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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RE
#1



:First, Plan





그날은 기상예보와 다르게 저넉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먹구름에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밝게 빛나는 가로등마저 빗속에서 빛을 잃어 위험하고 위태로운 날이었다.
앞을 가리는 비에 병원 근처 사거리에서 교통사고 환자들이 쉴 새 없이 들이닥쳤고 응급실은 배드가 부족해 다른 병원에 도움을 청해야 했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사람으로 가득 차 시끌벅적해진 병원은 바로 옆 사람과의 대화도 힘들 정도였다.




"응급 환자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응급 환자인 거 안 보입니까? 지금부터 응급 환자는 OO 병원으로 이송시키라고 했는데요."

"앰뷸런스에서 이미 Arrest 났었고 현재 V/S이 불안정합니다. 이대로는 재이송 중에 다시 어레스트 날 확률이 높아서."

"후... 그럼 환자부터 확인하죠. 윤 간호사. 방 선생님한테 연락하고 이 환자 OR로 올려보내세요."




응급실을 빠져나와 후문으로 숨 고를 틈도 없이 뛰었다. 그곳엔 앰뷸런스 한 대가 있었고 뭔가 느껴지는 이상함을 의심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당겨지고 밀려져 앰뷸런스에 태워졌다. 이후에 약 냄새를 맡고 정신을 놓은... 것 같다.

다시 정신은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어떤 남자가 내 볼을 찌르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황당할 정도로 해맑은 모습에 한참 정신을 놓고 보고 있다 일어났네? 하는 목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붙인 채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그쪽에서 당황하며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더니 입술을 쭉 내밀고 서 있다.




"아니, 사람을 납치한 건 그쪽인데 왜 그러고 있어요."

"납치한 거 아닌데. 납치는 나쁜 거야"

"이게 납치가 아니면 뭔데요."

"남준이 형이 스카우트하는 거라 그랬어."

"스카우트요? 그 말이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린 이미 한 배를 탔어."




헤실헤실 웃으며 스카우트라느니 한 배를 탔다느니 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탓에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해치려고 데려온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겁도 없이 납치범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쪽 이름 물어봐도 돼요?"





[방탄소년단] MADRE #1 : First, Plan | 인스티즈


"김태형."

"여긴 어디에요."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집이요? 아니 이게 아니고. 여기 남준이 형, 그 남준이라는 사람도 같이 살아요?"

"응 우린 다 여기서 살아."




정신은 멀쩡한 거 같은데.
'우린 다'라는 말에서 이 집엔 세 명 이상이 거주할 거라고 생각했다. 김태형이란 사람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줬고 특히 그 바보 같은 웃음 때문에 착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 왜 데려온 거예요."

"우리 중엔 의사가 없거든."

"의사가 왜 필요한대요."

"다쳤을 때 치료 못 받는 것만큼 슬픈 게 없더라고."




한없이 밝아보이던 태형이 이번에 한없이 슬퍼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태형의 말로 대화가 끊어지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또 다른 남자가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손짓으로 태형을 불러내 귓속말 몇 마디를 하니 아씨... 태형이 짜증을 내며 방을 나갔다. 둘만 남겨진 상황에 그 남자가 먼저 어색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웃는 모습이 태형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나를 어색해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드디어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는 긴장감과 기대감마저 들었다.




[방탄소년단] MADRE #1 : First, Plan | 인스티즈


"제 이름은 박지민이에요. 태형이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글쎄요. 이걸 들었다고 해야 할지."

"아... 일단 무작정 데려와서 죄송합니다."

"아, 그보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뭐든지요."

"저를 왜 데려오셨어요. 의사가 필요하다던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 그건 나가서 설명드릴게요."




지민은 문을 잡고 서 내가 먼저 나가기를 기다렸다. 또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났지만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디뎌 밖으로 나갔다.

