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영화 '건축 학개론' 中
'양
아
치
의
순
정'
17
처음과 시작
얼마동안 입을 맞추고 있었을까, 점차 돌아오는 제 정신에 목에 둘렀던 팔을 슬며시 내려 여전히 두 팔로 내 허리를 꽉 안고 있는 그 어깨를 작게 두들겼다.
"......"
"......"
그러자 정말 코 앞에서 입술만 뗀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녀석에 당황해 눈을 내리 깔자, 권순영은 마주대고 있던 코에 짧게 입을 맞춘체 상체를 일으켰다.
"가자, 집에."
"...응."
자연스레 내 손을 꽉 채워오는 녀석의 손가락에 마음이 간질거려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느껴도 참 낯설은 감정이였다.
"야. 어딜 그렇게 갔ㄷ, ...뭐야 두 사람?"
뭐긴 뭐야, 첫 눈에 반한거지. 헛웃음과 함께 뱉어진 녀석의 폭탄같은 발언에 그 누구 하나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체, 손을 꽉 잡은 권순영과 내가 가게를 빠져나가는 모습만 벙찐체 바라보았다. 와중에 녀석은 나 간다-, 하는 태연한 인사까지 건넸지만.
"......"
"......"
말 없이 내 손을 잡은체 앞서 걸어가는 녀석의 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우린 사귀는 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니 방금 입까지 맞췄잖아. 고민하는 내 앞에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던 녀석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체 살며시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너."
"......"
"...키스 해봤어?"
듣고 나서 한 3초 정도는 멍하니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머리는 이게 뭔가 싶은데 입을 제 멋대로 움직여 흑역사를 생성했다.
"...아니."
그래, 난 22살에 첫. 키스를 해 본 여자였다.
"......"
이상하게 녀석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씰룩씰룩, 올라갈 듯 말 듯 한 입꼬리 하며, 따라 씰룩거리는 볼 살까지. 결국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아- 하는 탄식을 내며 미소를지었다. 그런 권순영의 반응에 슬슬 구겨지는 나의 미간도 녀석을 막을 순 없었는지 권순영은 그대로 팔을 벌려 나를 빈틈없이 감싸 안아왔다.
"니가 내 모든 것에 처음이야, 여주야."
"......"
"내 인생에서, 첫사랑이야."
"......"
"나의 처음이자."
"......"
"시작이 되어주라, 여주야."
그렇게 우린 사랑을 시작했다.
들어가. 힘차게 손을 흔드는 녀석을 따라 손을 흔들어주고, 어느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다.
"......"
실 없는 웃음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차가운 날씨인데, '사랑' 이란 두 글자가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돼. 고개를 돌려 사방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춰진, 행복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자. 여주야.]
[❤]
역시, 나의 인생에 기적이였다. 넌, 권순영.
시간은 무섭게 흘러갔다. 어느덧 녀석과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된지 2개월의 막바지를 달려가고 있었고, 우린 추운 겨울 안에서 서로를 향해 열기를 뿜고 있었다. 아, 이제서야 알게 된건데, 그때 소개팅에서 봤던 녀석의 친구들은, 녀석의 동기가 아닌 권순영의 선배들이였다.
그러니까,
권순영이 재수를 했다.
이 말이다.
사실을 알게 된 내가 쏟구치는 자괴감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을때, 녀석은 언제나 그랬듯 내 얼굴을 감싸쥐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고 사정없이 입을 맞췄었다. 내 머리속에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여전히 녀석은 내 머리 속 안에서 살고 있었다.
아, 쪼옴. 이거만 하고 놀아준다고. 아무 죄 없는 입술을 깨물며 굳은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입을 삐죽이던 그 얼굴이 내 오른쪽 팔을 잡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휙, 하고 내뺐다. 아, 권순영 삐졌다.
"순영아."
"......"
"...야, 순영아."
"......"
...단단히 빠졌구나. 콧구녕로 한숨을 뱉은 뒤 잔뜩 토라진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
좋아, 내빼진 않는다. 1단계 성공. 자신감을 얻은 내가 손에 힘을 줘 그 얼굴을 살며시 들어 올렸을까, 순순히 올라오는 그 얼굴엔 '나 삐졌어요.' 하는 5글자가 써져있는 것 같아 결국 막판에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됐다, 넌 내가 화난게 웃기지."
...X 됐다. 내 손길을 피하며 등을 의자에 기대 나에게서 멀어진 녀석이 이젠 팔짱까지 낀체 스트로우만 잘근잘근 씹었다. 최후의 무기가 여기서 나오는 구나, 눈물을 머금고 가방을 뒤졌을까, 안쪽 깊숙히 잡히는 작은 종이 쪼가리를 천천히 녀석에게 내밀었다.
[김여주 이용권.]
녀석의 생일 날 줬던, (내겐) 단지 종이 쪼가리였다.
...근데 쟤 표정 좀 봐,
진짜... 싫다.
눈물을 머금고 나의 과제와 맞바꾼 이용권 덕분에 녀석과 난 지금 부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 피곤하냐? 한 손으로 귤 껍질을 까며 쩝쩝대는 내 물음에 녀석은 (남은 내 한 손을 잡느라)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체 고개를 작게 저었다. 별로? 그리고 입을 벌렸다. 자연스럽게 귤을 넣어주니 햄스터 마냥 오물거렸다.
