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주는 내 공주님 맞지?"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맴돌다 귓가에서 멈췄다. 몸을 있는대로 짓누르는 그 말의 무게에 등허리를 굽힌 채 부르르 떨었다. 볼품없이 떨리는 몸을 제 서늘한 손으로 훑는 그의 손길이 마치 칼의 그것처럼 예리하게 내 몸을 꿰뚫었다. "대답." 발목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훑기 시작하던 그의 손이 어느새 내 턱을 마치 으스러트릴 듯한 힘으로 잡아챘다. 그의 말에 고개를 바르르 떨었다. 애처로운 내 떨림을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 지긋이 제 시야에 쓸어담던 그가 이내 박수를 쳤다. 짝, 짝 하고 울리는 마찰음이 마치 그가 일전에 내 뺨을 때릴 때와의 소리와 같아 고개를 숙였다. 행여나 그가 다시 내 뺨을 내려칠까, 두려운 사람처럼.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곱게 땋인 내 머릿칼을 이로 물었다. "우리 공주님은, 보고만 있기엔 너무 벅차서, 이렇게 하나 하나 다 망가트리고 싶어져." 이내 제 입술을 내 머릿칼에서 내 입술로 옮긴 그는, 내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의 턱을 타고 내 피가 붉은 길을 만들며 뚝 뚝 떨어져내렸다. 내 입술에 남은 피를 제 혀로 진득하게 핥아내린 그는 이내 내 귓볼을 가볍게 깨물며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공주님, 사랑해."
어지러워지는 시야 끝으로, 어제 정재현이 잔뜩 멋을 부리며 읊던 영화 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이태용.
"몸 상태를 보아하니, 또 보스한테 좆되게 맞았구나 너."
정재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가방을 책상 옆 가방걸이에 걸었다.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정재현이 내 등짝을 퍽, 하고 쳤다. 그에 악,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놀란 정재현은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봤고, 난 그런 정재현에게 짜증을 내보였다. 아 왜 하필 어제 맞은 데를 치고 난리야. 내 말에 정재현은 안쓰럽다는 듯 내 등을 살살 쓸었다. "미안. 진짜 보스는 별 데를 다 때린다, 불쌍하게."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책상에 엎드렸다. 그런 날 마주보며 저도 엎드린 정재현은 이내 입술을 쭉 내밀고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눈으로 날 바라만 보던 정재현은, 이내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김여주 네가 행복하던 말던, 그냥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말에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정재현의 이마에 꿀밤을 놓아주며 말했다. "너야말로 죽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내 말에 됐다, 하며 아까 맞은 이마가 아팠는지, 연신 어루만지던 녀석은 이내 제 바지 주머니에서 밴드를 꺼내들어 제일 크게 상처가 보이는 팔꿈치 쪽에 척, 하고 밴드를 붙였다. "허구한 날 다쳐와서, 내가 밴드 하나 사서 맨날 넣어두고 있었지." 자랑스레 말하는 그 모습에 괜히 코 끝이 시큰해져 정재현의 머리를 마구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장난치는 와중에도, 정재현의 시선은 온통 내 상처에 가 있었다.
그리고 정재현의 뒤로, 내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 부터 내게 한번도 시선을 떼지 않던 그아이의 시선도, 내 몸을 아로새긴 상처들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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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설정에 오류가 나서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하다가 겨우 해결책을 찾았네요....ㅠ 다시 연재 시작합니다 잘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