태형의 '우리 집'이란 말은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있던 방은 이 집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이었고 왼쪽으로 돌아나가면 거실이 웬만한 스위트룸만큼 넓었다. 심지어 탁 트인 넓은 부엌이 있었고 위에서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2층 집이었다. 밝고 찬란한 풍경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어둡고 음침한 공간을 상상하고 있었나 보다. 거실에 중앙에 멈춰 서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을 때 2층 난간에서 기대어 서서 머리 위로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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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낯선 호칭에 깜짝 놀라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고 손을 흔들던 사람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집안에 초인종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2층에 있던 사람이 계단으로 뛰어내려왔고 부엌에서 태형과 남자 두 명이 함께 나왔으며 뒤에 있던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각각의 방에서 또 다른 남자들이 나와 거실의 큰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서 있자 지민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마치 긴장하지 말라며 안심시켜주는 듯했다. 쭈뼛뿌뼛 테이블 쪽으로 갔고 지민이 빼주는 의자에 앉았다. 지민은 자신의 자리를 내게 내어주고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 14개의 눈이 나에게 쏠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시선들을 다 받으며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이 여자 믿을만해?"




바로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처음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해서 온 것도 아닌데 이데 와서 믿을만하냐, 라니. 내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러니까 나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던 그 남자가 나보다 먼저 말을 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방금 전 누나라고 해맑게 부르던 것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표정도 목소리도 한껏 다운돼 곧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 익숙해 보였다.




"전정국. 형한테 그게 무슨 태도야."

"윤기형이 먼저 누나한테 매너가 없잖아요."

"그래서. 너 때문에 여주씨가 불편해하는 거 안 보여?"




맞은 편에 앉은 남자가 윤기. 내 옆 자리에 앉은 날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이 전정국. 전정국은 윤기라는 사람에게 나를 대신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화를 낸 게 의아했다. 그런데 전정국이라는 이름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윤기 옆에 앉은 남자가 정국을 잘 다뤘다. 정국은 금세 표정을 풀었고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기억이 났다. 전정국이라는 이름이.




"전정국... 그 전정국?"




약 10년 전. 대학생의 신분으로 독립하기 전 고등학생 때 윗집에 살던 남자 애 이름이 전정국이었다. 인상 깊었던 첫 만남 이후 정국은 내 등하교를 함께 했다. 처음에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데려다 주겠다며 서 있는 정국이에 놀랐고 얼떨결에 우리 학교 앞까지 왔었다. 석식을 먹고 교문을 나섰을 땐 손을 흔들고 있는 정국이에 더 놀랐었다. 그렇게 정국은 집, 학교, 독서실. 뻔하고 지루한 일상을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였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못 봤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오랜만이에요. 누나."




넌 여전하구나.
기억 속의 모습과 겹쳐지는 정국의 미소에 반가움도 잠시 정국일 잘 다루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서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네요."




[방탄소년단] MADRE #1 : First, Plan | 인스티즈


저는 김남준입니다. 이 집 주인이고요.
미소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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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이에요.
텐션이 높은, 분위기가 밝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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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석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맏형이에요.
처음 내게 악수를 청했다.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내가 모르는 한 사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




"윤기형."




남준의 부름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방탄소년단] MADRE #1 : First, Plan | 인스티즈


"민윤기입니다."




민윤기. 내가 느낀 그의 첫인상과 다르게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 때 지민이 어깨를 툭툭 쳤고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는 김여주라고 함니다. 외과 레지던트 4년 차고요."




이제 모두의 이름은 알게 되었다. 남준이 들고 있던 파일을 책상에 올려 놓더니 나에게 밀어줬다. 나는 파일을 받아 들었다. 파일명은 MADRE. 파일을 펼치자 안엔 여러 장의 사진과 외국 신문의 일부분들이 있었다. 사진들은 사람을 찍은 것과 어느 장소를 찍은 것들이었다. 몇 장을 넘기다 눈에 익숙한 가게 이름이 보였다. 그러자 떠오르는 파일명 MADRE. 사진과 기사는 이탈리아의 것이었고 이 모든 자료는 Madre를 위한 것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준에게 물었다. 남준의 표정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집었고 눈은 나에게 똑바로 향했다.




"환상의 다이아 Madre."




3년 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 술집에서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Madre라고 불리는 환상의 다이아가 있다고.

예전부터 뒷세계에만 조용히 떠돌던 소문이 사진 한 장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최근까지도 그 진짜 모습을 봤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최고위층 어르신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일 거라고 추정된다.
- 이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Madre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걸까.




"일주일 전. 뒷 손이 좀 구린 큰 어르신 한 분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여주씨 정보도 좀 캤는데 이탈리아에 반 년이나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표정을 보니까 답이 딱 나오네요."

