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자꾸 들이대는데 어떡하죠?
ㄱ. 말챠
01
"누나!"
내 나이 스물 여덟, 프리랜서 4년차. 업무 보조 전정국이와 일한지는 삼주 째. 일이 혼자하기에 버거워서 알바를 구했더니 이렇게 누나누나 거리는 놈일 줄이야. 싹싹한 앤줄 알았는데 이제 좀 친해졌다고 막 기어오른다.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고용주한테 말이다.
"누나, 저 궁금한게 있습니다."
"선배님."
"선.배.님. 질문 해도 됩니까?"
"뭔데."
"선배는 왜 이렇게 일이 많아요?"
저것은 불만 표출인가. 그것 때문에 니가 알바비를 받는 거라는 생각은 안드니? 정말 궁금해서 묻는건지, 일처리를 잠시 쉬고싶어서 그러는건지. 안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만들며 묻는 정국이의 이마에 볼펜으로 딱, 꿀밤을 놔줬다.
"내가 일을 잘하니까!"
"아파요!"
"이런 알바가 어딨어? 이렇게 좋은 카페에서 먹을 것도 사주고, 일당 빵빵하고, 주말에는 쉬게 해주고, 고용주도 착하고."
"마지막 말은 좀 뺍시다."
"이게 아주!"
손에 쥐고있던 볼펜으로 또 딱밤을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장난 장난! 하며 웃어버린다. 아오 진짜. 나이도 어린게 능글거리기는. 대학생이라 그런가. 그래도 계속 알바로 쓰는 이유는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봐야되나.
"선배는 남자친구 안 사귑니까?"
"연애할 시간이 어디있니, 일이 이렇게 많은데."
"에, 못 사귀는 거 아니구요?"
"알바. 계속 기어오르면 해고."
"매정하셔라."
단칼에 잘라내는 내 태도에 정국이의 입이 비죽, 튀어나온다. 오늘 아주 날 잡았구만. 일하기 싫은 날. 이렇게 장난을 쉴새없이 치는 걸 보니. 내가 노트북을 덮고 정국이를 쳐다보자, 금세 내 시선을 느끼고 나와 눈을 맞춘다.
"알바. 일하기 싫지."
"에이, 아니에요~"
"오늘 내가 시킨 일 두 시간 안에 다 끝내면, 소원 하나 들어준다."
"어! 진짜죠. 무르기 없기!"
내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금세 일에 다시 집중한다. 소원권이 그렇게 탐나는 아이템인가. 설마 일주일 휴가주세요 그런건 아니겠지? 그런거라면 매우 곤란한데.. 속으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하다가, 밀려드는 스케줄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얼마나 일에만 집중했을까, 어깨가 뻐근해져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했다. 얼음이 다 녹아버린 주스를 쭉 빨아 마셨더니 그제서야 정국이가 보인다. 머리를 책상에 박을듯이 집중해서 뭘 하나, 보려는데 별안간 고개를 확 든다. 아, 깜짝이야.
"저 다 했어요!"
"벌써? 두 시간 안됐는데?"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내가 놀라며 서류를 받아들자, 정국이가 잘난 척하는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서 의자 등받이에 기댄다. 으이구 저 허세.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서류를 꼼꼼히 훑어봤는데, 평소처럼 잘 정리해놨다. 집중해서 하면 이렇게 빨리 하면서 밍기적거리기는.
"좋아, 합격."
"아자!"
"뭐야, 완전 아재같았어 방금."
"내가 아재면 누나는,"
"스탑. 거기까지."
한번 놀렸다고 정곡을 찌르는 나이공격을 해버린다. 매정한 자식. 니가 그렇게 각인시켜 주지 않아도 안다고.. 내 썩은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싱글벙글이다. 위로 예쁘게도 올라가있는 입꼬리가 너무 얄밉다.
"어려서 좋겠수다."
"에이, 누나도 어려보여요~"
"됐네요. 입에 발린 소리. 너 은근슬쩍 누나라고 한다?"
"저 소원권 쓸게요."
뭐지. 이 뜬금없는 비장함은. 정국이에게 호칭을 정정해주며 노트북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소원권을 쓰겠단다. 두 주먹을 꼭 쥐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바라보는 눈빛이 결의에 차있다.
"뭐."
"선배 대신 누나."
"야. 그건 알바와 고용주의 관계를,"
"어어, 빼기 없어요!"
"..알았다 알았어."
업무 이외로 너무 가까워지면 일을 하는데 너무 풀어질까봐 일부러 호칭으로라도 선을 그으려 했는데, 영 불편했나보다. 내가 마지못해 허락하자 예스! 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다.
"선배라고 하는게 그렇게 싫어?"
"네. 완전."
