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夜密會
달월 밤야 빽빽할밀 모을회
: 달이 뜬 깊은 밤의 은밀한 만남
越夜謐懷
넘을월 밤야 고요할밀 품을회
: 그 밤이 지나가고 나면, 너조차 모르게 고요히, 너를 내 안에 품었다.
월야밀회
一
![[세븐틴/호시/도겸] 月夜密會(월야밀회) 一편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01/0/46caf009578fd97531fd46d6831a384a.jpg)
"자꾸 이렇게 은밀히 찾아오시면 소녀 곤란하게 되옵니다."
말의 내용과 여자가 색기있게 흘리는 교소(嬌笑, 요염한 웃음)는 그녀의 말이 과연 진심일까, 의심스러울만큼 매우 이질적이었다.
"네가 나를 애타게 하는 것이 내가 이러는 꼴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더냐?"
손가락 끝으로 여자의 턱을 살살 쓸어올리는 사내는,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자 못지 않게 상대방을 휘어잡는 면이 있었다.
자신에게조차도 한 치의 휘말림 없이 당당한 사내를 보며, 여자는 이제서야 졌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은 한 번도 제게 틈을 내 주질 않으시니, 소녀 이제 자존심까지 상하겠사옵니다."
"틈을 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나를 질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맞지만.. 명실공히 한양 최고 기생인 소녀가 사내 하나를 못 홀려 안달난 모습이라니, 우습지 않으십니까."
"못 홀리다니?"
"그야 아까부터 여유롭게 웃기만 하시잖사옵니까. 보통 사내 같았음, 이미 안달나서 저에게 애걸복걸 하고도 남았.."
"난 다른 시시껄렁한 사내들보다 인내심이 좀 뛰어나다고 해두지."
"그 정도 차이는 있어야 네가 나를 만날 명분이 서질 않겠느냐."
![[세븐틴/호시/도겸] 月夜密會(월야밀회) 一편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2017/01/01/e/2/2/e22b691dfb40a5a77b2658c2969556e2.gif)
"그런데.. 그 인내심이 점점 한계가 오는 듯 보이는구나,"
"내가 여기서 너에게 빌면, 그에 대한 화답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네게서 이룰 것을 내 마음대로 기대해도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기꺼이 빌지."
당장 네가 필요하다며 애원하는 말을 흘릴 때조차도 여유롭고, 매혹적인 사내에게 품을 내주지 않을 여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임은 분명했으며,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세봉도 당연히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月夜密會
달월 밤야 빽빽할밀 모을회
: 달이 뜬 깊은 밤의 은밀한 만남
청의 사치품을 독점적으로 조선에 들여오는 거상 권씨의 장자이자 외아들인 순영과 기생 세봉이는 수 개월 째 달이 깊은 자시(23시~1시)의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댔다고, 밀회가 이뤄지는 장소는 기생인 세봉이의 일터나 다름없는 낙화루의 옆 담장 바로 아래였다.
자시 낙화루 담장 밑에 가면, 달빛 아래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내와 기생이 밀회를 갖는다는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는 연애담처럼 부풀려져 젊은이들 사이에 떠돌았으나, 그들이 유교적 제도에 얽매여 못다 이룬 환상을 허언으로 떠벌린 것 쯤으로 치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도 권씨 가의 집에서 오는 길이십니까?"
최근 들어 순영과의 밀회가 끝날 즈음의 시각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낙화루 문 앞에서 기다리는, 성균관 유생이라던 그 사내였다.
돈이 되는 사내가 아니면 만나지 않는 세봉이는 매몰차게 그를 거절해왔으나, 세봉이의 태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인지 그 사내는 날이 갈수록 더 해사하게 웃어보이며 세봉을 맞았다.
"오늘은 또 왜 오신 겝니까? 유생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곳에 드나들어도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내용만 들으면 걱정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으나, 세봉이의 말투 전반에 서려 있는 기운은 짜증 뿐이었다.
성균관 유생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번듯한 양반 가의 자제일 것이 빤한데 이렇게 찾아올 때마다 자신을 존대하는 어투에 세봉이는 누가 듣고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이런 곳이 뭐 어때서요."
"예쁘게 말하니 꽃이 떨어지는 곳인게지, 기생집 아니옵니까."
쏘아붙이는 자신의 말에 오히려 푸흡, 하고 웃는 사내에게 세봉이는 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균관 유생임을 의심하여 저를 시험하신 겝니까, 아니면 정말 모르시는 겝니까?"
"무엇을요."
"낙화루 현판에 쓰인 한자는, 떨어질 낙이 아니라, 즐거울 낙입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온갖 도도한 척은 다 해놓고 한자 하나 제대로 모르는 꼴이라니, 하루 빨리 떨쳐내야 하는 사내에게 제대로 틈을 보인 상황이었다.
즐거울 낙과 떨어질 낙도 구분 못하는 기생이 한양 최고의 기생으로 불린다는 것을 황진이나 초요갱이 들었다면 대놓고 비웃었을 것이란 생각에, 세봉이의 뺨 가득 붉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제가 오늘 한 수 가르쳐드렸으니, 오늘은 저와 함께 해주실 겝니까?"
"당연히 그에 대한 값은 후하게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온화하게 웃는 사내의 얼굴에서 협박의 기운은 조금도 서려있지 않았으나, 사내가 이를 함구하지 않을시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으므로 세봉이는 사내의 부탁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세븐틴/호시/도겸] 月夜密會(월야밀회) 一편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2017/01/01/d/5/e/d5e1f76ea57d7b3f9c685663fadb1629.jpg)
낙화루의 현판에 쓰여 있는 한자는 떨어질 낙(落)이 맞음을, 이미 다 져서 떨어지고 있는 쇠락의 꽃이 아닌, 활짝 피어 영언토록 즐거운 꽃이길 바라는 사내가 그녀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허언이었음을, 입을 살풋 삐죽이며 걸어 들어가는 세봉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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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을월 밤야 고요할밀 품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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