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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날과 다르지 않게 햇볕은 진하게 내리쬐었고 바람 또한 설렁이며 머리를 간지럽혔다. 눈앞에는 봄꽃이 일렁이었으며 가는 길마다 꽃이 길을 내주었다. 항상 가는 길도 꽃이 깔리니 한층 더 산뜻하고 다른 느낌을 가져와주었다. 그렇게 여 날과 다르지 않게 종인은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서류봉투를 열었다. 창문 새로 내려오던 햇빛을 머금은 책상이 눈부시게 빛났고 종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얘는 연애문제니까 박찬열, 얘는 가정문제니까 준면이형. 종인이 종이를 이쪽저쪽 쌓아놓더니 울리는 전화벨에 급히 손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연결선 때문에 의자를 앞으로 조금 당겨야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불편해 죽겠네, 종인이 인상을 쓰더니만 미소를 짓고 크게 소리 내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엑소 김종인 상담요원 입니다.”


종인은 전화를 받다 저에게 전해오는 서류봉투를 건네받아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자아문제인가, 종인이 스리슬쩍 미소를 지었다. 창문을 열어둔 탓에 가볍게 불어오던 바람이 종이를 안고 책상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지금 전화를 받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욕을 할 뻔 한 종인은 종이를 모두 주워 저의 책상에 올려다 준 찬열 덕에 입을 닫았다. 고마워. 종인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종인은 저의 옆에 꼿꼿이 서 있던 찬열에게 눈길이 가서 전화하는 내내 찬열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아, 왜 시꺼먼 거 입고 가만히 서 있냐고. 신경 쓰이잖아. 종인이 손을 들어 가보라는 손짓을 함에도 불구하고 찬열은 종인의 옆에 가만히 서서 종인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이건 내 담당 인가.”


찬열의 말에 종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겠습니다, 라는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이랑 비슷해, 남친 행세 해주면 끝. 또 전남친이랑 헤어졌다고 복수한다나 뭐라나. 종인의 말에 찬열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니까 이제 제발 가. 찬열이 싫다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첫 번째 페이지를 훑어보던 찬열은 미적지근한 표정으로 종인의 앞에 종이를 내려놓았다. 얘 남자잖아, 근데 왜 여자친구가 아니고 남자친구야?


“몰라, 남자친구라는데.”


종인이 살풋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일이나 하러 갈까. 종인의 말에 찬열이 지랄이라며 웃어 보인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종인의 무게를 가득 싣고 부딪히는 갈색 로퍼의 소리가 건물 내 미미하게 울려 퍼졌다. 그 뒤를 이어오던 찬열도 손에 계속 들고 있던 첫 번째 페이지를 미간까지 찌푸리며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종인의 뒷덜미를 잡고 종이를 내밀며 소리를 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뭐야, 이 병신은. 이라는 표정으로 찬열을 주시하던 종인은 찬열의 손을 털어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야, 이거 게이잖아!”


전부터 이 팀에서 연애 쪽을 맡고 있던 타오와 레이은 각기 주어진 의뢰를 수행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찬열이 이번 의뢰를 맡게 된 것이었다. 예전부터 동성애 의뢰가 몇 번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 타오와 레이가 맡았었고 찬열은 여자의 남자친구역 등, 평범한 연애 문제만 해결하는 신입 아닌 신입이었다. 근데 남자의 남자친구역이라니. 잠시 머릿속이 새하얗게 번진 찬열이 진저리를 치다 또각또각, 워커소리를 내며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지금 당장 찾아갈 것이냐는 종인의 말에 당연하지, 라며 눈을 꿈뻑이는 찬열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힌 이 상담소 앞길에는 항상 사람이 붐볐다. 빨리 걸음을 옮기려는 찬열을 비웃기라도 하는 지, 사람들은 길을 걸으며 찬열을 실수로 치고 가기도 했다. 아침에는 진짜 사람 없는데 점심이랑 저녁에 너무 붐빈단 말이야. 찬열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느새 말끔하게 빠진 검은 세단을 끌고 온 종인의 옆 좌석에 찬열이 자연스레 올라탔다. 지붕 이곳저곳에는 꽃잎이 내려앉아 있었다.


진짜 비가 쏟아지는 구나, 꽃비가. 하늘을 분홍빛으로 야멸차게 메운 꽃잎이 창문을 통해 하나둘 들어온다. 창문 좀 닫아, 찬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종인이 창문을 올렸다. 그래도 이미 안에 들어온 꽃잎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검은 수트 위에 대조되는 색을 지니며 조신하게 앉아있는 꽃잎은 저 혼자 따듯한 차 안에 들어온 것에 기분이 좋았는지 방긋방긋 웃는 듯 하였다. 찬열은 내린다며 종인에게 멈추어달라 부탁했다. 조금 있다가 봐. 찬열이 손을 흔들며 종인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


“야, 도경수!”


