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째, 내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무덤덤한 민윤기
(부제: 이유가 뭘까.)
"아 이게 아닌가 맛이 왜이래 이거."
부엌에서 달그락 하는 소음과 함께 들려오는 익숙한 민윤기 목소리에 번뜩 눈이 떠졌다. 내 방 침대가 아닌 외간 남.. 아니, 윤기의 소파 위에 누워있는 나 자신을 확인하곤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 건가 싶었다.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그리고 그 위에 덮여있는 이불과 양말도 벗지 않은 발엔 신겨져 있던 신발이 가지런히 신발장에 놓인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거하게 취하고 윤기 집으로 찾아왔나 보다. 으어...! 미쳤다, 미쳤어. 윤기가 많이 싫어했을 텐데..... 슬쩍 소파 틈으로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윤기를 빼꼼 쳐다보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허리에 한쪽 손을 얹고는 한숨만 푹 쉬는 게 뭔가 잘 풀리지 않는 듯 했다. 가까이 다가가 뭐하는지 좀 볼까, 하고 일어나는 순간 밀려오는 어지럼증이 몸을 비틀거리게 했다. 철푸덕 하는 소리와 함께 윤기가 고갤 돌려 나를 쳐다본다. 하하... 윤기, 안녕...? 땅바닥에 우습게 넘어져있는 꼴로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니 윤기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묵묵히 제 할 일만 할 뿐이었다.
"왜 벌써 일어났냐 더 자지."
"아니 그냥 눈이 떠졌어... 윤기야 뭐 해?"
"콩나물 국"
세상에 이런 일이... 윤기가 요리를 한다니!!!!!!!! 설마 이 모든 게 꿈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재차 주위를 둘러봐도 암만 현실이다. 여전히 나는 민윤기 집에 있었고, 윤기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윤기가 설마 날 위해 숙취 해소용 국을 끓여주는 건가 싶어서 스멀스멀 웃음꽃이 또 피어오르려고 한다. 윤기 너 이 센스쟁이... 설마 날 위해서어~? 기대에 찬 목소리로 콩나물국이 날 위한 거냐고 묻자 역시 민윤기 답게 '나 먹으려고 하는 건데 너도 먹고싶으면 먹던지.' 란다. 암요, 당연히 먹어야죠 누가 만들어준 건데. 윤기가 무심하게 밥그릇에 밥을 퍼 담는다. 맨날 내가 윤기에게만 해오던 짓인데 이젠 윤기가 내게 밥상을 차려주니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나중에 윤기랑 살림차리면 이런 모습이겠지? 히히. 하며 혼자만의 망상으로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메인요리 콩나물국까지 담아주면서 숟가락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곤 먹으라는 그의 말과 동시에 쪼르르 달려갔다.
"윤기야. 넌 못하는 게 뭐야? 얼굴도 예쁘지 노래도 잘하지 요리도 할 줄 알지... 진짜 맛있겠다. 히, 고마워"
"얼씨구. 말 그만하고 먹기나 하시지"
너무 좋아서 자꾸만 웃음이 헤실헤실 흘러나오고 급격하게 말이 많아지자 윤기가 젓가락을 든 채로 밥이나 먹으라며 핀잔을 준다. 알았어, 알았어.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윤기가 해준 콩나물국 한 술을 떠 먹어 보았다. 음? 한 술이 너무 작았나, 왜 맛이 안느껴지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국 한 술을 떠 먹어보아도 역시 첫 맛과 같은 ...맹 맛이었다. 콩나물 국에서 맹 물 맛이 느껴질 수가 있는 건가... 이렇게 고춧가루도 고춧고춧하고 넣었는데...? 마치 고춧가루와 콩나물과 물이 따로 노는 듯한 맛이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나름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 하하. 아까 먹기도 전에 맛있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댔는데 이제와서 윤기가 해준 콩나물 국에 대고 맹 맛이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윤기도 아무렇지 않은 척, 온갖 무심한 척 다하면서 밥을 먹고있긴 하지만 조금씩 나를 힐끗거리는 게... 아무래도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름 신경은 쓰이는 가 보다. 그래도 윤기가 친히 아침상을 차려줬는데 감히 콩나물 국에서 맛이 안 느껴진다고는 못 하지. "오... 윤기야 너 요리 진짜 잘하는데?" 누가봐도 어색한 감탄사를 연발하는 게 너무 티가 났나본지, 윤기가 "거짓말도 못해요." 라며 피식 웃었다.