"그래, 그럴수도 있지 뭐. 너 일 끝났으니까 퇴근해도 돼."
"어, 진짜요?"
알바생의 입장에선 제일 듣기 좋은 말인, 퇴근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정국이의 표정이 별로 밝아지지 않는다. 왜이러지, 일하기 싫어했으면서. 벌떡 일어나서 놀러 나가도 모자랄 판에.
"별로 안좋은가봐?"
"누나 계속 여기 더 있을거에요?"
"응. 일해야지."
"에이, 아니죠. 음료 하나 시켜놓고 너무 오래있으면 민폐에요 민폐."
"뭐라는거야, 자리도 엄청 많ㅇ.."
"어! 마침 시간이 저녁 먹을 시간이에요 누나!"
"..그래서."
"저 밥 사주세요♡"
..잘라버릴까^^
#
결국 능구렁이 알바에게 항복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휘둘리게 된건지.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내가 갑의 입장이었는데 말이다. 알바비 꼬박꼬박 받으면서 밥사달란 소리가 이렇게 쉽게 나오는건, 아무래도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해줘서 그런 것 같다.
"저 배 완전 고팠어요."
"알바. 넌 내가 너~무 편한가보다?"
"저 누나 하나도 안 편해요."
"웃겨, 자꾸 기어오르는게 곧 맞먹겠구만."
"진짜 아닌데.."
정국이가 뭐라고 중얼거린 것 같긴 한데, 때마침 음식이 나와서 잘 못들었다. 먹음직스러운 파스타와 리조또에 시선을 뺏겨버렸다. 접시가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포크와 숟가락을 집어드는 내 모습에 정국이가 진정하라며 캄 다운, 한다. 사실 나도 만만찮게 배고파서.
"누나도 배 많이 고팠나봐요."
"당연하지, 일 할 때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누나. 저 궁금한 거 있습니다."
"또? 이번엔 뭔데."
"혹시, 모솔은 아니죠?"
뎅- 소리가 날 정도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쟤는 뭐때문에 날 그렇게 보는거지. 내가 너무 추접스럽게 먹는다고 돌려까는건가. 동작을 멈추고 정국이를 빤히 바라만 보자 같이 멈춰있던 정국이의 표정이 점점 놀란 표정으로 변한다. 어어, 지금 생각하는 그거 아닌데.
"..진짜요..?"
"야! 아니거든? 그리고 모솔인게 뭐 어때서! 결혼만 잘 하면 되는거지. 마음 맞는 사람 없으면 혼자 살 수도 있는거고!"
"예..뭐..믿어드릴게요"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나 오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일 년도 안됐거든? 그러니까 과거 들추지말고 가만히 있어라,어?"
"..한 사람이랑 오년이나 사귀었어요?"
"..어. 그랬다! 밥이나 먹어 알바생."
아, 어린애 농담에 왜 흥분해가지고. 억지로 생각 안하고 살고 있었는데, 오늘 집에서 술 한잔 해야겠다. 그만두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온갖 생각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맛있게 먹던 내가 갑자기 깨작대자 정국이가 슬슬 내 눈치를 본다. 괜히 나때문에 애 체하겠네.
"무슨 눈치를 그렇게 봐, 밥 먹어! 꼭꼭 씹어서."
"딱 보니까 알겠네요."
"뭐를."
"오늘 달릴거죠?"
"어?"
내가 얼빵하게 쳐다보자 손으로 소주 마시는 흉내를 내며 입으로 딱, 소리를 낸다. 저 자식. 애주가가 틀림없다. 딱 보니까 알겠다. 아무튼 눈치는 좀 빠른 것 같다. 아니면 내 표정이 그정도로 별로거나.
"나때문에 너 체하겠다. 다 먹었어?"
"넵. 배부릅니다."
"그럼 가자.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바로 앞이 지하철역인데."
"왠일이래, 맨날 잘도 타고다니더니."
"저는 누나의 달림을 응원합니다!"
정국이가 오른쪽 손을 자신의 심장 부근에 살포시 올리더니 응원한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입까지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고있으니, 나중에 사회생활 하나는 잘 할 것 같다. 더 말해봤자 생각을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지하철 역 앞에서 정국이를 보냈다.
오늘따라 더 추운 것 같기도 하고.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집에 막 들어오는데 카톡! 하는 경쾌한 알람음이 울린다. 연락 올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싶어 화면 잠금을 풀고 확인하자, 정국이에게 메세지가 와있다.
[알바전정국 님이 '컨디션 레이디 500ml' 기프티콘을 선물하셨습니다!] _ 20:24 pm
[저는 성실하고 양심있는 알찬 알바를 하고싶으므로] _ 20:25 pm
[내일 아침에 꼭 마셔주세요.] _ 20:25 pm
마냥 어린애는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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