"제 정보는 왜 캐신 건데요."

"정국이가 여주씨를 추천했거든요."




생각도 못 한 이유에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민윤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입고 있던 검은 티를 가슴 부근까지 들췄다.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얼굴보다도 더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푸른 멍들. 그리고 왼쪽 옆구리에 총상으로 보이는 흉터. 이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섭기도 했지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며칠 뒤 이탈리아에 갑니다. 여주씨가 저희와 함께 가주셨으면 해요."

"그거 총상 맞죠."

"정국이, 태형이, 지민이. 그리고 윤기형이 가장 많이 다쳐요. 여주씨는 평소 하던 대로 환자를 치료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안 하겠다면요."

"글쎼요. 저는 여주씨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하실건가요?"




역시 남준은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 능청스럽게 되묻는다. 나는 이 사람에겐 평생 못 이길지도 모르겠다.




"아니요. 할게요 이 일. 재밌겠는데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민윤기가 옷을 내리며 째려본다.




"아, 저 형이 총 맞고 고생을 심하게 해서 이번 일에 좀 예민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남준이 내 뒤를 지나가며 속삭였다.  때문에 웃음이 터졌고 윤기의 눈은 더욱 불타올랐다. 남준의 말을 듣고 나니 아까의 까칠했던 말도 지금의 눈초리도 다 이해가 되며 무섭기는 꺼녕 자꾸 웃음이 났다.

총 맞은 게 어지간히도 아팠나보네.




"배 고프죠. 식사 준비할 건데 혹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요. 할 수 있으며 해 드릴게요."




석진이 식사 준비를 하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태형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레지 4년 차에 전공도 아닌 응급에서 발에 땀나게 뛰어다녔더니 배가 고픈긴 했지만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었다. 다만 음식이라면 뭐든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준과 호석은 밥 먹을 때 부르라며 각자의 밥으로 들어갔고 지민도 할 일이 있다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나 의지하고 있던 지민도 없이 윤기와 정국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정국인 이곳에서 만났을 때부터 한결같이 나만 보고 있었다고 해도 윤기는 왜 계속 앉아있는지 의문이었다.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럼 저도 방에..."




나도 같이 가요. 오늘 정국이 때문에 참 여러번 놀란다. 이 불편한 자리를 피하려고 했던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라고 말하자 정국이는 내 뒤를 따라왔고 슬쩍 뒤돌아봤을 때 윤기는 소파로 자리를 옮겨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내가 있던 방은 넓었고 제대로 된 가구라곤 퀸 사이즈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어 더 휑하니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 올라가 앉았고 정국인 조금 망설이더니 바로 옆에 걸터앉았다.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정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침묵이 흐를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정국이 먼저 말을 걸었다.




"누난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난 엄청 보고 싶었는데."




맞다. 정국이는 그때도 나는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졌고 내 친구들도 매일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정국이를 내 남자친구로 오해했었다. 하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부인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정국이가 싫지는 않았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나만 따라다니는 게 귀여웠다. 무엇보다 어느 누가 봐도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한 행동들이 좋았다. 하지만 가끔 흔들릴뿐 정국이는 나에게 동생 이상의 존재는 아니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정국이의 말에 예전 생각이 많이 났고 예전과 많이 달라진 정국이의 모습에 진심을 담아 물었다.




"힘들었어요."




과거를 알기에 가슴이 아픈 말을 정국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래도 형들 만나고 나서는 좋았어요. 더 많이 웃고 떠들며 자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형들을 만나서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형들을 만난 지는 5년 정도 됐다고 했다. 내가 떠나고도 정국이는 계속 그 집에서 버텼다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돌아올거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내가 떠난지 3년 되던 해 정국이는 버려졌다. 그리고 길거리를 방황하다 남준을 만났고 이후에 같이 살게 됐다고 했다. 남준은 이곳에서 아빠 같은 존재였다. 지금 같이 사는 사람들 모두 남준이 데려왔고 지민이 마지막 멤버였다고 한다. 그러다 세 달 전 윤기가 총상을 입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정국이 나를 데려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난 어떻게 찾았어."

"누나 꿈이 의사였잖아요. 그래서 석진이 형한테 부탁했어요. 누나 좀 찾아달라고.
형들이 누나 데려왔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요?"

