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정인 (月下情人)
달빛 아래 사랑하는 사람.
언제나 일탈은 짜릿했다.
연못 근처에 있는 정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연못에 떠있는 연꽃들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였다. 하늘은 그 어느때보다 높고 푸르렀다.
그 날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날이었다.
-
장신구들이 가득 놓여져있는 곳으로 내 시선이 향했다.
팔찌 하나가 내게 나 좀 사가시오, 하는 듯 내 눈길을 끌었고 나는 마치 자석에 끌리듯 그 상점 앞에 가 섰다.
한참을 그 장신구를 쳐다보자, 상인은 내가 답답했던 건지 거, 빨리 살거면 사지그려? 라며 나를 재촉했다.
" 아, 저 그럼 이거 … . "
" 이거 하나 주시오. "
내가 사려던 그 팔찌를 누군가 낚아채 가져갔다. 상인은 누가 먼저 가져가던 집은 사람이 먼저라는 듯 은냥 하나 주시오. 라며 그냥 그 팔찌를 주었다.
은냥 하나를 턱 건네며 유유히 떠나려던 그 자를 잡았다.
" 아니, 저기! "
" 무슨일이오? "
" 그 팔찌, 제가 먼저 사려고했사온데 …. "
" …아, 이 팔찌 말이오? 그런데 이미 내가 산 것을 어찌하겠소. 먼저 집은 사람이 임자인것을. "
" 저에게 다시 파시지요. "
" 싫소. 내가 왜 그래야하지? "
" …그야…. 어…. "
" 이렇게 말장난하고 있을 시간 없소. 나는 그럼 이만 가… . "
"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
" … 여인이 직접 만든 것이오? "
" … 예. 제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손수건입니다. 후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전해주려고 고이 아껴두었던 손수건인데…. "
" 그런데 어찌 내게 이 손수건을 주려고 하는것이오? "
" 그 팔찌가 너무도 갖고싶어서…. "
" … 그냥 팔찌 가지시오. 손수건은 내게 주지 않아도 좋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한땀한땀 수를 놓았을 터인데 내가 어찌 그걸 받겠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전해주시오. "
" 예. 고맙…. "
" 저… 그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온데. "
" 말씀하시지요. "
" 이 팔찌, 누군가와 나눠 끼고 싶은거요? "
" 그게 왜 궁금하신 것이옵니까? "
" … …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았소. 그나저나 귀한 집의 여식같은데 이리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 것이오? "
" 이건 비밀인데 제게 팔찌를 주셨으니 특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몰래 나온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언제든 일탈은 짜릿한 법이지요. "
" 어허, 일탈을 즐겨하는 양반집 규수라니. 부모님께서 골머리 썩히시겠소. "
" 허,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 쪽 부모님도 꽤나 골머리 썩히실 듯 싶사온데. "
-
팔찌때문에 만난 이 남자와 이렇게 밤 늦게까지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다보니 같이 시장을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늦어졌다.
우린 마음이 꽤나 잘 맞는 상대였다.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도 한 양반집의 자제인듯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이지 너무 재밌었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가도 어딘가 달랐다.
내 이야기를 흥미롭다는 듯 들어주는 그의 표정을 볼 때면 괜시리 볼이 붉어지는 것 같기도했다.
그와 함께 있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햇빛이 얼굴을 감추고 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날이 벌써 어두워졌소. 어서 집에 들어가보시오. 부모님께서 걱정하시겠소. "
헤어지자니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이렇게 보내면 그냥 왠지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 헤어지기엔 오늘 보낸 시간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 그의 앞에 가서 섰다.
" 이 팔찌, 가지시지요. 가지고 싶어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 이 팔찌를 나눠끼자는 것이오? "
" … 예. "
팔찌를 나눠끼자는 듯 팔찌를 건넨 내가 당황스러웠던 건지 그는 토끼눈을 뜨곤 팔찌를 나눠끼자는 것이냐며 내게 묻다가 환하게 웃었다.
환히 웃는 그 모습에 또 한번 두근거렸다.
" … 이름. 알고싶소, 낭자의 이름. "
" … 탄소입니다. "
" … …. "
" 왜 말이 없…. "
" … 이만 가보겠소. 오늘 즐거웠소. "
-
집으로 돌아가자 다들 내게 어딜 또 돌아다녔냐며 타박하기 바빴지만 나는 그저 그 남자 생각뿐이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으며 갑자기 이만 가보겠다고 칼같이 굴던 그 남자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기 이름은 말도 안해놓고선.
-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리를 누군가 망치로 친 기분이었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이건.
왜 하필 그녀였을까. 왜.
오늘 하루 내내 그녀와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여겼었던 이 팔찌가 갑자기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 아버지의 오랜 숙적의 딸이었다.
*
월하정인(月下情人)
삼경 깊은 밤 창 밖에 가는 비 내리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환정(歡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오니,
다시금 나삼 잡고 뒷날 기약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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