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은 생각했다, 역사시간은 언제나 지루하다고. 종인은 앞에서 열연을 다해 수업을 하고 있는 역사선생님이 보이지 않은지 허공만 바라보았다. 역사선생님은 맨앞사람의 얼굴까지 닿도록 침을 튀기며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오늘 수업은 중요한 역사 수업이니까 다들 잘들어. 다들 알다시피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지구는 멸망직전까지 갔다. 자원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세계전쟁의 최후였다.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동반한 제3차 세계전쟁 (War of Despair)은 지구상에있는 인구 약 35%를 말살시켰고 나머지 남은 65%의 사람들중에서도 원자폭탄이 남긴 방사선으로 많은사람들이 암으로 죽거나 돌연변이가 되었다. 이건 모두들 다 알고 있겠지, 이번에 베스트셀러된 유명한 한국작가가 쓴 책에 나오니까?"
"너희들이 벌써 알고있듯이 세계전쟁을 멈추지 못한 국제기관 UN은 폐쇄되었고 UN이 만든 인간의 권리 (Human's right)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한국만의 특별한 인간의 권리가 제 79대 대통령에의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권리가 만들어진 후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이 권리를 바탕으로 나라를 운영해왔다. 이 권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진작에 멸족했다. 79대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있지. 이건 이번 기말고사에 나오니까 다들 알고있도록!"
종인은 역사선생님의 말에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의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말을 할수 있는 나이때부터 지겹도록 외워 익히 알고있는게 당연한데 세삼스럽게 시험에 나온다는게 어이가 없었다.
"거기 피식피식 웃는 김종인, 니가 반대표로 일어서서 인간의권리 나오는 페이지 한번 쭉 읽어봐"
종인은 생각했다, 역사선생이 자기를 경멸하는게 분명하다고. 쓸데없는 반항이라도 하려던 종인은 순간 학교에서 전화오는일이 한번이라도 더 생기면 자신의 얼굴을 안본다는 형의 말이 생각나서 교과서를 들고 일어났다.
"인간의 권리,
제 3차 세계전쟁 이후에 대한민국은 방사선의 두려움에 잠겼다.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점차 돌연변이가 되거나 장애가 오는걸 본 사람들은 유전자변형과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멸족될거라는 생각에 패닉상태가 되었다. 이 두려움을 없애고 또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주려고 만들어진게 지금의 인간의 권리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써 의식주의 권리를, 움직임의 권리를, 의사표현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허나, 이 권리는 '인간'에게만 충족됨으로 유전적 변형이나 '인간'의 평범함에 벗어난 성향이나 특성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없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태생직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인간'임을 증명받을 수 있으며,
후천적이거나 성향적인 장애는 국가에 발각되면 인간의 권리가 박탈될 뿐 만아니라 수용소에 붙잡히게 된다. 대표적인 육체적 돌연변이의 예로는 몸의 변형 (알비노, 손가락 변형장애 등등)이 있고
대표적인 성향적 장애로는 동성애자, 소시오패스, 또 발달적 장애 (다운증후군 등등)이 있다. 국가의 이런 조치가 강압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과 정상적인 인간으로 형성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조치이다."
왠일로 순순히 말을 듣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역사선생님을 향해 슬쩍 웃어보이곤 종인은 자리에 다시 앉았다. 역사선생님은 다시 수업을 진행하려고 잠시 머리에 걸쳤던 안경을 내려 콧등에 얹었다. 피곤해서 자신의 팔에 머리를 얹어 엎드린채로 창가로 고개를 돌린 종인의 눈에 운동장 옆 벤치에 아무 움직임 없이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명찰을 보니 3학년 학생이다.
추운 날씨에 불구하고 잠바하나, 흔하디흔한 가디건 하나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간간히 날카로운 초겨울 바람이 옆의 나무를 흔들만한 속도로 지나가도 남자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하는 자신과는 매우 상반되는 남자의 모습에 종인은 창가에서 눈을 떼지않았다.
얼어뒤질려고 환장을 했네.
종인은 그 남자학생이 수능을 망쳐서 절망에빠진거라고 생각했다. 그후 한참동안 남자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호기심을 잃은 종인의 눈이 잠에절어 무거워졌다. 역사한테 발견되기전에 잠이나 자자 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은 종인은 순간 남자학생이 움찔거린걸 봤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
[경수시점]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역사시간은 힘들다. 처음에는 좀 익숙해지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역사시간만 되면 짜증이나고 화가 치민다.
학교안에 있으면 복도에 오가는 선생님들한테 들킬게 뻔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 어디 앉을데 없나? 초겨울 바람이 차가웠지만 얼굴을 싸하게 감싸는게 왠지 기분이 상쾌해져서 운동장 근처 벤처에 앉았다. 운동장 근처 화단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있었는데 교화인 장미사이에 숨겨져있는 꽃하나가 보였다. 순간 내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금지된 꽃을 학교 화단에 발견할 줄이야...
나라에서는 돌연변이라고 끔찍히도 싫어해 법으로도 유포/재배 금지된 꽃을 학교 화단에서 보다니 나도 오래 살았는가보다.
아마 오늘 화단관리자 아저씨는 교장한테 욕을 엄청 먹을겠지, 누가봤으면 학교의 위상이 떨어질뻔 했다고. 그리고 저 꽃은 뿌리까지 뽑힌채 학교 뒷뜰 쓰레기처리장에서 태워질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지나쳤을 텐데 나도 모르게 꽃에 끌려 화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의 흙을 손으로 조금 파서 금지된 꽃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아 진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살기도 바쁜데 이딴 꽃하나 빼내자고.. 그냥 확 다시 묻어버릴까 아니면 친절히 내가 직접 쓰레기장에 태워줄까 고민을하려던 참에 은은한 색의 꽃잎이 눈에 들어왔다.
돌연변이면 쫌 이상하게 생기지 괜히 사람 마음 찝찝하게...
밀려들어온 짜증아닌 짜증에 금지된 꽃을 마이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었다. 이딴 버려진 꽃 구겨지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니까... 그래도 안버리고 집에서 몰래 키워나볼까?
다시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2학년들 교실 중 한 곳에 창가주변에 한가히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이 한명보였다. 눈을 감고 있어서 얼굴이 잘 안보였지만 왠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것 같았다.
어디서 본적 있나? 하긴 같은 학교니까 오가다 마주쳤겠지.. 왠지 생각날듯 말듯해 잠자코 서있는데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첬다. 다음수업은 제대로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본 남자애는 여전히 축 늘어져 자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직도 김종인 너의 이름 석자를 생각하면 날카로운 초겨욺 바람이 불던 이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후회한다. 너를 더 빨리 사랑하지 못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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