"미안."

"다신 거짓말하지도, 말없이 사라지지도 마요. 나 너무 힘들었어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중얼거렸다. 정말 몸만 컸지 하는 행동은 예전 그대로다. 흘려 말했던 꿈 이야기 하나로 내가 의사가 됐을 거라고 믿는 그 순수한 마음이 무모하면서도 고마웠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미소가 지어졌다. 기분이 좋아 손을 올려 키가 많이 자란 정국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조금 놀라더니 금세 고개를 숙여 나에게 맞춰주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태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사람들에게 노크는 예의가 아니라 들어간다고 통보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박지민이 오래."




정국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나중에 봐요, 라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방안엔 창밖으로 부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털썩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눈만 깜빡이다 지루함을 참지 못 하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손목의 시계는 12시 23을 가리키고 있었다. 석진이 8인분의 음식을 직접 만든다면 꽤 오랜 시간 기다려야 될 것 같아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뭣하면 석진을 도와 요리를 할 생각도 있었다. 문을 열어 밖을 살폈을 땐 부엌에서 석진이 요리하는 소리만 들렸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본능적으로 발소리를 줄이고 천천히 거실로 향했다. TV 앞 테이블에 민윤기가 사용하던 노트북이 펼쳐 진 채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노트북 근처를 서성거리다 소파에 앉았고 노트북을 앞으로 당기려 할 때 하얗고 긴 손이 가차 없이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아 깜짝이야."

"왜 남의 노트북을 훔쳐봅니까."

"딱히 훔쳐본 건 아니고 그냥 심심해서..."




짧은 정적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손톱만 만지작거렸고 윤기는 노트북을 챙겨 들고 내 앞을 지나쳐 갔다.




"뭐 합니까 안 따라오고."

"네?"

"심심하다면서요."




고개를 돌려 먼저 2층 계단을 올라가는 윤기의 뒤를 얼른 쫓아갔다. 윤기가 제일 처음 보이는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는 정국이 방."




그리고 바로 문을 닫았고 이번에 그 옆 방문을 열었다. 여기는 지민이랑 태형이 방. 한 침대 위에 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건 태형이가 좋아하는 게임기.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있는 게임기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윤기는 심심하다고 말한 나를 위해서 집을 소개해주려는 것 같았다. 윤기는 다른 말없이 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남준과 호석은 윤기가 방문을 벌컥벌컥 열 때마다 눈이 마주쳐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를 하며 문을 닫았다. 이후에도 내가 쓸 욕실 포함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또 어디론가 가는 윤기를 놔두고 고픈 배를 움켜잡고 소파에 누웠다. 잠시 후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고 윤기가 옆에 서 있었다.




"무슨 집이 이렇게 커요? 아, 나 더 이상 못 움직여요."

"아니. 밥 먹으라고."




밥이라는 말에 체면도 잊은 채 윤기를 제쳐놓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석진이 음식을 담아내고 태형은 식탁으로 옮기고 있었다. 석진은 남자들만 사는 집이라 마땅히 해 줄게 없다며 미안해했지만 평소 내가 해 먹던 밥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태형이 가리킨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고 또 집안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식탁으로 하나둘 모여 앉았다. 정국과 지민은 씻고 온 건지 머리가 젖어 있었고 비누 냄새가 났다. 마지막으로 석진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그 많던 음식들이 싹 비워지고 빈 그릇들만 남았다. 석진의 요리는 매우 만족이었다. 내가 그릇을 치우려고 손을 뻗자 석진이 팔로 막았다.
오늘 설거지는 지민이가 해요. 여주씨는 가만히 있어요. 무슨 말인가 싶어 다른 사람들을 보자 모두 자기 밥그릇만 싱크대에 두고 부엌을 나간다. 그리고 남은 지민은 나머지 그릇들을 치우고 고무장갑을 꼈다. 식탁에 혼자 앉아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지민이 내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봤고 나를 발견하고는 귀가 빨개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설거지를 하는 지민의 옆으로 갔다. 능숙하진 않지만 꼼꼼하게 거품 칠을 해나가고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지민이 거품 칠한 그릇을 씻어 건조기에 넣었다.




"너무 할 일이 없어서 그래요."