"근데 나 어제.. 심했니?"
"말이라고 하냐."
"아휴....."
"김태형이 너 업고 왔던데."
"태형이가?"
그랬었나. 분명 술집에서 나오고, 태형이가 부축해준 거 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안나긴 개뿔! 갑자기 어제의 기억이 물 밀듯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민윤기한테 전화해서 행패 부렸던 것 부터 시작해서, 태형이 귀찮게 했던거, 태형이 등에 업혀서 기어코 민윤기 집 앞까지 찾아와 '엄마 문열어줘!'하며 쾅쾅 문을 두드렸던 것 모두... 어제의 내가 너무 창피해서 어디 숨고싶은 심정이었지만 안 되는 대로 머리라도 쥐어 뜯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더니 그래봤자 있었던 일이 사라지냐며 윤기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정말 윤기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런 거 제일 싫어하는 민윤기인데도 집에서 내쫓기는 커녕 밥상이나 차려주고 있으니. 윤기는 정말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할 수가 없어. 그리고 태형이 보면 고맙다고 꼭 마실거라도 사줘야겠노라 다짐하며 남은 콩나물 국을 그릇 째 들고 한번에 원샷했다. 윤기야, 보이니? 이게 너를 향한 내 마음이란다.
* *
목요일 공강인 나와는 달리 윤기는 2시에 수업이 있다며 학교에 가봐야한다고 했다. 민윤기 얼굴을 오래봐야 그나마 내 하루가 알찼다고 말할 수가 있는데... 이대로 윤기와 떨어져 집에 가긴 너무 아쉬워서, '윤기야 나도 따라갈래!' 했더니 오늘 수업 끝나고 친구랑 밥 먹기로 약속했댄다. 친구라면 지민이? 호석이?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옆에서 꼬치꼬치 물어봐도 대답이 없던 윤기가 잠깐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자판을 두드리며 "있어. 임보름이라고." 라고 말했다. 아... 그래? 예상과는 다른 이름이 윤기 입에서 튀어나오자 떨떠름한 반응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임보름이 누구지. 대체 누구지. 누군데 윤기랑 식사 약속까지 하는 사이지?! 내가 모르는 윤기의 여사친도 있었다니.... 허어.. (절망) 신입생인가? 아니, 신입생이랑 별로 안 친한 것 같던데... 아, 뭔가 들어봤던 이름이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네. 호석이한테 물어봐야겠다. 전국에 계신 임보름씨를 모두 찾을 기세로 머릿속에 '임보름'이라는 이름을 수없이 곱씹으며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찰나, '뭐 해. 너 집 가는 버스 왔잖아.' 라는 윤기의 목소리에 제 정신을 찾았다.
"아냐! 나 오늘 학교 갈 일이 있어. 어, 맞아 내가 깜빡하고 있었네!"
"누가 금붕어 아니랄까봐..."
"내가 이래 봬도 너네 집 주소는 안 잊어 먹거든요?"
"허이고. 그래서 술 먹고 바로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나?"
"........아, 그건..."