"순영아."
"응?"
"너 살쪘냐?"
정색을 한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 빠른 사과에도 녀석은 충격의 여파에서 쉽게 헤어나오질 못하는듯 싶었다. 아- 해. 안 먹을래.
아, 김여주. 또 초 쳤다.
우와악, 부사안! 이상한 탄성과 함께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나를 권순영은 창피해 하는듯 싶었다. 저거봐라, 고개 돌린거.
"혼날래?"
미안. 재빠른 사과와 함께 녀석의 앞으로 다가가니 익숙하게 내 패딩 지퍼를 꼼꼼하게 잠궈주는 녀석이였다. 아, 모자 씌우지 마. 조용히 해 뽀뽀하기 전에. 일순간 입을 꾹 다문 나를 보고 피식, 웃던 녀석이 머리에 씌운 내 모자 양 끝을 잡아 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뻐 죽겠어.
"순영아, 바다 보니까 그때 생각 나."
"언제가 생각이 나?"
"그 우리 애들끼리 다같이 놀러갔을때."
"아, 그때 반 애들끼리?"
"응."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났어?"
"너 그때 진짜 멋있었는데. 김여주! 하고 뛰어 들었을때."
"내가 멋있었으면 뭐해, 너가 죽을 뻔 했는데."
"......"
"...나 진짜 속상했어."
정말로 그때가 생각이 난건지, 녀석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 한 손을 두손으로 꼬옥 잡은체 시무룩해진 녀석이 귀여워 머리를 매만지다가 그 품에 안겼다.
"속상했어?"
"물을 걸 물어."
"......"
"얼마나 무서웠는데."
꽉 안아주는 그 몸에, 그때처럼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너는 참 봄같은 사람이여라, 순영아.
"또, 아- 해."
"......"
"빨리."
"...너 먹ㅇ,"
"팔 아파."
...아니 팔이 아프면 지 입에 넣으면 될껄. 마지못해 11번째 받아먹는 회 조각은 점점 내 입으로 전부 사라질 것 처럼 없어지고 있었다. 오물오물 받아먹자 지가 먹은것처럼 히죽거린 권순영이 맛있어? 하고 되물어왔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의 젓가락이 또 다시 회 조각을 향했다.
"아. 배부르다."
"...뭐?"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아직 나오지 않은 음식도 있을 뿐더러, 먹은 건 회밖에 없는데 내 입에서 위가 다찼다는 소리가 나오자 권순영이 일 순간 당황한 얼굴을 비췄다.
"권순영이 먹으면, 뭐 ...다시 배고플 것 같기도 하고."
능청스레 얘기하자, 허- 웃음을 내뱉은 권순영이 두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감싸 왔다. 알겠어 먹을게. 그제서야 제 입을 향하는 녀석의 젓가락에 그제서야 따라 수저를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권순영이기에, 나를 배부르게 만드는 사람이 권순영이기에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작은 미소와 함께 수저를 내려놓고 녀석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배 터질만큼, 행복하다.
순영아.
"...네?"
"방이 한 개 남았다고요."
...다 들린다. 주인 아저씨와 대화하는 녀석을 말없이 바라보니 잔뜩 당황한 권순영이 어... 하는 소리나 연신내며 목을 긁적거렸다. 다들 뭐하는데 이런 추운 겨울에 부산까지 싸돌아 다니는걸까. 주어 없는 쏟구치는 원망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딴데 가도 다 그래."
"...아, 그렇구나."
"야 순영아."
"...어, 어?
"...그냥 자자."
"어차피 손만 잡고 잘꺼잖아."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 애써 웃으며 말하자 잠시 동안 아무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던 얼굴이 이내 픽- 하고 예쁜 웃음을 그린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응, 그래.
혹시 몰라서 챙겨 옷들이 진짜로 쓰일 줄 이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옷정리를 하며 헛웃음을 치고 있었을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 욕실 문 밖으로 하얀 김과 함께 축축한 머리와 수건을 목에 걸은 권순영이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와, 누구세요?"
"뒤질래?"
아마도, 눈이 반쯤은 없어졌을 수수한(?) 나의 쌩얼에 권순영은 느닷없이 데미지를 안겨주었다. 하루종일 같이 있어놓고도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마주보고 한참을 웃고 떠들던 녀석과 내가 어느덧 꽤 늦은 시각에 놀라 잠자리로 발을 옮겼다. 근데 쟤 지금 베개들고 어디가.
"뭐야, 어디가."
"응? 뭐가."
"안자?"
"잘껀데?"
"...어?"
"아, 내가 어떻게 너랑 한 침대에서 자."
실소를 터뜨린 권순영이 못 말린다는듯 벙쪄 있는 내 머리를 작게 헝클인체 그대로 침대 옆 바닥에 깔린 이불에 몸을 눕혔다.
"...순영아, 그래도."
"재워 줄 때 코- 주무시는게 좋을껄요."
옴마야, 낮게 깔린 녀석의 목소리에 등골이 오소소해 재빨리 두툼한 이불안으로 들어가자 낮은 바닥에서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자, 순영아."
"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해볼게."
"......"
"그러니까, 꿈 속에선 나랑 밤새도록 놀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