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고객 권순영 X 웨딩플래너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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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더 낫지 않아요?"
"저는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
"그건 어른들이 보기에 너무 민망하지 않을까요..."
"요즈음 다들 그렇게 입는데 뭘."
"그럼 이거랑 이거 입어 볼까요?"
"네, 그거 예쁘겠네."
권순영은 영희 씨가 피팅룸으로 들어가자 내게 손짓을 하며 턱시도 진열대 앞으로 불렀다. 이거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냐. 권순영은 자신의 피부 톤이 죽어보이는 칙칙한 그레이 색상인 턱시도를 자신 몸 위로 대보고 묻는다.
“내가 또 어떤 색깔이든 다 쓸어버리잖아.”
“그거 네 얼굴 색 엄청 죽어 보이는데.”
“그럼 뭐가 예쁜데.”
“너는 이런 거 입어야 그나마 죽은 얼굴 안색이 살지.”
뮤트한 색상들이 다양하게 섞인 진열대로 가 권순영에게 어울릴 만한 턱시도를 헤집는다. 블루가 섞인 애쉬색에 턱시도를 권순영 몸 위로 겹친다. 이것도 끝장나게 잘 어울리네. 권순영은 색상이 마음에 드는지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온갖 멋있는 표정을 지으며 흡족한 제스처를 취한다.
"드레스는 파여야 예쁜데."
"그런 거 밝힐 나이는 지났잖아."
"트렌드를 따라가야지. 누가 요즈음 꽉 막히게 사냐."
"철 좀 들어."
"아, 맞다. 우리 부대표님이 있었지?"
"시끄러워."
철없이 움직이는 권순영의 입을 조심스럽게 때린다. 권순영은 내가 고른 턱시도를 비서에게 맡기고 드레스가 진열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이 다 파여 흡사 속옷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붉은색에 드레스를 집어 내 몸 위로 겹친다.
"이런 거 입어도 예쁜데."
"무슨 옷 같지도 않은 걸 내 몸에 대."
"진짜 예쁠텐데."
"내가 뭘 입어도 예쁘ㄱ,"
"근데 우리 부대표님은 이런 건 영 꽝이니까."
"허."
"키가 이렇게 작아서 드레스는 입을 수 있을런지."
"오지랖도 넓네."
"결혼할 남자도 없지?"
"무슨 상관이야."
"와, 부대표님. 고객 대우 너무하다."
"있으면 어쩔 건데요."
신부님 드레스 피팅 마무리되셨습니다. 피팅룸 밖에서의 티격태격한 분위기를 곧 종결시키는 음성이 흘렀다. 권순영 옆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자 곧이어 피팅룸에 커튼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커튼 사이로 고개만 슬쩍 빼 권순영을 찾는 영희 씨는 여자인 내가 봐도 감탄을 할 빼어난 외모를 드러냈다.
"신부님 나갑니다."
붉은 커튼의 바람이 간헐적으로 일렁였다. 붉은 어둠 속에서 도장을 찍어 올리듯 순백의 빛이 시선을 대동시키길 주도했다. 누구든 모난 것보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나도 화려하고 예쁜 것에 고집했고 평이한 것보다 사람들 눈에 띄는 걸 좋아했다.
"순영 씨, 이거 되게 어색해요."
"예뻐요."
"옷을 입었는데도 아무것도 안 걸친 기분이야..."
"왜, 예쁘기만 한데."
"나는 이게 마음에 드는데. 순영 씨는 어때요. 다른 것도 입어볼까요?"
"저도 이 드레스 마음에 들어요."
늘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걸 고집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의 묘미는 금방 식길 바라고 있었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영희 씨를 바라보던 권순영의 뒷모습이 야속했다. 권순영의 시선이 다시 내게 꽂히도록 침묵 속에서 관심을 끌어당긴다. 시선을 분산시킬 혼자만의 재롱을 떨어도 되돌아오는 건 측은한 나의 작은 탄식뿐이었다.
"순영 씨 턱시도는 고르셨어요?"
"아, 뭐. 대충."
"김 비서가 들고 계신 거?"
"네."
"블루는 별로인데. 아까 제가 골라준 거는요? 나는 그게 더 예쁘던데."
"그것도 예쁜데. 저는 이게 더 마음에 들어서."
"그럼, 순영 씨 마음에 드는 걸로 해요. 저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안색을 죽이던 그레이 턱시도는 영희 씨가 골랐던 안목이었다. 굳건하게 블루를 고집하는 권순영은 색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 번 더 그레이 색을 권유하는 영희 씨의 권유를 단번에 거절했다. 권순영이 진지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내가 조금씩 작아져 가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웨딩은 둘에게 절대 가벼운 웨딩이 아닌 인륜의 관계를 맺는 중요한 절차였다.
"요즘 사내에서 부대표 일 건성건성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에이, 그럴 리가요. 누가 그런 소문을 내는 거야. 오랜만에 군기 한 번 잡아야겠네."
"소문이죠? 민규 한 번 혼내야겠네."
"김민규일 줄 알았지. 근데, 전 대표님 안 바쁘세요?"
"연말에 잡혀 있던 플랜 다 끝내니까 조금 한가해졌네요."
"부럽습니다. 저는 이제 시작인데..."
"그래서 제가 부대표 도우러 안 쉬고 여기 왔잖아요."
"아,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안 도와주셔도 돼요."
"도와주면 안 돼요? 이따 저녁 얻어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건데."
"저녁이요? 같이 먹으면 ㄷ,"
"부대표는 오늘 저랑 선약 있는데."
권순영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서운 속도로 내 옆에 따라붙어 예정에도 없는 선약을 만들어 버린다. 야, 무슨 선ㅇ, 마지막 운을 떼기도 전에 내 말을 잘라먹고 자신과 약속이 있었던 마냥 전 대표를 경계했다.