"엄마아~ 문 열어줘어~"
이걸 그냥..... 마치 어젯밤 내 모습을 재연하는 듯, 민윤기가 한껏 비꼬는 말투와 얄미운 표정으로 나를 놀려댄다. 평소엔 세상 혼자사시는 듯이 도도한 척, 무심한 척, 온갖 다하면서 가끔가다 이렇게 어린 애 처럼 장난을 칠 때가 있다. 물론 이런 모습도 귀엽긴 하지만 지나치면 매를 부른다니까. '하지마라...!' 하면서 윤기의 옆구리를 꾹꾹 사정없이 찔러대니 윤기가 '너나 하지마앜핰' 하며 웃는다. 오케이, 그럼 나 질문 하나만. 임보름씨가 누구야? 뭔가 엄청 낯설진 않은데. 내 말을 듣고있던 윤기의 웃음 소리가 점차 줄어들더니 이내 아무 말도 없어진다. 알아야 할 건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재차 질문했더니 "선배." 라는 짧은 대답을 하곤 앞으로 먼저 가버린다. 내가 뭐 잘못 말한 게 있나... 멀어진 윤기의 뒷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마음이 찜찜해졌다. 같이가 민윤기! 하고 외쳐봐도 윤기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지하철 역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윤기야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
"없어"
치... 없기는... 아까부터 계속 말도 없이 창 밖만 바라보면서. 눈치가 보여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까부터 계속 말이 없길..래.." 라고 말했더니 대꾸 안하는 척 하던 민윤기가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냐" 라고 말했다. 거기에 덧붙이는 말이, '안 좋은 일이 생각나서' 란다. 그리고 또 다시 정적.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그게 임보름이란 사람과 관련이 있는 일인가. 민윤기 관련된 일이라면 적어도 척척박사일 줄 알았더니, 이렇게 모르는 게 많아서야... 그냥 내 자신이 답답해서 그리고 내게 아무런 말도 안 해주는 윤기에게 살짝 서운해서 폭 한숨이 터져나왔다.
* *
"누나!"
"어? 태형아"
"어제 잘 잤어요?"
"어, 뭐... 으응... 어제 나 바래다 줬다며."
(윤기 집으로).... 강의실까지 윤기를 바래다주고 난 뒤 할 것도 없겠다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향하는 찰나, 멀리서 태형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누나, 하고 해맑게 다가왔다. 어제 그렇게 태형이를 귀찮게 했던게 생각이 나서 태형이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전했더니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럼 커피라도 쏴주세요" 라며 웃는다. 안 그래도 고마움의 표시로 마실 거 쏘려고 했는데 어색하지 않게 먼저 말해주니 더 고맙네. "당연하지. 가자!" 깔끔하게 도서관은 포기하기로 하고 태형이와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근데 윤기 형이랑 얼마나 친한 거예요? 집도 그렇게 막 찾아갈 정도면"
"아, 고등학생 때 부터 친구였어! 내가 맨날 윤기 귀찮게 하는 거지 뭐."
"그렇구나... 근데 형은 아무 말 안 해요?"
"응? 무슨 말?"
"그야 당연히 누나가 형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요"
"커헉... 그걸 어떻게.."
순간 거침없는 태형이의 말에 마시고 있던 프라페가 목에 걸려버렸다. 아니 얘가 그런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태형이가 웃으며 "에이, 완전 티 나요 어제 과모임 있을 때도 계속 윤기형 기다렸잖아요. 그리고 학교 내에서도 유명하던데 뭘. 윤기형한테 엄청 헌신한다구." 하고 팩트폭력을 시전한다. 아... 내가 그런 이미지로 완전히 굳혀졌나 보다. 뭐... 기분 나쁜 건 절대 아니지만... 빨대로 휘핑크림을 휘적거리며 슬쩍 태형이에게 "윤기는 나한테 관심 없어 보이지?" 라고 물었다. 태형이가 잠시 음, 하며 고민하는 것을 보아하니 설마하는 괜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곧이어 돌아오는 태형이의 대답은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네요." 였지만. 역시... 어느 누가 보기에도 내사랑은 일방통행이구나. 정말 가능성이 없는 건가. 혼자 급 우울해져선 빨대에 묻은 크림만 깨작깨작 냠냠 거리다가 갑자기 태형이가 "누나, 나는 어때요?" 하며 꽃받침을 하기에 "귀엽고, 활발하지." 라고 솔직하게 답변했다가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본지.
