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야, 혹여 내 부름이 들리거든, 지난 밤 꿈처럼 달디단 꿈에 나타나 나를 홀려주어라. 우리의 첫 만남이 생각나느냐. 혹여 그 만남이 영영 미움을 부르는 것이 아닌지, 후에 밤잠을 설쳐 걱정했던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수야. 조그마한 몸으로 노려보는 것이 얼마나 기가 찼는지 너는 모를게지. 한낱 조그만 계집아이가 그런 말을 내뱉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게지. 그 오물거리던 입술이 얼마나 황당하였던지 아직도 웃음이 나는구나. 본디 황실이란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곳. 함부로 호의를 베풀어서는 안 되는 곳. 너도 알지 않느냐. 아니, 네가 최고 잘 알 것이지. 쉬이 너에게 다가가지 못했어. 그게 이리도 후회가 남을 일일지 상상도 못 하였다. 한 번이라도 등을 보일 때에 너의 그 조그마한 얼굴을 더 볼 것을 독한 말을 내뱉을 때에 한 번이라도 너의 그 가녀린 어깨를 감싸아 줄 것을 후회가 남는 일의 투성이구나. 어찌 이리 모자를까 너를 닮은 곱디 고운 설이 내릴 때, 나는 너와 함께 보았던 그 담장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어찌 이리 고울까... 어찌 이리도 깨끗하단 말이냐... 나의 수, 너와 이리도 닮았을까. 그 후로 모든 문을 닫고, 겨우내 단 한 번도 밖을 나서지 않았다. 혹여 너를 닮은 그 설을 보게 된다면 더욱이 단단히 하였던 마음이 단 한 번에 무너질 것 같아서. 수야, 혹시 기억하느냐. 다음 해에 설이 내리면, 같이 온 저잣거리를 돌며 설이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자, 하지 않았느냐. 니가 곁에 있었다면 그리했겠지. 소박한 여인의 옷을 입고, 장신구를 내려두고 가벼운 신을 신고, 너의 그 조그만 손을 꼭 잡고 온 저잣거리를 누비며 해가 넘어가는 줄 몰랐겠지, 수야, 그곳은 따뜻한 것이냐. 혹, 춥지 않으냐. 내가 없는 그곳은, 아니 내가 없는 너는 어떨지 궁금하구나. 보고 싶다, 수야. 나의 수. 니가 없는 이곳은 내게 지옥과도 같구나. 오늘따라 하늘이 서글프기만 하구나. 너의 마음일까. 수야, 아아 나의 수야. 조금만 기다려다오. 곧 손을 붙잡고, 우리의 약조를 지키러 갈 것 이다. 꼭, 지킬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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