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 기피증
네 사랑은 표현 방식이 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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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정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게 분명하다. 어떻게 내 인생의 마지막 미성년 까지 전정국과 같은 반이 될 수가 있지? 억울해서 머리를 쥐어 뜯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일찍 도착해 혼자 앉아있던 교실 뒷문이 열리고 전정국이 들어왔거든.
"...."
"ㅇ, 어... 안녕..."
나는 전정국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도 물론 같은 곳에 다니는 중이다. 심지어 다 같은 반이다. 11년을 쭉 봐왔다, 전정국과 나는. 11년이면 거의 부랄친구 급이겠다고? 그게 나도 의문이다. 11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전정국과 전혀 친하지 않다. 나는 전정국이 묘하게 불편하다. 나를 보는 눈빛과 나를 대하는 분위기. 뭔가 차갑지는 않지만 냉랭하다. 그러니까... 뜨거운 냉랭함 같은 거. 무슨 개소리냐 싶겠지만 더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전정국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또 한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한창 이성에 관심 많을 고등학생. 나도 옆반 김태형-지금은 죽마고우가 따로 없는-이라는 아이와 썸을 타고 있었던 때였다. 사실... 얼마 가지도 못했다. 한 2주? 썸을 탄지 일주일만에 훼방을 놓기 시작한 전정국 때문에.
'아미~! 뭐해?'
'아, 나 7반에 심부름!'
'같이 가줄까?'
내가 들고있던 유인물을 대신 들고 나와 함께 7반으로 향한 태형이가 교탁에 유인물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을 때였다. 이유도 모르겠지만, 7반-우리반은 3반이었다-에 있던 전정국이 나와 태형이가 있는 교탁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 눈빛에 한 것 기가 죽은 나는 얼른 가자며 태형이를 이끌었다.
'아미야. 너 토요일에 시간 돼?'
'토요일? 왜?'
'영화 보러 가자ㄱ...'
'아미야.'
7반에서 나오며 자연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태형이에게 쑥쓰럽게 웃으며 어떤 대답을 할까 고민을 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한 11년은 들어온 듯한 익숙한 목소리 말이다. 시끌벅적한 복도에서 그 목소리는 유독 또렷하게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보인 건 ,
'우리 토요일에 과제 하기로 한 거 알지.'
"...."
'....'
'늦지 않게 와.'
한 번도 본 적 없던, 나를 향해 웃고 있는 전정국이었다.
전정국의 웃는 얼굴은 많이 봐왔다. 그러나 나를 향해 웃는 전정국은 본 적이 없었다. 그 얼굴을 처음 봤던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부터 전정국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눈만 마주쳐도 웃고, 조금 칠칠맞은 나를 챙겨주고.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나뿐이었다.
'아미야. 너 숙제 했어?'
'ㅇ, 어...? 아니...'
'내 거 보여줄게. 얼른 해.'
전정국의 친절은 고마움을 넘어선 부담이었다. 11년 동안 나에게만 차갑게 굴던 녀석은 갑자기 나에게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니. 전정국의 친절에는 진심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저... 태형아.'
'응?'
'너 전정국이랑 친해...?'
'전정국? 그냥 그런 사이야. 왜?'
전정국의 이상한 행동에 의문을 품은 나는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태형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왜냐고 묻는 태형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이런 걸 태형이한테 말하는 건 좀 그렇겠지, 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말해야 했다.
태형이에게 말을 얼버무린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과제를 하러 황금 같은 토요일에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나를 반긴 건 썰렁한 교실 한 가운데에 앉아있는 전정국 뿐이었다.
'뭐야...? 애들은...?'
'없어.'
'왜...?'
'과제 같은 건 없으니까.'
나는 전정국의 당당한 저 태도에 화를 내는 것도 잊었다. 그럼 나한테 거짓말 한 거야? 내 물음에 전정국은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는 내 의문에 전정국은 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 나는 몸을 한 것 움츠렸고, 어느새 내 코 앞 까자 다가온 전정국은 내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김태형이랑 썸 타?'
'....'
'안그랬으면 좋겠는데.'
'....'
'안그랬으면 좋겠어. 아미야.'
마지막 말을 끝낸 뒤 전정국는 나를 두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리 눈치가 없는 편도 아니었지만, 전정국이 왜 저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저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 채,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히 말하던 전정국이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나는 저 말의 뜻을 알아내는 걸 포기하고, 태형이와의 썸도 끝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다. 전정국이 뭐라고. 내가 태형이와의 썸을 끝내자, 전정국은 마법처럼 돌아왔다. 나를 차갑게 대하던 그 전정국으로.
"너 또 걔랑 같은 반이야?"
"...."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아버렸어."
"미친..."
슬기가 조퇴를 핑계로 콘서트를 간 탓에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난 태형이는 내 대답에 혀를 내둘렀다. 말이 안돼. 걔 뭐 뒤에서 수 쓰는 거 아니야? 흥분이 가득 담긴 태형이의 말에 나는 조용히 어깨를 으쓱였다. 학생들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쳐 급식실로 들어가다 멈춰선 태형이는 갑자기 몸을 돌려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우리 썸은 도대체 왜 깬거래?"