"아니요, 그런 말 말고! 윤기 형 대신 이성으로서 난 어떠냐구요."
"........ 에엥?!"
동공지진. 말 그대로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태형이가 붙임성 좋고 활발한 성격인 건 잘 알겠지만 다짜고짜 그런 질문을 서슴없이 하다니... 게다가 이제 친해지기 시작한 건 끽해봐야 일주일도 안 됐는데! 애초에 나한테 저런 말을 꺼내는 이유가 뭔가 잠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 음... 이런. 머리가 안 돌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안나오는 질문일 수 밖에 없다. 부족한 거 하나 없는 애가... 인기도 좋을텐데 대체 왜 나한테...? 게다가 나 어제 술마시구 그런 행패까지 부렸는데도?! 괜히 내가 잘못 받아들인 거 일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질문해보기로 했다. "그거... 무슨 뜻이야?"
"으음, 전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아요. 말 그대론데. 누나한테 관심 있다구요"
헉. 세에상에....마상에... 얼굴 만큼이나 자기주장이 이렇게 뚜렷한 사람은 살면서 처음 봤다. 원래 연하들이 이렇게 적극적이던가. 아니면 그냥 이건 태형이의 타고난 기질...? 다물어지지 않는 놀란 입에 태형이가 손가락을 쏙 넣으려는 시늉을 한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서 내 앞에 앉아있는 새내기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프라페나 쭉쭉 빨대로 빨아마셨다. 누나? 태형이가 웃으며 아이, 귀여워. 란다. ...귀엽다고? 민윤기 같았으면 천천히 좀 마셔라 돼지야. 라고 했을텐데. 윤기와 태형이는 정말 극과 극인것 같다. 어디 이 중간 쯤인 남자는 안 나타나려나. 아, 아니다. 나타난다고 한들 이미 내 눈에 민윤기 밖에 안들어서 소용도 없겠구나.
"..왜?"
"네?"
"그러니까, 어, 으으... 왜 나한테 관심이...."
"매력 있어서요. 행동도 그렇고 말 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 윤기 형만 모르는 거 같은데"
.... 태형이가 괜히 나 속이려는 악의적인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민윤기한테도 박지민한테도 정호석한테도 그런 소리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가 잘생긴 연하 앞에서 그런 소릴 듣게 되니 귓등에서 소름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어...! 잠시 고민끝에 입 밖으로 나온 말이 겨우 "너두... 쩔어..." 였다. 좀 웃기긴 한데, 이렇게라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이 공간이 어색해질 것 같으니까. 나름 센스있는 대답이었나, 아님 그냥 태형이가 웃음이 많은 건지 이번에도 웃어주며 "이거봐요. 제가 이래서 누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예요." 란다. 와... 정말, 벽 같은 민윤기랑만 있다가 이렇게 적극적인 연하랑 있으니 몸이 적응을 못 하는 건가, 얼굴이 새빨개지는 기분이다. 음료 한 입을 마시고는 태형이가 "누나 혹시 저 불편해진 건 아니죠." 하며 입을 아래로 삐죽인다. "아냐아냐" 말은 그래도 눈을 못 마주치겠는게 마치 뇌가 벌써부터 '태형이 좀 어색해... 무슨 말을 잘 못하겠어 주인...8ㅁ8' 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게 너무 티가 났나본지 태형이가 "누나 취미 있어요?" 라고 화제를 전환한다. 취미라면야.... 민윤기 상태메세지 관찰하기? 윤기한테 꼬박꼬박 잘자라고 문자 보내기? 아니면 윤기 반찬 만들... 아, 다 민윤기네...
"저 연예인 좋아해요! 누난 좋아하는 연예인 없어요?"
"음.... 으음... 방시혁의소년들...?"
"우와 대박, 저돈데!"
"헐 진짜?"
"저 남팬이예요! 그중에서 뷔가 제일 좋더라구요. 귀엽고, 잘생겼달까?"