입을 벙긋거리는 지민에 먼저 입을 열었다. 지민도 수긍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짧은 시간 안에 설거지를 끝냈다. 차곡차곡 건조기 안에 들어가 잇는 그릇들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텅 빈 방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똑같았지만 그 방에 있다간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TV라도 보려고 리모컨을 찾던 중 지민이 옆으로 와 앉았다. 무슨 할 말이 있나 싶어 지민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지민은 그냥 심심할 것 같아서요, 라고 수줍게 말했다. 리모컨을 찾던 것을 멈추고 지민을 보고 앉았다.




"그때 응급실에 왔던 사람 지민씨요 맞죠."




처음 지민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생각했다. 환자도 없이 구조대 옷을 입고 응급실에 들어와 나를 찾았던 응급 구조사라고. 그땐 상황에 말려 병원을 나가는 황당한 짓까지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나 싶다. 게다가 하루가 지나버렸으니 돌아가면 아마 시말서 백 장을 써도 모자랄 거다.
네, 저 맞아요. 지민은 쉽게 인정했다.




"그런 일은 저랑 태형이, 정국이가 하는데 이번에 정국이는 빠졌었어요."




정국이가 나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민은 덧붙여 모두의 나이, 합류한 순서, 각자가 하는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가장 놀란 건 윤기였다. 윤기는 기계를 잘 다룬다고 했다. 집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도 윤기가 한 번에 부르기 귀찮다고 설치해둔 거라고 한다. 하지만 윤기의 주 종목은 총이다. 마른 몸 때문에 여리여리하게 보이지만 조립, 개조는 물론 사격까지 잘한다고 한다. 그래서 윤기가 총에 맞았을 때의 충격이 더 컸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가장 반전이었던 사람은 석진이었다. 요리가 취미고 다정한 모습이 엄마 같았던 석진은 타고난 두뇌로 정모를 모으는 해커였다. 아직도 상상이 안되지만 내 정보를 캐낸 것도 Madre에 관해 가장 먼저 안 것도 석진이었다. 그래도 가끔 자신은 블랙 해커가 아니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단다.

흥미진진하게 지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치 짠 것처럼 다들 거실 테이블로 모였다. 지민도 그 사이에 꼈고 나는 멀뚱멀뚱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일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월요일 인천공항에서 14시 비행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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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elliss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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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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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80.97
암호닉 [moonlight]으로 신청해도 될까요? 이런 분위기 넘 좋네요ㅠㅠㅠㅠㅠㅠ분량도 짱이고ㅠㅠ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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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암호닉 받으시나요????
받으시면 [바다코끼리] 로 암호닉 신청합니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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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댓글
ㅋㅋ 언니가 술 취하면 해 줄 거라니까.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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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22.51
뭔가 슈가가 주인공일 삘 ㅋㅋㅋㅋ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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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11: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존재할까
10.14 10: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쉴 땐 쉬자, 생각 없이 쉬자
10.01 16:56 l 작가재민
개미
09.23 12:19
[피어있길바라] 죽기 살기로 희망적이기3
09.19 13:16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09.08 12:13 l 작가재민
너의 여름 _ Episode 1 [BL 웹드라마]5
08.27 20:07 l Tender
[피어있길바라] 마음이 편할 때까지, 평안해질 때까지
07.27 16: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같은 마음에게78
07.24 12:2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자2
07.21 15:4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야1
07.14 22: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2
06.30 14:1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새끼손가락 한 번 걸어주고 마음 편히 푹 쉬다와3
06.27 17:28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일상의 대화 = ♥️
06.25 09: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우리 해 질 녘에 산책 나가자2
06.19 20:5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오늘만은 네 마음을 따라가도 괜찮아1
06.15 15: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상에 너에게 맞는 틈이 있을 거야2
06.13 11:5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6
06.11 14:3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잎클로버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2
06.10 14:2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네가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1
06.09 13:15 l 작가재민
[어차피퇴사]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 말 걸1
06.03 15:25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회사에 오래 버티는 사람의 특징1
05.31 16:3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퇴사할 걸 알면서도 다닐 수 있는 회사2
05.30 16:21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어차피 퇴사할 건데, 입사했습니다
05.29 17:54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혼자 다 해보겠다는 착각2
05.28 12:1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05.27 11:0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출근하면서 울고 싶었어 2
05.25 23:32 l 한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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