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브금은 독자님들이 땡기시는 것들로 ^_^※

늑대소년, 그리고 또다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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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즘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어?"
"오랜만에 본 삼촌은 안중에도 없지? 이 삼촌은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 본다고
맨날 집에 붙어있는데 조카라는 녀석은 항상 사라져있고..."
나를 장난스럽게 노려보는 삼촌의 눈빛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 미안. 그냥 여기 공기가 좋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가 좋네. 뭐 어때, 나 겨울방학은 많이 남았는데."
"그렇긴 한데, 이제 곧 가야하니까 그렇지."
"응?"
삼촌의 말에 내가 의아스럽단 표정을 짓자
알고 있었다는 듯 삼촌이 말한다.
"형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좀 더 빨리 올라가게 됐어. 나도 너희 가족이랑 오래있고 싶었는데
형이 일 때문이라니까 어쩔 수 없지. 나야 원래 여기 머물고 있었으니까 뭐."
삼촌의 말에 순간 시야가 뿌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여 말했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정상적 이였다.
"언제... 올라가는데."
"이틀 후에. 형수님이랑 형은 일찍이 짐 싸고 계셔.
오늘 내일 놀고 그 다음 날 편하게 가시겠다고."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
아직은 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그 남자의 말소리를 듣는 것도,
그 남자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말하는 법...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응? 뭐라고?"
나에게 되묻는 삼촌을 쳐다보며 말했다.
"삼촌. 우리 잠깐만 시내 좀 나갔다 오자.
나 갑자기 필요한게 생겼어."
"시내? 지금?"
"응. 지금."
* * *
문을 두드리니 남자가 문을 열어온다.
평소처럼 나를 멀뚱히 쳐다보지 않고 조금은 슬픈 낯을 띄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길래
내가 먼저 그를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선물 주러 왔어요."
남자에게 가방을 불쑥 내미니 남자가 가방을 멀뚱히 쳐다본다.
참 한결같은 남자의 반응에 나는 조금은 안심이 됬다.
남자의 침대에 가방에 있던 것들을 한가득 꺼내보였다.
순간접착제, 목공용 풀, 흰색 테이프와 조그만 실못까지.
남자는 물건들을 보고도 갸웃거리는 표정 이였다.
뭐가 뭔지 모르는 그를 뒤로하고 그것들을 한아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기타조각까지 주섬주섬 품에 넣는데 남자가 또 안절부절 못한다.
그런 남자를 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기타 고쳐줄려고 그러는 거예요."
남자의 표정이 갸우뚱.
"기타, 고친다구요. 붙이는 거!"
남자의 눈 앞에서 기타조각을 붙이는 시늉을 하니
곧 남자의 표정이 밝아진다.
나도 따라 웃어주며 나무조각들을 주워 밖으로 가져갔다.
남자와 함께 조각을 이어 붙이고, 못을 박고, 테이프로 붙이니
남자가 금새 나를 따라 기타 조각을 하나씩 붙여간다.
집중을 하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쳐다보고 있자니 다시 생동감 있어진 그의 눈이 내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가봐요."
"..."
"기타 하나 고치는 거에 그렇게 좋아하는거 보면..."
나의 말에도 남자는 기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테이프를 하나하나 붙이고 있었다.
그런 남자를 뒤로하고 조용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방으로 들어오니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가져다준 짙은 색의 담요와 벽에 듬성듬성 붙여있는 종이들.
선반에 놓인 잡동사니들과 그가 써온 공책들.
내가 준 가위와 구석에 쌓여있는 몇 개의 초.
나는 남자의 책상에 앉아서 그가 쓰던 연필을 집어들고
조금은 큰 글씨로 편지를 써내려 갔다.
「 당신이 이 글을 알아 볼수 있을 때쯤, 당신이 어떻게 됬을지, 내가 당신의 옆에 있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답장 한번만 해줘요. 나한테. 」
종이를 차곡 차곡 접어 그가 처음으로 나를 그려준 종이 위에 겹쳐 꽂았다.
