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아.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 이제야 여름이 가려나봐. 너도 덜 고생스럽겠다. 그래도 환절기만 되면 늘 아팠잖아. 감기 조심해. 너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이제는 사람답게 살라는 네 말에 많이 울었어. 마음 잡고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붙었어. 다 네 덕이야. 그 지옥에서 너는 나를 구해줬는데 나는 너를 나락으로 떨어뜨렸구나. 아직도 나는 네 생각에 잠을 설쳐. 단 하루도 맘 편히 발 뻗고 잔 적 없어. 평생 속죄하며 살게. 그러니까 태형아, 제발 얼굴 좀 보여줘. 이번 달 내로 또 갈게. 그러니까 이번엔 얼굴 보여주라. 사랑해. 너는 내 마지막 성역이야. 사랑해, 태형아. 또 편지 할게.
마지막 성역. 글씨가 동그랗게 얼룩져 있었다. 너의 편지는 늘 맨 마지막 줄 어딘가가 번져있다. 알아보기도 힘든 악필인 나와는 다르게 너를 닮아 또박또박 정갈한 너의 글씨. 나는 네 글씨 하나 하나를 가슴에 새겨넣듯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었다.
"누구 편지길래 그래 오래 붙잡고 있노."
"별 거 아닙니다."
"여자친구제?"
"……."
"좋을땐데 우짜다가…."
남자가 혀를 찼다. 나는 네 편지를 고이 접어 서랍 속에 넣었다. 좁디 좁은 서랍은 이미 흰 봉투로 포화상태였다. 닫히지 않는 서랍을 억지로 밀어 닫았다. 편지 귀퉁이가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얼굴은 비추지 않을 요량이었다. 네가 제 풀에 지쳐 나가 떨어질 때 까지. 그리고 나를 기억 속에 묻어둘 때 까지. 이런 누추한 곳과 너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죽 튀어나온 편지 귀퉁이를 손으로 매만졌다.
"누굴 죽였다 캤나?"
"…예."
"아직 얼라구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노."
내게 말을 붙이는 남자는 사형수였다. 와이프와 바람이 난 남자를 제 손으로 죽여 들어왔다고, 남자는 나를 본 첫 날 그렇게 말했다. 남자의 왼쪽 가슴에 붙어있는 빨간 죄수번호에 창살 틈으로 내리쬐는 햇빛이 닿았다. 완연한 가을 햇살이었다.
"5103번 면회 들어왔다."
"안 해요."
"저번에 그 아가씬데 안 볼거야?"
"안 봐요. 오지 말라고 해 주세요."
독한 새끼. 교도관이 발길을 돌렸다. 교도소로 편지를 보내면 수감자 손에 들어오기까지 약 2주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교도관이 일일이 다 뜯어 내용검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네가 편지를 보낸 시점은 이번 달 중순이었겠지만 내가 편지를 받은 오늘은 월 말이었다. 하필 네 면회와 편지가 같은 날로 겹쳐버렸다. 튀어나온 편지 귀퉁이가 자꾸만 신경쓰였다. 서랍을 다시 열어 편지를 꺼내들었다. 지금 보니 교도소의 주소 끄트머리도 번져있었다.
"만나줘라, 좀."
"싫습니다."
"그럼 편지도 받지 말든가. 아가씨 속만 태우고 뭐하는기고."
할 말이 없었다. 너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꾹꾹 눌러썼을 글자로 위안을 받는다. 모순된 감정이었다.
"니 팔자도 참 기구허다."
너의 마지막 성역. 내게는 과분한 문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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