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3248475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bgm과 같이 들어주세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 03 

 

 

-

 

  


"...으..."


힘겹게 눈을 떴다. 널부러져 누워 있었던 상체를 일으키니 갑작스레 띵해지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느껴지는 축축함에 이마를 짚었던 손을 내려다 보니 피가 묻어있어 히익-, 하고 놀라는 소리를 냈다.

아, 누가 날 끌고 갔었지. 나를 제압하려고 이 꼴로 만든건가...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덮쳤다.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일어나기엔 무리가 있는 듯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옛날 느낌이 풍기는 다채로운 방 안, 그리고 작은 탁상 위의 하얀 술병과 술잔이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평소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곳, 그리고 아까 민윤기가 나에게 해줬던 말을 종합해본다면,

나 지금 기방으로 납치 된건가?


"아, 따가워."


무의식적으로 이마에 난 상처를 만졌다가 느껴지는 따가움에 곧바로 손을 뗐다. 어쩌지, 여긴 또 어떻게 빠져나가야할까.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까부터 생기는 기이한 상황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진절머리가 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방 안을 살펴 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창호지 문에 풀린 다리에 애써 힘을 주어 그 곳 까지 기어갔다. 문과 가까워지니 점점 커지는 소란스러운 소리는 이 곳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케 해주었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 사이로 넘어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창호지 문을 살짝만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여자들이었다.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옷을 입고 - 입은 건지 걸친 건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 귀와 목과 손목 등에서는 서로 자신을 뽐내듯 반짝 거리는 장신구들.

그런 여자들은 모두 호호 거리며 남자들의 품에 안겨 아양을 떨고 있었다.


"맞구나, 기방."


창호지 문을 닫고선 꽤나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실제로 담담했던 것은 목소리 뿐, 내 시선은 허공을 맴돈 채로 불안하게 떨고 있었으며 점점 덮쳐오는 두려움에 한기가 도는 몸은 나를 더욱 웅크리게 만들었다.

그러기도 잠시 내 눈에 들어온 검은색 도포. 산중에서 민윤기가 나에게 이 도포를 덮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민윤기.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내가 도망갔다고 생각하려나?"


픽, 인상이란 인상은 다 찌푸린 채로 나를 찾아다닐 민윤기의 모습을 상상하다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이 낯설고 험한 곳에서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민윤기 생각 한 번 했다고 마음 한 켠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오니, 이 곳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러는건지, 내가 살던 곳의 윤기 오빠가 생각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정을 너무 쉽게 붙이는건지 영문을 모르겠는 와중에도 민윤기의 도폿자락은 내게 더욱 끌어안겨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 어떻게 나가지. 막막한 상황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차피 똑같을 광경에 나 조차도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창호지 문을 한 번 더 슬며시 열어보았다. 역시나 아까와 같은 문 밖의 모습에 애꿎은 입술만 깨물며 다시 문을 닫으려는 순간, 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말소리에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 오늘 들어온 아이는 뭔가 다르다는 얘기가 있던데.

- 예, 옷도 요상한 게 머리카락이라던지 생김새도 이 곳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더랍니다.


날 얘기하는 건가? 늙은 남자와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 그렇다면, 색목인이라는겐가?

- 그건 아니라 합디다. 조선 사람과 생긴 것은 비슷하다만 무언가가 다른...

- 알았네, 내 직접 보면 되는 것 아닌가?

- 예, 바로 이 방입니다.


화들짝, 어느새 가까워진 목소리들에 놀라 거의 기다싶이 방구석으로 도망쳤다. 창호지 문으로 보이는 두 개의 그림자들은 내가 있는 방 앞에서 멈춰섰고,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건지 서로 껄껄 거리며 웃음을 연발했다.

좋은 시간 보내시지요. 상대에게 존칭을 쓰는 중년의 남자는 이 말을 끝으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내 방문 앞에 서 있는 늙은 남자는 곧 목을 큼큼, 하고 가다듬고는,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 밖의 그림자로 보이는 모양새가, 마치 '내가 양반이오-' 하며 되도 않는 격식을 차리는 것 처럼 보였다.