"그냥 내가 깬거라니까."
"너한테 썸타지 말라고 직접 말했다며!"
"아, 좀. 그만해."
"걔,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미친 소리 할래? 그렇게 억울하면 다시 썸 타던가!"
"너야말로 미친 소리 하지마. 징그럽게."
입을 비죽 내민 태형이에게 이제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으라며 말하고는 식판을 들어 급식을 받기 시작했다. 급식을 다 받은 뒤 자리를 찾기 위해 뒤를 도는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
"...."
"뭐해. 자리 없어?"
"ㅇ, 아니... 가자.'
태형이의 재촉에 얼른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내 기분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작년에 7반으로 유인물 심부름을 갔을 때 봤던 전정국의 눈빛. 그 눈빛이었다. 분명히.
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어디 아프냐는 태형이의 걱정은 미안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건성으로 고개를 휘젓고 반으로 온 나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상라다. 그리 소심한 성격도, 할 말을 못하는 성격도 아닌데 전정국만 보면 움츠라든다. 무섭다. 전정국이 풍기는 분위기는 묘하게 날 불편하게 만든다.
"...여보세요."
[아미. 밥 누구랑 먹었어?]
"어...? 태형이..."
[오늘 돈가스 대박인데. 아쉽다.]
콘서트에 간 슬기가 전화를 걸었다. 내 상황도 모르고 돈가스 타령을 해대는 슬기가 얄미워 나도 모르게 소라를 바락 질러버렸다.
"내가 너 때문에 전정ㄱ...!"
마침 내 목소리에 뒤를 돈 전정국과 눈이 마주친 건, 꿈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두려웠다. 내가 말하던 제 이름을 들었을까. 30초는 넘게 마주치고 있던 눈을 황급히 돌려봤지만, 전정국은 이미 상황파악을 끝냈을 거다. 눈치 하나는 타고 난 듯 빨랐으니까.
"아미야."
나는 익숙한 목소리로 들려온 내 이름에 몸을 흠칫 떨었다. 창 밖만 주시하던 눈을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고정했다. 전정국과 나만 존재하는 조용한 교실에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번주 토요일에 과제 있어."
"...."
"너랑 나,"
"...."
분명 과제가 없다는 것 쯤은 인지할 수 있었지만, 나는 냉랭하면서 따뜻한 그 말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토요일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내 말을 들은 태형이-슬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도 나를 말렸다. 그냥 가지마. 니가 안간다고 걔가 너를 죽이기라도 해? 나는 그 대책 없는 말에 그냥 흐흥-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열댓번은 더 오열하고 있었다. 죽이기라도 하겠냐고? 죽일거야. 날 피말려서 죽일거라고! 그러나 시간은 멋대로 흐르기 밖에 할 줄 아는게 없고, 토요일은 다가왔다.
"태형아..."
[아침부터 뭐야아-.]
"나랑 같이 가주면 안돼...?"
결국 내가 내린 최후의 수단은 태형이었다. 토요일 아침-분명 해가 중천에 뜬 오후였지만-부터 전화를 한 내가 짜증난다는 듯 말꼬리를 늘이는 태형이에게 빌었다. 같이 가줘, 제발. 내 애원에 태형이는 결국 잠을 털어내고 일어났다. 30분만 기다려. 태형이 덕에 내 두려움은 절반으로 줄었다.
절반으로 줄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착각일 뿐이었다. 태형이는 우리의 썸이 전정국 때문에 깨졌다는 얘기를 들은 후 부터 전정국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고, 전정국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내 두려움은 두 배가 되어버렸다. 나를 어정쩡하게 세워 두고 이상한 신경전을 하고 있는 두 사람 덕에.
"나가서 기다려."
"내가 왜. 그냥 여기서 해."
"나랑 아미 약속인데 좀 무례하다."
"마음대로 약속 잡는 너는 예의 있는 줄 알겠다?"
나에게로 눈을 돌려 정말 니가 약속을 잡은 거냐는 멍청한 의문의 눈빛을 보내는 김태형에게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미 페이스는 전정국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알아들었으면 나가."
"나가라고."
태형이는 더이상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는지-아니면 상황 파악을 못한건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나가있겠다고 말했다. 안돼. 니가 나가면 널 여기 데려온 이유가 없잖아! 외치고 싶었지만 이미 나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킨 전정국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태형이가 나가고 조용해진 교실, 전정국은 나를 빤히 주시했다.
"저... 이번엔 뭐 때문에..."
"...."
전정국은 눈을 아래로 내리 깔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리며 작게 웃었다. 여유가 넘치는 저 말은 분명 화를 내 마땅한 발언이었다. 두려움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분노에 입을 열려했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전정국의 선명한 눈동자에 내 입은 마음과 다르게 꾹 닫혀버렸다.
"...."
"...."
"밥도 같이 먹지 말고, 집에도 같이 가지 말고, 얘기도 하지마."
"...."
그래. 작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전정국이 나에게 잘해주고 나를 불러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 그 모든 상황에는 김태형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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