저 만치서 손을 흔들며 분홍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남자가 휘적휘적 걸어왔다. 머리에 꽃잎이 내려앉아도 뭐가 꽃잎이고 뭐가 머리카락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분홍색 본연의 색을 띄우며 남자의 머리에 물들어 있었다. 경수는 걸음을 멈추어 눈을 도록도록 굴리다가 뒤를 돌아 환하게 웃어보였다. 어, 세훈아! 왜? 경수의 대답에 세훈이 왜긴 왜야, 하며 능글맞게 걸어와 어깨동무를 했다. 경수는 지금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어떻게 돌아온 길인데, 걸음을 재촉하던 경수는 세훈에게 걸려 지금 이렇게 끌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세훈이 생각한다면 데려가고 있는 것이겠지만. 부담스럽게 저에게 붙어오는 세훈을 경수는 싫었다. 항상 기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수업이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세훈은 계속 경수를 데리고 복도를 걸을 뿐이었다. 어디 가게, 세훈아? 경수의 물음에 세훈이 매점에 간다며 아이마냥 웃었다. 지금 그렇게 웃을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은 못하고 입 안에 꾹 눌러 삼킨 경수가 세훈에게 끌리다시피 걸어가 매점에 도달했다. 아이들 모두 수업에 들어가고, 몇몇의 아이들만 매점을 꿰차고 있었다. 모두들 머리를 알록달록 물들이고 교복은 쫄바지마냥 다리에 딱 달라붙게 줄인 소위말해 날라리라고 하는 무리들이었다.


하루의 반 이상은 세훈에게 투자를 한다. 등교도 세훈과, 하교도 세훈과. 몇 년을 세훈과 함께 해왔지만 경수는 세훈이 불편했고, 또 불편했다. 세훈은 그런 경수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경수를 보면 옆에 끼고 복도를 휘젓고 다닌다. 다행이도 같이 다니는 몇 년 동안 경수는 세훈과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고, 그 덕에 다른 친구 몇 명도 사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친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몇 명 있기도 했다. 학교 내에서는 같은 반 친구와 같이 다니다가도 세훈이 혹시나 볼까봐 항상 머리를 굴려야 했고, 긴장을 했어야만 했다. 하교 시에 먼저 자리를 뜰 때면 세훈은 귀신같이 경수를 따라와 마지막까지 같이 발을 맞추곤 한다. 경수가 생각하는 세훈은 그냥 싸이코, 친구도 아닌 싸이코였다. 몇 년 동안 친구 행세를 하며 자신을 쫓아다니는 싸이코.


“야, 도경수. 수업 안 들어가고 뭐해.”


머리는 꽤 밝은 갈색이고 (자신은 자연이라 주장했다.) 교복은 X꼬가 낄 정도로 꽉 조이지 않은 남자가 걸어와 세훈을 향해 인사했다. 세훈은 응, 이라며 짧게 인사 아닌 인사를 하고 다시 몸을 휙 돌렸다. 종대는 활짝 웃더니 경수의 어깨에 둘러진 세훈의 팔을 내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경수, 내가 좀 데려가야겠는데. 그러거니 말거니, 종대를 힐끗 쳐다본 세훈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데려가던지. 종대는 고맙다며 경수의 팔을 잡고 꽤 촐싹 맞게 복도를 뛰어다녔다. 경수는 그런 종대를 따라 걷느라 조금 힘이 부쳤다.


“수업 들어가자.”


종대가 경수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경수는 고맙다며 헤, 하고 웃어보였고 종대는 뭐가 고맙냐며 애늙은이마냥 웃어재꼈다. 위에 언급한 제일 친하고 믿을 수 있는 같은 반 친구는 종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조용한 경수와는 달리 친구도 많고 말도 많은 종대는 경수에게 흥미가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항상 경수와 붙어 다녔고 지금은 단짝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친한 친구다. 이번 년도에 들어서면서 세훈과 같은 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던 경수에게 처음 종대가 다가왔고 지금까지 종대는 경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냐는 선생의 말에 종대는 하하, 웃으며 경수가 아프다고 해서요. 라고 마무리 지었고 선생은 한숨을 내쉬다 앉으라며 짧게 말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인 종대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교과서를 폈다. 보지도 않을 건데 교과서는 왜 피는 거야. 작게 내뱉은 경수의 말을 들었는지 종대가 콧방귀를 뀌며 경수를 쳐다봤다. 너보다는 잘 한다, 뭐. 종대의 말에 웃음이 터질 뻔 한 경수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 위기를 면했다. 종대야, 그런 거짓말은 하는 것이 아니란다.


수업을 하면서도 경수는 어떻게 해야 하교시간에 세훈을 안 마주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꽤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필통에 처박혀 있던, 소름 돋게 날이 슨 칼을 들어 책상에 끼적끼적 낙서 (랍시고는 하지만 책상을 파는 것.) 를 하던 경수는 종대가 제지하는 탓에 칼을 필통에 다시 넣었다.


경수가 종대의 옆에서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수업을 들을 때, 종대는 가만히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경수야, 저거 봐봐. 종대의 말에 어? 하며 놀란 경수가 고개를 들어 창문를 바라보았다. 수업시간임을 인지한 경수가 자신의 입으로 튀어 나올뻔 하였던 함성을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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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어 왜 함성...?ㅠㅠㅜㅜ궁금해요ㅠㅠㅜ왜 때문에 함성이에요?ㅠㅜ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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