그림 아래에는 삐뚤빼뚤 써진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창고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새 남자가 대충 본래의 모습을 찾은 기타를 들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려는데 역시나 두 눈 가득 이 세상의 슬픔이란 슬픔은
다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눈으로 기타를 내려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기타치는 모습을 흉내내는 그에게 다가가 옆에 털썩 앉으니
움찔하며 나를 쳐다본다.
"와- 다 고쳤네요! 진짜 기타 같다, 정말 잘했어요!"
내가 활짝 웃으며 남자와 눈을 맞추자 남자는 이내 자신도 웃어보인다.
희미하게 미소 짓지 않고, 활짝.
처음으로 보는 남자의 활짝 웃는 얼굴에 순간 당황스러워 얼굴이 굳었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남자의 얼굴이 너무 예뻐서.
사랑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 이런거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남자의 표정에.
그리고 다시 한번 나도 활짝 웃어보인다.
나도 이 사람 못지않게 그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지금 웃고있는 내 모습이 못나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 * *
"짜잔!!"
다음 날, 나는 남자의 식물들에 물을 같이 주고,
남자에게 연필을 깎는 법을 알려주었다.
초에다 불을 옮겨 붙이는 법을 다시 알려준 뒤에서야 나는 남자 앞에 책 몇 권을 내밀었다.
호기심을 보이는 남자의 표정에 책을 한권 한권 들어보이며 설명을 해줬다.
"자, 이건 글씨 쓰는 공책 이예요. 언제까지 기억 니은만 쓰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이거는 단어공부! 그림도 있으니까 잘 할수 있을 꺼예요. 말을 잘 알아들으니까, 그죠?
그리고 요거는 초등학생 교과서예요. 한번 읽어보면서 문장 같은 것도 공부 해봐요."
남자에게 책을 내미니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든다.
나는 그런 남자의 눈을 마주치며 말을 한다.
"이거 보고 글만 말고, 말도 열심히 배워봐요. 말 많이 배워서 저기 있는 동화책도 직접 읽어보고,
글씨 따라쓰기만 하지 말고 직접 편지도 써봐요.
그리고 아주 나중에...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돌아왔을 때, 그 여자한테 말도 걸어줘요.
그러면 정말 정말 좋아할 꺼예요. 알았죠?"
내가 말하는 동안 남자는 내 눈만을 올곧게 쳐다봤다.
이제는 이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탁한 듯 했지만, 티없이 맑은 눈이 남자가 한없이 순수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내가 동화책 읽어 줄께요. 여기 누워서 자요. 벌써 밖도 다 어두워졌네."
내가 침대 옆을 손으로 치며 말하자 남자는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는다.
그 위에 담요를 덮어주고 책을 펼쳐 천천히 읽어준다.
눈사람.
그러고보니 이 허허벌판에 있는게 다 눈인데
남자와 눈사람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는데 남자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책을 책상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하지만 아마 그는 내가 나가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유독 귀가 밝은 그였으니.
문을 꼭 닫아주고 창고를 나서니,
어둑해진 바깥을 유난히 둥그래진 달이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주위에 쌓인 눈을 조심스럽게 모아 조그만 눈덩이를 만들었다.
두개를 쌓아올리고 조그만 나뭇가지를 양쪽에 꽂으니
제법 눈사람 같이 생긴 녀석이 만들어졌다.
조심스럽게 눈사람을 울타리위에 올려 놓고 문을 나섰다.
* * *
"삼촌."
"응, 조카."
"삼촌이 여기 있는 동안만, 일주일에 한 번씩 저기 저 집에다가 양초 좀 가져다주면 안될까?"
"양초?"
내 말에 삼촌은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손가락이 가르킨 곳을 따라 눈을 돌린다.
마치 처음 삼촌이 그 집을 가르쳐 줬을 때,
그 쪽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처럼.
곧 삼촌은 내 손가락의 끝이 그 집이라는 걸 알아채고 나를 내려본다.
"부탁할께. 여기 있는 동안만 이라도. 응?"
"..알았어."
"..진짜?"
"우리 조카 부탁인데 해 드려야지."