두려움에 심장이 쾅쾅 뛰기 시작했다. 민윤기의 도폿자락을 꼭 쥐며, 천천히 열리는 문을 노려보았다.

곧 열린 문 사이로는, 늙은 양반이 들어와 기분 나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괴상한 생김새의 계집이라 하더니, 내 이제야 그 말 뜻을 이해하겠구나."

"..."

"이리 와 보거라."

"싫어요."

"어허, 오라면 와야지. 어찌 눈을 그리 모나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냐, 격식을 차리지 못할까."

"격식이라뇨, 나한테 못된 짓 할 거잖아요."


공포감으로 덜덜 떨리는 몸에 애써 힘을 주며 양반을 노려봤다. 양반의 기분 나쁜 표정은 꽤나 예의 없는 내 말에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는 천한 계집이로구나."

"...더러워."

"...방금 뭐라고 하였느냐?"

"그 쪽, 더럽다구요. 무고한 여자들 기방으로 납치해서 못 할 짓 한다는 얘기 듣긴 했는데, 난 그게 겉모습 말짱한 양반일줄은 몰랐지."

"..."

"사람한테 겁이란 겁은 다 줘 놓고 격식을 차리라구요? 속은 그딴식으로 썩어 빠졌으면서 겉치레 하는 거, 진짜 드럽고 토 나오거든요?"


찰싹, 내 뺨을 세게 내려친 양반의 표정엔 분노가 가득했다.

우리 아빠도 나한테 뺨 때린 적 없는데. 내가 왜, 어쩌다 이딴 대우를 받게 된걸까. 불이 붙은 듯 화끈 거리며 아려오는 뺨 때문인지, 지금 내 신세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눈가에 물이 맺혔다.

아, 자존심 상해. 눈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게 애써 눈에 힘을 주고 개같은 늙은이를 더욱 노려보았다. 눈깔이 빠지도록.


"계집년 주제에, 어디서 감히!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분을 참지 못하겠는건지, 나에게 얼마나 더 한 해코지를 하려고 바깥의 사람을 부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양반이었다. 아까의 격식을 차리라는 토 나오는 가식들은 어디 갔는지, 지금 양반의 모습은 그저 꼰대부리는 변태 노땅 할배일 뿐이었다.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는 바깥에 양반은 한 번 더 사람을 불렀다.


"여봐라! 왜 대답이 없느ㄴ,"

"부르셨습니까~?"


...뭐지, 이 밝은 기운.

목소리의 주인은 양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여유 넘치는 미소로 양반을 바라봤다. 양반은 이 남자를 보고 가히 놀란 듯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자,자네가 여긴 무슨 일로... 하며 말을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뭐야, 한 패가 아니야? 그럼 저 남자는 뭐지?

들어올 때 부터 온 세상의 밝은 기운을 다 끌어모은 듯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양반과 나를 당황하게 한 이 남자는, 양반의 얼굴을 보고 과도하게 놀라며 - 자세히 말하자면 놀라는 척에 더 가까웠지만 - 약간의 오버액션을 첨가한 채 능글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아니! 선비는 정절을 중요시하며 여자를 유흥 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라고 가르치셨던 양반님 아니십니까~?"


와. 거의 폭탄급이다. 남자는 특히 '어리석은 짓이다'를 말할 때 임팩트를 주어 '어~리석은 짓이다!' 하며 강조하여 말했다.

일부러 큰 목소리를 내는건지는 몰라도, 이 남자의 말에 복도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라 수근 거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활짝 열어 놓은 문 덕에 이 방 안은 더욱 더 구경하기 쉬웠을 것이었다. 남자는 여유로움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양반님께서 거금을 들여 여인을 납치하라 명하시고 입에 담지도 못 할 짓들을 저지르시다니, 양반님의 가르침은 여태껏 모순 되었던 것이었단 말입니까?!"

