 암호닉 남기시고 싶으시다면,
환영 대환영이니깐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