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피코]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그 중심에 너는 골반 춤을 추고 있었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7/8/5/78587f07a04f87dd35daa48e0f7164f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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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그 중심에 너는 골반 춤을 추고 있었다 |
운명이다. 운명. 온 주위가 찬란해진다. 가슴이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고 머리는 누가 망치로 내리친 것처럼 띵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맞는 건가. 사람의 뒷모습만 보고도 이렇게 첫눈에 반할 수 있는 걸까. 이름 모를 쾅쾅 시끄럽게 울리는 노래를 틀고 저 격렬하게 골반 춤을 추는 너는 누굴까. 좆 같았던 세상이 너의 골반 춤으로 인해 환하게 빛났다. 꺅꺅거리는 주위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저 골반춤을 추는 남자.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를 내 것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미친. 얼굴을 보고 싶은데 도통 보여주지 않는다. 낑낑대며 얼굴을 보려고 사람들을 헤치고 온갖 생쇼를 해봤지만, 끝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어느덧 노래가 끝나고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꺅꺅거리는 소리가 그제야 고막을 아프게 찌른다. 후덥게 서로를 밀치며 엉겨붙어 환호를 지르던 사람들이 하나 둘 힘겹게 빠져나간다. 지훈은 넋 놓고 아까 이름 모를 남자가 올라가 춤을 추던 빈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에 와 인터넷에 검색해본 결과, 이름이 우지호라더라. 우지호. 이름도 예쁘다. 그제야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존나 여우같이 생겼어. 아직 신인가수, 래퍼란다. 아까 춤 춘 건 팬서비스였고 나이는 나랑 동갑. 아, 그런데 사진 아무리 봐도 참 묘하게 생겼다.
* * * *
" 아, 어쩐지 시끄럽더라. 우지호? 처음 들어보네. " " 아직 신인이라서. 와, 그런데 존나 예쁘게 생겼어. " " 남자가 예쁘게 생겼다는건 뭐야. " " 이상하긴 한데, 진짜 예쁘게 생겼어. 나 존나 반했다니깐? 나 팬카페도 가입했어. 등업 기다리는 중. "
미친놈. 수화기 너머 민혁의 욕설이 들려온다. 끊어. 병신아.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민혁의 말과 동시에 통화가 끊겼다. 아, 진짜! 예뻤다니깐! 지훈은 침대에 털썩 몸을 떨궜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니 스멀스멀 잠이 쏟아진다. 몇 번 눈을 끔뻑거리다가 이내 편하게 몸을 바로 누워 잠에 청했다. 지금이 오후 세 시니까 딱 두 시간만 자야지.
얼마나 잤을까. 부스스 눈을 떠서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새벽 두 시를 다다르고 있었다. 아, 이렇게 많이 잤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는 지훈은 어느덧 어두컴컴한 아파트 쪽 창가 너머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배고파. 아침부터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않는 터라 일어나자마자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지만, 딱히 먹을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아, 배고픈데…. 그냥 라면으로 때워야 겠다고 생각해 부엌 곳곳을 뒤적거렸지만, 라면이 나오지 않았다. 아, 맞다. 어제 다 먹었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일단 배가 고팠기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훈은 옷을 꽁꽁 싸매입기 시작했다. 혹시나 몰라 목도리까지 칭칭 둘러매 슬리퍼를 신고 질질 끌며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꾸질한 아파트에 빠져나와 가까운 슈퍼에 들어섰다. 라면 몇 개를 집어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대로 향하는데 항상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아저씨는 없고 자신과 또래쯤 돼 보이는 한 남자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앉아있었다. 질질 슬리퍼를 끌며 계산대에 라면을 올려두자 핸드폰을 내려놓고 삑삑 계산하는 남자. 아, 그런데 얼굴이 굉장히 익숙한데. 2,700원. 짧고 간단한 남자의 말에 지훈은 3,000원을 조심스레 건네주며 슬쩍슬쩍 얼굴을 살폈다. 누구더라.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탁, 하고 300원을 주곤 계산 다 됐으니 빨리 꺼지라는 듯한 남자의 무성의한 태도에 지훈은 약간 미간을 좁혔다가 다시 폈다. 아, 그래.
" 아, 미친! 우지호! 우지호! 우지호! "
그래! 우지호! 내 마음을 빼앗아 간 우지호! 그제야 생각이 나 뭐라 제대로 말도 못하고 병신같이 어버버거리니 그 쭉 째진 눈이 호들갑 떠는 지훈을 흘기며 두꺼운 입술이 아니꼽게 삐죽거린다. 얼굴을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니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슈퍼 아저씨 얼굴이 살짝살짝 보이는 게, 예전에 아저씨가 아들 한 명 있다는 게 우지호일 줄이야. 이건 진짜 운명! 300원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무턱대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 지훈을 보며 눈을 몇 번 끔뻑대는 지호. 저…, 팬인데요. 수줍게 중얼거리다시피 하는 지훈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손을 조심스레 잡아준다. 미친, 우지호랑 손을 잡았어! 감격스러운 마음에 그대로 잡고 위아래로 흔드니 하하, 어색하게 웃어보이고는 재빨리 손을 빼내는 지호.
