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망했어. 굳게 닫힌 현관문에 기대어 고개를 푹 숙인 초롱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는 잘 뜨이지도 않는 눈으로 개선장군 마냥 잘만 열던 현관문이었는데, 오늘은 어째 도통 용기가 나질 않는다.
" …미쳤어, 박초롱. "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거야! 밖에 있는 사람이 들을세라, 초롱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평소보다 신경써서 잘 빗어둔 머리를 쥐어뜯는 것은 덤이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어젯밤부터 수백번을 생각해봐도 머릿속은 대답을 한가지 밖에 내어주질 않았다.
' 잘 들어가라. '
' ……. '
' 왜? 할 말 있어? '
' …야, 차학연. '
' 뭐, 임마. 자꾸 뜸들이면 나 먼저 들어간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 …좋아해. '
좋으니까.
' ……. '
' 내가, 너 좋아한다고… '
박초롱이, 차학연을 좋아하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치만 어제의 초롱의 행동은 충분히 성급하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초롱도 그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정말 이제 친구라도 못하게되면 어떡하지. 에휴에휴. 깊은 한숨만 푹푹 내쉰 초롱이 심호흡을 한번 하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이 문을 열면, 여느때처럼 그 애가 서있겠지. 그럼 나도 평소처럼 아무렇지않게 대하면 되는 거야. 아니, 어제 한 고백은 장난이었다고 할까?
이제 정말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려고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때문에 또 다시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한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평소보다 배로 신경썼음에도 불구하고 지각을 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걸 눈치 챈 초롱이 허겁지겁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그리고 그 문 앞엔…
" 안녕. "
여태까지 그랬던 것과 같이 그 애가 서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아이의 얼굴에 초롱이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어제 충동적인 고백을 뱉기 전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아니 어쩌면,
"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냐. 지각하겠다. "
19년을 같이 지내온 소꿉친구를 좋아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 …나도. '
' …어? '
충동적이었지만 나름 오랫동안 초롱을 앓게했던 고백에 돌아오는 건 성의없는 대답이었다.
' 나도 너 좋아한다고. '
' ……. '
' 내일 보자. '
난 너를 친구로써 좋아하는 게 아닌데.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용기를 내서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한 게 아닌데. 하고싶은 말은 많았지만, 초롱은 차마 그 말들을 목구멍 밖으로 내보내질 못했다. 친구로서가 아니라 정말 널 남자로서 좋아하는 거라고 말하면 정말 좋은 친구로도 남지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 …겁쟁이. "
겁쟁이 박초롱. 패기있게 고백해놓고 친구로라도 못남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책상 위에 엎어져있던 초롱이 남몰래 인상을 썼다. 이럴거면 그냥 계속 혼자서 속앓이하던가… 어젯밤부터 한숨과 후회을 입에 잘고 사는 기분이었지만, 초롱은 그만큼 두려웠다. 19년 동안 함께해온 소중한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그렇게 소중한 친구를 나는 왜 좋아하게 된거지… 이유를 생각해보려고해도 딱히 마땅히 떠오르는 이유도 없었다. 그냥. 좋으니까. 같이 있으면 즐겁고, 떨어져있으면 생각나니까. 처음엔 그저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설레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감정의 변화를 눈치챘을 땐 이미 저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있는 중이었다. 이왕 고백에 실패한 거 아예 그냥 마음을 접어볼까하는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니었지만,
" 너 또 아침 안먹고왔지? "
" …어. "
" 도대체 언제 말 들을거야, 이 아줌마야. "
머리에 세게 딱밤을 놓으면서도 책상에 놓아주는 우유 하나에 또 다시 혼자 설레고 말았다.