"ㅈ, 자네 지금 뭐라는 겐가! 어째서 있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지어내는 것이냔 말이다!"


양반은 매우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에도 눈 하나 깜빡 않는 남자의 표정은 미소로 일관되어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곧 안타깝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제 말이 정녕 헛되었다면, 제가 무엇 하러 관군들까지 끌어들였겠습니까?"

"...뭐라?"


양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티비에서만 보던 관군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와 내 앞의 양반을 제압했다.

뭐야, 진짜 관군들이야? 여기가 진짜 조선시대이기라도 한 거야 뭐야? 혼잡한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내가 진짜 수백 수천년 전으로 오기라도 한 건가? 진짜 그럴 수도 있는거야?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잠시, 큰 소리가 들리는 것에 다시 고개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관군들은 손쉽게 양반을 제압했고, 양반은 그 곳에서 빠져나가려 택도 없는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문 사이로 관군들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한 젊은 남자가 양반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뭐 하는 것들이냐! 당장 이 손 놓지 못 할까!"

"왜 여기 계시는 겁니까."

"...ㅈ, 자네..."

"분명 전하를 모함하고 반란을 시도했던 이유로 유배를 당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잠깐만, 김태형? 저거 김태형 아니야?
맞네, 김태형 맞네! 똑같이 생겼는데?


"김ㅌ...!"


흡, 순간적으로 김태형의 이름을 외치려다 급히 입을 막았다.

민윤기 생각이 났다. 내 앞에 있는 김태형도 내가 있던 곳의 김태형과는 다른 사람이겠지.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여기 김태형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게 분명해.

다행히도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내 혼란스러움은 더 깊어져 갔지만 말이다.

김태형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양반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요즘들어 여인들이 기방으로 납치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알고 계셨습니까?"

"글쎄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

"유배지를 이탈한 후 조용히 숨어 살며, 부하를 시켜 여인들을 납치한 후 겁탈한 것도 여러번."

"내 얘기를 들어보게 자네! 오해라니까!"

"오해가 있긴 있군요."

"그래! 나는,"

"배울 게 많은 분이라고 믿었었는데, 정말 크나큰 오해였습니다."

"...?"

"저 자를 끌어내거라."

"예!"


군관들은 김태형의 말에 어디선가 밧줄을 꺼내어 양반의 손목을 수갑처럼 묶은 뒤, 그를 기방 밖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기방 안의 몇몇 사람들도 그와 같이 연행 되었다. 구질구질하게도 끝까지 반항하며 우리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양반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양반이 기방 밖 까지 끌려나가자 기방 안에는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태형과 밝은 남자에 의해 끊겨버리고 말았다.


"고맙다, 도와줘서."

"됐다 야. 한두 번이냐?"


원래 친한 사이인가? 서로 편하게 반말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둘의 모습은 영락 없는 친구 같았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복도에서는 기방의 여자들이 기방 밖으로 도망을 치느라 바빴다. 혹여나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까 하는 이유에서겠지, 짐작하며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듯 온 몸에 힘이 빠졌다.


"..."

"..."


하지만 곧 내 앞 쪽에서 도란도란 나뉘어지던 대화가 끊겨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려보니, 두 남자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는 것에 흠칫, 하고 놀라버렸다.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며 조용히 아이컨텍을 하기도 몇 초, 김태형은 이 어색한 분위기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머리...괜찮으십니까?"

"...머리요?"


아, 나 다쳤었지. 피도 꽤 났고. 다친 부분을 살짝 만져보니 피가 굳은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뭐, 이제 안 아파요."

"그래도 치료는 받으셔야 할테니 의원에겐 저희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

"..."

"...호석아, 이 여인을 좀 부축해줘라. 나는 밖에서 말을 준비하고 있을테니."


김태형은 정말 순전히 날 데려다 줄 채비를 하려는건지, 아니면 이 어색한 분위기가 미치도록 싫은건지 도무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표정으로 빠르게 기방을 나섰다.