"부대표, 사실이에요?"
"사실이지 그럼. 가짜에요?"
"아, 너는 좀 가만히 있어. 딱히 중요한 선약은 아니고... 괜찮으시면 전 대표님도 저희랑 같이 저녁 식사 하실래요?"
"오늘 저녁 식사할 사람 없었는데. 껴주시면 저야 감사하게 같이 가죠."
"전 대표는 고마움을 마음으로 받는 건 못 하나 봐요. 굳이 왜 끼려는 거야."
"아, 순영 씨는 고마움을 마음으로만 받으시나 봐요. 그건 예의 없던데."
서로의 말 속에는 암묵적으로 날이 세워져 있었다. 냉전 된 기류를 녹이는 건 권순영을 부르는 직원에 부름이었다. 직원은 피팅할 턱시도를 가지고 피팅룸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드디어 이 어둠의 삭막에서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권순영이 끈질긴 성격이란 건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부대표는 저 피팅하는 곳 따라오셔야죠.”
“내가 네 옷 갈아입는데 왜 따라가.”
“웨딩에 플랜을 맡으셨으면 피팅까지 봐주셔야죠.”
“고객님, 제가 플랜은 맡아도, 턱시도 피팅 전담까지는 안 해서요.”
“와, 진짜 정 없으시네.”
“아, 뭐. 고객님 한정.”
“안 따라오면.”
“뭐,”
“오랜만에 갤러리나 한 번 털어볼까.”
권순영은 자신의 휴대폰을 좌우로 흔들고는 먼저 피팅룸 안으로 향했다. 아 진짜 저……. 욕지거리를 뱉으려다가도 어색하게 마주치는 전 대표를 보고 미미하게 웃는다. 예전에는 권순영이 을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내가 을이다. 을인 나는 전 대표에게 가벼운 묵례를 마치고 피팅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대표님, 저 이거 입는 법을 몰라서요.”
“네가 다섯 살배기 애도 아니고.”
“애 맞는데?”
“아, 유치해.”
“이따 다 입으면 넥타이나 매줘.”
우리는 예전에나 연인이었지 지금은 남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술렁술렁 잘도 벗는 권순영 탓에 얼굴 혈색이 붉어졌다. 사귀었을 때는 몰랐던 쑥스러움이 지금에서야 배로 되갚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운동을 하는지 전보다 단단해진 상체를 몰래 힐끗거렸다.
“변태 같은 성격도 여전하네.”
“뭐래.”
“그래도 조금은 변했다.”
“야, 너 안 봤거든?”
“예전에는 대놓고 구경했잖아.”
“ㅇ, 웃기시네. 볼 것도 없었으면서.”
“야, 볼 게 없었다니.”
권순영은 셔츠의 단추를 위부터 하나씩 채워 나갔다. 단추를 채우는 순간에도 목에 걸쳐진 넥타이는 꼭 내게 쥐게 했고, 나마저도 그게 싫지 않은 듯 능숙하게 넥타이 매기 시작했다.
“아, 잠시만. 넥타이 매는 게 능숙한 이유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만나는 남자들마다 다 직장인이어서?”
“야.”
“아, 뭐.”
“나이 많은 사람들 만나고 다녔냐...?”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야, 내가 이 일만 몇 년을 했는데. 넥타이 한 번을 못 매봤겠냐?”
권순영은 옅은 탄식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게 직업이지. 곧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턱시도 깃이 죽은 부분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권순영은 곧장 영희 씨가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
비어 있던 식탁에 그릇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채웠다. 의자에는 가시방석이라도 숨겨져 있는 듯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게 짝이 없었다. 사람은 세 명, 수저와 젓가락은 세 개, 소주잔은 두 잔.
“아, 전 대표 잔 비워지셨네.”
“순영 씨 잔도 허전해 보이는데.”
“아니...”
“벌써 취하신 건 아니죠?”
“아, 그럴 리가요. 순영 씨야 말로 안색이 안 좋아지셨는데.”
“전혀요? 저 마신 거 같지도 않은데.”
의미 없는 승부라고 이럴 때나 딱 들어맞는 단어였다. 한 병씩 비워가는 잔들을 나는 맛도 보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 했다. 이 셋 중에서 주량 센 건 나인데…….
“칠봉. 씨 이거 맛있어요”
“아, 저 먹고 있어요. 대표님 드세요.”
“김칠봉. 당근 못 먹는데”
“아, 부대표 당근 못 먹어요? 몰랐네. 당근 말고, 버섯 먹어요.”
“아니에요. 모르실 수도 있죠.”
“역시 전 대표님은 아는 게 별로 없네. 쟤 버섯도 못 먹어요.”
“순영 씨는 부대표랑 무슨 사이길래. 아까부터 아는 척이에요.”
“아, 부대표가 말 안 했나 보네.”
“야, 잠시만.”
“우리 사귀던 사이인데.”
여러분 안녕하세요 TT. 진짜 오랜만이죠.
사실 일찍 오려 해도 독자님들 기억 속에서 제 글이
잊혀지셨을까 봐... 연재하기 되게 망설였거든요.
근데 알림 보니까 꾸준히 제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여럿 계셔서 오게 됐어요
문득 독방에서 제 글이 그립다는 글을 보게 됐는데
되게 죄송하고, 고맙고 여러 기분이 교차한 거 있죠 TT.
아니 웨딩플래너가 뭐라고 이렇게 기다려 주시는 거예요 ㅠㅠ 감동크리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빠른 연재하도록 노력할게요
애정해요 여러분 ToT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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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빠지신 분이 계씨다면 덧글로 알려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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