" 그래서, 결국 차학연은 장난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
" …응. "
그 새끼 그거 눈치 없는 건 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진짜 넌씨눈이네, 넌씨눈이야. 입 안 가득 담겨있던 밥알까지 튀어가면서 역정을 토해내는 은지를 보며 초롱은 그저 어색하게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장난으로 받아들인걸까. 내 마음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싶어했던 건 아닐까? 맞은편에 앉아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은지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 또다시 깊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빠져버렸다. 어젯밤부터 내리 몇시간을 끙끙대도 학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고 여기서 마음을 접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기도 하고… 결국엔 걔를 좋아한 내 잘못이야, 내 잘못. 항상 끝은 자기비하로 끝이 난다. 평소에 좋아하던 반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입도 먹지 못한 초롱이 아무 음식에도 닿지못한 깨끗한 숟가락을 결국 내려놓는다.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 박초롱이 밥을 다 마다하고, 진짜 걱정인가보네. "
한참을 이야기를 늘어놓던 은지도 수저를 내려놓곤 시무룩해있는 초롱의 눈치를 살폈다. 고개를 숙인 초롱의 정수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은지가 입을 열었다.
" 그러지말고 다시 한 번 고백해봐. "
" ……. "
" 어짜피 이렇게 계속 친구로 지내는 것도 넌 괴로울 거 아니야. 이왕 고백한거, 한번 더 용기내서 말해 봐. 그런데도 걔가 아니라고하면, 정말 깔끔하게 단념하는 거야. "
" ……."
" 어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일 것 같은데. "
정말, 그런걸까. 그렇게하면 진짜 마음을 비우고 다시 전처럼 친한 친구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초롱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여느 때와 다를 바 하나 없는 하교길이었다. 어제와 달라진 건 초롱의 마음가짐 뿐이었다. 평소같았으면 학연이 이어폰 한 쪽을 내밀기도 전에 뺏어들어 이것저것 노래를 고르며 티격태격 댔을테지만, 오늘은 학연이 내미는 이어폰 한 쪽을 거절했다. 이 상태에서 이어폰 한 쪽씩 나눠끼고 같은 노래를 들으면…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몰라. 고개를 푹 숙이곤 눈을 꾹 감고있던 초롱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옆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 ……. "
학연은 평소라면 나눠꼈을 이어폰을 혼자 양쪽에 다 끼고 있었다. 예전에 저였다면 어울리지도 않는게 왠 똥폼을 다잡냐고 비웃었을테지만, 지금은 이런 옆모습도 멋있어서 가슴이 뛴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박초롱.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였어. 어휴. 오늘만해도 벌써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또 뱉곤, 초롱은 짐짓 비장한 표정을 해보였다. 은지 말대로, 정말 용기를 내야겠어.
" 야, 차학연. "
…실상은 그가 노래를 듣고있다는 점을 이용한 도둑고백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다.
" ……. "
" 내가 어제 너한테 좋아한다고 한 거 있지… "
이렇게까지 할만큼 난,
" ……. "
" …친, 친구로 좋다고 한 거 아니야. "
니가 정말 좋다.
" …진짜 좋아해. "
드디어, 말했다. 비록 그는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에, 초롱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눈가에 방울방울 맺혀있던 눈물들이 기어코 툭툭 떨어졌다. 차학연이 이걸 보면 왜 우는건지 또 꼬치꼬치 캐묻겠지? 어서 빨리 눈물을 닦아내야겠다는 생각에 눈물로 얼룩진 손등을 교복치마에 대충 문질러닦고,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가려던 찰나,
" 나도 너 좋아한다니까. "
손목이 붙잡혔다.
" ……. "
" 내가, 너 좋다고 했었잖아. "
" ……. "
" 어제도, 방금도. "
눈물이 흐르고있을 눈이었지만, 초롱은 고개를 들어 학연을 쳐다봤다.
" 난 단한번도 너를 친구로서 좋아하는 거라고 말 한 적 없는데. "
저를 매우 치세요 ㅠ.ㅠ (클릭클릭) |
제 남돌 여돌 최애들인데 사진정리하다가 나름 케미 터지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쓰게됐는데... 망했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ㅠ♡ㅠ 사실 빅스X에이핑크 다른 멤버들로 구상해놓은 것도 있는데 못쓰겠어... 얼마나 큰 똥일지ㄷ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