넌 내가 살던 곳의 김태형과는 좀 다르구나, 그 곳의 태형이는 이 곳의 김태형과는 정말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밝고 친근한데. 잠시동안 내 머릿속에 태형이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애물단지 같던 애가 그리울 때가 다 있네. 하는 생각에 티 나지 않게 웃음을 흘렸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냐?"


밝은 남자, 아니 '호석'이라는 사람에 의해 잠시 풀어진 내 표정은 다시 굳어졌지만 말이다. 호석은 내 앞으로 다가와 다리를 굽혀 쪼그려 앉고는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놀래라."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말이야,"

"네?"

"넌 참 요상한 것 같다."

"..."

"옷차림도 요상하고, 생김새도 요상..."

"...뭐요."

"하게 예쁘고."


말을 끝낸 호석은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코를 찡긋거리고 웃었다.

진짜 뭐지 이 사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만 꿈뻑 거리고 있는 나를 계속 웃음기 있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호석에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어 시선을 돌리곤 중얼거렸다.


"나 보는 사람마다 다 이상하다 그러네..."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구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거든."

"아니 뭐, 기분 나쁠 것 까지야..."

"정호석, 왜 안 나오나 했더니 그러고 있었냐? 빨리 나와, 가자."


이름이 정호석이구나, 내가 있던 곳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던 이름이다. 다 내가 알던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정호석은 자신을 재촉하는 태형에게 '알았다.' 하며 가볍게 대답한 후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키려다, 갑자기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내게 등을 돌린 채 다시 무릎을 굽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발이 그 모양인데 어떻게 걸어서 나갈 수 있겠느냐? 업히거라."

"...업히라구요?"


또? 불과 몇 시간 전 민윤기에게 무겁다는 수치를 당했던 게 생생히 떠올랐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신발까지 사주려 했겠어... 민망함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에 그만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아뇨, 별로 안 다쳤어요. 제가 걸어갈게요."


한 손으로 민윤기의 도포를 챙기며, 반대쪽 손으로는 바닥을 짚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꽤 오래 앉아 있었던 이유인지 잠시 중심 감각을 잃고 휘청였지만, 그래도 금방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정호석을 지나쳐 방을 나섰다.

꽤 긴 복도를 지나 드디어 기방을 빠져나오니 보이는 김태형은, 내가 혼자 절뚝이며 나오는 것을 보고는 커진 눈으로 얼른 나에게 다가와 나를 부축해주었다.


"정호석은 뭐 하고, 왜 혼자 나오십니까?"

"아, 업어준다고 하길래 그냥 걸어 나왔어요. 좀 미안해질 것 같아서."

"아..."


김태형은 과연 내 말을 이해한 게 맞는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에 다다르자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말 위에 태우는 것에 정말 심각하게 놀라 소리도 내지 못 하고 몸을 웅크린 채 눈만 휘둥그레져 있으니, 저 뒤에서 금방 기방을 나온 정호석이 김태형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렇게 갑자기 막 들어올리면 어떡해 이 미친놈아!"

"왜?"

"놀랐잖아! 안 보이냐?"

"...아..."


김태형은 정호석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 듯한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더니, 곧장 내게로 몸을 돌려서 '죄송합니다...' 하며 시무룩한 목소리를 냈다.


"어휴, 넌 맞아도 싸. 빨리 가자. 이 아이 생각보다 많이 다쳤어."

"어, 그래."


정호석은 김태형에게 마구 잔소리를 하며 말에 올라탔다. 그에 김태형도 짧게 대답한 후 내가 탄 말 위에 올라 타고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꽤 흔들릴 테니 제 허리 잡으셔도 됩니다."

"아, 네."

"아까 많이 놀라셨습니까?"

"...조금요."

"..."

"거 봐, 놀랐다잖아."


말의 고삐를 챙기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호석은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또 김태형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에 김태형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호석을 보고 말을 꺼냈다.


"야,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거든."

"일부러 그랬으면 더 욕 먹어야 했거든?"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사람들이 널 보고 쑥맥이라하는 이유나 생각해 봐 멍청아."