" 와, 진짜 랩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존나 존경스러워요! 완전 팬, 팬! 팬! "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 " 아, 대박. 대박.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는데…. "
뭔데요. 지호의 짧고 단결한 물음에 지훈은 잠시 머뭇거렸다. 쉽사리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계속 달싹이는 지훈에 지호는 답답할 지경이었다. 뭔데요. 다시 한 번 지호가 묻자 지훈이 결심한 듯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300원을 다시 꺼내 지호에게 내민다.
" 300원 줄 테니까 저번에 췄던 골반 춤 춰주세요. "
미쳤어요? 차마 미쳤냐는 말을 입밖에 못 꺼내고 손사래를 쳐보이는 지호. 이 사람 변태인가? 왜 갑자기 뜬금없이 골반 춤이야…. 일부러 불쾌하다는 눈초리를 봐주니 그런 지호의 눈초리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굳은 의지를 꺾지 않고 지호의 손에 억지로 300원을 얹혀주는 지훈. 막무가내인 지훈의 행동에 지호는 미간을 약하게 좁혔다. 아, 그러니까요. 제가, 우연히 골반 춤을 추시는 걸 봤는데, 와, 쩔던데요. 진짜 멋있고, 그러니까…. 횡설수설 정리가 안 된 말을 꾸역꾸역 뱉으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지훈. 지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물론 자신을 알아보는 팬이 있다는 게 반갑고 고맙다. 하지만 아직 데뷔한 지 오래되지도 않은 신인이고 표현을 잘 못 하는 지호이기에 이런 지훈을 어떻게 맞받아주어야 할지 몰랐다. 한참 정적이 흘렀다가 쭈뻣쭈뻣 지호가 일어섰다. 그래도 팬이니까.
" 저 계속 좋아해 주실 거죠. " " 당연하죠. 아, 완전. 완전. 아, 대박. "
막 자세를 잡는 지호에 지훈은 '숨멎' 지경에 다다랐다. 오직, 나, 표지훈, 자신만을 위한 지호의 골반 춤에 심장이 쿵쾅쿵쾅 금방이라도 몸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아, 노래 틀어드릴게요. 무반주로 추기 민망한 듯 짧게 눈치를 한 번 보는 지호를 발견한 지훈이 핸드폰을 들어 노래를 틀었고 적막이 가득한 슈퍼에 신 나는 음악소리가 크게 울러 퍼졌다. 슬슬 시동을 거는 지호. 지훈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죽이고 지호를 바라보았다. 섹시하게 골반을 돌리며 서툴게 춤을 추는 지호에 지훈은 순간 정신을 그대로 놓을 뻔했다. 노래에 박자 하나 맞지 않는 춤사위가 조금 웃겼지만 지훈은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지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지훈의 시선이 민망한지 재빨리 열심히 골반을 돌리던 몸을 멈추고는 큼, 헛기침을 내뱉자 지훈이 손뼉을 짝짝짝 쳐댄다.
" 미친. 존나 사랑해요. 와, 말이 안 나오네. 진짜, 진짜. " " 민망하니까 빨리 라면 갖고 가세요. " "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와, 와. 그러니까. " " ……. " " 왜 그렇게 예뻐요. 천사세요? 왜 그렇게 섹시해요. 제거예요? "
뭔 헛소리야….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지훈이 억지로 건네준 300원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손을 뻗는데 그런 지호의 손을 턱, 하고 재빠르게 잡는다.
" 제가, 잘해드릴 수 있는데. 진짜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가 봐. 이런 예쁜 천사도 다 있고. " " 네? " " 제가요. 와, 진짜 너무 좋아서 욕이 나오려고 하는데. 이건 운명인가 봐요. 그러니까. 제가 첫눈에 반했는데요. " "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손 좀 놓아주실래요…. "
저랑 사귀면 안 돼요? 지훈의 물음에 지호는 생각했다. 이 인간, 술을 먹은 건가. 빨리 이 상황을 빠르게 대처해나가기 위해 지호는 꼬옥 잡은 지훈의 손을 몇 번 흔들어 보였다. 그리곤 어색하게 웃으며 계산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자신의 핸드폰에 시선을 한 번 머물었다가 지훈에게 박혔다. 번호 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제가 바빠서. 지호의 말에 지훈은 재빨리 손을 놓고는 지호가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눌렀다. 혹시나 잘못 입력하지는 않았는지 몇 번을 확인하다가 이내 제대로 입력돼있는걸 확인하곤 경련이 이르는 입꼬리를 삐죽삐죽 올리며 자신의 입력한 번호에 전화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지잉, 하고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에 울리자 그제야 지호에게 핸드폰을 도로 건네주었다.
" 연락할게요. " " 네, 네. " " 그리고…, 동갑인데 말 놓을게요. " " 아, 네…. "
제발 좀 가세요. 얼굴도 잘생긴 게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뿌듯하기도 한데, 혹시나 번호를 인터넷에 유포한다든가, 지독한 사생팬이라던가, 온갖 안 좋은 생각이 다 드는 지호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 알러뷰. 알러뷰. "
팔을 벌려 크게 하트를 만들며 라면을 들고 부리나케 나가는 지훈. 지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피식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바쁜 일이 생긴 아버지를 대신 오늘 하루 슈퍼 일을 맡게 된 지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저 팬은 죽어도 못 잊겠다고. 지호는 이제 쉽사리 멈추지 않는 웃음을 뱉으며 지훈이 저장한 번호를 확인했다. 「♥우지호의1호팬♥ 000 - 0000 - 0000」 그리고 오는 문자 한 통 조금 있으면 등업하는데 채팅하자. 채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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