"우와... 너도 연예인 좋아하는 구나 진짜 몰랐다. 난 슈가가 제일 좋더라구 뭔가 윤기 닮은 거 같지 않아?"
"네 않아요.... 어딜봐서 윤기 형이예요~ 슈가가 더 멋지지. 그나저나 우리 공통점 찾았네요. 헤."
"그러네ㅎㅎ"
방시혁의 소년단으로 태형이가 공통점 하나 찾았다고 방글방글 웃는다. 거기에 따라서 나도 한번 웃고,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했던 분위기가 금새 풀어졌다. 태형이는 참 신기하다. 금방 사람을 이렇게 또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 수가 있다는 게. 어딜가든 사랑받을 아이인데 ...이런 애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다니. 따지고보면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 좋아해야할 일이고, 어쩌면 이 아이에게 호감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인데. 난 뭐가 그렇게도 아쉬워서 민윤기가 아니면 뭐든 소용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걸까. ...휴. 바보같은 민윤기. 벽 처럼 차갑고 딱딱한 민윤기. 태형이도 금방 눈치 채는 걸, 민윤기는 내가 저를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고삼 때의 민윤기가 내게 그랬듯,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거 부담스럽다고, 싫다고 말이라도 확실하게 하던지! 으음, 아닌가... 지금의 난 민윤기한테 반찬 꼬박해갖다 바쳐주는 밥줄같은 존재라서 차마 내게 그런 말은 못 하는 건가. 정말 그 이유때문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슬퍼지려고 하네. 갑자기 어깨가 추욱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태형이가 왜그러냐며 물어도 그냥... 과제 싫어서... 라고 말을 돌릴 뿐이었다.
* *
호석아 호석아 호ㅏㄱ아 야야야야야야야
PM 17 : 46
태형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누워 호석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까 낮에, 윤기가 말한 임보름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싶어졌기 때문이랄까. 나름 사람들에 대해 알고있는 게 많은 정보통이라 모르는 게 있을 때면 호석이를 통하기도 하고, 뭐 물어볼 땐 또 호석이만큼 그렇게 편한 사람이 없기도 한 이유였다. 오타가 난 줄도 모르고 다급하게 보낸 내 문자가 민망하게시리 호석이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는다. 아... 얘도 약속 있는 건가, 싶은 찰나
호서기
네 두목님?
PM 18 : 02
답장이 왔다. 이건 맨날 두목님이라고 그러네 하지말라니까! (호석이 말로는 내가 못생김파 조직의 두목이라서 두목님이란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물어보고싶은게 1.임보름이라고 알아? 2.윤기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3.나보다 친하데...? 이 세가지였다. 자판로 임보름이라는 이름을 두드리면서도 지금쯤 윤기랑 저녁을 함께 하고 있으려나 싶어서 손가락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첫번째 질문을 보내자 마자 호석이는 답장 대신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엥? 여보세요?"
[와~ 김여주!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왜? 응? 왜그러는데?"
[민윤기가 그 누나에 대한 거 말 안 해줬냐? 너한테까지? 진짜 심하다 심해.]
"야 바람 잡지 말고 괜히 무섭잖아... 왜 그러는데?"
[임보름이요, 민윤기 전여친이거든요 이 멍청아. 이번에 복학한다매.]
"......뭐?"