행선지를 가는 와중에도 둘의 투닥거림은 끝이 날 줄 몰랐다. 주로 정호석이 김태형을 갈구는 것이, 그리고 김태형은 져 주는 건지, 이기지 못 하는 것인지 자꾸 정호석에게 밀리는 것이 꽤 흥미로워 계속 조용히 이 둘을 지켜보았다.

이 곳에 온 후로 오랜만에 내게 찾아온 편안한 분위기 덕에, 내 입가엔 작게 미소가 그려졌다.


"여자 잘 꼬시는 여우 같은 놈."

"여자 하나도 모르는 고자같은 놈."


이 곳이나 내가 살던 곳이나 서로 투닥 거리는 건 별로 다를 게 없구나.

순간 내가 살던 곳에 맞는 복장을 입고 내가 살던 곳의 말을 사용하며 서로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이 상상 되어 몰래 고개를 숙이고 큭큭 웃었다. 하지만 꽤 흔들리는 말의 승차감에 멀미를 느껴 금방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보였던 것은,


"...어?"

 

 

[방탄소년단] 시간을 달리는 소녀 03 | 인스티즈 

 




다름이 아닌 민윤기였다.

뭐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있었던 거야?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네? 아, 잠깐만요."


나의 놀란 음성에 김태형은 고개를 돌려 내 상태를 물었다.

그에 잠시 김태형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민윤기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그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잘못 본 건가? 너무 빨리 사라져버린 그의 환영일지도 모르는 모습에, 손에 붙들린 도폿자락을 꼭 쥐어 보았다.


"이 도포는 많이 소중한 물건인가 봅니다."

"...네."


김태형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도, 내 시선은 민윤기가 사라져버린 그 곳을 떠날 수 없었다. 내 시야에서 멀어져 사라져버릴 때 까지.  

 

 

 

 

[방탄소년단] 시간을 달리는 소녀 03 | 인스티즈 

[방탄소년단] 시간을 달리는 소녀 03 | 인스티즈 

[방탄소년단] 시간을 달리는 소녀 03 | 인스티즈 

 

 

 

 

 

 

- 

 

안녕하세요 나나라찌 입니다. 

어... 우선 죄송한 말씀 드릴게요. 여름에 뵙고 정말 오랜만인데, 사실 제가 늦은 이유를 구구절절 말하려 하니 핑계 같고, 그렇다고 그냥 아무 말도 않고 글만 띡 올려버리면 독자님들을 무시하는 것 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어떻게 수습을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많이 늦었다는 사실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여러분들께 앞으로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잠수를 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제일 최선인 것 같았습니다. 

늦어서 진심으로 죄송하고, 앞으로 더 노력하는 나나라찌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달소 안에서는 태형이와 호석이가 새로 등장을 하는데요, 이 두 사람은 여러분들(주인공)께 많은 힘과 위로와 편안함을 드리게 될 역할이니까 극 중의 두 사람에게 많은 사랑 부탁 드릴게요! 

아 그리고 또 내용에 '색목인'이라는 단어가 꽤 나오는데(라고 하기엔 1,2,3화 통틀어 두 번 정도 밖에 안 나왔지만...) 혹시 이 단어의 뜻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h3>색목-인〈sup>〈/sup>[발음 : 생모긴] 

중국 원나라 때에, 유럽이나 서아시아, 중부 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 주로 터키 인, 이란 인, 아랍 인을 이르던 말인데 피부색이나 눈동자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입니다. 