벙쪄있는 내 표정을 보고 삼촌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를 배웅해주는 삼촌에게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차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지켜보았다.
처음 올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
언덕 위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
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였다.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남자의 올곧은 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순간 울컥하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넘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항상 내가 먼저 건넸던 인사를, 남자는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남자가 처음으로 내게 먼저 인사를 해준 날,
난 그와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 * *
42년 뒤
예전과 똑같이 허허벌판에 눈만이 소복이 쌓인 길은 여전히 하얗고, 깨끗했으며, 아무것도 없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골의 풍경은 그 옛날, 내가 하얗게 센 머리와는 달리 새카만 머리를 가지고
쳐지고 늙어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얼굴과는 다르게 싱그럽고 그 나이에 맞게 웃을 줄 알았던
얼굴을 가지고 왔을 때와 여전히 똑같았다.
곧 차는 너무나 오랜만이여서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익숙한 길에 세워졌고,
아들과 며느리는 먼저 내려서 분주하게 짐을 실어내리고 있었다.
"우와- 여기가 할머니 삼촌이 만들어준 별장이야?"
"그럼- 좋지?"
"응, 무지무지!!"
해맑게 대답해오는 어린 손자녀석은 별안간 별장 주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난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 뒤로 단 한번도 다시 돌아온 적이 없었다.
간간히 삼촌을 통해 매주 놓고 갔었던 초가 꾸준히 사라지고 있었다는 소식으로
그가 여저히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었을 뿐 이였다.
이제서야 내려온 별장은 여전히 변함없이 새햐얀 벌판에 장난감집을 올려 놓은 것마냥 동화같은 모습 이였고,
하얀 눈이 가득 쌓여 횡한 모습 또한 변치않고 여전했다.
그런 풍경에 취해 시원한 눈 냄새를 맡고 있는데
손자 녀석이 별안간 나에게 뛰어온다.
"할머니, 할머니-!!! 여기 편지 있어, 편지!!!!"
손자 녀석이 고사리 같은 조그만 손으로 나에게 가져다준 무언가는
삐뚤빼뚤 서툴게 접힌 편지였다.
그 겉에는 서툰 글씨체로 불려본지도 오래된 내 이름이 써 있었다.
"이거 할머니 이름 맞지? 그지??"
"으, 응..."
내 아래에서 내 옷자락을 붙잡고 호들갑을 떠는 손자를 아들에게 보내고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찬찬히 펼쳤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글씨만큼이나 정갈하지 못한 글씨체였지만
한자 한자 열심히 쓴 듯 꾹꾹 눌러쓴 모양이 선명했다.
「 순이가 왔었습니다. 순이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순이에게 알려준대로 말을 건넸습니다.
순이는 울었습니다. 순이에게 동화책도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순이가 잘 때 언덕으로 나와 순이가
가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순이는 예전보다 조그만 상자를 타고 갔습니다.
나는 순이를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리에서 주저않을 수밖에 없었다.
또박또박 어린아이처럼 쓴 길지 않은 편지로 그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순이를 아직까지도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고. 당신을 사랑 할수 없다고. 하지만 고맙다고.
그가 사랑한 여자와 그의 사이에는 나와 그의 추억이 스며들어 있었고,
그 남자는 또 혼자가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던지도 40년도 더 지난,
60대 할머니가 되버린 내가.
그 시절의 어린 소녀처럼.
나는 그에게 그의 소녀가 아닌,
또다른 소녀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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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드디어 글이 끝이 났습니다!_!
늑대소년을 봤을 당시, 마지막에 창고안에서 앉아있던 철수를 보면서
혼자 내심 속으로 어떻게 철수가 저렇게 잘 살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혼자 망상을 한 끝에 이런 글을 탄생시켰네요ㅎ_ㅎ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__*)
+) 그리고 저의 글을 읽어주신 소수분들께,
이 글의 원본인 한글파일을 메일링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읽으신 글들과는 차이가 있고 오타들이 많은 모자란 글입니다.
혹시라도 한글파일을 원하시는 분들, 메일을 남겨주세요*_*
저의 순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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