[맞다, 너 그때도 SNS 따위 안하는 문명외톨이였지... 야 그래서 그 일을 모르는 거네! 대박]
민윤기 전여친이라는 호석이의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쿵, 하고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순간 귀가 멍해지고, 정신이 빠졌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느낌인걸까 싶었다. 민윤기 전 여친이라니... 그런 게 있었어? 진짜 존재했었어? 나는 윤기에 대해 무지했다. 나름 민윤기를 고등학생 때 부터, 항상 옆에서 봐 왔던 사람이라 그래도 윤기에 대해서 왠만큼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단순한 내 착각이었다. 민윤기는 왜 내게 말 해주지 않은 걸까. 심지어 호석이도 알고 있는데. 내가 호석이 보다 저한테 불편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만약 후자라면, 왜? 윤기에게 반찬 갖다주고 청소해주고, 꼬박 잘자라고 인사하고, 발렌타인 빼빼로 별별 데이가 찾아와도 제일 먼저 그를 챙겨준 건 나였는데. 나 항상 어딜가든 민윤기 생각하고 걱정했는데. 그런 내가 너무 모잘랐나. 윤기에게 그렇게 못 미치는 존재였나. ...그리고 왜 난 알지 못한 걸까. 윤기와 그 선배가 사귀고 있었던 게 맞다면, 나는 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늘상 해오던 짓을 했던 걸까. 허무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찾아온다면, 정말 이런 기분일까. 모든게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 벙쪄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호석이가 "말이 없어! 듣고 있는 거야?" 라는 말에 터져나오려는 설움을 꾸역꾸역 삼켜내며 태연한 척 "응." 하고 대답했다.
[어떻게 된 거냐면 2년 전인가? 그 선배가 민윤기랑 사귀던 중에 양다리를 걸쳤나봐.]
"...응."
[그 선배 또 다른 애인이 눈치 까고 SNS에 그여자 실체를 올린 거지. 와 진짜 다시 생각해도 드라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뭘 어떻게 돼. 양다리 종결난거지. 그 여잔 소문 나빠져서 휴학하고. 근데 이번에 복학한다잖아.]
"아 정말 민윤기는 왜 그런...!"
[걔가 연애 할때 티 절대 안냈다. 너도 감쪽같이 몰랐잖아. 민윤기가 왜 너한테까지 말 안한 건진 모르겠지만. 근데 아마 대학 와서 처음 사귄 여자니까 속으로 많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을 아낀걸지도 모르지.]
"....."
[두목! 기죽지 마. 어차피 구여친이야 구여친.]
"알았어, 고마워..."
호석이와의 전화 통화 후, 생각이 많아졌다. 윤기가 정말로 그 선배를 많이 좋아했다면, 그런 이유때문이었다면 애초에 나랑 그렇게 가깝게 지낼 이유는 또 뭐야 진짜. 내가 이성으로 안 느껴지는 거, 알겠는데.... 잘 알겠는데... 민윤기는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기 챙겨주는 거, 생각해주는 거 좀 멈추게 했어야지. 적당히 좀 하라고 말 했어야지. 그게 여자친구를 위한, 그리고 자길 좋아해주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잖아. 베개에 얼굴을 묻었더니 왈칵, 눈물이 터져나오려 한다. 민윤기 때문에 우는 거 너무 많이 해봐서 이젠 울 일 보단 웃을 일만 남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보다. 얼마나 더 민윤기 때문에 울어야 하는 거지, 내가 민윤기를 좋아하는 한 계속 우는 일이 반복되려나. 주위사람들이 너 민윤기 헌신짝 밖에 더 된다, 그냥 맘 접어라 했을 때도 귀 막고 꿋꿋하게 내 할 일 했는데, 윤기에 대한 일방통행 멈추지 않았는데. ...그냥 내가 윤기를 포기하는 게 정말 맞는 길인건가.
윤기는 지금쯤 그 선배와 다시 만나서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내가 지금 민윤기를 생각하며 아파하는 것 처럼 윤기도 그 사람을 보며 마음이 욱씬거리려나.
* *
독자님드을! 안녕하세요 귤입니다!!
저번 첫글에 정말 감사하게도 댓글들과, 추천수 3개나 달려있더라구요. ㅠㅡㅜ하하하...정말 감동이었어요.
모자란 글 봐주시는 사랑스런 독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암호닉 신청 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사랑스런 암호닉 분들♡
침침니 moonlight 민슈가 산와뚜 다미 보그미 대구미남 1158 빔빔 효인 님!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민윤기] 5년 째, 내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무덤덤한 민윤기 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05/13/2e635ceaaba9a7aad28f84bc23e28727.jpg)
[단독] 신한카드 19만명 개인정보 유출(1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