 

휴재를 한 지 꽤 지났는데도 몇몇 분들께서 어떻게 찾으신건지 제 글을 읽으시고 계속 연재해줬으면 좋겠다며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여러분들 덕분에 글을 쓸 힘이 더 난 것 같습니다. 제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ㅁ^암호닉 명단^ㅁ^

빙구/정꾸야/공배기/제니퍼/윤꽁/룬/공기/chouchou/나무그늘아래/하푸/너란구원이 

 

 

암호닉 신청은 최신 화(현재 3화)에서 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봬요!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방탄소년단] 시간을 달리는 소녀 03  9
9년 전

공지사항
없음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갸악
9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너란구원이예요! 첫 문단은 혹시 기립성 저혈압입니까? 제게 하셨던 말들은 어디로 간 건지 연중이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이네요~!! 아무튼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9년 전
대표 사진
나나라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독자님!
9년 전
대표 사진
나나라찌
아 기립성 저혈압 맞아요!
9년 전
대표 사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9년 전
대표 사진
나나라찌
정꾸야님 오랜만이예요ㅠㅠ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ㅠㅠㅠㅠㅠ 늦게 왔는데도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흐어ㅠㅠ 다음편 빨리 올게요! 응원 감사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 전
대표 사진
독자4
안녕하세요 작가님 1화부터 봤지만 암호닉을 신청 안한거같네요... 사실 암호닉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쨋든 신청할게요! [강나루] 이걸로 신청하겠습니다ㅎ 근데 정말 오랜만에 오셔서 너무 기쁘구 반가워요!! (기억안나서 다시 정주행 했다는건 안비밀...ㅎ) 쨋든 굉장히 글을 잘 쓰십니더 정말 갑자기 알람울려서 뭐지하고 봤더니 또 이렇게 크으으ㅡ으으 쨋든 잘읽었습니다 작가님!!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다음편이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9년 전
대표 사진
독자5
ㅈ꺅 작가님 안녕하세여 하푸에요!!!! 되게 오랜만에 뵙는데 글 진짜 너무 재밌고ㅠㅠㅠ태형이랑 호석이 나와서 더 흥미진진해진 거 같아여 작가님 너무너무 반갑구요!!!!!!!!!! 제가 꼭 긑까지 챙겨볼테니까 언재 마니마니 래주시요 작가님 시간ㅇ르 달리는 소녀 너무 좋은 거 같아요퓨ㅠ댓글 쓸 때 자꾸 창이 위로 올라가서 더 쓰고싶은데 힘드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타도 양해해주세용.......
9년 전
대표 사진
독자6
와 내용 너무 좋아요!!암호닉 [캔디]로 신청할게요!남주는 누가 될지 궁금하고 또 정국이도 궁금하고 3년 전으로 돌아가라고 한 남자의 정체도 궁금하네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피어있길바라] 천천히 걷자, 우리 속도에 맞게2
10.22 11: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존재할까
10.14 10: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쉴 땐 쉬자, 생각 없이 쉬자
10.01 16:56 l 작가재민
개미
09.23 12:19
[피어있길바라] 죽기 살기로 희망적이기3
09.19 13:16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09.08 12:13 l 작가재민
너의 여름 _ Episode 1 [BL 웹드라마]5
08.27 20:07 l Tender
[피어있길바라] 마음이 편할 때까지, 평안해질 때까지
07.27 16: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같은 마음에게78
07.24 12:2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자2
07.21 15:4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야1
07.14 22: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2
06.30 14:1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새끼손가락 한 번 걸어주고 마음 편히 푹 쉬다와3
06.27 17:28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일상의 대화 = ♥️
06.25 09: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우리 해 질 녘에 산책 나가자2
06.19 20:5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오늘만은 네 마음을 따라가도 괜찮아1
06.15 15: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상에 너에게 맞는 틈이 있을 거야2
06.13 11:5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6
06.11 14:3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잎클로버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2
06.10 14:2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네가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1
06.09 13:15 l 작가재민
[어차피퇴사]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 말 걸1
06.03 15:25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회사에 오래 버티는 사람의 특징1
05.31 16:3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퇴사할 걸 알면서도 다닐 수 있는 회사2
05.30 16:21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어차피 퇴사할 건데, 입사했습니다
05.29 17:54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혼자 다 해보겠다는 착각2
05.28 12:1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05.27 11:0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출근하면서 울고 싶었어 2
05.25 23:32 l 한도윤


12345678910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